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체가 미술관… '나오시마'

나오시마섬 부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란 호박’. 86세에 주황색 단발머리를 즐기는 일본 여성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으로 나오시마의 상징물로 쓰인다. 점박이 호박뿐 아니다. 버스로, 자전거로 섬을 여행하다 보면 모래사장과 언덕, 나무숲에서 예기치 않은 예술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나오시마섬 부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란 호박’. 86세에 주황색 단발머리를 즐기는 일본 여성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으로 나오시마의 상징물로 쓰인다. 점박이 호박뿐 아니다. 버스로, 자전거로 섬을 여행하다 보면 모래사장과 언덕, 나무숲에서 예기치 않은 예술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 하성기 조선닷컴 미디어취재 일본팀 기자

다카마쓰(高松)항에서 나오시마(直島)로 출발한 여객선은 한산했다. 여자 승객이 유난히 많았다. '섬 전체가 갤러리'라는 수식 때문일까. 새하얀 선박 하단에 빨강 도트 무늬를 박은 것부터 여성 취향이었다. 구사마 야요이 것이었다. 86세에 주황색 단발머리를 즐기는 이 여성 작가는 안도 다다오와 함께 이 섬의 '문패' 같은 인물이었다. 섬의 관문 미야노우라항(港)에서부터 구사마 야요이가 등장한다. 그녀의 심볼인 거대한 호박 조형물이 가을 햇살 아래 퍼질러 앉았다. 배에서 내린 승객들은 빨간 호박으로 달려가 사진부터 찍었다. 당일치기로 온 사람들은 항구 앞 자전거 대여점으로 갔다. 버스도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 투어를 하는 게 나오시마 여행의 백미였다.

과대망상으로 일군 '예술의 섬'

세토내해(海)에 뜬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발상부터가 충격이었다. 도쿄도, 오사카도 아닌 오지 섬에 미술관을 짓는다는 건 과대망상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일본 출판그룹 베네세 홀딩스의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손잡고 그 무모한 일을 해냈다. 1992년 베네세 뮤지엄을 시작으로 2004년 지추미술관, 2010년 이우환 미술관을 차례로 열었다. 쓰레기더미 돼가던 민둥섬을 재생시키고 치유하려는 일종의 도발이었다.

지추(地中)미술관은 한자 그대로 건물이 땅속에 들어앉은 형상이다. 선과 면, 빛과 어둠이 극명한 조화를 이루는 안도의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미술품 보러 가는 여정 자체가 호사다.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가 그린 2×6m 크기의 '수련 연못' 앞에선 입이 벌어진다. 후쿠타케 회장은 모네를 위해 지추미술관을 지었다고 했을 정도다.

제임스 터렐의 '오픈 필드'는 빛의 착시를 이용한 작품이다. 언뜻 보면 푸른 벽면인데 계단을 올라선 순간 벽은 저만치 밀려나고 편평한 무대가 펼쳐진다. 천국에 오르는 느낌이 이런 걸까. 사각 한복판에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가 놓여 있을 뿐인데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월터 드 마리아의 '시간, 영원, 시간없음'도 걸작이다.

베네세뮤지엄 언덕 위 타원형으로 세워진 최고급 숙박시설 ‘오벌’. 연못이 빛을 반사하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베네세뮤지엄 언덕 위 타원형으로 세워진 최고급 숙박시설 ‘오벌’. 연못이 빛을 반사하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 오사무 와타나베 제공
게으름 피우며 천천히 걷기

한국 여행자들을 뿌듯하게 하는 이우환 미술관은 베네세 뮤지엄과 지추미술관 사이에 있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우환 작품을 본 후쿠타케 회장이 미술관 건립을 제안했다. 앞마당에 우뚝 선 18.5m의 육각 콘크리트 기둥부터 나그네의 심란한 마음을 지그시 눌러준다. 돌덩이 한 개, 나무 한 조각, 몇 번의 붓질로 끝나기 일쑤인 이우환을 감상하는 데 정답은 없다. 마음 가는 대로 느끼면 그뿐. 바위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돌그림자 아래 영상이 흐르는 작품 앞에선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베네세 뮤지엄은 잭슨 폴록과 데이비드 호크니, 브루스 나우먼, 야니스 쿠넬리스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축복의 요람이다. 어린아이들이 더 열광할 만큼 발칙한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바다에서 떠내려온 쓰레기 더미를 납으로 말아 베개 더미처럼 쌓아놓은 쿠넬리스의 작품이 좋았다. 제니퍼 바틀렛의 '노란색과 검은색 보트'도 재미있다. 보트가 놓여 있는 전시장에서 통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저 멀리 해안가에 똑같이 생긴 보트가 보인다.

미야노우라 항구 앞에 있는 ‘I♥湯’ 목욕탕 남탕 풍경. 여탕과의 경계에 코끼리상을 세워놨지만 윗벽이 뚫려 있다.
미야노우라 항구 앞에 있는 ‘I♥湯’ 목욕탕 남탕 풍경. 여탕과의 경계에 코끼리상을 세워놨지만 윗벽이 뚫려 있다. / 오사무 와타나베 제공
'I♥湯' 그리고 이에 프로젝트

나오시마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한 가지는 'I♥湯(아이러브유)' 목욕탕이다. 오래돼 낡아 빠진 목욕탕을 오오타케 신로라는 작가가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켰다. 바닷가에 방치된 폐선, 쓰다 버린 타일과 깨진 항아리를 총동원한 재생 프로젝트다. 바가지, 수도꼭지, 수건까지 죄다 '작품'이다. 목욕도 할 수 있다. 남탕과 여탕 사이 윗벽이 뻥 뚫려 있어 남탕에서 오가는 말소리가 다 들린다. 타일 바닥에 그려진 춘화 감상을 잊어선 안 된다. 물속에 얼굴을 파묻고 구경하는 꼴이 우습지만 안 보면 후회한다. 뜨겁게 목욕하고 난 뒤 할 일이 또 있다. 골목 카페에서 시원한 나오시마산 맥주 들이켜기. 여기가 천국이지 싶다.

아이러브유 목욕탕은 1997년 시작된 '이에(家) 프로젝트' 일환이다. 섬의 오래된 민가를 개조해 예술 작품으로 바꾸는 시도다. 기원, 신사, 치과 의원, 소금 창고 등 일곱 곳의 빈집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되살려냈다. 폐허가 예술이 되면서 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무와 숲이 살아나고, 젊은이들이 몰려왔다. 상처받은 사람을 환영한다. 혼자서, 느릿느릿, 하품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새살이 돋는, 힐링 아일랜드다.

[그래픽] 나오시마섬 / 다카마쓰
인천공항에서 다카마쓰공항까지 1주일에 3회 아시아나항공기가 운행된다. 공항버스를 타면 다카마쓰 시내를 거쳐 JR기차역과 항구로 갈 수 있다. 나오시마는 다카마쓰항에서 페리(520엔)를 이용한다. 50분 걸린다.

다카마쓰역과 항구 부근에 작지만 깨끗한 비즈니스호텔이 많다. 1박에 15만~18만원 선. 나오시마섬은 항구 앞 미나토야 료칸(087-892-3830)이 유명하다. 계단 삐걱거리는 낡은 여관이지만 아침저녁 일본 가정식을 포함해 1인 7560엔이다. 쓰즈시소(087-892-2838)는 탁 트인 세토 내해가 보이는 숙소로 베네세미술관을 걸어서 갈 수 있다. 1인 3675~8400엔.

다카마쓰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사카에다 우동집(087-834-6291)이다. 나오시마에서는 아이스나오(087-892-3830)가 유명하다. 유기농 현미와 신선한 야채로 만든 일본 가정식을 선보인다. 아이러브유 목욕탕 골목에 있는 리틀 플럼(087-892-3751)은 세 종류의 나오시마산 맥주가 정말 맛있다. 항구 앞 오래된 민가를 개조한 시나몬(087-840-8133)은 해물카레로 유명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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