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열차여행은 유명하다. 개성만점 관광열차에는 일본 특유의 재치와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열차도시락 에키벤(역을 뜻하는 '에키'와 도시락을 뜻하는 '벤토'의 합성어)은 여행의 감초다.

다양하고 신선한 일본 열차 여행에 올해 한 가지가 새롭게 추가됐다. 지난 3월12일 일본열도의 남쪽 '규슈' 신칸센이 전면 개통됐다. 규슈의 북단 하카타에서 남단 가고시마를 잇는 코스다. 기존 구마모토에서 가고시마까지 연결돼 있던 것을 북단 하카타까지 이은 것이다. 250㎞가 넘는 규슈 남북 종단을 1시간20분 만에 할 수 있다. 신칸센 종착역인 가고시마 중앙역을 중심으로 기념 관광열차도 새롭게 생겼다. 가고시마에서 이부스키를 오가는 '이부스키노 다마테바코' 열차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기존의 다양한 관광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부스키는 가고시마 남단에 위치한 온천 휴양지다. 아열대식물이 꽃을 피울 정도로 따뜻하다. 이부스키노 다마테바코 열차는 '이부스키의 보물상자'라는 이름처럼 이 지역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요시마츠를 잇는 카야토노카제 열차. 승객들이 올해 100년을 맞은 간이역을 둘러보기 위해 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어부인 우라시마 다로가 괴롭힘을 당하는 거북이를 구해주자 이 거북이는 어부를 용궁에 데려다준다. 용궁에서 환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어부에게 용궁의 주인은 '절대 열어서는 안될' 보물상자를 건넨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마을에서 어부는 보물상자를 열어보고야 만다. 보물상자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부는 일순간 노인으로 변한다. 용궁에서의 며칠이 지상에서의 몇십년이었던 것이다. 역에 도착한 다마테바코 열차는 설화처럼 하얀 연기를 문 위에서 뿌린다. 보물상자의 연기를 형상화한 것. 열차에서 내릴 때 하얀 연기를 맞은 승객들은 시간여행을 온 듯 몽롱한 기분에 젖어든다.

다마테바코의 외관도 독특하다. 바다쪽을 바라보고 달리는 쪽은 흰색, 산쪽을 보는 쪽은 검은색으로 칠한 것.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열차가 된다. 바다쪽을 볼 수 있도록 창측을 향한 좌석부터 응접실풍 소파, 책장까지 내부 인테리어도 특색 있다. 바다와 산을 가르며 천천히 지나는 열차 속에서 '신칸센'의 스피드와는 다른 일본 열차여행의 매력을 만끽한다.

이부스키에 다다르면 '모래찜질'을 해봐야 한다. 맨몸에 유카타를 입은 채로 모래바닥에 누우면 직원이 모래를 퍼부어 온몸을 묻는다. 바닥의 지열이 모세혈관까지 전해진다. 10∼15분 정도 지나면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유카타를 입은 채로 노천욕장에서 모래를 씻어낸다. 다시 대욕장에서 온천욕을 즐기면 여행의 피로가 단숨에 가신다.

열차여행 마니아라면 이부스키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 '규슈 최남단역'에 들러볼 것. 니시오오야마역은 2003년 오키나와에 모노레일이 생기기 전까지 일본 최남단역이었다. 역사도 없고 주변에 인가도 드문 무인역이지만 철도 마니아에게 인기가 높다. 하루 6번 오가는 열차를 타고 일부러 니시오오야마역을 찾는 일본 여행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연결되는 열차는 많다. 하야토노카제 열차는 가고시마와 요시마쓰를 잇는다. 사쿠라지마섬을 안은 채 바다를 끼고 달린다. 전망용 대형 차창을 통해 가고시마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다. 차창을 향해 배치된 좌석에는 방명록이 준비돼 있다. 여기에 여행의 감상과 기록을 남긴다.

규슈 최남단 역인 니시오오야마역 풍경 엽서.가고시마는 화산 '사쿠라지마'가 유명한 곳이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산 정상에서 뿜어져나오는 연기를 볼 수 있다. 푸른빛 바다는 평온하다. 돌고래떼는 수면 위로 올라와 꼬리춤을 춘다. 일본 사람들은 돌고래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돌고래가 나타나면 함성을 터뜨린다.

가고시마에서 사쿠라지마를 방문하는 것도 좋다. 페리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된다. 가고시마 투어버스를 타면 활화산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유노히라 전망대까지 안내한다. 회색 화산재가 땅바닥에 가득하고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성난 듯 김을 내뿜는 활화산에 여행자는 사뭇 놀라는데 사쿠라지마섬은 여느 때보다 평온하다. 묘한 아름다움이다.

도서관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브스키노 타마테바코 열차 내부.요시마쓰에서 구마모토까지 가려면 '이사부로-신페이' 열차를 타는 것이 좋다. 구마모토의 작은 마을 히토요시까지 운행한다. 산악열차에서만 볼 수 있는 스위치 백 철길을 경험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열차는 험한 준령을 넘고 긴 터널을 빠져나와 대평원을 만나기도 한다. 이 구간 대부분의 역사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고즈넉하게 서 있는 역사에 잠시 내리면 승무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라며 환대한다. 일본 시골 역사의 넘치는 친절함이다.

구마모토에 도착하면 볼거리가 풍부하다. 아소산을 비롯해 구마모토성, 아소신사, 스이젠지공원 등 규슈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포진해 있다. 가고시마에서 점차 느려진 열차의 시간이 구마모토에 도착하면 아예 과거로 향하는 셈. 좀 더 빨리 가는 '신칸센'과 좀 더 많이 보는 '관광열차'의 속도에 취해 여행자의 시간은 스위치 백을 반복하며 일본을 눌러 담는다.

▲길잡이

● 일본은 크게 네 개의 섬으로 나뉘는데 규슈는 가장 남단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섬이기도 하다. 비행기는 후쿠오카, 기타규슈, 미야자키, 구마모토, 가고시마, 오이타 등 6개 공항에서 한국까지 직항편이 오간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고속선과 페리로도 규슈 하카타항에 갈 수 있다. JR규슈레일패스는 3일용이 1만4000엔, 5일용이 1만7000엔이다. 코레일관광개발(1544-7755 www.korailtravel.com)이나 여행사를 통해 패스 교환증을 구입할 수 있다. 일본에서 구입할 때는 지정 장소에 가서 구입 신청서에 이름, 여권번호, 항공권번호, 사용개시일 등을 써서 제출하면 된다. JR규슈 홈페이지(www.jrkyushu.co.jp/korean) 좌측 하단에 있는 '규슈레일패스 신청서 다운로드' 메뉴에서 미리 한글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하면 편리하다.

● 가고시마는 자색고구마와 돼지고기가 유명하다. 라멘 이외에도 돼지고기 샤브샤브 등의 요리를 맛보는 것이 좋다. 이부스키에 가면 모래찜질을 해봐야 한다. 호텔이나 료칸 등에서 모래찜질을 하려면 1000엔 정도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정이 여유롭다면 아소산에 들를 것. 아소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해 가스 분출이 많은 날에는 입장이 제한된다. 하카타역은 올해 JR신칸센 개통을 계기로 리모델링됐다. 역사 건물이 복합쇼핑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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