프로방스 & 코트다쥐르 Cote d'Azur 드라이브 여행
지중해의 쪽빛 바다, 따뜻한 햇살, 라벤더 꽃향기...

유럽은 참 매력적인 여행지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문명 유적지와 자연을 찾아 떠나는 이유도 그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볼 게 많으면 그 속내를 보지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관광의 감탄을 넘어선 속 깊은 여행 이야기. 두 번째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와 코트다쥐르이다.

코트다쥐르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알프코트다쥐르 주의 동쪽 부분, 마르세유(Marseille)남쪽 툴룽(Tulong)에서 이탈리아 인근 국경 도시 망퉁(Menton)까지 이어지는 지중해 해안 지역을 일컫는다. '쪽빛 바다의 해안'이라는 뜻의 이름 그대로, 코발트 빛 지중해와 일 년 내내 내리쬐는 따뜻한 햇볕, 그리고 작고 예쁜 바닷가 마을들이 어우러져 어딜 가나 여행자의 넋을 쑥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그런 빼어난 경관과 기후 때문에 이미 18세기부터 영국과 러시아의 귀족들이 추위를 피해 찾는 휴양지로 유명했다.

생 트로페즈 부두

코트다쥐르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자동차 드라이브 여행이 제격이다. 여름 휴가철의 인파를 피해 5월, 6월의 늦봄과 초여름에 일주일 정도의 여정으로 인근 프로방스 지역의 옛도시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이 시기에는 여름처럼 너무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쌀쌀하지도 않고 적당히 따뜻한 햇살에 라벤더를 비롯한 온갖 꽃들이 일제히 그 향을 뿜어낸다. 발길가는 대로 적당히 느린 속도로 달리다 보면 시원스런 해변과 깎아지른 구불구불 절벽 길을 따라 이어진 지중해의 해안 절경에 반하고 내륙의 야트막한 산길로 이어진 좁은 시골길의 꽃향기에 절로 취한다.

숙소는 호텔보다 캠핑장을 권한다. 코트다쥐르 곳곳에 산적해 있는 캠핑장은 단순히 텐트 치는 장소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별장식 펜션처럼 산비탈 숲속 곳곳에 가족용 방갈로를 만들어 놓아 여름엔 바캉스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 여행객, 추운 겨울에는 은퇴자들을 위한 훌륭한 별장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캠핑장들은 24시간 경비에 상점, 레스토랑, 세탁소, 각종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다. 캠핑장은 호텔처럼 등급이 매겨져 있는데, 보통 별 네개 이상의 캠핌장은 수영장 시설도 훌륭하다.

생 트로페즈 부둣가를 따라 길거리 예술가들이 그림을 팔고 있다.

코트다쥐르 접근은 니스나 마르세유의 공항을 통해서다. 우리나라에서 직항은 없지만 파리 드골공항을 경유하는 비행기 편이 여럿 있다. 인터넷 캠핑사이트에서 미리 캠핑장을 예약해 니스와 마르세유 중간 지점 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1주일 정도 머무는 것이 추천할 만한 일정이다. 니스나 마르세유 공항이 아닌 파리 드골공항에서 차를 렌트해 파리를 구경하고 니스를 찾는 여정을 고려한다면 최소 3~4일 정도의 일정을 추가해야 한다. 베이스캠프에서 니스(Nice), 에즈(Eze), 앙티브(Antibes), 칸(Cannes), 생 라파엘(St Raphael), 생 트로페즈(St Tropez), 모나코(Monaco) 등 코트다쥐르 곳곳의 해변나들이를 다니거나 엑상 프로방스, 레드보프로방스 등 프로방스 주변 도시와 관광지를 당일로 다녀오면 된다.

리비에라의 에즈 부근 해안 도로에서 바라다 본 지중해 풍경. 하루 종일 와인 파티가 열릴 것 같은 별장들이 해안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코트다쥐르 대표 도시, 니스

코트다쥐르에서 가장 지명도 높은 도시 니스는 연간 9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유럽 최고의 휴양지이다. 그 명성 그대로 옛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와 화려한 쇼핑타운,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 그리고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가득해 도시와 휴양지의 낭만을 모두 만족시킨다.

니스 해변은 자갈 해변으로 깨끗함을 자랑하지만 반대로 발을 다치기도 쉬워 해수욕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또한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호텔 잡기도 쉽지 않고 그나마 있는 곳도 비싼 호텔비(별3개짜리 호텔도 1박당 100유로가 넘는다)와 물가에 지갑 꺼내기가 겁난다. 하지만 코트다쥐르의 철도, 버스 교통의 중심지라 인근 관광지를 렌트카로 이동할 수 없는 여행자는 니스에서 숙소를 찾는 게 경제적이다.


성채 마을 앙티브

성벽으로 둘러싸인 해변 마을, 앙티브

해수욕을 즐기기엔 니스보다 앙티브를 첫손으로 꼽는다. 니스와 칸 사이에 위치한 앙티브는 외지인보다 현지인들에게 더 각광받는 곳으로 아기자기한 시가지와 해변이 바로 붙어 있는 항구 마을이다. 옛 로마의 항구였던 이곳에는 중세의 성벽이 상당 부분 남아 있어 독특한 느낌을 더해준다. 앙티브의 아름다움에 반한 피카소도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앙티브의 배경으로 그가 남긴 작품이 유명한 '앙티브의 밤낚시'다. 인상파 화가 크로드 모네 역시 '앙티브의 아침'을 그렸다.

앙티브는 재즈 축제의 마을이기도 하다. 1960년 시작해 유럽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앙티브 주앙 재즈국제페스티벌'은 수많은 아마추어 음악가들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악축제로 알려져 있다. 5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유명 재즈 대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등 더욱 성대하게 치러질 계획(7월 13일~14일)이라고 한다.

모나코 항구 전경

핫플레이스, 생 트로페즈

칸에서 툴롱을 향해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두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항구 마을 생 트로페즈가 나타난다. 조그만 어촌이었던 이곳은 19세기에 이르러 예술가들이 거주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요즘도 부둣가 주변에는 '길거리 화가'들이 직접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시해놓고 즉석에서 팔고 있다.

항구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부자들의 호화찬란한 요트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부둣가를 따라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손님들을 보면 생 트로페즈가 니스나 칸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 (hot place)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 조그마한 어촌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머물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브루스윌리스, 조지 클루니, 조니 뎁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 할리우드 섹스 심벌 파멜라 앤더슨이 선상 결혼식을 올린 장소도 이곳이다.

니스를 중심으로 툴롱 반대 방향, 이탈리아 국경 도시 망퉁을 향해 달리면 가파른 절벽으로 이어진 코트다쥐르의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이 지중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이곳 코스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름다운 풍광의 관광지가 마치 목걸이처럼 줄지어 있다고 하여 목걸이를 뜻하는 '리비에라'라 불리는 이곳은 굴곡이 많은 해안뿐만 아니라 따뜻한 기후의 영향으로 라벤더, 허브 등 화훼 재배와 향수 제조로도 유명하다.

지중해의 비경 전망대, 에즈

리비에라 해안 절경을 제대로 감살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꼽히는 곳은 절벽 꼭대기의 마을 에즈이다. 중세 시절 적들의 침략을 피해 세운 요새 마을인 이곳에서 비좁은 돌계단 골목길을 타고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코발트 및 지중해에 하얀 보트가 점점이 박혀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에즈를 지나 이탈리아 쪽으로 조금 더 달리면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인 모나코 왕국에 이른다. 잘 알려진 대로 나라 전체가 '부자들의 파티장'이라 불릴 만큼 화려한 도시다. 화려한 요트, 화려한 별장,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부자들까지... 모든 게 화려해 오히려 여행객을 질리게 만든다. 그 유명한 몬테카를로 카지노 앞 광장에는 대낮에도 영화에서나 보는 파티복을 차려입은 이들로 가득하다.

1. 앙티브 주앙 재즈 페스티벌 2. 유럽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고, 깊이도 가장 깊은 베르동 협공은 하이킹, 플라잉 낚시, 카누,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등산, 협곡 타기 등 수 많은 레포츠가 이루어진다. D71번 도로 중간 아르튀비 다리(Pont de Artuby)에선 번지 점프를 할 수 있다.

석회암 성채 마을, 레보드 프로방스

해안 절경이 어느 정도 질린다면 '레보드 프로방스' (Les-Baux-de-Provence) 석회암 마을과 베르동(Verdon Gorge) 협곡 드라이브를 즐길 차례다.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인근 레보드 프로방스는 멀리서는 하얀 석회암 바위산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누구나 탄성을 지를 만한 절벽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중세 때까지만 해도 성채도시로 위용을 자랑했던 이곳은 종교와 세력 다툼의 와중에 철저하게 파괴되어 지금은 옛 영광의 잔해만 남아 있다. 대신 성곽 아래에 200여 명이 살고 있다는 조그만 마을의 고풍스럽고 예쁘게 꾸며진 기념품가게, 잡화가게, 레스토랑, 카페들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이곳은 동양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에서는 몽셀미쉘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 관광지라고 한다.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 바위산 절벽 꼭대기에 이르면 평평한 지대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영주의 성이 있던 자리다. 우뚝 솟은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의 전형적인 풍경인,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라벤더 농장과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초록빛 협곡 지대의 비경, 베르동
코트다쥐르 해안에서 1~2시간 정도 걸리는 내륙의 베르동(Verdon Gorge) 협곡을 따라 달리는 여정도 프랑스 남부 드라이브 여행의 진수 중 하나이다. D71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베르동 협곡 드라이브는 해안 절경과는 또 다른 초록빛 협곡 지대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베르동 협곡은 베르동 강이 석회암 덩어리를 깎아 700m가 넘는 골짜기를 만든 곳으로 약 25km 정도 이어지다 협곡의 끝에서 생 크로와(Saint Croix) 인공호수와 만난다. 베르동 협곡의 카약 래프팅도 신나는 체험이다. 코트다쥐르 숙소에서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면 카약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래프팅은 호텔이나 캠핑장에서 사전에 예약할 수 있다.


여행 정보

렌트카 에이비스(www.abis.com), 유럽카(www.europcar.com), 내셔널카(www.nationalcar.com) 등 국제적인 렌트카 회사의 인터넷사이트에서 차량을 예약할 수 있다. 여름 성수기에는 최소한 한 달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가격은 하루 8~10만 원 선.

숙소 캠핑장은 수영장 등의 시설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 있다. 별 네 개 이상이면 가격이나 시설 모두 만족할 만큼 무난하다.


프랑스 샤모니 트레킹

프랑스령 알프스의 한 산중턱 바윗길. 초가을 햇볕이 남서쪽의 몽블랑 정상(4807m) 부근에 내려왔다. 몇 시간을 걸었지만 몽블랑은 같은 자리에 있다. 눈 쌓인 정상이 빛난다.

북쪽 산비탈 아래로 고개를 돌리면 길이 23㎞에 달하는 거대한 U자형 계곡이 두 눈을 압도한다. 계곡 아래로 조그마한 집들이 점처럼 붙어 있다. 이곳은 프랑스의 남동쪽 끝, 몽블랑과 함께 살아가는 샤모니 마을이다.

샤모니의 트레킹 코스는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을 둘러둘러 이어진다. 해발 2000m가 넘는 둘레길을 여성 가이드가 앞장서 걷고 있다. 계곡 맞은편으로 에귀유 뒤 미디의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Blanc)은 스위스·이탈리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해발 1036m의 계곡에 1만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산다.

이 작은 마을의 남쪽에는 서유럽의 최고봉, 몽블랑이 있다. '하얀 산'이라는 뜻의 몽블랑 덕분에 샤모니는 근대 알피니즘(등반)의 성지가 됐다. 1786년 처음으로 몽블랑에 사람이 선 뒤로, 수많은 산악인들이 샤모니를 찾아와 산과 인생을 논했다.

200여년이 흐른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180만명이 넘는 외지 사람들이 샤모니를 찾는다. 예전 모험가들처럼 몽블랑을 밟기 위해서? 아니다. 샤모니에는 몽블랑 외에도 총연장 350㎞에 달하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늦은 밤 샤모니 시내는 적당히 시끌벅적했다. 팔뚝에 털이 수북한 서양인들이 배낭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채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고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 앞 거리에는 호텔, 레스토랑, 식료품 가게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12년차 여성 가이드 크리스틴 페리외(45)는 "6~8월 성수기에는 호텔 방을 잡기도 힘들다"고 했다.

샤모니 주변 산길은 수십 수백개 갈래로 나뉜다. 이 중 '4대 산길'로 불리는 길이 있는데, '그랑 발콩 노드'와 '프티 발콩 노드', '그랑 발콩 수드'와 '프티 발콩 수드'다. '그랑(grand)'이란 이름이 붙은 길은 산세가 험하고, '프티(petit)'는 비교적 낮고 평탄하다.

다음날 아침 '그랑 발콩 노드'를 걷기 위해 출발했다. 이 길에 가려면, 에귀유 뒤 미디(3842m)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 에귀유 뒤 미디는 몽블랑을 둘러싼 수많은 에귀유(Aiguille·뾰족한 바위봉우리) 중의 하나다. 꼭대기의 전망대는 몽블랑을 지척에서 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오후 1시. 에귀유 뒤 미디를 구경한 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중간정거장 플랑 드 에귀유(2317m)에 도착했다. 샤모니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북쪽에 우뚝 선 브레방(2525m) 정상이 보였다.

가이드 크리스틴이 앞장을 섰다. 샤모니 산길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는 크리스틴은 유독 다른 등반객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골랐다.

사실 샤모니의 바위산에서 등반객들을 위한 일률적인 '정답'은 없다. 총연장 350㎞에 이르는 길이 어찌 한 길이겠는가. 곳곳에 표지판이 있어 방향만 잡으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몇십 분 정도 산비탈을 걸어 내려가자 샤모니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둘레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일행은 마치 산비탈을 사과 껍질 벗기듯 수평으로 둘러 걸었다. 옛날 양치기 소년들이 걸었던 길이다.

샤모니의 길을 걷는 이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만삭의 임신부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다.

2시간쯤 걸었을까. 크리스틴이 다시 가파른 바위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느새 전나무·자작나무 숲은 사라지고 바위에 붙은 이끼들이 초록빛 풍경을 연출했다. 시냘 포브스(2198m)에 오르는 마지막 바위에 선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얼음 입자가 느껴졌다. "빙하다!"

거대한 돌무더기 벌판 끝에서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맥 정상에서 흘러 내려오는 '빙하의 바다'다. 멀리 빙하 끝자락에는 유럽의 3대 북벽(north face) 중 하나인 그랑 드 조라스(4208m)가 태양을 등진 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드러냈다. 몽블랑보다 등정이 어렵다는 '마의 산'이다.

지난해 그랑 드 조라스를 등반하다 숨진 한국 산악인의 추모 동판을 뒤로 하고, 메르 드 글라스 아래로 향하는 산비탈길을 내려갔다. 가파른 지그재그 길에는 다홍빛 석남화가 가득했다.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비탈길의 끝에서 기차역을 만났다. 샤모니로 향하는 빨간 기차가 몽텐베르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샤모니 북쪽 산자락의 '락 블랑' 산장에서 등반객들이 몽블랑을 바라보며 쉬고 있다.

가는 길 인천공항에서 파리를 거쳐 제네바 공항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편도 20~25유로 정도. 1유로는 1500원 정도. 비슷한 가격으로 운행하는 봉고형 택시도 있으나, 4명 이상 예약을 해야 한다.

숙박·교통 샤모니에는 60여개의 호텔이 있다. 2~3성급 호텔은 몇대째 내려오는 가업인 경우가 많은데, 그리 넓진 않지만 정갈하다. 기자가 묵었던 포시니 호텔은 2성급으로 1인실 기준 50유로였다. www.hotelfaucigny-chamonix. com, 33-4-50-53-01-17

모든 호텔은 머무는 기간 동안 샤모니의 대중교통(버스·기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발급한다.

케이블카 케이블카 이용도 카드 한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1일 자유이용권은 50유로, 3일짜리는 70유로다. 각 트레킹 코스로 향할 때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끊어두면 유용하다.

안내소 시청 광장의 성당 왼편에 여행자 안내소(Office de Tourisme)가 있다. 간편한 지도와 여행 책자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모든 트레킹 코스가 담긴 상세 지도는 4유로에 판다. 사전에 이곳에 숙박 문의를 하면 여행 예산에 맞는 숙박업소를 직접 알아봐 준다. 예약 및 문의는 www.chamonix.com, 33-4-50-53-00-24

트레킹이나 고산 등반을 할 여행자라면 성당 오른편 고산등반 안내소(Office de Haute Montagne)를 방문하는 게 좋다. 직원 4명은 모두 등반 전문가로, 여행자에게 맞는 등반 코스와 그날의 날씨 정보를 알려준다. 33-4-50-53-22-08

식당 대부분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이다. 향내 깊은 치즈와 사부아(Savoie) 지역 포도주는 여행의 피로를 잊기 딱 좋다. 한국 음식이 그립다면 에귀유 뒤 미디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 앞 '산마루'를 찾아보자. 20년 가까이 샤모니에 거주하고 있는 조문행(51)씨가 주인이다. 유스호스텔도 운영한다. 33-4-50-18-50-73

가이드 해발 2000m 부근의 '그랑 발콩' 이상은 길이 복잡하므로 가이드를 쓰는 게 좋다. 일반 트레킹 가이드 비용은 하루에 187유로이며, 가이드 1인당 12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고산 등반 가이드는 1일 280유로로 제법 비싸다.

샤모니에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가이드 회사 '샤모니 몽블랑 가이드'가 있다. 직원은 200여명이며, 사전에 마음에 드는 가이드를 예약할 수 있다. 한국말을 조금 쓰는 싹싹한 가이드가 있는데, 이름은 베르데나트로, 한왕용 대장과 함께 등반을 한 경험이 있다. 33-4-50-53-00-88

문의 프랑스 관광청 한국사무소 kr.franceguide.com, (02)776-9142


해외여행 유럽 이탈리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는…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밀라노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레스토랑 Luxury shop
 

하이패션의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싶다면? 명품 브랜드와 코워크한 레스토랑, 카페, 리빙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밀라노에는 명품 브랜드가 만든 럭셔리 레스토랑과 카페, 리빙숍이 유난히 많은데, 돌체앤가바나는 밀라노에 첫 번째 레스토랑 ‘골드’를 열었고, 저스트 카발리와 트루사르디, 구찌도 밀라노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구찌 카페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구찌 로고가 찍힌 초콜릿은 패션 피플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르마니는 아예 빌딩 하나를 통째로 아르마니 스타일로 채웠다. 아르마니 홈, 아르마니 플라워, 아르마니 카페 등을 함께 운영하는 것. 이곳에 가면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dolce&gabbana gold 돌체앤가바나 골드
dolce&gabbana gold 돌체앤가바나 골드

돌체앤가바나의 첫 번째 레스토랑. 에너지와 태양이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꾸며져 있다. 호화스럽고 반짝이는 소재들과 대리석, 하이글로시 스틸과 거울, 샹들리에, 크림과 골드색의 가죽을 사용해서 따뜻한 느낌과 함께 아름다운 공간으로 연출했다. 넓은 공간이 카페, 비스트로, 레스토랑, 칵테일 바로 나뉘어 있다.

Add piazza risorgimento Tel 39 02 757 7771
Time 월요일~일요일 08:00~18:00(카페), 월요일~수요일 18:00~01:00 목요일~토요일 18:00-02:00(칵테일 바) 월요일~토요일 12:00~24:00(비스트로), 화요일~토요일 19:30~23:30(레스토랑) Url www.dolcegabbanagold.it
Station Tram 9, 29/30 Piazza Tricolore

giorgio 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 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르마니 건물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엠포리오 아르마니,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등의 의류를 위시해 가구, 생활용품, 향수, 레스토랑, 카페, 바 가 모두 모여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요리사 노부nobu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에서는 아르마니의 풍미를 반영한 퓨전 일식을 맛볼 수 있고, 아르마니 바에서는 퓨전 일식 메뉴의 아페리티보가 열리는데, 쫙 달라붙는 핑크색 티셔츠를 입은 멋진 몸매의 남성 바텐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꼭대기 층에 아르마니 호텔을 설립 중이며, 2010년에 완성된다.

Add via manzoni, 31 Tel 39 338 927 1409 Url www.giorgioarmani.com
Url www.armani-viamanzoni31.it Station Tube 3 monte napoleone

cafe trussardi 카페 트루사르디

cafe trussardi 카페 트루사르디

깔끔한 인테리어에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통유리창으로 된 이곳은 스칼라극장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Add piazza della scala 5 tel 39 02 8068 8295 Time 월요일~금요일 07:30~23:00 / 토요일 09:00~23:00 Url www.trussardi.com
Station Tram 1, 2 Teatro Alla Scala Tube 1, 3 Duomo


하늘 아래 첫 마을, 체르마트와 고르너그라트 설원 파노라마

동화 속 엘프의 마을처럼 눈 쌓인 샬레를 배경으로 한 아담한 마을 체르마트. 스위스 하이킹 루트 중 체르마트와 고르너그라트에서는 장대한 알프스의 파노라마가 장관을 이룬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5성급 호텔. 천문망원경을 통해 별보는 식사 코스가 유명하다.”

알프스의 대표 인명 구조견 세인트버나드(좌)와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산봉우리들을 표시한 안내판(우).

스위스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노선에 파노라마 기차가 다닌다. 그중 빙하특급은 생모리츠(St. Moritz)에서 체르마트(Zermatt)까지 운행된다. 레만 호의 풍경에 익숙해질 때쯤 비스프(Visp)에서 체르마트로 오르는 빙하특급 열차에 올랐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개를 들어도 쉽사리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산, 소와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 굽이치며 흐르는 골짜기, 산비탈 마을로 곡예하듯 움직이는 케이블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본 설경.
“스위스 최고봉인 3634m의 몬테로사와 리즈캄, 츠빌링에, 부라이트호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앞에 선 고산 까마귀의 앙증맞은 모습.”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오르는 산악열차로 오르던 중 맞닥트린 설경.
스위스 지역의 전통가옥인 샬레가 험난한 산들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들어선 마을, 체르마트의 전경.

체르마트는 동화 속 엘프가 살고 있는 듯 아담한 마을이다. 샬레(아랫부분은 돌, 전체적인 골조는 나무로 된 주택)가 계곡을 따라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알프스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터호른 관광의 유일한 리조트로 웅대한 알프스의 설원을 감상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약 400km에 달하는 하이킹 코스를 걷기 위해, 겨울에는 스키를 타기 위해 방문한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관광지를,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도 늘고 있다.

산악박물관 마터호른 뮤지엄. 체르마트 마을 광장에 들어선 이 박물관에서는 스위스를 비 롯한 알프스 등반과 산악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이 아기자기 하게 전시되어 있다



산위의 눈이 녹아내린 물은 체르마트 마을을 관통하는 강이 되어 흐른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5성급 호텔이 있다. 여름이면 천문 망원경으로 별을 보며 식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하루 묵어도 좋고, 아쉬운 대로 전망대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여도 좋다. 설산의 감동을 한쪽으로 하고, 하이킹 채비를 했다. 고르너그라트에서 열차를 타고 리펠알프(Riffelalp)에서 내려 체르마트까지 내려가는 길은 약 2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체르마트로 내려가는 하이킹 코스 시작 지점.
하이킹 코스 중간에는 어김없이 쉴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겨울 스키 슬로프로 이용되는 초입부분은 다소 가파르고 자갈이 많은 것이 흠. 이곳만 벗어나 하늘을 뒤덮은 침엽수림 숲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고요한 숲에 발소리만 울린다. 눈 녹은 물이 길을 따라 작은 개울을 만들기도 하고 폭포가 되기도 한다. 물이 흐르는 주변에는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풀이 돋고, 들꽃이 피어나고…. 그 길은 결국 사람이 사는 마을로 이어진다.

산 이래로 내려올수록 설원대신 풍경은 초록빛이 더 감돈다.
트레킹 길은 울창한 숲 사이를 지난다.
“겨울에는 스키 슬로프로 사용되는 길을 여름 눈 녹은 철이면 사람들이 걸어 오르기도 한다. 노르딕워킹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과 깎아 지르는 절벽…. 고르너 계곡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천지를 진동하는 우레 소리가 들려온다. 고르너 계곡에 다다랐다. 우리나라의 동굴 폭포와는 규모가 다른 고르너 계곡 안에 나무다리를 놓아 바위에 부딪히는 물살이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아찔한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4G로 어드벤처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나니 저 멀리 체르마트 마을이 놀란 마음을 토닥여주듯 인사를 건넨다.

체르마트 인근 레스토랑
체르마트서는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소형 전기자동차만이 운행한다. 역에는 말과 마부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산악열차로 오르지 못할 곳이 없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앞 열차 정거장 모습.”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양떼.

i.n.f.o.
코스
Zermatt-산악열차-Gornergrat-산악열차-Riffelalp-Gornerschlucht-Zermatt 난이도 소요시간 2시간 찾아가는 법 비스프 역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열차 이용. 코스 특징 등산철도를 타면 리펠알프와 고르너그라트에, 케이블카로는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 오를 수 있다. 레스토랑 Alphitta(+41 (0)27 967 21 14) 숙박 Hotel Perren(+41 (0)27 966 52 00)


천연효모빵 공부보다 더 급한 일은 비행공포증 극복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비행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였다,라는 사실을. 나는 12년 동안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데 가급적 한국 여행을 해야 하는 일을 기피했었다. 비행공포증 때문이었다. 폐쇄공포증은 내가 있는 공간이 문 또는 창문에 의해 모두 닫혔을 때 발생하는 불안감이 일반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증상을 이다.

비행공포증은 그 불안감에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공포감이 포함된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비행기 좀 세워주세요, 흑흑흑' 이런 외침을 들어보았는가?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세워달라니. 전조 현상으로 식은땀이 쏟아져내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약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기도 하지만 '비행기를 세워주세요'라며 읍소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천연효모빵 공부를 위해 유럽을 순례한다고? 과연 가능할까? 물론 가능했어야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심리 치료를 받아왔고, 다음 도전 목표는 운전이었다. 자동차 운전 또한 환자에게는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심리치료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차를 사고, 차 안에 앉아 있어 보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양평 시장에 가보고 … 이윽고 지금은 가로수길, 홍대앞까지 차를 몰고 다니게 되었으니 2단계 극복은 완전히 이뤄진 셈이었다.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극복하게 해준 'BMW'

어느 봄날 해질 무렵. 나는 강북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백미러에 나타난 '천사의 눈'(여기서 '천사의 눈'이라 함은 냉음극관-CCFL:Cold Cathode Fluorescent Lighting-으로 만들어진 BMW자동차의 LED 헤드라이트를 말한다)이다.

나는 천사의 눈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에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한 방에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요컨데, 나는 어느날 초저녁에 동그란 원형 헤드라이트의 신비롭고 근미래스러운 불빛에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매력적인 원형헤드라이트를 만든 BMW란 자동차 메이커는 도대체 어떤 회사이며, 어떤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일까,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뮌헨'이란 도시는 어떤 곳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뮌헨에 있는 BMW WELT와 BMW뮤지엄에 '천사의 눈'이 잔뜩 전시되어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봄이 오자마자 서두르듯 BMW본사가 위치한 뮌헨을 가기위해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비행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할 때만 해도 나는 극복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널찍한 공간이라서 공포심이 반감되는 프레스티지 클래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나는 식은땀, 심장 벌렁증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내가 내린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한 도시가 아닌, 나의 신천기를 열어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부터 여행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대한 샐러드 위를 달리는 '이체에(ICE)'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나는 시차적응이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중앙역에서 이체에(독일의 고속철도 ICE:Inter City Express)를 타고 뮌헨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0살은 족히 넘긴 유복해보이는 독일 아저씨, 아줌마들이 샴페인을 연거푸 마시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60대의 건강하고 '매너없는' 어르신들이 독일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다가, 독일의 고속철도는 자리에 앉은채 핸드폰 통화를 할 수 있고, 마구 떠들어도 상관없는 칸과 떠들어서는 안되는 사일런트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내가 산 티켓은 마구 떠들어도 결례가 될 수 없는 '소음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또 한번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고성방가를 배경음악삼아 3시간 동안을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줄곳 들었던 생각은, 내가 탄 이 기차가 브로콜리와 상추, 토마토와 오이가 잔뜩 쌓여있는 거대한 샐러드바의 위를 달리고 있는 미니어쳐기차가 아닐까하는 동화스러운 상상이었다. 그만큼 이 나라는 도시든 시골이든 예외없이 나무와 숲이 울창하다.

그 숲을 끝없이 달리는 열차니 '온 더 샐러드 트레인'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가슴앓이의 시작 '쾨니히스광장' 뮌헨역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을 켜 호텔스닷컴을 통해 예약한 '아트호텔뮌헨(art hotel munich)'을 찾아나섰다.

낯선 도시와 넓고 좁은 골목을 체우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은 생경스러웠지만, 동시에 언젠가 한번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아득한 데자뷰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잔뜩 찌푸린 하늘, 먹구름과 햇살 그리고 회색빛 석양이 마치 내 마음처럼 변덕스럽게 하늘모양을 바꾸고 또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는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을 향했다. 또 다시 스마트폰의 자그마한 창에 표시된 지도를 따라 이름모를 거리를 걷다가 맞딱드린 너무나도 이국적인 '쾨니히스광장'의 풍경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낡은 건물들과 웅장한 오브제, 그냥 아무생각없이 걷기만 해도 예술가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답고 철학적인 거리의 기운에 취해서 난 그날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체 참 많이도 걷고 또 걸었다.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에서 만난 올리베티수동타자기 '발렌타인'

독일현대건축가인 슈테판브라운펠스에 의해 설계되어 2002년도에 완공된 현대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가 디자인오리엔트 된 거대한 공업제품처럼 컨셉트에서 끝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완성되어진 건축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오랜 세월 짝사랑해 온, 2007년 12월 31일 타계한 디자이너 에토레소사스2세(ETTORE SOTTSASS Jr.)가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올리베티사의 빨간색 수동타자기 '발렌타인'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현대미술관의 1층 카페 구석에 놓여있던 '노르웨이세즈'가 만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너무나도 완벽한 건축공간이 만들어주는 안락함에 취했던 그날을 오랫동안 잊지못할 것이다. 누가 독일의 포스트모던과 바우하우스를 차가우며 인간미가 없다고 탓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완벽하고 따뜻하고 안락하게 감싸주는데 말이다.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도 유로비젼송콘테스트와 EU 그리고 묘한 열등감

힘빠진 다리를 이끌고 호텔에 도착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어둠과 함께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호텔 식당에서 라자니아를 뚝딱 먹고 호텔방으로 돌아가 티브이를 켜니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 유로비젼 송콘테스트가 방송 중이었다. 학창 시절, 오전 11시만 되면 라디오로 들었던 '세계의 유행음악'을 통해 만났었던 유로비젼 송콘테스트를 리얼타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흥분도 설렘도 잠깐, "굿이브닝 유럽!" 이라고 외치던 사회자 '스테판라브'의 요상한 영어발음의 멘트가 순간 왠지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유럽은 나에게 있어서 잘사는 이웃집의 공부잘하고 잘생겼으며 우애까지 좋은 형제처럼 어딘가모르게 부럽고 무서운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이체아이헤'호텔 주변 거리풍경과 '뮌헨앓이'의 시작

가을하늘을 연상케하는 높고 진한 파란 하늘아래에서 뮌헨의 거리를 걸었다. 여행지에서 하루 정도는 지도와 안내 책자 없이 무작정 발길이 닺는 곳으로 산책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날도 난 아침부터 아무런 계획없이 눈과 마음의 움직임만을 의지한채 뮌헨 시내를 걸었다.

빵굽는 냄새가 나면 고소한 냄새를 따라가 빵을 먹었고, 쇼윈우에 진열되어있는 그림 또는 오브제가 마음에 들면 점포 안으로 들어가서는 또 다른 그림과 골동품들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주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게 된 도이체아이헤호텔의 레스토랑과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상점들과 카페와 서점과 거리를 메우고 있던 친절하고 사랑스럽기 조차한 그곳의 사람들의 표정들 덕분에, 아직까지도 눈을 감으면 그 잔상들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런던콜링'(마르크스가 한 말이라고 알려진 이 어구가 실제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음)이 아닌 '뮌헨콜링'인 것이다. 결국, 난 그곳에서 돌아온지 이십여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짝사랑에 가슴아파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뮌헨앓이 중이다.

다음 여행은 본격적인 '천연효모빵 투어'가 될 것이다.


  1. Favicon of https://bluesword.tistory.com sword 2015.10.12 00:07 신고

    저는 뮌헨으로 신혼여행을 간 이유가 자동차 투어를 하기 위해서...

    물론 운전 말고 bmw와 벤츠를 보기 위해...ㅎㅎㅎㅎ
    정말 뮌헨앓이 이해 합니다. ^_^

    비행기 공포증... ㄷㄷ
    저는 폐쇄적인 환경 보다는 귀울림 때문에 싫어하는데
    다행이 큰 비행기를 타면 겪진 않더라구요, 작은 비행기를 타면 귀가 심하게 아픈...-_ㅜ...

    프레스티지석으로 비용이 좀 쎄긴 하겠지만
    공포증을 조금이라도 물리치셨다니 다행입니다. ^_^
    비행기를 못타면 너무 슬플거 같아요 ㄷㄷㄷ

모든 음모론의 도시로 어서 오세요 - 산 마르코 대성당

네모 선장의 잠수함 노틸러스 호가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르면, 저기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Cattedrale Patriachale di San Marco)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늙은 모험가 알란 쿼터메인, 아름다운 뱀파이어 미나, 미국의 젊은 첩보원 톰 소여, 영원히 늙지 않는 도리안 그레이, 그리고 지킬 박사와 투명인간까지... [젠틀맨 리그]의 올스타 영웅들은 왜 이 물의 도시로 왔을까? 악의 집단 팬텀이 세계 정부 수반들의 회담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테러를 벌이려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그렇다면 나는 묻고 싶다. 그 정부 수반들은 왜 이곳에 모인 걸까?


그림자 정부론이라는 게 있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선거에 따라 뒤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백 년 동안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어둠의 조직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영국(좁게는 시티 오브 런던)과 네덜란드가 그 음모의 중심으로 자주 언급된다. 바다와 금융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줄기를 더듬어 가면 결국 지중해에 자리잡은 베니스의 금융 자본이라는 뿌리에 와 닿는다. 안젤리나 졸리가 멋진 몸매를 뽐내는 [툼 레이더]에서 이 도시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일루미나티 조직의 집결지로 그려진다. 그들은 절대적인 힘을 가져다줄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열쇠를 찾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얽힌 이중의 음모 - 게토

세계사의 음모론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케이스는 이것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걸작 희곡들은 사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여타의 인물이 쓴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리스트에서 이 도시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왜 17세기의 영국 작가가 저 먼 나라 [베니스의 상인]을 주인공으로 희곡을 썼을까?


지중해가 세계의 중심이었을 때 베니스의 금융 자본은 바로 그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의 왕들은 그들의 채무자에 불과했고, 로마의 교황청조차 이들엔 손끝도 못 댔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 사회의 돈줄을 완전히 주무르면서도 아랍의 여러 나라와 적극적인 교역을 할 만큼 약삭빨랐다. 그 베니스의 실세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1파운드의 살'을 담보로 삼는 음흉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라는 캐릭터는 당시의 유럽 사회가 베니스의 유대 상인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잘 보여준다.


베니스 유대인 사회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게토(ghetto)'라는 단어다. 오늘날은 유대인, 흑인, 예술가 등의 폐쇄적 공동체를 일컫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원래 이 도시의 유대인 거주 지역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베니스 북서쪽의 게토 지역은 2차 대전 때 큰 손상을 입은 뒤 복구되어 오늘날도 오랜 유대 문화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신 게토(Ghetto Nuovo)와 구 게토(Ghetto Vecchio)라는 지명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신 게토가 더 오래된 동네라고 한다. 여러모로 수상쩍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룩은 베니스 유대 자본의 잔혹한 힘을 보여준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 - 산 바르나바 교회

성배와 아버지를 찾을 단서를 얻기 위해 도서관의 지하를 뒤지는 인디아나 존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입에 대었다는 성배(Holy Grail)는 기독교 문명의 여러 전설과 픽션에 끝없이 등장하며 모험가들을 유혹한다. 20세기의 고고학 히어로 인디아나 존스 역시 그 추적자들 중의 하나. 인디아나는 성배의 행방을 찾던 아버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뒤를 쫓다가 베니스에까지 오게 된다. 여기에 오래된 교회를 개조한 도서관이 있는데, 인디아나는 그 지하에 있는 옛 기독교인의 비밀 거주지(catacomb)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십자군 기사인 리차드의 무덤을 찾아낸다. 그리고 베니스에 존재하는 수많은 밀교 집단 중의 하나인 '십자가 검 형제회(The Brotherhood of the Cruciform Sword)'와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도서관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 판에는 '산 마르코 광장 옆의 마르시아나 도서관'이라고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다른 장소가 사용되었다.

이들이 뛰쳐나오는 문에 '산 바르바나 도서관(Biblioteca di S. Barnaba)'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산 바르바나 교회(Campo San Barnaba)'의 이름을 살짝 바꾼 것. 이 고풍스러운 교회와 주변의 가게들은 캐서린 헵번 주연의 영화 [섬머타임]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베니스에서 죽다. 죽은 뒤에 베니스에 가다 -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

어떤 연유에서이든 베니스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때론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1911년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베니스의 리도 섬에 있는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The Grand Hotel des Bains)'에 머무른 뒤 [베니스에서의 죽음, Death in Venice]이라는 소설을 쓴다. 주인공인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에 머무르면서 폴란드계의 미소년인 타지오를 보게 된다. 그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매혹된 구스타프는 자신의 노회함을 깨닫고 어떤 죽음의 계시를 받게 되는데, 결국 여기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1971년 루치노 비스콘티에 의해 영화화되는데, 바로 그 호텔에서 촬영되었다.


베니스의 몽환은 니콜라스 로에그 감독의 호러 스릴러 [지금 보면 안돼, Don't Look Now]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뒤 그 슬픔을 잊고자 베니스로 이사 간 부부가 오히려 그곳에서 딸에 연관된 초현실적인 체험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빨간 비옷을 입고 익사한 아이와 물의 도시 베니스가 기묘하게 연결되며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 영화 속에서 부부가 머무는 호텔 유로파는 가상의 장소로, 베니스에 있는 두 개의 럭셔리 호텔(Hotel Gabrielli Sandwirth, Hotel Bauer Grunwald)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베니스의 죽음]에서 미소년 역할을 맡은 비요른 안데르센은 그 전설적인
미모로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

카사노바의 풋풋한 밀실 - 팔라초 말리피에로

베니스가 낳은 가장 유명한 인물.카사노바는 이곳에서 사랑의 기술을 베웠다.


베니스를 찾은 이들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미지가 있다. 리알토 다리 주변 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가면들.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카니발에 참가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 신비에 매혹되었으리라. 가면을 쓴 채 신분과 가문을 지우고 하룻밤 연인을 찾는 전통이라니, 이 도시가 낳은 최고의 유명인 카사노바 (Giacomo Casanova)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카사노바는 1700년대 초반에 이 도시에서 태어나 근처에 있는 파도바의 학교를 오가며 청춘 시절을 보냈다. 베니스는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여행 붐의 필수적인 코스였다. 카니발, 도박, 곤돌라, 점술 등 온갖 환락의 기운이 넘치는 곳. 이 도시가 21세기까지 그 명성을 떨칠 바람둥이를 배출해낸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팔라초 말리피에로(Palazzo Malipiero)는 베니스의 거의 한가운데 있는 멋진 건물로, 당시 카사노바의 후견인이었던 알비세(Alvise Gasparo Malipiero)의 소유였다. 카사노바는 바로 이 건물에서 그가 여자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처음 깨닫는다.

이 도시의 천사는 그것도 뗐다 붙였다? - 페기 구겐하임 콜렉션

시대는 그 시대의 전설을 만들어낸다. 비엔날레와 영화제로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발돋움한 현대의 베니스는 그를 통해 제법 귀여운 전설을 탄생시켰다. 뉴욕과 빌바오에 거창한 미술관을 만들어놓은 페기 구겐하임은 베니스에는 작은 콜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을 내놓고 있다. 그 입구에 이탈리아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마리노 마리니의 '도시의 천사(Angelo della Città)'라는 조각 작품이 서 있다. 마리니의 트레이드마크인 말 위에 두 팔을 펼친 남자가 앉아 있는 연작 중의 하나인데, 문제는 이 남자의 중심부가 꼿꼿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에로 영화의 거장 틴토 브라스의 나라이면서, 교황청을 품고 있는 나라다. 어린 소녀들도 자연스럽게 지나며 이 작품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보수적인 가톨릭 인사들의 심기를 거스를 위험도 없지 않나 보다. 때문에 귀빈이 올 때는 이 부분을 나사를 돌려 뗀 뒤 그가 떠난 뒤에 다시 붙인다. 그래서 여러 번 그 부분이 도난당했다는 풍문이 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풍문일 뿐이라고 한다.


'도시의 천사'는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미국의추상표현주의의 세계로 우리를안내한다.

다른 바다로 통하는 비밀 통로 - 병기창의 사자상

바깥의 사람들은 눈치도 못 챌 이 도시의 신비를 가장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은 아마도 휴고 플라트의 만화 [베네치아의 전설, Favola di Venezia]일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자신이 이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게토의 비밀 정원에서 할머니의 친구들로부터 갖가지 이국의 우화들을 듣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만화의 주인공인 코르토 말테제는 베니스의 밤거리를 거닐며 유대-그리스-베네치아의 전통 부적, 마법의 에메랄드, 아라비아의 묘석과 같은 신비주의의 퍼즐을 맞추어간다. 그리고 그 유명한 병기창(Arsenal)의 사자 상 앞에 선다.

병기창 앞에 있는 사자의 고향은 그리스이고.그 팔뚝에 바이킹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베니스의 병기창 앞에 앉아 있는 네 사자 중의 하나는 원래 그리스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에 앉아 있던 것. 1687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나선 프란체스코 모로시니 장군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사자는 기원전부터 피레우스 항에 앉아 그 바다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지켜보아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사자의 어깨와 팔뚝에 루닉(Runic) 알파벳과 특이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 18세기에 베니스를 찾아온 스웨덴 외교관에 의해 이것이 스칸디나비아의 고대 언어임이 밝혀졌는데, 아마도 11세기에 지중해를 찾은 바이킹이 새긴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웅장한 전사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스웨덴에서 여기 왔다 가요. 여기서 돈 좀 벌었지요."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배낭여행자가 여행지에 새긴 낙서와 비슷한 종류랄까?

코르토 말테제는 베니스 곳곳의 신비주의 문양과 문자를 해독해 에게 해의 로도스섬으로 통하는 마법의 통로를 발견한다. 피레우스의 사자도 고향의 바다로 돌아가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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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2.02 09:58 신고

    가보고시 은 베니스여

25년이 지난 후 베를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수많은 가능성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독일 각지에서 몰려온 프로파간다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꿈을 키워나갔고 지금의 베를린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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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를 기록하다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뮤지션이었던 크리스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앙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베를린을 탈환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대표되는 타헬레스에서 활동하며 격동의 시기를 지켜봤다. 그 이야기를 <베를린 원더랜드> 한 권에 몽땅 담아냈다.

↑ 호평을 받은 책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 전문 출판사인 게슈탈텐과 함께 만든 책.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베를린에 얼마나 별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 1992년 풍경

현재는 세련된 갤러리들로 가득 차 있는 오라니언부르거 거리의 1992년 풍경.



포토그래퍼이자 뮤지션이다. 독일 중부 도시인 다름슈타트Darmstadt 출신이며 1990년 베를린에 왔다. 현재 앙케와 함께 봅스에어포트Bobsairport(www.bobsairport.de)라는 포토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다. (앙케)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북부 도시 브레멘Bremen 출신이다. 1990년 베를린자유대학에 입학하면서 베를린에 왔다.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로 카파Capa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던 밴드와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공연은 취소됐고 밴드도 해체됐다. 다들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버렸으니까. (앙케) 고등학생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TV로 보곤 베를린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다.



혼돈의 세상이었다. 정부가 재정비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는 '자유'를 선사했다. 독일은 물론 전 세계의 예술가, 펑크족, 무정부주의자, 몽상가, 괴짜가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빈집을 점거해 예술, 콘서트, 불법 파티 등을 여느라 바빴다. 앙케는 라이브 뮤직 클럽인 쇼콜라덴Schokoladen, '무단 점거'의 대표 아이콘이 된 타헬레스Tacheles에서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 음악 이벤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타헬레스가 들어선 건물은 1907년에 지은 백화점이었는데 제2차세계대전 후 폐허가 되었다. 1990년 2월 여러 명의 예술가들이 방치된 백화점으로 향해 화려한 그래피티로 건물을 무장시켰다. 이러한 무단 점거 운동을 스Squat이라고 한다. 철거될 운명의 건물은 예술가들로 인해 베를린의 명소로 거듭났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달랐고, 강제 퇴거의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끝까지 버텼고 결국 정부는 베를린 역사의 한편을 장식할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자 문화 공간으로 인정했다. 안타깝게도 건물 소유주의 압력에 의해 2012년에 문을 닫은 상태다.



<베를린 원더랜드>를 펴냈다. 사진과 내용이 굉장하다. (크리스&앙케)오랫동안 기획한 것이었다. 7명의 사진가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베를린의 '야생의 시기'를 담아냈다. 사진 촬영을 할 당시의 상황과 자세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 시대를 함께 겪은 사람으로서 가슴을 다시 쿵쾅거리게 하는 훌륭한 사진이 많다.



표지에 올린 1990년의 킨칙 거리Kinzig Str. 풍경이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 벤 드 빌Ben de Biel이 촬영한 것으로 베를린 동쪽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의 무단 점거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초를 휩쓸었던 다채로운 서브컬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베를린 미테 지역. 하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옮겨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여전히 베를린은 '한번 해볼 만한' 도시다. 우리는 사진과 디자인을 통해 베를린을 기록하는 일을 할 것이다.



↑ 마크 볼라베

자게 클럽Sage Club 앞에서 만난 클럽 커미션의 창립자 마크 볼라베.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마크는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짜 베를리너다. 그는 130여 개 클럽을 거느리는 클럽 커미션Club Commission의 대부답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 밤 클러빙을 즐기고 있었다.

↑ 베를린의 클럽

실험적인 예술의 무대가 되고 있는 베를린의 클럽.



서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록 클럽이었다. 그날 새벽 4시쯤 클럽을 나서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브란덴부르크 문이 개방됐대!"라고 말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택시 기사 또한 베를린 장벽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더라. 당장 브란덴부르크로 가자고 했다.



동, 서 양쪽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운집했다. 사람들은 장벽 위로 올라섰고 반대편 지역으로 뛰어내렸다. 예전 같았다면 군인이 탄압하거나 총을 쏘았을 텐데 군인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장벽을 넘었고, 동베를린에 발을 디딘 후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다시 서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축제 같은 분위기였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조금 긴장했다. 1953년도에 일어난 동베를린의 폭동 때처럼 무장한 소련군이 몰려올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민들도 정부도 평화를 지켰다. 기적과도 같았다.



1980년대에 이미 독일은 영국과 함께 테크노 음악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베를린 미테 지역을 중심으로 무료 지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생겨났다. 베를린엔 주인이 없는 '빈 공간'들이 넘쳐났다. 특히 장벽이나 양쪽의 정부 기관이 들어서 있던 곳이 그랬다.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platz, 빌헬름 거리Wilhelm Str.에 에-베르크E-Werk, 데어 벙커Der Bunker, 트레조Tresor와 같은 전설적인 클럽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베를린에 불어닥친 개발 계획으로 인해 클럽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뒤 클럽 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2000년에 클럽 커미션을 창설하게 됐다.



트렌스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동독 출신 DJ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벌어졌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동서독의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클럽은 단순히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베를린에는 미술,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업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클럽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다. 클럽엔 음악, 음향,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적 장치들이 어우러진다. 훌륭한 클럽은 예술적인 생각, 실험 정신을 가져야 한다. 클럽 커미션은 이러한 클럽을 발굴하도록 돕는다. 처음엔 20여 개 클럽이 모여 시작했는데 현재 130개 클럽이 가입되어 있다.



베를린 클럽 신의 산증인과도 같은 트레조. 규모나 음악, 음향 시설, 레지던스 아티스트 등 여러모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베르그하인Berghain.



기도의 '물 관리'는 클럽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겉치장과는 상관없다. 이미 술에 취했다면-특히 남성 무리-입장이 어렵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니며 감각을 열고 자유롭게 클러빙을 즐길 이들을 감별해내도록 교육받는다. 너무 어렵나?



↑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미헬베르거 호텔의 아늑한 안마당에에서 만난 톰과 이현지.

오래된 공장의 창조적 변신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진짜 베를린을 만나고 싶다면 미헬베르거 호텔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한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이들이 모여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 카페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카페.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출신이다. 2003년 베를린을 처음 찾았다. 장벽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베를린 동쪽의 경우 3개 건물 중 하나는 레노베이션이 필요해 보였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째 날, 이곳이 나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나는 국제 비즈니스를 공부했지만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나만의 독자적인 일을 꾸리고 싶었다. 베를린은 최적의 도시였다. 이곳엔 한층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존재했다. 저렴한 물가 덕분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쫓기지 않아도 됐다. 독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전혀 다른 사람들, 도시가 지닌 놀라운 역사, 그래피티, 음악 등 곳곳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를 꿈꿨지만 특출한 재능을 지닌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공동 창업자인 나딘과 오랜 고민 끝에 호텔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잘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을 벌여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호텔 학교에서 유학 중이었다. 취업을 알아보다 베를린에 새로운 호텔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호텔리어답게 블랙&화이트 슈트를 차려입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캐주얼한 차림새의 톰과 나딘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형 호텔들에서 느낄 수 없는 열정, 가족적인 분위기에 반해 미헬베르거 호텔에 합류했다.



2004년부터 호텔 오픈을 준비했다. 각종 계획을 짜고 호텔 건물을 알아보는 데 총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딱 맞는 호텔 건물을 찾는 것이 관건 이었다. 베를린 내 100여 채가 넘는 건물을 보러 다녔고 결국 2008년 계약에 성공했다. 호텔 빌딩은 19세기에 지어진 공장이었다. 국가적으로 보존되고 있어 외관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레노베이션했다. 우리는 호텔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정할 때 다른 호텔들을 참고하지 않았다. 미헬베르거의 스태프와 참여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의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픈한 지 1년 만이었다. 런던에서 주최하는 어워드로 '카페, 바, 나이트클럽 혹은 라운지'의 카테고리에서 수상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자르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런던과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호텔에 합류해 아이덴티티 구축과 디자인 등을 전체적으로 담당했다. 호텔 로고는 물론이고 브로슈어, 벽화, 홈페이지의 일러스트와 디자인 등 아자르 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어우러졌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베를린에 '코코넛 워터'라니.

코코넛 워터는 물론 미헬베르거 크래프트 비어, 리큐어도 출시했다. 그중 리큐어는 미국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도시였다면 이러한 도전이 마냥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를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일에 더욱 쉽게 도전할 수 있고 수많은 아이디어, 열정을 가진 이들을 만나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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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서 싹튼 서브컬처

톰 뵈셔만

플래툰은 베를린과 서울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이들이 각 도시에 들여놓은 컨테이너 '쿤스트할레'에선 서브컬처가 꿈틀댄다. 플래툰의 대표인 톰 뵈셔만은 최근 평양 여행을 다녀왔다.



↑ 쿤스트할레 베를린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쿤스트할레 베를린.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놀랍다.



↑ 쿤스트할레 서울

쿤스트할레 서울.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축과 디자인으로 독일의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니. 중부 하노버 근교의 데트몰트Detmold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7년 베를린으로 옮겼다.

16세 때. 서베를린에 할머니가 사셨다. 할머니는 베를린에 온갖 '크레이지'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당시 서베를린엔 젊은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체질적으로 도발적인 환경을 좋아한다지만 청년들은 왜냐고? 베를린에 거주하는 남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거든.

하노버에서 서베를린에 이르는 아우토반이 하나 있었다. 모두 그 길을 이용했다. 서베를린까지는 2시간 30분쯤 걸렸다. 베를린에 도착하기에 앞서 동독의 관문 도시인 막데부르크Magdeburg를 지나쳤는데, 와, 깜짝 놀랐다. 그렇게 가난할 줄 몰랐다. 얼마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도 그때가 훨씬 충격적이었다.

독일문화원과 평양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에 입성, 4박 5일간 있었다. 영화제 공식 일정과 평양 시내 투어를 했는데 북한 가이드가 내내 동행했다. 평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놀랄 것이다. 서울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값비싼 독일 차들이 도로를 달리며, 규모가 작긴 하지만 고급 백화점도 있다. 빼어난 레스토랑도 많다. 최근 오픈한 일식집에서 8코스 디너를 먹었는데 식재료며 요리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6년간 쿤스트할레 서울을 운영하며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봤지만, 솔직히 말해 밥과 김치 등 기본적인 음식은 북한의 것이 더 맛있다. 그리고 술! 대동강 맥주! 감히 아시아 맥주 중 최고다.

소련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과 거대한 동상들, 군인들의 시가 행진에 필요한 전시용 대로 등을 보며 베를린의 카를 마르크스 알레를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평양과 베를린의 닮은 점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도시라는 것이다. 평양에 사는 이들은 북한의 지도층이나 엘리트들이다. 동베를린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가나 군인, 교사,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었다.

당시 데트몰트의 한 마케팅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장벽을 허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비를 챙겨 장벽을 무너뜨렸다. 불도저와 크레인도 동원됐다. 지난여름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축하 파티가 벌어진 것을 보았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인생 최대의 축제를 경험했다.

1997년 베를린에 왔고 2년 후 동업자인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나의 마케팅 경력과 크리스토프의 디자인 실력을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해보자고 결의했다. 4~5개월간의 브레인스토밍으로 찾아낸 답은 '문화 마케팅'이었다. 1990년대 말은 신문, 방송, 잡지, 빌보드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이 급속도로 발달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통해 브랜드와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 그래픽 디자인, 스트리트 아트, 클럽 음악 등 서브컬처에 주목했다.

파드핀더라이Pfadfinderei는 모션 디자인과 비주얼 아트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음악과 비주얼 아트를 접목하며 VJ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된 모데셀렉터Modeselektor. 일렉트로닉 듀오로 또 다른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아파라트Apparat와 함께 모던 테크노 그룹인 모데라트Moderat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쿤스트할레 서울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플래툰은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3500여 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이뤄 문화 활동을 기획,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을 시작으로 서울에 아시아 본부를 열었고, 내년에는 멕시코시티로 향한다. 그다음엔, 평양도 기대해본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남의 것을 막무가내로 탐하거나 지각없이 부러워하는 성정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여행을 하면서 종종 시기와 질투를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 나라의 특징으로 이해하지만 어떤 부분은 이 땅에도 이식시킬 수 없을까 하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유럽을 다니면서는 유독 두 가지가 부러웠다. 하나는 보행의 즐거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고성의 존재였다.

유럽에서 얻는 보행의 즐거움은 산이나 지방 혹은 외곽지역이 아니라 대도시에 있다는 것.

우리네와 대별되는 지점인데, 철저하게 보행자 위주로 조성된 대도시의 거리 그리고 걷는 멋과 맛을 한껏 돋우는 주변 경관은 수도 서울의 복잡하고 혼탁한 거리에 비해 확실히 부러움을 자아낸다.

고성만해도 그렇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고성과 퓌센의 노이쉬반스타인 성을 비롯해 돈키호테와 그의 애마 로시난테가 터벅터벅 함께 걸어갔을 듯한 시골길을 따라 방문하는 스페인의 고성들,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 지방의 호화로운 고성들은 해당 도시에 고색창연하고 중후한 멋을 드리운다.

또 이들 고성은 실용적이기까지 해서 일부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로, 일부는 박물관 등으로 전용돼 관광객 유치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물론 고성들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민관의 노력 또한 각별하다.

◈ 걷는 즐거움, 보행자의 천국 = 서두를 길게 뗐지만 결국은 덴마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으레 덴마크하면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 그리고 장난감 레고 등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덴마크는 보행자들의 천국이자 아름다운 고성들이 곳곳에 들어선, 고상하고 우아한 풍치가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한 마디로 '걷고 싶은 도시'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겠다. 보행자 편의를 위해 과감히 계단을 없앴으며, 발길에 치이는 설치물도 치워버렸다.

또 모든 건물은 시청의 종탑 보다 낮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 건물 높이를 6층으로 제한했다. 도심을 걷는 이들에게 다정한 탑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결정'이었던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보행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 소개하겠지만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의 경우 폭 10미터 안팎의 길 양쪽에 명품점과 레스토랑 등 2000여 개의 작은 가게들이 입점한 중세풍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어, 거리에 살가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도자기 명품점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로열 코펜하겐, 꽃을 사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꽃장식이 대단한 테에 아나슨 꽃가게,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빵을 구워내는 라인반하원 등의 명품점들과 함께 싸구려 할인마트나 기념품 코너도 공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은 가게들의 성공은 보행자 전용도로와 역사적 건물의 재생을 연동시키는 계획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걷고 싶은 도시 코펜하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다. 스트로이는 덴마크어로 '산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콩겐스 뉘토우 광장에서 시청 앞 보행자 광장까지 5개 보행자 전용도로를 통칭한다.

시민들은 누구나 주저 없이 '스트로이를 밟지 않고서는 코펜하겐을 다녀간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짱짱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1.4km에 이르는 스트로이를 시나브로 끝까지 걷게 되는데, 이유는 앞서 말한 그대로다.

◈ 중세로의 행복한 잠입 = 자, 이제 시간을 거슬러 중세로 잠입할 시간이다. 덴마크 여기저기에 산재한 고성을 찬찬히 뜯어보자는 것이다.

코펜하겐을 벗어나 기차로 45분 정도 가면 명미한 도시 헬레뢰드가 있다. 주변의 비옥한 농촌지역에서 경제적 뒷받침을 받는 번창한 시장도시이자 철도 교차점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프레데릭스보그 성(Frederiksborg Slot)이 있어 유명하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1602년부터 1630년까지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지은 붉은 벽돌로 된 독일 르네상스 형식의 이 성은 '덴마크의 베르사이유'로 일컬어진다. 200여 년 동안 7명의 국왕이 이 성에서 대관식을 올릴 정도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성이다.

1859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을 때 왕실에서 이를 재건할 경제적 여유가 없자, 맥주 재벌인 칼스버그 야콥센의 기부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덴마크의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회화, 가구, 보물 등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기능한다. 성을 둘러싼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탐스럽게 꾸며진 정원은 소풍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로젠보그 궁전 (Rosenborg Slot)은 1617년 당시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의 뜻에 따라 세워진 네덜란드 양식의 별장으로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매력적으로 평가받는다. 크리스티안과 연인인 키아스텐 뭉크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궁전 내에는 무도회장, 홀, 응접실 등이 있는데 웅장함보다는 왕이 언제든지 되돌아 올 것 같은 친밀감이 느껴진다. 궁전에는 크리스티안 4세와 5세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2개의 왕관이 있다.

전임 국왕의 왕관은 절대 군주제 전의 것으로 머리 부분이 열려있고 후임 왕의 왕관은 국내를 통일했다는 의미로 하나로 막혀 있는 점이 특이하다.

덴마크의 정원이라 불리는 핀 섬은 셀란 섬과 스토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 나라 제2의 섬이다.

낙농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전원풍경이 아름답다. 섬의 중심지는 바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 안데르센과 세계적인 작곡가 카룰 닐센의 고향으로 특히 유명하다. 섬 남쪽에는 이에스코우(Egeskov) 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성으로 1552년에 세워졌는데, 호수 위에 건립된 빨간 벽돌의 성벽과 탑은 주위의 넓은 정원과 어울려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힐 정도다.

로코코 양식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아말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Slot)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

왕실의 거처라고는 하지만 곰털 모자를 쓴 위병이 서있지 않다면 궁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박한 분위기다. 여왕이 궁전에 머무르고 있는 날에는 낮 12시쯤 왕실 근위병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빨간색 상의를 입은 70명의 위병들이 로젠보그 궁전 숙사에서 출발, 시내를 지나 궁전 광장으로 입장한다. 만약 산책 중에 위병 행진을 만난다면 피하지 말고 악대의 음악에 맞춰 뒤를 따라가 보자. 순간 수백 년 전 과거로 불시착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고라, 너를 드러내어, 너 자신을 알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자신이 누구인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옛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그 철학적 대화의 효용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하다보면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알몸으로 드러난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것. 그것이 철학의 기본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죽은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가 주로 출몰한 곳은 아고라였다. 아고라는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직접 이루어진 공간이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곳에서 재판도 열고, 시장도 보고, 모여서 공동체에 관한 여러 가지 결정도 내렸다. 직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철학이 실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방문하기 전, 아고라를 휘어잡고 있는 이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목숨이 걸린 재판에 이르기까지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려했던 이들에게 있어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재능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사람들에게 말 잘하는 법, 즉 웅변술을 돈 받고 가르쳤다. '현자'를 뜻하던 ‘소피스트’라는 단어는 '궤변가'를 뜻하는 말로 추락했다. 중요한 건 말재주가 아니라는 것을 집요한 문답으로 밝혀낸 소크라테스가 결국 아테네 시민들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은, 스스로를 안다는 것이 사실은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까?

디오게네스의 등불에 나를 비추다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라며 위풍당당하게 그를 내려다보는 청년 앞에서 남루한 옷자락 속으로 손을 넣어 긁적거리며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말했다는 철학자 디오게네스. 시노페에서 태어나 일명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 불리는 그는 퀴닉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명을 반대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추구한 그는 가능한 한 욕망을 줄이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신에게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던 것. 그의 세계관에 맞게, 그의 외양은 초라했다. 한 벌의 옷, 한 개의 지팡이, 그리고 약간의 소지품이 든 자루. 그리고 그의 집은 통이었다. 그의 철학이 퀴닉학파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는 통속에 사는 그의 모습이 개(퀴온Kyon)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이나 잘 먹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으며 불평없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개에게 찬사를 보내며 개처럼 살고자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디오게네스는 헐벗고 다녔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에피소드만큼이나 알려진 그의 기행은, 환한 대낮에 등불을 켜서 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며 들고 다녔던 그 등불은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는 이름으로 구전되었다.

현재 아테네에는 ‘디오게네스의 등불’ 기념비라고 알려진 것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동쪽에 있는 리시크라테스 기념비(Lysikrates Monument)는 BC 335 년경 소년 합창대회의 스폰서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이다. 그러나 그 생김새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 비석을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 부른다. 현재 이 비석이 자리하고 있는 수도원은 1810년 바이런 경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파르테논신전, 매연에 노출되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답지만 폐허에 가까운 파르테논 신전은 기구한 시절을 지나왔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지어진 이곳은 비잔틴 제국이 통치할 때는 동방정교의 교회가 되었다가,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후 카톨릭 교회가 되기도 했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할 때는 모스크가 되기도 하였으나, 성격이야 어찌되었건 비교적 잘 보존된 셈이었다. 하지만 1687년 베네치아공화국이 아테네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탄약고로 사용하던 파르테논 신전에 베네치아 군의 구포탄이 날아든 것이다. 이후 이어진 베네치아군의 약탈, 영국의 엘진의 유물 반출 등을 통해 파르테논 신전은 되돌릴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산성비에 노출되어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


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적은 ‘산성비’다. 파르테논 신전을 구성하고 있는 석회석, 대리석은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또한 산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가 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해에 의한 그리스 고대유물들의 침식 현상이 본격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그리스 문화부에서는 에렉테이온의 여상주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등에서 심각한 훼손의 흔적을 발견했다.

1990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아테네 시가 본격적인 오염 규제정책을 발표하면서 피해는 줄어들고 있지만, 공해에 노출된 파르테논 신전으로서는 공해자체를 현격히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보호방책이 없다. 다행히 시끄럽고 공해로 가득차 있기로 유명한 아테네도 최근들어 상당한 개선을 보이고 있다고.

올림픽경기장, 벌거벗고 달려라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 4년마다 한번씩 열렸던 이 경기는 시민권이 있고, 범법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제우스에 대해 불경한 행동을 한 적이 없던 남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여성의 경우는 관전조차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였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까? 색다른 것은, 당시 고대 올림픽에는 운동선수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인, 철학자, 예술가들도 참가해 문학, 예술, 연극 등을 겨루었다는데 현재에는 그 전통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서기 393년 로마제국의 데오도시우스 1세가 반 기독교행사라고 규정하면서 제293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역사 속에 묻힌 올림픽을 1896년 되살린 이는 프랑스의 쿠베르탕 남작. 빈곤한 그리스를 대신하여 돈을 쾌척한 그리스의 대부호 아베로프 덕분에, 아테네는 고대 경기장을 복원하여 제 1회 근대올림픽 개최지에 걸맞는 대리석 좌석의 경기장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아베로프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마라톤 승전을 알리고 죽은 병사, 그도 누드였을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리석으로만 된 이 경기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대경기장과 같이 말발굽 모양의 구조라는 것.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로마시대에는 투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각종 육상경기와 행사 등에 사용되고 있다. 28회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이곳은 또한 마라톤의 도착지점이기도 하다. BC490년, 아테네를 공격한 10만의 페르시아군을 1/5밖에 안 되는 2만의 아테네시민군이 물리친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2.195km를 달려온 병사의 죽음을 기리는 이 뜻깊은 경기는 올림픽의 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나저나, 그 병사도 누드였을까?

피레우스 항구, 가식과 위선을 벗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남자,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실존인물. 그는 거침없는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여 그가 ‘두목’이라 부르던 소설 속의 ‘나’를 감명시켰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가식을 벗은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 둘이 만나는 곳이 바로 피레우스 항이다. 피레우스 항은 아테네의 외항으로, 기원전 490년에 테미스토클레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아테네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곳으로, 유럽 각국으로 오가는 배들은 모두 이곳에서 출발하고, 또 도착한다. 에게해의 크루즈선들도 모두 이곳으로 온다.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사모스, 낙소스, 파로스, 미코노스, 사로니코스 제도, 도데카니사 제도 등. 지중해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될 항구다.

그곳의 카페에서 크레타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나’는 눈빛이 강렬한 한 남자를 만난다. 둘은 함께 크레타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나’는 조르바의 삶의 철학을 두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 그의 삶은 어설픈 철학들을 가차없이 부순다.

크레타섬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쓰여있는 말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할법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인간이니까”. ‘나’가 묻는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 다시, 그가 대답한다. "글쎄, 자유라는 거지” 그렇다. 모든 가식과 위선을 벗어버렸을 때, 인간은 자유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누드조각상들이 가득한 곳

벌거벗은 옛 그리스인들을 보고싶다면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가면 된다. 물론 당시의 그리스인들이 이토록 멋진 몸매를 하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된 나체의 조각상들이 박물관을 꽉꽉 채우고 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기원전 4세기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자신의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어디서 내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 했다는 이야기는 물론 지어낸 에피소드이겠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이 그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언제 아프로디테 여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며 수근거렸을 법하다.


1891년에 문을 연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을 본떠 지어졌다. 조각상뿐 아니라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진 조각, 회화, 공예품들이 한곳에 모였다. 조각상은 대부분 그리스의 신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없다보니 소지품으로 정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BC46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포세이돈 청동상은 멋진 자세로 뭔가를 던지기 위해 팔을 뻗고 있는데, 그 손에 든 것이 삼지창인지 번개인지 알 수 없어 “제우스 또는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표기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알려진 이유는 아마도 바닷 속에 빠져있던 것을 건져올렸기 때문인 게 아닐까. 1928년 아르테미시온의 바닷속에서 건졌기에, 아르테미시온의 포세이돈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 조각들은 사실적인 미를 추구했다.

리카베투스, 아테네를 굽어보는 민둥산

아테네는 벌거벗은 산에 둘러싸여있다. 큰 강이 없는 아테네는 늘 물 부족에 시달린다. 그 이유는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어느날 포세이돈아테네는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달겠다며 다투었다. 결국 이들은 시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준 신의 이름을 도시에 달겠다고 제안했다.

리카베투스의 민머리에서 보는 아테네의 전경은 훌륭하다.


포세이돈이 준 선물은 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리쳐, 물이 솟아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물은 소금물이었다.

아테네는 방패로 땅을 내리쳐 올리브나무가 자라나게 하였다. 올리브 기름과 올리브 열매를 시민들에게 준 것이다. 이를 본 시민들은 아테네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아테네에 ‘물 부족’이라는 저주를 내렸다.

이토록 물이 부족한 아테네에 산에까지 물이 안 올라가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리카베투스가 민둥산인 이유는 신화에서 나온 바로 그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물을 품기에 좋다. 그 덕분에, 리카베투스는 완전히 헐벗은 산은 면하게 되었다. 리카베투스는 ‘늑대들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산기슭에 우거진 소나무숲에 늑대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카베투스 산이 생기게 된 유래도 아테네 여신과 관계가 깊다. 아테네는 막 태어난 에리크토니오스를 바구니에 담아 케크롭스의 딸들에게 맡기며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아크로폴리스를 만들 산을 가지러 팔레네로 갔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한 케크롭스의 딸들이 바구니를 열어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테네는 화를 내며 들고오던 산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바로 리카베투스가 되었다고 한다. 리카베투스의 맨숭맨숭한 정상에는 아기오스 조르기오스라는 교회가 있는데, 이곳까지 오르면 아테네의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민둥산이기에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구단 가치가 높은 축구단 20팀을 매년 선정한다. 세계의 수많은 축구팀 중에서 올해까지 7년 연속 1위 자리에 오른 축구단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맹활약 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세계 최초의 공업도시, 록밴드 오아시스, 더 스미스와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의 고향인 맨체스터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자! 이제 맨체스터로 축구여행을 떠나보자.

경기장 내부. 좋은 잔디를 위한 관리가 한창이다.



세계인의 명소가 된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올드 트래포드)까지 가는 길은 보통 기차와 우리나라의 지하철 격인 메트로 링크 중 선택할 수 있다. 피카딜리역은 모든 기차와 버스가 오가는 교통의 중심지다. 이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인 메트로 링크를 선택해 출발한다.

피카딜리역에서 경기장이 있는 올드 트래퍼드 역까지는 일곱 정거장. 그동안 소요되는 약 15분 동안은 흥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세계 최고의 축구구장 중 하나인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을 방문하는 길인데 이 어찌 흥분을 감출 수 있으랴! 역에서 내려서 경기장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하다. 비교적 습윤한 날씨로 조금 쌀쌀했지만, 오히려 영국만의 독특한 멋이 느껴졌다.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맨체스터는 지금도 도시 곳곳에 역사의 향기를 내재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축구구단을 보유한 도시로 유명하지만, 그전에도 맨체스터는 영국의 가장 전통적인 여행지 중 하나였다. ‘북부의 수도’로 일컬어지는 맨체스터는 1990년대의 IRA 폭탄 테러의 아픔이 있었지만, 굳건히 일어서 오늘날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 입구.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드디어 마주한 올드 트래퍼드의 거대한 위용에 말을 잊는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다. 시즌 티켓을 구하기는 이미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쉬워만 할 필요가 없다. 맨유에서는 팬들을 위해 맨체스터 경기장 투어를 마련했다. 경기장 투어는 보통 20명 이하의 소그룹으로 진행된다. 팬으로서는 평소엔 들어가 보지 못하는 선수들의 라운지도 들어가 보고, 다양한 설명도 들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맨 처음 목적지는 역시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 경기장에 들어서면 초록색 잔디와 맨유를 상징하는 강력한 빨간색 의자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경기장 의자에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뮌헨 참사에 대한 아픈 이야기를 간직한 뮌헨 터널이다. 뮌헨 참사는 1958년 2월 6일,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컵) 경기를 치른 맨유 선수들이 탑승한 비행기가 독일 뮌헨 공항에서 이륙 도중 전복돼 선수 8명을 포함, 취재진, 팀 관계자 등 23명이 숨진 사건이다. 해마다 이때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벽면에 있는 사건기사나 현장 사진들을 바라보며 잠시 그분들을 기리는 기도를 드려본다.


다음으로 경기장 투어가 아니면 들어가 보기 어려운 구장 내부를 방문한다. 이곳에선 맨유 선수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라운지를 들어가 볼 수 있다. 벽면에는 맨유를 거쳐 간 수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제는 실제 선수가 된 기분으로 선수 대기실에 들어선다. 감독과 코치들이 경기 전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곳이다. 맨유 선수들의 유니폼이 걸려 있어 자연스레 몸은 달아오르고 흥분한 마음 가실 길이 없다.

올드 트래퍼드의 경기 관람석. 앉으면 착석감이 매우 뛰어나다.

박지성(13) 선수의 유니폼.


선수 대기실에서 경기 전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는 그라운드를 누비러 나가야 하지 않은가. 실제로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입장하는 통로로 걸어간다. 최대한 이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 조금은 느리게 걸어보기도 하고, 선수처럼 손발을 돌리며 몸을 풀어보기도 한다. 자! 이제는 경기장에 들어설 차례. 어느새 양쪽에서 올드 트래퍼드 입장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곳 맨체스터에서 올드 트래퍼드는 이미 경기장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된 듯 보인다.



맨체스터의 또 다른 매력 속으로

경기장 투어를 마쳤다고 해서, 맨체스터를 다녀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맨체스터의 매력은 올드 트래퍼드 만이 아니다. 맨체스터 시내 중심에 위치한 피카딜리 공원은 주말에는 시장이 열리기도 하며, 도시의 크고 작은 주요 행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맨체스터 시티 팀의 경기가 있을 때면 원정팀의 응원단들이 아침 일찍부터 모여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앞으로 조금 걸어가면 메트로 링크 정류장 건너편 건물 1층에 관광안내센터가 위치해 있다. 관광정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으며 도시의 안내지도를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맨체스터 관광을 위해서는 빠뜨릴 수 없는 시작점 역할을 한다. 또한 공원 반대 방향으로 두 블록 정도만 걸어 들어가면 차이나타운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중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식당뿐 아니라 맛 좋은 아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피카딜리 가든과 함께 또 하나의 도시 중심가를 이루는 곳은 대형몰인 ‘안데일(Arndale)’이 위치한 지역이다. 이 두 곳은 모든 버스가 오가고, 시내 노면전차인 트램이 모두 거쳐 가는 교통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다. 맨체스터 쇼핑의 중심지인 이곳 안데일의 마켓스트리트는 정말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는 쇼핑 천국이다. 한적해 보였던 도시의 모습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징하는 붉은색 간판들이 가득하다.

타운 홀은 신고딕양식이 돋보이는 시청 건물이다.


고즈넉한 걸음이 이어질 찰나 눈에 확 띄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1887년에 건설된 맨체스터의 시청 건물인 타운 홀이다. 고딕양식인 이 건물의 중앙탑은 높이가 85m에 이르며, 매 시각 23개의 종을 울린다고 한다. 특히 내부 천장에 있는 장식은 더없이 고풍스럽다.


타운 홀의 매력에 빠져 시간을 빼앗겨 버린 탓일까. 해는 이미 저물고 있어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 세우고 호텔로 발걸음을 돌린다. 택시 차창 밖으로 다양한 커플들이 보인다. 이 도시 어딘가에 게이와 레즈비언 공동체를 위한 게이 마을도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맨체스터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웃음 짓다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맨체스터는 역사적인 산업혁명의 중심 도시 중 하나다. 그에 걸맞게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실용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평범한 것이 진리’라는 말이 있듯이, 그 평범함 속에는 결코 무시 못 할 영국인들만의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강인함이 숨겨 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는 날씨 속에서도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발걸음들로 분주하다.




가는 길


핀에어가 헬싱키를 경유한 서울에서 맨체스터까지의 항공편을 운항한다. 런던에서는 약 42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런던에서 출발한다면 기차를 타는 게 좋다. 런던 유스턴(Euston)역에서 맨체스터 피카딜리 역까지 2시간 10분 정도 걸리며, 오전 6시 2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기차가 있다.


‘알프스의 지붕’ 스위스는 동서로 뻗은 알프스 산맥과 남서로 뻗은 쥐라 산맥 그리고 두 산맥 사이에 중앙고원이 펼쳐져 있으며 곳곳에 빙하가 만들어 낸 깊은 계곡과 호수가 아름답게 수놓인 나라다. 이곳에는 세계를 한 바귀 돌고도 남는 6만km의 하이킹 코스가 펼쳐져 있다.

 

Part1. 스위스 남서부 레만 호수
빛나는 레만 호수와 알알이 읽어가는 포도밭의 정취

스위스 남서부의 초승달 모양으로 드넓게 펼쳐진 레만 호수를 배경으로 포도밭 사이사이를 걸었던 그 감동은 황금빛 화이트 와인을 닮았고, 그 향기는 와인 아로마의 향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레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경사진 비탈길에서는 스위스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들이 자라고 있다. 오직 자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까닭에 그 신비로운 스위스 와인 맛은 타국에서는 맛볼 수 없다."

레만 호수를 둘러싼 마을의 지붕 색이 아름답다.

레만 호수를 배경으로 한 ‘몽트뢰’는 그림 같은 마을이다. 이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에는 지금도 팬들이 찾아온다.

“포도밭 사이를 걸을 수도 있지만 그 방대한 곳을 다 걷기보다는 지역을 오가는 ‘라보익스프레스’ 기차에 몸을 실어보자. 느릿한 기차의 정취가 이곳에 딱 어울린다.”

스위스의 남서부에 초승달 모양으로 드넓게 펼쳐진 레만 호수는 프랑스와 접경지대에 있다. 중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호수란 명성에 걸맞게 그 규모가 어찌나 큰지 문득 바다가 아닐까 착각을 불러일으킬정도. 레만 호수를 둘러싸고 남동쪽으로 알프스가, 북서쪽으로 쥐라 산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으며, 기후가 온난해 예부터 국제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찰리 채플린, 오드리 햅번, 록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등이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별의 호수’ 소리가 녹음된 곳도 바로 레만 호수이다.

레만 호수는 스위스 최대의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800㎢에 이르는 방대한 라보(Lavaux) 지구 포도밭에서는 주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스위스 와인은 대부분 자국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맛보기는 힘들다. 라보 지역의 산비탈에 내리쬐는 따스한 볕과 온난한 기후, 맑은 물은 포도를 살찌우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레만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진 라보 포도밭은 200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호수와 포도밭의 물결
라보 지역의 ‘와인 체험 루트’는 루트리(Lutry)에서 생-사포랭(St-Saphorin)까지 약 11km에 걸쳐 이어진다. 루트리 역에서 내려 표지판을 보고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마음대로 거닐면 된다.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의 모습과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이 교차되어 이어진다. 아직 계절이 일러 영근 포도를 볼 수 없었지만 곳곳에 심겨진 장미와 나무 사이로 흐르는 계곡이 운치를 더한다.

목마를 때쯤 도착한 에페스(Epesses)의 패트릭잘라(Patrick Fonjallaz) 씨 와이너리. 그는 여행객들에게 시원한 화이트와인을 내놓았다. ‘La R′epublique’란 라벨 뒤에는 1522년부터 생산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대를 이어 와인을 생산하는 그도 언젠가 두 아이에게 이 땅을 물려줄 것이다.

하이킹 루트를 표시한 안내판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길을 잃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끼리 포도밭 사이의 정자에 무릎을 대고 앉아 시원하게 들이킨 와인 풍취에 취하고 와인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그가 와인저장고를 공개했다. 화려한 장식이 수놓인 커다란 오크통에 와인이 잠들어 있었다.

한켠에는 피아노와 몇 장의 사진이 보였다. 어린 시절 와이너리를 방문한 채플린을 보고 패트릭 씨가 ‘콧수염이 없기 때문에 채플린이 아니야’라고 말하자 채플린이 즉석에서 ‘손가락 콧수염’을 만들어 보이는 순간이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이처럼 와인 루트의 클라이맥스는 사람과 이야기가 있는 와인 시음이 아닐까. 와인 시음은 지역 홈페이지(www.lavaux.com)에서 확인 후 신청을 하거나 현지 호텔에 문의해 참여할 수 있다.

I.N.F.O.
코스
Lutry-Epesses-Chexbres-St. Saphorin(Lavaux) 난이도소요시간 3시간 30분 찾아가는 법 루트리와 생-사포랭은 로잔에서 기차로 연결. 코스 특징 방대한 산비탈의 포도밭은 대부분이 포장도로여서 걷다보면 다리가 쉽게 피로질 수 있다. 복장과 신발을 최대한 편하게 하고 관광열차인 라보익스프레스 등을 이용한다.


곱창 요리의 원조는 어딜까. 곱창전골이나 순대국을 즐겨 찾는 대한민국 남정네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자신감은 금물이다. 우리보다 더 풍성한 곱창 요리를 발전시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프랑스 리옹 사람들이다.

리옹 특유의 음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소박한 음식점 부숑(bouchon)에 가보면 그런 비웃음이 금방 경탄으로 바뀔 게 틀림없다. 음식을 먹기에 앞서 식전주(aperitif)를 시키면 주인장이 곧바로 작은 접시에 안주거리를 내오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게 돼지곱창 튀김과 돼지 내장에 고기를 썰어 넣어 말린 소시송이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풍자소설로 1532년 리옹에서 출간된 '가르강튀아'에는 소나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가 언급돼 있어 리옹 곱창 요리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됐음을 말해준다. 전채와 주요리를 시키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보면 3분의 2 이상이 돼지고기 요리고 그중 절반은 곱창을 응용한 요리다.

그러면 왜 이런 곱창 요리가 발달한 것일까. 여기에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리옹은 로마시대 갈리아의 수도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리상 이점으로 오래 전부터 상업 거점도시로서 번영을 누렸다. 그 중심이 바로 리옹 서쪽 손강 좌안에 자리한 구시가지다(손강은 론강과 함께 리옹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강으로 도시의 남단에서 론강과 합류한다).

실크산업과 교역이 도시의 주축이었던 만큼 귀족문화보다 서민문화가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숑은 바로 상인과 공장 노동자들이 즐겨 먹던 서민 음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전의 부숑 주인들은 식사시간이 되면 간판에 말 먹이인 건초 묶음을 매달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차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상인들로 하여금 말에게 먹이를 주고 쉬어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부숑은 돼지고기와 내장을 주축으로 한 리옹의 독특한 먹거리 문화의 산실이 됐다. 구시가의 '샤베르 에 피스' '레 리요네' 등 대표적인 부숑은 지금도 끼니 때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댄다. 이제 주 고객은 노동자에서 관광객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말이다. 세계 최고의 셰프로 손꼽히는 폴 보퀴즈가 이곳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구시가지는 리옹 문화의 요람이다. 오늘날까지도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16세기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세월의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광객을 매혹한다. 역사적 기념물의 상당수가 이곳에 모여 있다. 12세기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생장 대교구교회, 푸르비에르 언덕의 로마시대 원형 극장을 비롯, 실크산업을 주도했던 각종 건물이 옛 영화를 소리없이 들려준다. 1998년 유네스코가 리옹 구시가 전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이런 역사·문화적 중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리옹은 결코 달콤한 과거의 영화만을 읊조리는 도시는 아니다. 리옹은 끝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도시다. 이 점은 도시의 구조에 잘 드러나 있다. 손강 서쪽에서 발아한 리옹의 문화적 씨앗은 근대와 현대로 이행하면서 도시의 영역을 동쪽으로 계속 확대해갔기 때문이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영예는 이런 '리요네(리옹사람)'의 도전정신의 산물인 셈이다.

리옹이 프랑스의 근대 문화 예술의 형성에 끼친 공로는 절대적이다. 리옹은 프랑스만의 독특한 인형극 '기뇰'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19세기 초 리옹의 실크 공장은 사양길로 접어들어 노동자들은 일감을 찾기 어려웠다. 로랑 무르게라는 노동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인형극을 호구지책으로 삼았는데 평소 재치 있는 입담으로 주위를 웃겼던 그는 뜻밖에도 대흥행을 거둔다. 그는 기뇰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레퍼토리를 개발했는데 이때부터 사회 현실을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풍자한 무르게의 인형극을 기뇰이라고 불렀다. 기뇰은 오늘날에도 공중파 텔레비전 정치풍자 프로그램에 등장할 정도로 인기다. 구시가의 가다뉴박물관 내에 자리한 국제인형박물관과 작은 기뇰박물관에 가면 기뇰 인형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고, 기뇰극장인 '매종 드 기뇰'에서는 기뇰 인형극을 관람할 수 있다.

근대 영화가 탄생한 곳도 리옹이다. 1895년 사진사의 아들인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는 오랜 실험을 거쳐 이곳에서 '뤼미에르 공장을 떠나며'라는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고, 같은 해 12월28일 파리 '그랑카페'에서 33명의 친구를 초대해 처음으로 상영함으로써 근대영화의 서막을 열었다. 리옹 8구 프리미어 필름 거리의 뤼미에르 박물관에 가면 두 형제의 치열한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영사 기기들과 그들이 제작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리옹은 현대건축의 실험실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은 프레스킬 코메디광장의 유서 깊은 리옹 국립오페라극장을 세련된 현대건축으로 탈바꿈시켰다. 장식적인 건물의 몸체는 그대로 둔 채 삼각형이었던 지붕을 반원형으로 단순하게 처리, 모던한 아름다움이 흘러넘친다. 이 건물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맞은편의 시청건물과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리옹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리옹 건축의 압권은 콘플루언스 지역의 오렌지 큐브(Orange Cube)다. 손강과 론강 사이에 반도처럼 길게 다리를 뻗은 프레스킬 지역 남단에 자리한 이 건물은 화려한 오렌지 빛 외관으로 행인을 매혹한다. 놀라움은 건물 가까이 갈수록 증폭된다. 건물 두 곳에 거대한 구멍이 파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물 전면 왼쪽에 깊게 파인 구멍은 시각적인 놀라움뿐만 아니라 건물 내부 깊숙한 곳까지 자연광이 도달, 환경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놀랍다.

이 밖에 리옹은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고향으로 유명하고 세계적인 비엔날레 중의 하나인 리옹비엔날레가 열리는 현대미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리옹은 현재의 그릇 속에 과거를 담은 도시다. 이곳이 간직한 다양한 문화적 자산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렵고 오직 리옹에서만 찾을 수 있다. 리옹시가 '온리 리옹(Only Lyon)'을 내세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 여행팁


리옹의 주요 관광지는 손강 왼편의 구시가지(Vieux Lyon), 손강과 론강 사이의 프레스킬 지역에 몰려 있다. 동선만 잘 짜면 대부분 도보로 방문할 수 있다. 이틀 이상 머물 계획이라면 리옹 시티카드를 구입하는 게 좋다. 대부분의 미술관 박물관 극장 등을 무료 또는 할인한 가격에 입장할 수 있고 지하철이나 트램 전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하루 이용권은 21유로, 이틀짜리는 31유로다.

부숑은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리옹 관광사무소가 선정한 리옹의 대표적인 부숑 17곳 중 10곳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요리에 대해 잘 모를 땐 오늘의 요리(plat du jour)나 업소의 정식메뉴를 선택하는 게 좋다. 오늘의 요리는 15유로 내외, 정식은 25유로 내외에 즐길 수 있고 와인 한 잔을 곁들여도 30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유명 부숑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입맛만 다시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명품 숍은 프레스킬의 자코뱅 광장과 벨쿠르 광장 사이에 몰려 있다. 에르메스, 구찌, 샤넬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치고 이곳에 매장을 열지 않은 곳이 없다. 매년 6월 말에는 대폭적인 세일 기간이므로 알뜰 구매 고객은 염두에 둘 만하다.

현대적인 숙박시설은 론강 동쪽의 파르듀 지구에 많다. 3성급 호텔의 숙박비가 파리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

리옹 인근에는 안시, 부르강 브레스 등 당일 코스로 방문할 수 있는 소도시들이 많다. 평창과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놓고 겨뤘던 안시는 아름다운 호수와 몽블랑의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진 프랑스의 베네치아다. 에밀의 작가 장 자크 루소가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부르강 브레스는 프랑스 최고의 맛과 육질을 자랑하는 브레스 닭의 산지로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은 모두 이곳의 닭을 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프랑스 리옹관광사무소 홈페이지(www.lyon-france.com)와 프랑스관광청 한국지사 홈페이지(kr.rendezvousenfrance.com)를 방문하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무릇 어느 한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고정관념이 깨지기도 한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흔히들 '이탈리아' 하면 거대 고대 도시 유적과 프레스코 벽화, 고색창연한 교회 등이 잔상으로 떠올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이탈리아의 전부가 아니다.

연중 알프스의 만년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차가운 빙하수가 모여든 호수에는 동화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내륙으로 파고들면 광활한 구릉지대에 와이너
리가 이어지고, 신선한 치즈를 생산하는 소떼가 초지를 뛰논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또 다른 속내이다.

 피에몬테의 자연 속에서는 미식의 본향, 이탈리아의 저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멋과 맛이 한껏 담겨 있다. 이른바 '라 돌체 비타', 한가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달콤한 인생'의 터전.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이다.

< 피에몬테(이탈리아)=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만년설-호수-와이너리-목장…'동화의 나라'에 빠지다
역사-동계올림픽-영화의 도시 토리노, 자동차-와인-문화관광산업 한눈에
 

◇피에몬테의 걸작품, 알프스 산자락 아래 스트레사 지역 마조레 호수위에 떠 있는 작은 섬 벨라에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캐슬이 자리하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 마치 수반위의 꽃꽂이 작품처럼 걸작이 세워져 있다.
 < 피에몬테의 네이쳐& 섬씽>

  여행하기 좋은 때가 왔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남부 유럽의 경우 여름철은 살인적 더위가 이어져 지금 부터가 떠나기 적당한 시기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찾기 좋을 만한 명소가 있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알프스산맥 자락에 위치한 피에몬테는 산과 호수가 빚어내는 빼어난 절경에 이탈리아 명품와인과 토속 별미를 맛볼 수 있는 미식기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우리와 자연적 환경이 비슷해 봄이면 양귀비와 민들레, 라벤다가 뒤덮이고 가을이면 와이너리에 알록달록 가을빛깔이 내려 앉아 화사하고도 은은한 매력을 발산한다.

  겨울 휴양지로도 모자람이 없다. 동계올림픽(2006년 토리노)을 치른 피에몬테 지역은 다양한 스키 슬로프를 지녀 스키마니아들의 천국으로도 불린다.

 
 ◆토리노& 사보이왕궁

  피에몬테의 중심도시 토리노는 역사의 향취가 물씬 배어나는 곳이다. 로마처럼 번성하지는 못했지만 18세기 사보이왕국의 수도로 도심 곳곳에 고풍스런 건물과 궁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토리노는 '토리노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는 관광산업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피아트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적 자동차 공업도시의 명성에 덧붙여 이탈리아 북부 문화관광산업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인접 도시로, 이탈리아 영화보급의 중심지 역할도 하고 있다. 해마다 늦은 가을이면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영화의 도시답게 '시네마뮤지엄'은 토리노의 랜드마크격으로 문화 중심지로도 통한다.

  토리노 여행의 시작은 센트럴 광장에서 출발한다. 광장에 있는 사보이왕국의 궁전에 들어선 박물관을 둘러보고 2층 시티투어버스에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토리노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가 그렇듯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옛 건물이 잘 보존돼 있다. 17,18,19세기 빌라지역이 물 흐르듯 연결돼 있는가 하면 신구 건축물의 조화도 돋보인다. 1시간 남짓 시티투어버스투어를 마치고 다운타운의 커피숍을 찾아 토리노의 명물, 초콜릿을 섞은 코코아커피 '비체린' 한 잔을 마시면 토리노의 향취에 더 진하게 빠져 들 수 있다.

  토리노의 중심으로는 포 강이 흐른다. 강변에 바와 커피숍이 들어 서 있는 등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포 강은 규모가 파리의 세느강과 흡사하다. 이곳에도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는데, 시설은 세느강의 것만 못하다.

  흔히 이탈리아 여행을 떠날때 쇼핑은 밀라노, 볼거리는 나폴리, 이색체험은 베니스, 미식과 와인은 토리노를 들먹인다. 토리노는 미식의 중심지 답게 이털리아 음식을 한 곳에서 섭렵할 수 있는 이색 공간도 갖추고 있다. 토탈미식공간 'EATALLY'가 그곳으로 식재료와 음식, 와인을 한꺼번에 쇼핑하며 맛볼 수 있다.

  토리노의 또다른 명물은 링고토. 옛 피아트자동차공장을 리노베이션해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곳이다. 옥상위 둥그런 공모양의 버블 피아노 연주장, 쇼핑몰, 르메르디앙호텔, 레스토랑 등이 입주해 있고, 옥상에는 드라이빙테스트를 했던 스피드웨이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룬 사보이 왕가의 로얄 레지던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토리노 인근 곳곳에 자리한 궁전 중 라코니지성은 사보이왕가의 취향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라코니지성은 우선 규모부터가 웅장하다. 180ha의 부지에 길이만도 3km에 이른다. 18세기 건축가 루이스 빅터가 만들었는데, 사보이왕가가 사냥을 좋아해 로비에는 각종 동물 형상의 부조가 세워져 있다.

  궁전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이다. 3000여 점의 그림과 초상화가 걸려 있는가 하면, 시계 수집이 취미였던 한 여왕의 시계컬렉션도 볼만하다. 또 사진작가인 엘레나 몬테네그로 여왕의 19~20세기 사진물도 함께 전시돼 있다.

  왕궁 인근에는 보태니컬가든으로 꾸며진 조류센터가 있다. 두루미, 황새, 오리, 원앙 등 다양한 조류 무리가 초화류 속에 파묻혀 있다.


 ◆'라 돌체 비타' 중세도시 살루쪼 & 트레킹 명소 '발마보브스'

 ▶살루쪼

  피에몬테 지역중에서도 '라 돌체 비타', 한가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중세도시가 잘 보존된 살루쪼와 그 광장이다. 토리노 남쪽, 슬로시티 브라 인근에 자리한 살루쪼는 삶의 격을 한차원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정평이 나있다.

  고풍스럽고 안락한 집에서 자고 일어나 조용한 문화유적의 도시를 산책하다 쇼핑을 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음악, 공연 등 문화생활을 즐긴다. 바로 살루쪼에서 가능한 생횔 패턴이다.

  살루쪼 광장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콧수염이 멋진 노년의 신사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미시주부 까지. 이른 아침 살루쪼 광장은 진한 커피향훈 속에서 느긋하게 시작됐다. 고풍스런 건축물을 구경하다 시선을 멀리 돌리니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프스 산자락이 눈에 들어 온다.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그림, 영화사 파라마운트를 소개하는 배경 화면의 산이 바로 살루쪼 인근의 알프스산자락이다.

  중세도시 살루쪼는 프랑스로 넘어가는 전략 요충지였다. 중세 고딕스타일의 건물에 바로크 스타일을 도입해,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일궈놓았다. 특히 이 지역은 수공예와 목공예가 발달해 세계 최고급 하프 생산지로도 통한다.


◇발마 보브스의 '스톤 하우스'

 ▶ 이탈리아식 올레길 '발마보브스'




우리의 올레길, 둘레길과도 같은 곳이다. 발마 보브스는 정감넘치는 트레킹의 명소다. 이탈리아는 유럽이면서도 풍광도 우리와 비슷한 게 많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조차도 순박하다. 이국적 건물만 빼면 영낙없이 우리네 고향마을 같다.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방인을 따라 나서는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도 정감 있다. 사진 한 방에 이내 마음을 연 아이들은 연신 묘기를 선보이며 친근감을 표한다.


 

마을을 지나 뒷산에 오르는 5km 남짓 트레킹 코스는 점판암 지붕에 크렘베리꽃, 익모초, 석류, 산딸기 등 이탈리아 농촌의 풍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주인 떠난 빈집 벽에 걸린 농기구며, 낡은 구두, 자전거 등이 1950년대 이전의 유럽 농촌 풍광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영화 속에서나 만나 봄직 할 느릿한 전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이 길은 '다빈치 투어 코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곳에서 돌을 구해다가 조각작품 만들었기 때문이다. 트레킹의 종착지에는 이곳의 명물, 19세기에 지은 돌집이 있다. 거대한 바위 밑에 돌을 주워 집을 짓고 살았다.
 



◇마조레 호수
 ◆'마조레 호수'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 '벨라'

알프스 산자락 아래 스트레사 지역에는 멋진 경관의 호수가 있다. 마조레 호수가 그것으로 호수 속의 섬투어는 최고 인기 관광 코스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에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캐슬이 자리하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 마치 수반위의 꽃꽂이 작품처럼 걸작이 세워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섬이 '이솔라 벨라'. 벨라 섬이다. 뭍에서 유람선으로 10분 정도면 닿는다.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 작품인 보로메오가문 소유의 여름 별장으로, 17세기에 세워졌다. 바로크양식의 궁전은 럭셔리 룸을 비롯해 외부에는 층마다 다른 레벨의 식물군을 식재해 이탈리아식 가든을 가꿔놓았다. 7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건물은 각기 다른 대리석 조각으로 궁전바닥을 장식한 일명 '베니시안 테라쪼' 양식의 모자이크가 특징이다. 

섬 윗부분에 조성된 가든은 그리스신화를 재현해놓은 듯한 조각상으로 빼곡하다.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을 비롯해 하체는 말, 상반신은 사람인 켄타우로스, 일각수를 지닌 유니콘, 제우스신과 주피터 등 다양하다. 

이밖에도 마조레 호수에는 어부들의 섬 '페스카토리'가 또다른 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물고기처럼 섬이 길쭉한 모양인데, 중심 폭이 100m 길이가 300m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6명의 어부가 멸치만한 물고기 트라우트 페르치고를 잡고 있다. '어부의 섬'이라 생선이 많아서 일까. 이 곳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다. 섬을 나와 스키장 곤돌라를 타고 '모테로나산' 정상에 오르면 알프스의 준봉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피콜로 라고'의 주방.
 ◆피에몬테 미식기행

이탈리아 농촌은 풍요의 땅이다. 너른 경작지에 좋은 기후와 강렬한 태양, 그런 천혜의 자연에서 풍요로운 소출이 이뤄진다.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열심히, 맛있게 먹는 '미식가 국민'이 배후에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이탈리아의 또다른 저력이 아닐까 싶다. 

피에몬테는 너른 평원에서 소를 많이 사육해 치즈와 고기를 활용한 음식이 발달해 있다. 또 크림,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도 유명하다. 특히 이 지역은 겨울이 길어 주민들이 단 초콜릿을 많이 먹는다. 뿐만 아니라 알프스 산자락 아래에는 물이 풍부해 쌀도 많이 재배한다. 때문에 리조또도 발달했다.

피에몬테 음식의 맛을 내는 기본 식재료가 있다. 엔초비, 마늘, 올리브오일이다. 우리가 김치 등을 담그며 마늘, 멸치젓을 즐겨 먹듯, 이탈리아 피에몬테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식습관을 지녔다. 

피에몬테 음식의 특징은 크림, 치즈, 고기가 듬뿍 들어간 대신 전반적으로 짠 편이다. 스파게띠, 아뇨로또도 짜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오랜 관습에서 비롯됐다. 중세에는 소금이 비쌌다. 때문에 소금의 소비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투어 짜게 먹었다.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 습관처럼 굳었다는 게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탈리아 음식은 프랑스 것에 비해 격식과 데코레이션이 많지 않다. 대신 신선한 신토불이 식재료를 바탕으로 맛을 내는 건강식에 가깝다. 피에몬테 음식이 이 기준에 충실한 편이다. 

전형적인 토리노 브레드로 롱스틱 타입의 '그라니시', 매운 것은 아니지만 마치 우리의 떡볶이를 연상케 하는 쫄깃한 파스타 '료키'. 소고기편육에 참치소스를 곁들인 '비켈로 또나또', 소고기 육회에 해당하는 '바투타' 등 맛난 별미가 즐비하다. 

이른바 세계 고급 레스토랑의 상징격인 미슐랭 스타. 이탈리아에서도 피에몬테 지역에 가장 많다. 피에몬테의 대표급 미슐랭스타 레스토랑으로는 '피콜로 라고'를 들 수 있다. 풍광좋은 스트레사지역 호반에 자리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다. 주방 셰프 중에는 일본인도 있는데, 전체 요리에 일본식을 접맥, 덴뿌라와 딸기소스 등 퓨전 스타일의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마조레 호반에 자리한 명품 호텔 '그랜드 호텔 마제스틱'도 피에몬테 요리의 진수를 선보인다. 연중 4~10월에만 문을 여는 호텔의 셰프는 일본인 가쪼다카 마루모토 씨. 히로시마 출신의 그는 전채로 송어 타르타르, 토마토와 앤초비소스를 곁들인 리조또 '카나롤리'를 선보이는데, 이 지역 굵은 입자의 쌀을 써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피에몬테는 와인도 유명하다.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등 유명 와인브랜드도 이곳 상품이다.


◇리조또
그랜드 호텔 마제스틱(메이제스틱)

마조레 호반에 자리한 명품 호텔 '그랜드 호텔 마제스틱'도 피에몬테 요리의 진수를 선보인다. 연중 4~10월에만 문을 여는 호텔의 셰프는 일본인 가쪼다카 마루모토 씨. 히로시마출신의 그는 전채로 송어 타르타르, 토마토와 앤초비소스를 곁들인 리조또 '카나롤리'를 선보이는데, 이 지역 굵은 입자의 쌀을 써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피에몬테는 와인도 유명하다.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등 유명 와인브랜드가 이곳에 몰려 있다.


◇에스프레소 커피


◇그라니시와 브레드

◆여행메모

 ▶가는길=인천공항에서 밀라노 말펜사공항까지 11시간 30분 소요. 알이탈리아항공이 대한항공과 코드셰어 주 3회(수-금-일요일) 운항.

 말펜사공항에서 토리노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 걸린다. 밀라노~토리노간 고속열차는 1시간 소요. 일반 열차는 1시간 55분 소요.

 ▶여행정보=이탈리아 관광청 한국사무소(www.enit.or.kr), 이탈리아 정부관광청(www.italiantourism.com), 피에몬테 주 관광부(www.centro estero.org)
토리노관광청(www.turismotorino.org)

스위스 베른은 구시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스위스 최초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됐다. 취리히, 루째른, 제네바 등 스위스에 명성 높은 도시들이 즐비하지만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는 베른이 유일하다. 베른은 스위스의 ‘당당한’ 수도이기도 하다.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은 알레강이 에돌아 흐른다. 강이 감싼 구시가 일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유네스코에서 밝힌 등재 사유는 이렇다. ‘알레 강에 둘러싸인 12세기에 조성된 언덕 위의 도시. 몇 세기에 걸쳐 독특한 컨셉으로 도시가 발달했으며 15세기풍의 아케이드, 16세기풍의 분수들을 담아내고 있다.’ 사실, 베른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취리히, 제네바에서 융프라우의 도시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경유하는 곳이 베른이다. 이탈리아 북부로 향하는 열차로 갈아타며 덩치 큰 역사의 번잡함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열차의 궤적 옆으로 오래된 도시를 알레강이 U자형으로 감싸고 흐른다. 고즈넉한 풍경에 한번쯤은 감탄사를 쏟아냈으면서도 그 동안 무심코 세계유산을 스쳐 지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쉽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세계자연유산인 융프라우 일대와 세계문화유산인 베른은 열차로 불과 50분 거리다. 수시로 열차가 오가며 실제로 인터라켄에서 베른까지는 주민들이 출퇴근도 한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1시간 거리로 묶여 있는 동네는 드물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분수의 도시

도시의 건축물들은 18세기에 재건됐지만 옛 개성은 그대로다. 베른에서는 한나절 정도만 할애해도 도시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슈피탈 거리, 시계탑, 대성당, 뉘데크 다리까지 이어지는 길목은 걸어서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식인 귀신의 분수. 베른의 분수대는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석조 아케이드에 걸터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은 베른의 일상 풍경이 됐다.

베른 구시가의 독특한 개성은 분수대다. 유럽의 거리들과 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것도 마르크트 거리 등 구시가의 중심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분수때문이다. 분수는 아름다운 형상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자의 입을 열고 있는 삼손의 분수, 구멍 난 신발을 신고 있는 백파이프의 연주자의 분수, 식인 귀신의 분수에서부터 마을 창시자와 최초의 병원을 세운 여인을 기리는 분수까지 테마가 다양하다. 그 분수대 옆을 아슬아슬하게 트롤리 버스(무궤도 전차)가 지난다. 베른은 길과 사람이 가깝다. 오래된 건물 사이, 2차선 도로를 트롤리 버스와 트램이 느리게 오간다. 인도와 차도도 별도의 난간 없이 흰 점선이 대신한다. 트롤리 버스들은 세련된 색으로 치장됐지만 구시가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친근한 거리들 중 명물로 여겨지는 곳이 석조 아케이드다. 유럽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중 하나로 저장고 형태의 반지하 상점이 늘어서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상점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에 앉아 사람들이 식사를 즐긴다. 시간과 돈을 아끼려는 도시인의 일상이지만 세계유산인 석조 아케이드에 걸터 앉아 나누는 그들의 대화에서는 색다른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아케이드를 걷다 보면 마주치는 게 시계탑이다. 베른의 상징이자 가장 멋진 건축물이다. 도시가 생성됐던 12세기 후반에 지어지기 시작해 16세기 중반에 완성됐는데 매시 정각 4분 전부터 곰들과 광대들이 나와 춤을 춘다. 그 시계탑 아래로 또 트롤리 버스들이 오가는데 시계탑은 감옥탑 이전에 베른의 출입구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캐릭터의 곰들이 등장하다

분수대, 시계탑 등 여기저기서 곰들이 등장하는 게 다소 의아할 것이다. 베른은 곰의 도시다. 도시의 이름에도 곰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주 깃발도 곰이 주인공이라 도심 여기저기서 곰 깃발이 펄럭거린다. 베른이라는 이름 자체가 도시를 세운 체링겐 가문이 곰 사냥을 해서 시작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뉘데크 다리 건너편에는 곰 공원도 생뚱맞게 들어서 있다.

베른 구시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깃발들을 구경할 수 있다.

스위스 최대의 고딕양식의 건물인 베른 대성당은 높이가 100m로 베른 시내 어느 곳에서나 보인다. 첨탑에 오르면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가깝게 다가선다. 아인슈타인이 머물며 상대성 원리를 완성시킨 집도 아인슈타인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뉘데크 다리는 도시를 감싸고 도는 알레 강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베른에서 반생을 보낸 파울 클레의 작품들도 파울 클레 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세계유산인 베른의 소중한 자산들이다. 주말 밤에 베른에 머무른다면? 고풍스런 낮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도시의 화려함을 밤새 경험할 수 있다.



가는길

한국에서는 취리히 공항을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취리히 공항에서 베른까지는 1시간 단위로 열차가 오간다.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각지에서 열차가 수시로 연결된다. 베른에서는 신분증만 있으면 자전거 대여가 가능해 자전거로 도심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주말 투숙객을 위한 다양한 혜택들도 마련돼 있다.

 


빙하 투어, 스키와 스노보드, 하이킹!
유럽은 참 매력적인 여행지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문명 유적지와 자연을 찾아 떠나는 이유도 그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유럽 여행 이야기 스위스 체르마트

언제부턴가 알프스는 스위스를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스위스 상징물 가운데 하나인 마터호른이 있는 지방은 스위스 남서부에 위치한 발레다. 사진은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서 내려다본 빙하지대.
최근 여행의 트렌드는 역시 걷기 여행이다. 걷기 여행을 대표하는 제주 올레길은 올 한해 40만 명이 찾는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걷기를 좋아하는 국민도 없지 않다. 웬만한 근교 산에 주말마다 산행 인파가 넘쳐나는 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모두들 불경기라고 하는데도 전 국민이 ‘필수 체육복’으로 등산복을 입고 다닐 정도로 몇 년째 등산 의류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그 증거다.  

걷기 여행 열풍이 이젠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이어질 모양이다. 스위스 관광청이 제주 올레길과 협약을 맺고 스위스의 걷기여행 코스를 적극 홍보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트레킹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나라이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빼어난 자연 경관 때문이다.

스위스는 1년 내내 각기 다른 모습을 갖고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알프스 시즌(6월~8월)이다. 만년설과 푸른 초원, 깨끗한 하늘, 고도에 따라 다양한 고산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체르마트에서 바라다본 마터호른.
멀리 눈덮인 알프스의 비경을 감상하고 야생화가 펼쳐진 들판,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크고 작은 호수까지… 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에 스위스의 하이킹 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경이로운 자연에 하나가 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아직 녹지 않은 슬로프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고 빙하까지 만날 수 있다면 분명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체르마트(Zermatt)는 스위스의 여러 하이킹 여행지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융프라우를 감상할 수 있는 인터라켄이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조금은 식상한 관광리조트라는 느낌이라면 체르마트는 인기 관광지이면서도 여전히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급 리조트라는 인상이다. 

체르마트는 4,000m 급 명산으로 둘러싸여 일 년 내내 웅대한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를 만끽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산이 영화사 파라마운트사의 로고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명봉 ‘마테호른’이다. 관광객들은 체르마트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하이킹을 하거나 스노보드, 스키를 타거나 등산철도 열차나 곤돌라를 타고 산에 올라 만년설과 빙하를 감상한다. 

특히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눈, 빙하, 야생화와 옥빛 호수와 계곡을 모두 만날 수 있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마터호른을 보려면 우선 체르마트에서 8인승 고속케이블인 `마터호른 익스프레스`를 이용해 중간 역인 푸리역으로 가야 한다. 그 다음 대형 곤돌라로 갈아타고 마터호른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트로케너 슈테크 전망대로 가면 된다.
체르마트는 걸어서 1~2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인구가 5천600명에 불과하다. 이 작은 마을에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위해 상점과 레스토랑, 호텔, 스키 렌털숍이 몰려 있다.

멀리 눈덮인 알프스의 비경을 감상하고 야생화가 펼쳐진 들판,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크고 작은 호수까지… 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에 스위스의 하이킹 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경이로운 자연에 하나가 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아직 녹지 않은 슬로프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고 빙하까지 만날 수 있다면 분명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체르마트(Zermatt)는 스위스의 여러 하이킹 여행지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융프라우를 감상할 수 있는 인터라켄이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조금은 식상한 관광리조트라는 느낌이라면 체르마트는 인기 관광지이면서도 여전히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급 리조트라는 인상이다. 

스위스 파노라마 열차인 빙하특급은 아름다운 설경과 깎아지른 듯한 계곡, 아슬아슬한 다리들을 지나는 유명 기차여행 코스. 이 빙하특급 종착지인 체르마트는 휘발유 차량 출입이 금지된다. 따라서 여행자들은 자동차를 중간역인 태슈의 대형 주차장에 세우고 이곳부터 등산 철도를 이용해야 한다.
체르마트는 4,000m 급 명산으로 둘러싸여 일 년 내내 웅대한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를 만끽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산이 영화사 파라마운트사의 로고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명봉 ‘마테호른’이다. 관광객들은 체르마트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하이킹을 하거나 스노보드, 스키를 타거나 등산철도 열차나 곤돌라를 타고 산에 올라 만년설과 빙하를 감상한다. 

특히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눈, 빙하, 야생화와 옥빛 호수와 계곡을 모두 만날 수 있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체르마트는 걸어서 1~2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인구가 5천600명에 불과하다. 이 작은 마을에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위해 상점과 레스토랑, 호텔, 스키 렌털숍이 몰려 있다.

체르마트 전경
유럽 최고 높이 전망대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

체르마트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케이블카나 산악열차를 타고 알프스의 웅대한 자연을 감상하는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여행이다. 체르마트는 4,000m급의 명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일 년 내내 웅대한 알프스의 산들과 빙하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터호른’을 감상할 수 있다. 

체르마트에서 마터호른으로 향하는 길은 다양하다. 정상 정복이 목적이라면 전문 가이드와 함께 등반 루트를 따라 오르면 된다. 스키를 타거나 전망대 투어가 목적이라면 케이블카 또는 등산열차를 이용한다.

관광객들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케이블카를 타고 유럽 최고 높이의 전망대인 마테호른 글라시어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se, 3883m) 전망대까지 오르는 것이다. 체르마트 기차역 반대 편, 반호프 슈트라세를 따라 한 15분 정도 걷다보면 마테호른 글레이셔 파라다이스를 오르기 위한 케이블 카 스테이션이 나온다. 8인승 고속 케이블 ‘마테호른 익스프레스’를 타고 중간 역인 푸리(Furi)까지 오른 후 다시 대형 곤돌라로 갈아 타고 트로케너 슈테크(Trockener Steg) 전망대로 오른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곤돌라를 갈아타고 오르면 유럽 최고 지점인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 전망대에 다다른다.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se) 전망대는 케이블카를 2번 갈아타고 다시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다. 유럽에서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이의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서면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의 영봉들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Mont Blanc, 4807m)을 비롯해 해발 4천m 이상의 봉우리가 무려 38개에 이른다. 마터호른 역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선다.

전망대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또 여기서  몇 십 계단 올라가면 ‘마테호른 글라시어 파라다이스’에 도착한다. 여기서 장대한 만년설과 빙하, 웅장한 마테호른을 마주하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고도차로 현기증까지 나 걷기도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부터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곳에서 4,000m급 명봉들과 고르너 빙하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정상에 오르기 전 체르마트 역 앞의 여행자 안내소에 게시된 마터호른의 날씨를 체크하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곳엔. 당일부터 3일 동안의 기온, 풍속과 풍향, 적설량 예상치가 게재되는 되는데 날씨 때문엔 정상으로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등산 철도도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이동수단이다. 체르마트 역 맞은편 등산철도 출발지에서 철도를 이용해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3089m) 전망대를 오른다. 이 열차는 1898년에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한 톱니바퀴 열차로 체르마트에서 약 40분이 소요된다. 고르너그라트 정상에는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텔인 쿨름 고르너그라트, 기념품 판매점, 레스토랑 등이 있다.

이곳에선 몬테로자에서 마테호른까지 이어지는 4,000m급 명봉들과 고르너 빙하의 파노라마를 감상 할 수 있다. 중간 기점인 리펠베르트 역이나 리펠알프도 사계절 아름다운 마테호른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마터호른 정상 부근 얼음동굴
빙하, 호수, 들꽃… 마테호른을 가슴에 안은 하이킹 천국

눈으로 즐기는 관광으론 부족하다면 체르마트를 즐기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스키, 스노보드를 타는 레포츠 여행을 추천할만하다. 체르마트는 스위스에서도 연중 스키를 즐길 수 있고 슬로프 역시 가장 길다는 점에서 스키 마니아에겐 최고의 장소이다. 시간이 촉박한 여행자라도 하루나 이틀정도 머물며 스키패스를 이용해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 오른 뒤 마터호른 봉우리를 바로 옆에서 보며 즐기는 스키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고도차를 감안하면 중급자 이상의 실력이 필요하다. 또한 정상부터 체르마트까지 산 하나를 스키나 스노보드로 활강할 수 있는데 코스 길이가 무려 17㎞에 이른다고 한다. 모든 장비를 현지에서 대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손쉽게 스키를 탈 수 있다.

스위스 발레 주의 주도 시옹의 고성에서 내려다본 포도밭. 시옹은 와인 산지로 유명하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높아지는, 체르마트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은 하이킹이다. 다양한 코스로 연결된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 중턱으로 올라 하이킹을 즐기는 것이다. 스위스에선 주요 하이킹 코스에 노란색 표지판에 목적지와 소요시간, 방향 등이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어 초보자라도 쉽게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체르마트는 사계절 내내 다양한 하이킹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케이블카나 등산 열차 등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들과 연계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쉽게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스위스 관광청에서 추천하는 하이킹 코스는 호수와 빙하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고르너그라트~리펠제~리벨베르그~체르마트 코스이다. 일단 체르마트에서 등산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 정상에서 내려 리펠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레펠제까지 약 한 시간 정도 하이킹을 하고 다시 리펠베르그를 거쳐 리펠알프역에서 등산열차를 타고 체르마트까지 내려오는 코스다. 약3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코스로 하이킹 내내 우뚝 솟은 마테호른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휴양도시 몽트뢰의 시옹성

조금 고난이도의 트레킹을 원한다면  '마테호른 익스프레스'를 타고 정상에 오른 뒤 내려오는 하이킹 코스를 택하면 된다. 역에서 조금 내려가면 검은 호수라는 이름처럼 깊은 색을 띄는 산상 호수 ‘슈바르츠제’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마테호른 등반의 거점으로 유명한 헤른리휘테(헤른리 오두막)로 오르는 코스와 기슭의 체르마트까지 내려가는 코스 등 절경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고도 때문에 얼핏 쉽지 않은 코스로 보이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하이킹을 하다보면 하이킹뿐만 아니라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젊은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산에서 내려오다 체르마트 마을로 거의 다다를 무렵에는 양떼가 자유롭게 방목된, 전형적인 스위스 산악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체르마트는 자연을 느끼는 여행의 왕도일 뿐아니라 스위스 관광의 의미를  대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다양한 테마여행, 환경을 고려하는 관광, 여행의 편리성과 친절한 서비스까지, 스위스 관광을 대표한다.

체르마트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하이킹을,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며 전혀 때묻지 않은 알프스 정취를 만끽한다. 또는 등산열차나 케이블카를 타고서 고르너그라트나 클라인 마터호른에 올라 만년설, 빙하, 푸른초원 등으로 이뤄진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기도 한다
인근 몽트뢰, 시옹도 인기 관광지 

체르마트는 휘발유 차량의 출입을 금하는 등 다양한 환경 보호 활동을 통해 조용하고 맑은 공기가 보존되고 있다. 마을 내의 교통은 500여대의 전기 자동차 또는 마차가 담당하고 있다. 택시와 버스, 작업용 차량은 모두 기름 대신 전기를 충전해 달린다. 체르마트 역 앞에서 출발하는 고르너그라트 등산 열차 역시 전기로 가동된다. 이렇게 마을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절반 이상은 마을 위쪽에 위치한 작은 수력발전소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낸다.

체르마트는 스위스가 자랑하는 빙하특급열차(Glacier Express)의 종착지로도 유명하다 생모르츠에서 체르마트를 연결하는 이 빙하열차는 시속 30km로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느린  거북이 열차로 유명하다. 천장까지 유리로된 이 열차를 타고 스위스 산악지역의 파노라마뷰를 감상할 수 있다. 

모처럼의 여행길에 체르마트만 담기가 아쉽다면 인근도시 시옹(Sion)이나 몽트뢰를 들르는 것도 잊지 말자. 시옹은 스위스 발레주의 주도로, 언덕 위에 서 있는 2개의 고성이 유명하다. 오르간 페스티발이나 바이올린 콘테스트 등 다양한 음악 이벤트가 개최되는 곳으로 체르마트와는 또 다른 세련된 스위스의 도시 풍경을 자랑한다. 13세기에 지어진 고성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언덕을 따라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앞에는 레몬호수, 뒤에는 깎아지른 산을 낀 몽트뢰(Montreux)는 화려한 휴양도시이다. 호수를 따라 길게 호텔과 호화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 역시 언덕 위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호수의 바이 암석 위에 지어진 고성 ‘시옹성’이 볼거리지만 도시 자체의 화려함과 호수를 따라 펼쳐진 산책길도 인상적이다. 

프랑스 와인 여행

과연 '와인의 제국'이었다. 프랑스 남서부에 자리한 세계적 와인 산지 보르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포도밭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중세 성(城)처럼 멋스러운 샤토(Château) 건물들이 곳곳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보르도가 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손꼽히게 된 것은 자갈·석회질·진흙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테루아(terroir)와 서로 다른 포도품종으로 빚은 와인의 독특한 혼합(blending) 덕분이다. 와인의 천국인 만큼 고급 와인 시음 기회도 많고 샤토에 직접 들러 주인과 함께 저녁을 즐길 수도 있다.

보르도시 인근 페삭 레오냥 지역에 자리 잡은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 전경. 포도밭 면적은 67만㎡에 이르며 83%는 레드와인, 나머지는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 제공
샤토 특급와인 시음, 나도 해볼까?

"우리 집 와인 맛 괜찮습니까?" 지난 7일 메독(Médoc) 지역 생쥘리앵(Saint-Julien)에 위치한 샤토 브라네르 뒤크뤼(Château Branaire Ducru)의 저녁 연회장. 보르도 시내에서 샤토 방문객 전용버스를 타고 1시간쯤 북쪽으로 달리면 나오는 곳이다. 한국 와인 애호가들도 많이 찾는지 입구에 '어서 오세요'란 한국말도 보였다. 샤토 소유주 마로토(Maroteaux)씨가 방문객 80여명에게 포도밭과 양조장, 저장고를 일일이 보여준 뒤 저녁을 대접했다. 테이블마다 고급 와인 4~5병이 오르며 방문객들의 오감(五感)을 자극한다. 참석자들은 밤늦게까지 와인을 화제로 시음하고 식사를 즐겼다.

다른 샤토들도 일반인 초청 행사를 많이 연다. 사전에 일정 비용을 내고 신청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TV 드라마나 잡지 촬영지로 한국 와인 애호가들에게도 잘 알려진 페삭 레오냥(Pessac-Léognan) 지역의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âteau Smith Haut Lafitte)의 소유주도 즐겨 방문객들을 맞는다.

역사를 마신다-생테밀리옹

보르도시에서 북동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생테밀리옹(Saint-Emilion)은 와인 뿐 아니라 뛰어난 풍광과 역사를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199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도시 전체가 그림 같은 중세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타닌(tanin)이 풍부한 메독 와인과 다른 맛과 향을 즐기고 싶다면 생테밀리옹만큼 좋은 선택도 없다.

생테밀리옹이란 이름은 이 마을 작은 동굴에서 고행을 한 성자(聖者) 에밀리옹에서 따왔다. 생테밀리옹은 특히 11세기에 거대한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지하 동굴식 모놀리트 성당으로 유명한데 천장 높이가 12m나 된다. 성당 안에 에밀리옹의 유해가 묻혀 있어 중세 주요 순례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보트리티스균에 오염돼 썩은 포도(윗쪽)와 매년 10~11월 이를 수확하는 모습 / 스위트 보르도 제공

썩은 포도의 화려한 변신

보르도시 남쪽 소테른(Sauternes)과 바르삭(Barsac) 지역. 이곳은 썩은 포도를 숙성시켜 만드는 스위트(sweet) 와인으로 유명하다. 스위트 와인은 화이트(white) 와인의 일종이다.

왜 하필 썩은 포도일까. 샤토 루미외(Château Roumieu)의 소유주 크라베이아(Craveia·30)씨는 "이 지역은 진흙토양인데다 안개가 많아 대부분의 포도가 귀부병(貴腐病)으로 불리는 보트리티스균에 오염된다"며 "이 균(菌)이 달콤한 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했다. 이 지역 스위트 와인을 귀부와인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트리티스균을 만들지 못하고 썩어버린 포도는 와인을 만들 수 없다. 수확철이 되면 숙련된 일꾼이 일일이 손으로 보트리티스균의 생성을 확인하고 포도를 따내야 한다. 버리는 포도가 많아 생산량이 적고 그만큼 값도 비싸다. 스위트 와인 생산자들은 "레드와인보다 몇 배나 공을 들여야 한다"며 "레드와인 한 병을 만드는 데 포도 한 송이가 필요하다면, 스위트 와인 한잔을 만들려면 포도나무 한그루가 필요하다"고 했다. 크라베이아씨는 "내가 만든 스위트 와인을 마시고 소비자가 즐거워진다면 내 임무는 끝난다"며 "이곳 스위트 와인은 한국의 불고기와도 아주 잘 어울릴 것"이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 여행수첩

●환율: 1유로=약 1545원
●항공: 인천공항에서 보르도까지 가려면 파리를 경유해야 한다. 대한항공·에어프랑스에서 매일 파리행을 운항하며 아시아나항공은 주 3회 운항한다. 파리~보르도 노선은 에어프랑스가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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