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3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나라, 세계 무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농구팀을 가진 나라, 리투아니아(Lithuania). 여러 명망 있는 작가들이 리투아니아에 대한 소설을 집필하고 최근 들어 각종 여행 프로그램에서 조금씩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아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사실 리투아니아의 독립은 단순한 독립이 아니라 소련의 붕괴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고, 농구는 조금 유명한 게 아니라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알면 알수록 흥미와 궁금증을 더욱 유발시킬 만큼 재미있는 나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Vilnius)에는 대체 어떤 모습이 담겨 있을까.

오나 성당과 바로 그 뒤에 위치한 프란체스코 성회의 일파인 버나딘(Bernadine) 수도사들이 건축한 버나딘 성당이 만드는 그림 같은 풍경. 이 성당 근처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폴란드의 문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동상이 보인다. <사진: 서진석>

빌뉴스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은 빌뉴스의 구시가지를 “향기가 나는 도시”라고 부르곤 한다. 붉은 벽돌로 휘감긴 고풍스러운 바로크 양식들이 주를 이루는 빌뉴스의 구시가지 전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폴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주변 국가들의 문화적 중심지로 활약하던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의 숨결이 골목마다 남아 있다.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 체스와프 미워시(Czesław Miłosz), 율리우스 스워바츠키(Juliusz Słowacki) 같은 주변 국가의 유명한 문호들도 인생의 꽤 큰 부분을 이 작은 도시에서 보내며 문학적 영감을 키워왔다. 그런 역사의 흔적은, 6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도시 구석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가 뿜어내는 은은한 향기로 산화하여 관광객들과 호흡한다.

빌뉴스 구시가지의 풍경 <사진: 서진석>

동유럽 지성의 산실 빌뉴스 대학교

그런 고풍스러운 향기를 감상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은 동유럽 지성의 산실인 빌뉴스 대학교이다. 1569년 리투아니아 최초의 대학교로 승격된 이래 주변 국가들의 철학가, 문학가, 사상가들을 길러 냈고, 건물 전체가 유물이자 박물관이 되었다. 세계 최고의 인류학자인 마리야 김부티에녜(마리야 김부타스, Marija Gimbutas),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역사가 시모나스 다우칸타스(Simonas Daukantas), 노벨문학상 수상자 체스와프 미워시 등을 길러 내고 프랑스 기호학파의 대부 알기르다스 그레이마스(Algirdas Greimas)가 연구했던 유서 깊은 강의실과 연구실에서는 여전히 리투아니아의 젊은이들이 수학하고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빌뉴스 대학교 내에 위치한 성 요한 성당(사도 요한과 세례 요한 두 명을 동시에 기념하는 성당). 소련 시절 이 성당은 음악학교로 사용되었다. <사진: 서진석>

빌뉴스 대학교 어문학과 2층 복도에 만들어진 프레스코, 빌뉴스 대학교를 거쳐간 문학가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사진: 서진석>

독립적인 건물이 캠퍼스 곳곳에 자리 잡은 일반적인 대학교의 모습과 많이 다르게, 이 대학교의 건물들은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이 학교를 처음으로 찾은 학생들은 자신의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이다.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복도와 강의실 내부, 천장 등은 리투아니아의 역사와 문화, 철학이 담긴 심오한 벽화로 장식되어, 마치 중세시절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구시가지 골목에서의 기분 좋은 길 잃기

리투아니아어로 ‘세나미에스티스(Senamiestis)’라 불리는 구시가지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필리에스(Pilies) 거리와 디지요이(Didžioji) 대로를 빼면 대부분의 지역이 거미줄 같은 좁다란 골목길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머금었을 법한 곰팡이들이 붉은 벽돌의 처마 밑에서 향기를 내뿜고 있는 골목의 뒤편에서도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구시가지와 더불어, 요즘 예술인의 마을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빌뉴스의 몽마르트르 ‘우주피스(Užupis) 마을’로 가는 길목인 ‘리테라투(Literatų gatvės)’ 즉 ‘문학인의 거리’는 리투아니아 문학사를 장식했던 유명 작가들을 테마로 한 다채로운 장식들을 골목 곳곳에 심어놓아 무심코 그 길을 지나는 나그네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거리 맨 끝자락에 위치한 문신 스튜디오조차도 리투아니아 문학세계의 한 단면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 정도이다.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필리에스 거리.
<사진: 서진석>

문학인의 거리(Literatų Gatvė)에서는 시인 아이다스 마르체나스가 쓴 동명의 시에 영감을 받아 2008년부터 리투아니아 문학과 관련된 전시물들을 게시하고 있다. <사진: 서진석>

서슬 퍼렇던 세계대전 시절, 유대인들이 모여 살았던 게토 역시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한때 빌뉴스는 북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2차 대전 전까지 전체 인구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리트박(Litvak)이라고 불렸던 리투아니아계 유대인들은 독일 방언과 히브리어 등 여러 개 언어가 융합되어 생성된 언어인 이디시(Yiddish)를 구사했다. 2차 대전 중 리투아니아에 살던 유대인이 95% 이상 처형되어 현재는 거의 종적을 감추어 버린 지금, 그들이 사용하던 이디시도 사어(死語)가 되어버렸지만 아직 빌뉴스 대학교에는 여전히 이디시 연구와 강의가 진행되고 있어 과거 유대인 연구의 메카가 되고 있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로 변화한 유대인 거주지역. <사진: 서진석>

구시가지에 위치했던 게토는 당시 유대인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과거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기자기한 장식과 가게들과 식당, 호텔 들이 밀집해 있는 아름다운 길로 탈바꿈했다.

기독교 건물의 전시장 빌뉴스

북유럽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빌뉴스 구시가지에는 대략 20개 정도의 성당 건물이 남아 있다. 종교 행위가 금지되었던 소련 시절에는 성당들이 모두 박물관 (심지어 어느 한 성당은 무신론박물관이 되기도 했다), 전시장, 인민학습당 등으로 기능을 바꾸어야 했으나,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리투아니아인들은 독립과 동시에 모든 성당의 기능을 다시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라트비아에스토니아의 경우, 대다수의 성당들이 여전히 제 기능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박물관이나 전망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리투아니아인들의 높은 신앙심을 느낄 수 있다.

구시가지의 입구와도 같은 새벽의 문. 위에 위치한 작은 기도실에는 기적의 성화로 불리는 ‘검은 마리아상’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서진석>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고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는 찬사를 보낸 것으로 인해 더 유명한 오나 성당. 빌뉴스 구시가지에서 유일한 중세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사진: 서진석>

리투아니아 구시가지 입구에 자리 잡아 성내에 들어오는 여행객들의 안녕을 기원해주었던 작은 기도실인 ‘새벽의 문(Aušros Vartai, Gate of the Dawn)’에는 리투아니아 역사상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히는 바르보라 라드빌라이테(Barbora Radvilaitė)를 흠모한 한 장인이 그녀의 모습을 성모 마리아의 얼굴로 성화시켰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리투아니아 고딕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 오나 성당(성 안나 성당, Šv. Onos bažnyčia)은 1812년 러시아를 정벌하러 가는 길에 빌뉴스를 들른 나폴레옹이 보고 반해 ‘손바닥에 얹고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찬사가 무색하게도 성당 내부는 러시아에서 패배를 맛보고 돌아오던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파차스 장군이 봉헌한 베드로 바울 성당. 내부 벽면 전체가 석회와 대리석을 갈아 직접 만든 조각들로 가득하며 리투아니아에서 내부가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손꼽힌다. <사진: 김향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성전을 봉헌하려 했던 파차스 장군의 손길이 남아 있는 ‘성 베드로 바울 성당 (Šv. apaštalų Petro ir Povilo bažnyčia, St. Peter and St. Paul's Church)’은 전체 유럽에서 내부장식이 가장 화려한 성당으로 손꼽히며, 소련 시절 인물화 박물관으로 변질되는 역사의 상처를 입은 빌뉴스 대성당(Vilnius Cathedral)은 여울물 같은 리투아니아의 현대사를 굽어보며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은 성스러운 장소로 승화되었다.

빌뉴스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러시아 정교회 성 니콜라스 성당. 해가 질 무렵 지붕이 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화려한 광경을 연출한다. 빌뉴스 구시가지에는 러시아 정교회, 로마 가톨릭, 독일 루터교, 유대교 시나고그 등 기독교와 관련된 건축물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 서진석>

리투아니아 대공작이었다가 폴란드에서 왕이 되었던 요가일라(Jogaila, 폴란드어로 야기에워)의 아들이자 성인인 카지미에라스 기념 성당. 160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소련 시절, 종교의 불필요함을 교육시키기 위한 ‘무신론 박물관’이 되기도 했다. <사진: 서진석>


리투아니아의 관광명소, 트라카이

트라카이(트라케이, Trakai)는 엄밀히 말하면 빌뉴스와는 별개의 지역이지만, 거리가 가까워 빌뉴스에 들르는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방문하는 관광명소다. 트라카이는 수십 개의 호수가 모여 만드는 장관도 일품이지만, 갈볘(갈베, Galvė) 호수 위 섬에 자리 잡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딕 양식의 성곽은, 숲의 초록색, 하늘의 파란색, 벽돌의 붉은색, 이렇게 빛의 3원색 속에서 자신의 위용을 뽐내며 리투아니아 사진첩의 표지를 장식한다.

빛의 삼원색 속에 사로잡힌 트라카이 성의 아름다운 모습. <사진: 김향란>

트라카이는 중부에 위치한 케르나볘(케르나베, Kernavė)에 이어 두 번째로, 14세기 초에 빌뉴스로 천도하기 전까지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던 도시이며, 리투아니아의 중세 역사를 이끌어간 대공작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15세기에 완공된 트라카이 성(Trakų pilis)은, 중세 시절을 다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난공불락 요새의 형태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당시 리투아니아는 선교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땅을 탐하던 독일 기사단의 끊임 없는 침략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2010년 올해 정확히 600주년을 맞는,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이 독일기사단들과 대항해 싸운 ‘타넨베르크 전투(리투아니아어로 잘기리스 Žalgiris, 폴란드어로는 그룬발드 Grunwald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전투를 이끈 리투아니아 최후의 대공작 비타우타스(Vytautas)는 트라카이성에서 7일 동안 화려한 연회를 개최했다고 알려져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역사적 인물인 비타우타스는 바로 이 성에서 생을 마쳤다.

독일기사단들의 침략이 한풀 꺾이고 수도마저 빌뉴스로 옮겨지자 트라카이 성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이후로 수십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완전히 폐허가 된 채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20세기 초 트라카이 성 주변에서 다양한 중세 유물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복원과 발굴사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게 되었다.

트라카이 시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타타르인들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나무집들. <사진: 김향란>

트라카이 성에서 일생을 마감한 비운의 영웅 비타우타스 대공작의 목상. 트라카이 성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 <사진: 김향란>

현재 트라카이 성 내부에는 비타우타스 대공작을 중심으로 한 대공작들의 삶과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물과 중세 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대공작들은 자신들의 개인 호위병으로 삼기 위해서 흑해 크림반도 지역에 살고 있는 터키계 타타르인들을 대량 이주시켰으며, 그 결과 트라카이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그들과 관련된 삶의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트라카이에서만 먹을 수 있는 키비나스(kibinas)라는 음식과 트라카이 시내에서 성으로 올라가는 거리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독특한 모양의 나무집들이다. 키비나스는 다진 양고기를 반죽에 넣어 오븐에 구운 음식으로 트라카이 성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별미이다. 중세 시절 타타르인들과 관련된 생활양식들은, 트라카이 성 내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는 길

리투아니아의 관문인 수도 빌뉴스는 생각처럼 멀지만은 않은 곳이다. 핀란드 항공이 서울에 취항을 시작하면서 헬싱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어 더욱 가까워졌다.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바로 리투아니아의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유럽을 여행하는 도중 폴란드나 러시아 등을 거쳐 육로로 들어오는데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단지 문제는 서유럽과의 기차 연결편이 현재로서는 전무하여 유레일패스 같은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 그렇지만 전체 유럽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국제버스 유로라인(Euroline)이 유럽 각 도시에서 빌뉴스 등 리투아니아의 대도시로 가는 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라이언에어 같은 저가항공도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Kaunas)에 취항을 시작했으므로, 유럽 여행 도중 한 번쯤 방문하기에 좋다.

트라카이는 빌뉴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수시로 출발하며 거리는 대략 20km 떨어져 있다. 기차로도 이동이 가능하지만 트라카이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바로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쭉 올라가면 성에 도달할 수 있다. 3km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주변에 보이는 호수의 풍광들과 타타르인들이 남긴 가옥들을 감상하다 보면 지루하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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