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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 산세바스티안에서 남쪽으로 2시간 남짓 숲길을 지나면, 스페인 와인의 중심 리오하(Rioja)에 도착한다. 스페인 대표 와인 산지 3곳 중 가장 오래되고 역사 깊은 지역이다. 스페인 와인은 거친 듯 풍요로운 대지의 깊은 향이 그대로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리오하에서는 토착 포도 품종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를 주로 이용해 와인을 만든다. 한 모금 맛을 보는 순간, 이곳이 유럽 남부의 대국, 스페인임을 바로 깨닫게 된다. 

수많은 와이너리가 있지만 리오하 최대의 와이너리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es de Riscal)과 한국에서도 친숙한 무가(Muga) 방문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투어와 테이스팅을 한다. 가족적인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소박함은 부족하지만 전문화된 생산 과정과 서비스가 와인에 대한 이해를 더욱 쉽게 도와준다. 

리오하에는 또 하나의 즐거움도 있다. 바로 세계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와이너리 메인 하우스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스페인은 유럽 최대의 와인 생산국이지만 그 명성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최근 유명 건축가의 작품으로 리노베이션한 곳이 많아졌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은 와이너리에 딸린 호텔까지 작품으로 만들었다. 캐나다 국적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만든 초현실적인 디자인의 호텔이 그것이다. 리오하에서 멀지 않은 항구도시 빌바오에 프랑크 게리의 또 다른 작품인 구겐하임 현대미술관이 있어 와인과 함께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 여행이 더욱 특별할 수 있다. 

이외에도 리오하에서는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라크 태생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지만 특별한 선물가게를 역사 깊은 가족 와이너리 로페스 데 에레디아(Lopez de Heredia)에서 찾아볼 수 있고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의 웅장한 건축물을 이시오스(Ysios) 와이너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포도밭과 농가만 있던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혁신적인 디자인의 현대적 건물들이 등장하면서 리오하를 방문하는 의미와 즐거움이 더욱 커졌다. 


포도밭을 둘러보고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것은 반나절이면 가능하지만 일정이 허락하면 적어도 하루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건물은 물론 도서관, 로비, 객실까지 모두 프랭크 게리의 손길이 닿은 마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에 묵으며 와인 스파를 즐기고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에 최고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오래되고 육중한 스페인 와인의 풍미는, 마치 현대 스페인의 문화적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포도밭 사이로 난 마을길을 따라 작은 성당을 방문하고 길거리 모퉁이 타파스 바에서 손길 닿는 와인을 마음껏 시음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걱정할 것 없다. 이곳은 맛있는 것을 함께한다면 말도 필요 없는 스페인이니까.  

[서현정 뚜르 디 메디치 대표·문화인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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