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코펜하겐의 카고 바이크

앞 바구니에는 짐을, 뒷자리에는 아이를 싣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 아빠들을 마주하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우리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대체 자전거는 덴마크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코펜하겐의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카고 바이크. 오후 네 시경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이면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러시아워도 함께 시작된다.

30년 역사의 카고 자전거, 뒷자리는 아이들 차지

덴마크 가정에서는 대개 자녀가 세 살 무렵부터 여섯 살 사이에 자전거를 가르친다. 예전에는 페달이 달린 세발자전거를 주로 이용했지만 오늘날에는 페달이 없는 트레이닝 자전거로 균형 감각을 익히고 스피드 조절을 하며 아이 스스로 자전거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배울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자전거는 유년 시절 코드의 하나로 깊숙이 자리매김된다. 이런 동기 부여 과정은 부모가 자전거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정에서 더욱 극대화되는데, 특히 덴마크에서 눈에 띄는 자전거는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카고 바이크다.

카고 바이크는 말 그대로 수레를 끄는 자전거다. 매일 아침 8시에서 9시경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카고 바이크에 싣고 등교시키는 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일곱 살과 두 살배기 두 아이를 둔 젊은 워킹 맘 스티느에게 카고 바이크는 차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우선 차를 차고에서 빼내고 또 학교 앞에 주차하느라 걸리는 시간이 절약되므로 아이들은 그 시간만큼 아침잠을 더 잘 수 있다.

또 출근 시간에 차가 막혀 지각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아이를 등하교시키며 운동까지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학교 앞의 자전거 등교 풍경 속에서 만난 리센느 역시 아들을 등교시키는 중이었다. 그는 카고 바이크의 일종인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만들고 있는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며 바이크 제작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자전거로 아들과 함께 등하교하면서 더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등굣길에는 아이의 컨디션과 기분을 체크하고, 하굣길에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란다.

크리스티아니아 대장간은 올해로 30년을 맞아 그동안 만들어낸 자전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외부에 전시를 해놓고 있었다. 자전거 카고의 형태와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기본적인 패밀리 모델은 1만1600크로나(한화 210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튼튼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하면 자신이 탄 뒤 다시 수리하여 자녀가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대를 물려 이어지는 덴마크인의 자전거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하교 시간인 오후 세 시 반, 리센느는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필자를 카고 바이크에 태워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한 바퀴로도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그에게 믿음이 가 카고에 올라타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로 40분 남짓 걸렸던 거리가 20분 거리로 짧아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전거 수레 속에서 봤던 가을날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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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운전하는 카고 바이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꼬마 숙녀. 어린아이들에게 안전을 위해 헬멧을 착용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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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아이들의 자전거와 카고 바이크들. 자신의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이미 이 자전거 주차장에서 질서를 배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카고 바이크 브랜드의 오리지널로 꼽힌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가 만들어진 이후 7~8개 브랜드가 후발 주자로 생겨났지만 카고 바이크 하면 여전히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자전거 구매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www.christianiabikes.com)에서 얻을 수 있다. 본사를 직접 방문하고 싶다면 Christiania Smedie, Mælkevejen 83a, 1440 København K.

유모차만큼 흔한 필수품, 소규모 가판대로도 이용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카고 바이크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971년부터 코펜하겐시 동쪽의 해군 기지 터에 히피, 예술가, 젊은 사회 운동가들이 자리 잡으면서 만들어진 문화 예술 공동체 혹은 새로운 대안 마을인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초창기 주민 900여 명은 버려진 군사 시설이던 34헥타르의 땅에 평화를 지향하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보존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정부는 긍정적인 측면의 '사회적 실험'으로써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물질적 가치로 결정되는 삶을 거부하고 작은 일 하나도 표결을 통해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 작은 공동체 부락에는 자동차가 없다. 허락된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뿐.

1978년 문을 연 대장간 'Christiania Smedie'에서 침대 프레임을 이용해 짐을 옮길 수 있는 카고 바이크를 만들어 자신의 약혼녀에게 선물한 대장쟁이의 아이디어가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의 시초가 되었다.

1984년 이 자전거의 시중 판매가 이루어진 이후 30년을 맞이한 올해,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덴마크의 오래된 자전거 문화에 한 획을 긋는 발명품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면서 덴마크의 심벌로도 유명해졌다.

현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열두 가지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우체부가 모터바이크 대신 카고 바이크를 타고 우편 배달을 하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유모차만큼이나 흔한 육아 필수품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아이들뿐 아니라 아이를 동반한 어른 한 명을 태워도 거뜬하며(자전거 운전자를 제외하고 100kg까지 적재 가능하다), 가판대로도 활용 가능한 수레가 달린 이벤트 바이크도 있어 자신만의 소규모 창업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카고 자전거가 갖는 매력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덴마크에서 카고 바이크를 비롯한 자전거가 가장 편리하고 긍정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는 가장 높은 지대가 해발 150미터에 불과할 만큼 국토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등 자전거를 타기에 쾌적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 환경 보호 정책의 하나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에 매기는 탄소 배출세를 자동차 구매 시에는 180퍼센트나 부과한다.

여기에 안전하게 정비된 자전거 도로(코펜하겐 시내에만 411km의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어 있다)와 자전거를 위한 교통 시스템도 큰 몫을 차지한다. 따라서 덴마크인들에게 자전거는 '가장 빠르고 편리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인 것이다. 즉 자전거가 환경을 보호하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덴마크인의 정서와 이를 정책으로써 뒷받침하는 국가의 노력이 고루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정민혜는…

도쿄를 거쳐 파리에 정착한 지 5년. 온라인 빈티지 숍을 운영하며 틈나는 대로 유럽의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체험한 그곳의 라이프스타일을 사진과 글로 전하고 있다.

지독하게 차가운 눈과 얼음의 도시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1월에는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나는 덴마크의 겨울을 존중한다. 추위는 온도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실제 기온보다 바람의 세기와 상대적 습도에 좌우한다.… 차고 끈적끈적한 11월의 첫 소나기가 젖은 수건처럼 내 얼굴을 치면, 나는 모피를 댄 캐퓨친과 검은 알파카 레깅스, 스코틀랜드식 긴 치마와 스웨터, 검은 고어텍스 망토로 소나기를 맞는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라고 말하는 덴마크 여자의 목소리에 조용히 밑줄을 그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머문 적이 있던 코펜하겐에서 내가 느낀 당혹스러운 추위 때문이기도 했다.

17년 전, 코펜하겐 티볼리 공원 근처의 작은 호텔에 짐을 내린 적이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7월 즈음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짧은 면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날 호텔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다가 한기를 느낀 나는 어쩔 수 없이 티볼리 공원 근처의 가게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을 주고 스웨터를 사야 했다. 나와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는 올리브 그린색 계열의 스웨터였다. 한여름에 나는 그 스웨터를 입고 코펜하겐 도심을 돌아다녔다. 코펜하겐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 얼음 속에 가득 차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것은 밤 12시까지 태양이 떠 있는 코펜하겐의 짙은 코발트 블루색 하늘과 백야만큼 기이한 체험이었다.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코펜하겐의 지독한 겨울과 눈과 얼음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겨울이 아닌 때의 호이브로 소광장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로운 코펜하겐을 보여준다. / 한영희 기자
코펜하겐의 지독한 겨울과 눈과 얼음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찬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은 건 말레이시아의 어느 리조트에서였다. 안온한 태양이 빛나는 파라솔 아래에서 이토록 추운 소설을 읽는 게 내겐 굉장한 아이러니로 느껴졌었다. 그 격차가 클수록 선크림을 잔뜩 바른 등에서 땀이 더 배어 나왔다. 눈 대신 스콜이 내리는 이 뜨거운 도시에선 '얼음' 같은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에어컨이 밤새도록 작동되는 호텔뿐이었다. 휴가 기간 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후 서울에 돌아왔을 땐, 나는 한동안 기침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그것을 스밀라의 얼음 때문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서 축복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고독을 느끼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스밀라. 그린란드 원주민인 어머니와 스웨덴 의사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경계인이다. 언제나 떠날 것을 대비해 자신의 방을 호텔방처럼 꾸민 이 여자는 무리수를 광기의 한 형태라고 이해하며, 유클리드 기하학을 반복해서 읽는다. 서른일곱 스밀라. 민간 탐사단이 극지 탐험에 반드시 데려가야 하는 유능한 항법사이며 한랭수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얼음 전문가. 그리고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독특하다고 평가받는 매력적인 캐릭터.

뉘하운 항구. / 오윤희 기자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코펜하겐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소년이 추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의 이름은 '이사야'. 스밀라의 이웃집 소년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실족사로 처리하지만 스밀라는 직감적으로 소년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소년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스밀라는 죽은 소년의 집에서 발견해낸 편지와 아이가 비밀장소에 남긴 녹음테이프를 단서로 사건에 얽힌 비밀들을 하나씩 추적한다. 소년과 이웃에 살던 수리공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곧 이사야의 죽음이 사망한 소년의 아버지와 '빙정석 주식회사'의 그린란드 탐사와 관련된 일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왜'보다 '어떻게'가 훨씬 더 중요한 소설이다. 두꺼워진 번역 때문에 문장은 종종 얼음처럼 미끄러져 버린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소설을 끝까지 읽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스밀라의 이런 독백들 때문이다.

"나는 수리공을 좋아한다.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어린 소년의 죽음을 외면하지 못하고 끝끝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멀고 두려운 항해에 오르는 한 인간의 마음을 아는 일임과 동시에, 기돈 크레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만큼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세계에 편입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스밀라의 세계를 아는 것은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얼음과 눈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엿보는 일이며,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이 어떻게 물이 되어 가슴을 적시고 뜨거워질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처럼 매력이 깊은 존경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녀는 기꺼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녀가 유년시절 야채나 빵이 아닌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름진 고기를 먹으며 그린란드의 얼음 위에서 자라났다는 것은 이 여자가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시대의 많은 아이들이 베트남 필리핀처럼 다른 국적의 엄마를 두고 자라난 경계인, 즉 '디아스포라'들이라는 것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1993), '덴마크 올해의 작가상'(1992) 등 수많은 상을 휩쓴 문제작이다. 1997년에는 빌 어거스트 감독에 의해 'Smilla's Sense of Snow'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세 명의 여자들의 이름, 루이지애나 미술관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그 이름의 연원 자체가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다. 미술관을 짓고 이름을 붙인 크누트 W. 옌센과 옛날에 헤어진 연인 이름 같은 “루이지애나”는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 또한 기묘한 인연이기도 하다. 식품도매업자였던 옌센은 평소에 미술과 문학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코펜하겐 북쪽의 작은 마을 훔레백에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외레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은 19세기 풍의 저택이 있는 사유지였는데, 그곳의 이름이 ‘루이지애나’였다.

1895년에 부근의 땅을 구입한 남자의 이름은 알렉산더 부룸. 그가 바로 저택을 지은 이였는데, 그가 이 땅의 이름을 ‘루이지애나’라 붙인 이유가 독특하다. 그는 평생 세 번 결혼했는데, 세 명의 부인이 모두 이름이 ‘루이즈’ 였기 때문.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붙여진 이름을 미술관의 이름으로 쓴 것에 대해서 말이 많았던가 보다. 옌센은 후에 “과거를 존중하기 위해서 미술관의 이름을 ‘루이지애나’라고 지었다. 그 이름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예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이 된 건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건축과 자연과 미술의 가장 완벽한 공존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954년 미술관 터를 사들인 옌센은 젊은 건축가 위르겐 보와 빌렘 볼레르트에게 새 건물의 디자인을 맡겼는데, 그들은 100년 전에 지어진 원래의 건물을 그대로 남겨둔 채 여러 번에 걸쳐 증축하며 지형과 풍광에 어울리는 미술관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는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 같은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전시되어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헨리 무어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기에 이보다 나은 곳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특히 유명하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인어동상으로 남다

코펜하겐은 인어의 도시이다. 이 도시가 자랑하는 안데르센이 동화 [인어공주]를 쓰기 전부터 그랬다. 코펜하겐 옆 해협은 중세부터 ‘인어의 골짜기’라고 불렸고, 오스트리아 궁정가수인 다니엘 마이스너가 만든 1623년의 지도에는 코펜하겐이 세이렌의 거주지라 적혀 있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빠뜨려 죽이곤 했던 세이렌. 아무래도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쓰게 된 데에는, 한밤중에 희미하게 들려온 세이렌의 노랫소리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브뤼셀의 오줌싸게 소년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와 함께 “유럽의 3대 썰렁명소”의 하나로 언급되는 수모를 무릅쓰고 랑엘리니(Langelinie)의 바위 위에 꿋꿋하게 앉아 있는 80cm의 작은 인어 동상은 안데르센의 동화 속의 그 인어공주다.

1913년 칼스버그의 창립자 칼 야콥센(Carl Jacobsen)은 [인어공주]의 발레공연을 보고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에게 인어공주의 동상을 주문한다. 공연의 프리마돈나였던 엘렌 브리스를 모델로 하고 싶어했으나, 반라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엘렌의 반대로 실패하고 그 대신 조각가의 아내 엘리네가 동상의 모델이 되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어 동상은 만들어진 뒤에 또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목이 베어졌다거나 팔이 절단되었다거나 조각상 전체가 폭파되었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도 있는 반면, 하루아침에 핑크색 페인트로 덮어씌워 지는 등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적지 않다.

2010년 5월, 사상최초로 늘 앉아 있던 그 바위를 떠나 상해 엑스포로 옮겨져서 전시 중인데,그에 따른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현재 인어 동상이 놓여 있던 그 자리에는 대형 TV가 설치되어 상해 엑스포장의 동상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있다고. TV와 중계영상은 한 중국예술가의 현대미술 작품인데, 반응은 좋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그보다 더 반응이 좋았던 것은 인어공주의 해골 설치.

덴마크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of Denmark)은 만우절날 인어 동상이 놓여 있는 자리에 상반신은 사람의 뼈 모형, 하반신은 황새치의 뼈 모형으로 만든 인어공주 골격을 2시간 정도 설치했는데, "6개월이나 인어공주 동상을 뺏기게 되니 대신할 것이 필요했다. 어쨌든 만우절이니까!"라는 이들의 장난에 사람들은 즐거워했다고.


[인어공주]는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동화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크론보르(kronborg)성에 살다

셰익스피어는 덴마크 왕자 햄릿을 전세계인의 왕자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인 [햄릿]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은 어느 나라의 왕자일까? 덴마크 왕자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햄릿]의 무대가 되는 성이 코펜하겐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기 쉽지 않다. 코펜하겐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헬싱괴르’는 크론보르 성 때문에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햄릿]의 극중에서는 엘시노어 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성’을 떼어낸 크론보르. 덴마크어로 ‘보르’는 ‘성’이라는 뜻이므로 같은 의미를 두 번 말한 셈이지만, 편의상 붙여서 말하곤 한다.

크론보르 성은 1574년 프레데릭 2세 시절에 착공하여 11년 뒤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1629년에 화재가 일어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며 파손과 보수를 계속하다가 1924년에 이르러서야 지금 우리가 보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한 수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방들은 잘 보존이 되어있는 셈. 대규모 연회장, 금박장식의 예배당, 각종 화려한 방, 지하감옥 등을 볼 수 있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북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시대의 성으로 평가받는 이곳은 [햄릿] 때문이 아니더라도 둘러볼 만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매년 6월에는 이곳에서 야외 ‘햄릿’공연이 열린다고 하지만 날짜를 맞춰가기는 쉽지 않을 터. 공연이 아니라 하더라도 코펜하겐에서 출발하는 ‘햄릿캐슬투어‘에는 참여할 수 있다. 시청 앞에 모여 크론보르 성을 비롯하여 프레드릭스보르 성, 왕족들의 여름별장, 국립박물관, 기사의 홀 등등을 둘러보는 투어는 반나절 정도 걸린다.

살아있는 무덤, 아시스텐스 묘지

코펜하겐의 이야기꾼으로는 안데르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도 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정복자 펠레]의 원작자라고 하면 고개 끄덕여지려나?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정복자 펠레]의 원작소설을 써낸 이 작가는 1869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안데르센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안데르센처럼 여러 사람들의 후원을 받으며 동화의 나라로 날아가는 대신 어릴 때부터 온갖 종류의 노동을 하면서 자전적인 작품을 다수 써냈다. [정복자 펠레] 4부작은 그를 서유럽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대표작. 이외에도 [파밀리엔 프랑크, Familien Frank], [사람의 딸 디테, Ditte Menneskebarn], [시인 모르텐Morten hin Røde], [잃어버린 세대, Den fortabte generation]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나, 국내에 번역된 책은 많지 않다.

그는 현재 뇌레브로 앞의 ‘아시스텐스 교회묘지‘에 묻혀있다. 이곳의 공원 같은 경관은, 이곳을 단지 무덤이 아니라 코펜하겐 주민들이 즐겨찾는 소풍의 장소로 만들었다. 락밴드 공연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심지어 벌거벗고 선탠하는 무리를 마주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무덤”인 셈이다.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의 동상이 있는 이 묘지를 지나며, 에곤 에르빈 키쉬는 이렇게 말했다.


정복자 펠레는 소외받는 계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곳을 지나가며 묘석을 바라본다. 이렇게 큰 나라 덴마크에 이렇게 이름이 적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죽은 자들의 이름은 한센, 닐센, 안데르센, 마르센, 쇠렌센, 바게센, 난센, 미카엘리스, 야콥센, 옌센, 페터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런 덴마크 특유의 이름을 가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반향을 얻고 있는가.” 적어도 우리는, 이 무덤에 잠들어 있는 두 명의 안데르센을 알고 있다.

빙글빙글 개의 큰 눈, 코펜하겐 원형탑

원형탑은 과학적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안데르센이 쓴 동화 [부싯돌]을 읽은 이들이라면 원형탑이 뭘까, 한번쯤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마녀는 군인에게 비밀을 말해준다. 첫 번째 방에는 찻잔만한 큰 눈을 가진 개가 있다고. 그 개는 커다란 상자 위에 앉아 있노라고. 마녀가 준 푸른 주사위 모양의 앞치마를 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 개를 앉히면 상자를 열어볼 수 있노라고. 첫 번째 방 상자 안에는 동화가 잔뜩 들어 있고, 두 번째 방, 물레만큼 큰 눈을 가진 개가 깔고 앉은 상자 안에는 은화가 들어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방에는?

"혹시 금화를 갖고 싶다면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가게. 거기서도 원하는 만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그 방의 돈 상자 위에 앉아 있는 개의 눈은 코펜하겐의 원형탑만큼이나 크지.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란 생각이 들 걸세!”

원형탑을 실제로 본다면, 아마도 그 개의 모습을 상상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4세가 세운 천문대인 이 탑은 그가 “내가 만든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기세등등했다는 것이 이해가 갈 만큼 웅장한 자태를 갖고 있다.

1642년에 완공된 이 탑은 높이가 36m이며, 지름이 15m이다. 유럽의 건축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계단이 아닌 나선형의 통로를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길이는 약 210m가량 된다. 1716년에는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말을 타고 올라갔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매년 자전거 경주가 열리고 있다고. 평상시에는 코펜하겐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한 전망대로 각광받고 있다.

지구속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높이 올라볼 일, 구세주 교회(Vor Freslers Kirke).

괴짜 광물학자인 리덴브로크 교수는 고서점에서 구한 16세기 고문서를 해독하다가 이상한 쪽지가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것 발견했다. 조수로 일하는 악셀은 얼떨결에 암호를 해독한다.,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가 남긴 이 책 사이의 쪽지는 어떤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쥘 베른의 소설 [지구속 여행]은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다.

크리스티안스하운 섬에 있는 구세주교회는 악셀이 현기증을 치료하기 위해 리덴브로크 교수에게 끌려가는 곳이다. “내부의 나선계단을 올라가는 중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50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바깥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종탑의 테라스에 이르자 거기서 계단은 외부로 계속 이어졌다. 난간은 약해보였고 점점 좁아지는 계단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 했다” 구세주 교회는 1696년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해 지어진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천사가 조각된 정교한 바로크양식의 제단과 파이프오르간도 눈길을 끌지만, 뭐니뭐니해도 인상적인 것은 95m의 나선형 교회탑이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교회탑을 설계한 이는 다 지어지고 나서야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거꾸로 설계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고.

탑의 바깥으로 빙 둘러 꼭대기의 그리스도 상 아래 금공까지 이어지는 150개의 계단은 확실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그곳을 꾸준히 오르면 악셀처럼 현기증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교회탑 밖으로 난 계단은 아찔하지만 전망을 바라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책과 이야기가 일상인 북카페, 세탁소 카페[Laundromat cafe]

코펜하겐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코펜하겐에는 맛있는 커피를 내는 카페가 많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 나누기 좋아하는 성정 때문일 것이다. 그뿐이랴, 이야기는 수다 속에도 있고 책 속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코펜하겐에는 북카페들이 유독 발달해 있다. 북카페야말로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코펜하겐 사람들의 생활에 잘 들어맞는 공간인 것이다.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타자기의 이름을 딴 카페 ‘언더우드 잉크‘에는 타자기가 진열되어 있다. 그곳 벽에는 체스터튼이 쓴 글이 적혀있는데, 그에 따르면 “문학은 사치품이고 이야기는 생필품이다.”

이곳의 북카페는 많을뿐더러 세분화되어 있다.‘더 프렌치 북카페‘는 프랑스식을 고수한다. 메뉴도 아루아상 등 프랑스풍의 음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당연히, 구비된 책들도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 중심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40%가 프랑스어를 말하는 사람들이고 현지인은 60% 정도라 하니, 코펜하겐 안에서 프랑스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아닐까. 프랑스 뿐이랴, 스페인도 있다. ’라유엘라‘는 스페인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이다. 이곳에 구비된 책들도 스페인과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 작가들의 작품들이 중심이다. 이런 특화된 북카페들만 돌아다녀도 작은 도시 안에서 세계문학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여행자들을 위한 북카페도 있다. ‘세탁소 카페‘는 어떨까? 여행 도중 쌓인 빨래들을 우아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네 개의 환경친화적 세탁기와 두 개의 건조기를 갖춘 세탁소는 북카페 안에 자리잡고 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아늑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4천여 권의 장서 중 한 권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카페. 지겨우면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는 카페. 여행의 숙제를 해결하면서도 그 도시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북유럽 '행복찾기' 여행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은 핀 율, 아르네 야콥센, 한스 베그네르 등 덴마크 대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빠짐없이 소장했다.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는 덴마크 디자인의 과거부터 현재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다.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룸스 볼리후스(Illums Bolighus)에서 억지로 나왔다. 그대로 있다간 은행계좌가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았다. 생전 처음 '가방을 새로 하나 사서 몽땅 담아갈까?' '여기를 떠나면 다시 살 수 있을까?' 따위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뛰었다. 매력적인 디자인 제품이 너무 많았다.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성전(聖殿)'이라는 코펜하겐 관광청 홈페이지의 설명대로였다.

디자인에 관심 있다면 코펜하겐에서 천국에 온 듯한 행복을 맛볼 듯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 디자인 제품의 원산지라고 훨씬 더 싸지는 않다. 한국보다 약간 더 싸달까. 하지만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해주는 약 20%의 세금 환급을 포함하면 30% 정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 일룸스 볼리후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꼭 사야 하거나 사고 싶은 쇼핑 목록을 힘들게 작성했다. 그만큼 일룸스 볼리후스는 방대했다. 웬만한 백화점 수준. 간단한 인테리어 소품과 패션 상품부터 예쁜 접시 같은 주방용품, 욕실제품, 조명, 의자, 소파까지 없는 것 없이 구비했다. 코펜하겐에서 제일 번화한 쇼핑거리인 스트뢰엣(Strøget)에 로열 코펜하겐, 조지 젠슨, 일룸, H&M, 코스(COS), 레고 스토어 등과 함께 있다. 주소 Amagertorv 10, 웹사이트 www.illumsbolighus.dk

디자인 천국 코펜하겐
1,2 디자인 제품을 빠짐없이 갖춘 일룸스 볼리후스 매장 내부 전경과 조명 코너 3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 4 로열 코펜하겐 본사 5 고즈넉한 코펜하겐 골목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 일룸(Illum): 덴마크를 대표하는 백화점이다. 일룸스 볼리후스가 디자인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곳은 패션·뷰티·생활 등 전반을 다룬다. 물론 디자인 제품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지하에는 식품관 대신 덴마크 수퍼마켓 이르마(Irma)가 입주해 있다. 리본을 머리에 두른 소녀의 얼굴 옆모습을 모티브로 한 로고와 패키지 디자인이 세련돼 선물하기 좋겠다. Østergade 52, www.illum.dk

▨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Designmuseum Danmark):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디자이너 한스 베그네르(Wegner)가 디자인한 '라운드 체어'는 1960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이 의자에 앉아 대선 토론을 벌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베그네르를 비롯해 핀 율(Juhl), 아르네 야콥센(Jacobsen)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빠짐없이 소장했다. 입장료 어른 100DKK(약 1만6300원). Bredgade 68, www.designmuseum.dk

▨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설명이 필요 없는 덴마크 대표 브랜드. 1775년 왕실 후원으로 설립된 도자기 업체다. 스트뢰엣 거리에 벽돌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본사다. 할인 행사가 늘 열리고 있다. Amagertorv 6, www.royalcopenhagen.dk

토르베할레르네 시장
1 토르베할레르네는 코펜하겐에서 제일 큰 시장. 고급 식료품 매장처럼 디자인이 빼어나다. 2 토르베할레르네 시장 안 과일 가게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 토르베할레르네(Torvehallerne): 시장(市場)도 이렇게 디자인이 좋다니. 토르베할레르네는 뇌레포트(Nørreport)역 광장 뒤 우범지대였던 공터에 2011년 들어선 코펜하겐 최대 규모 시장. 60여 가게가 유기농 채소와 과일, 해산물, 고급 식료품과 향신료를 판다. 덴마크 최고의 커피로 이름난 커피 컬렉티브(Coffee Collective)와 덴마크식 오픈샌드위치 스뫼레브뢰드(smørrebrød)를 파는 할레르네스(Hallernes),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를 굽는 고름스(Gorm’s) 등 음식을 파는 가게도 많아 구경도 하고 끼니도 해결할 수 있다. Frederiksborggade 21, www.torvehallernekbh.dk

▨ 파피뢰엔(Papirøen): 덴마크어로 ‘종이섬’이란 뜻. 과거 제지공장으로 쓰던 건물 안에 푸드 트럭들을 들여놓았다. 좁은 도로와 규제로 푸드 트럭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자 레스토랑 경영인 예스퍼 묄러가 나서 차린 일종의 푸드 코트이다. 30여 푸드 트럭이 멕시코 타고, 벨기에 감자튀김, 이탈리아 파스타, 터키식 부침개 괴즐레메, 한국 양념치킨 등 코펜하겐에서 맛보기 힘든 세계 각국 음식을 판다. Trangravsvej 14, Warehouse 7/8, copenhagenstree tfood.dk

여행수첩

북유럽 지도
1. 항공편: 직항은 없다. 핀에어(Finnair)가 가장 빠르고 편리하다. 북극을 넘어가는 핀에어는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10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20분 출발,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오후 4시 10분 코펜하겐에 도착한다.

2.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3. 환율: 1덴마크크로네(DKK)=약 163원

4. 코펜하겐 카드: 환율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코펜하겐 물가는 비싸다. 코펜하겐 카드는 지하철·열차 등 대중교통은 물론 티볼리 공원, 대부분의 성(城)·박물관·미술관 등 74곳을 무료 이용 가능하다. 할인받을 수 있는 레스토랑과 쇼핑몰도 많다. 24시간 어른 339DKK, 10세 이상 아동 179DKK, 48시간 어른 469DKK, 10세 이상 아동 239DKK. 어른 1명이 10세 미만 아동 2명까지 무료로 데리고 다닐 수 있다.

5.정보: 코펜하겐관광청 홈페이지(visitcopenhagen.com)는 정확한 정보를 풍성하게 담았다. 아쉽게도 한글은 아직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노르딕 요리' 주도하는코펜하겐 '노마' 레스토랑

'세계 50대 식당' 1위만 4회
발효 등 전통방식으로 조리… 메뉴도 제철 재료 따라 결정

"모든 요리의 중심은 맛… 오래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집앞 개미의 신맛이 더 나아"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적한 부둣가인 크리스티안하벤에는 과거 북해(北海)에서 잡아 소금에 절인 정어리며 말린 대구, 고래 기름·껍데기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던 낡고 오래된 벽돌 건물이 있다. 최첨단 미식(美食)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건물에 전 세계 미식가들이 맛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레스토랑 '노마'가 있다. 테이블 고작 11개에 불과한 작은 식당이지만 미식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 '세계 50대 식당'에서 2010~2012년과 2014년, 1위로 선정됐다. 오너 셰프(주방장 겸 주인) 르네 레드제피(Redzepi·38)는 2012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레드제피를 만나러 코펜하겐에 갔을 때, 그는 부둣가에 있는 '발효연구실(Fermentation Lab)'에 있었다. 컨테이너를 여럿 이어 붙여 만든 2층 건물에서 그는 다양한 발효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레드제피가 열어 보인 흰색 버킷 안엔 노르스름한 빛깔의 반죽이 들어 있었다. 구수하고도 쿰쿰한 냄새가 우리 된장과 비슷했지만, 맛은 덜 짜고 더 달았다. 버킷 바깥엔 'Peaso(피소)'라고 적혔다. 레드제피는 "일본의 미소(miso) 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pea)을 이용해 장(醬)을 담갔다"고 했다. "누룩도 직접 배양합니다. 2년 전부터 매달 장을 담가 숙성시키며 어떻게 익어가는지 연구하는 중이죠. 된장·간장을 중심으로 한식도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해 서울 갔을 때 청국장을 먹어봤는데, 아주 좋았어요."

◇미식은 포식? 고정관념을 깨다

지난 100년간 현대(서양)요리에는 네 차례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일어났다.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Escoffier·1846~1935)가 프랑스 요리를 체계화했다. 그가 1903년 쓴 '요리 가이드'는 오늘날도 요리학교 교재로 사용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두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밀려왔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미식=포식'으로 통했다. 풍요가 넘치면서 사람들은 맛있으면서 양이 적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요리를 요구했다. 이때 '누벨 퀴진'이 등장했다. 프랑스어로 '새로운 요리'란 뜻이다. 미셸 게라르, 알랭 상드랑 등 천재 요리사들이 겨자와 지방 함량 0%인 '소스 제로'를 활용한 '다이어트 요리'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만 줄인 어설픈 요리를 누벨 퀴진으로 착각한 이류 요리사들이 대거 등장했고, 급격히 인기를 잃었다.

세 번째 파도는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바르셀로나 인근 '엘 불리' 레스토랑이 진원지. 오너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는 요리에 덧입혀진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싶었다. 재료의 질감과 조직, 요리법을 철저하게 분석해 새로운 맛을 창조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라 불렀다.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뜻이다. 알긴산이나 칼슘 용해액 같은 화학제품도 요리에 끌어들였다. 과일즙이나 꿀을 고체로 만들기도 하고, 고기의 맛 성분만을 뽑아내 거품으로 부풀리기도 했다. 아드리아의 시도는 세계 미식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엘 불리가 '세계 50대 식당'에서 2002년과 2006~2009년 1위에 올랐다.

◇"분자요리? 모든 요리는 과학"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그러나 과유불급. 사람들은 더 이상 '놀라움의 요리'에 놀라지 않았다. 음식 같지 않은 음식에 질려갈 즈음, 혜성처럼 나타난 식당이 노마다. 2010년 세계 50대 식당에서 엘 불리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노마의 음식은 엘불리만큼이나 기발했다. 하지만 분자요리처럼 과학에 기댄 인공 음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레드제피는 수렵이나 채집 등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활용한 재래 기법을 따른다. 발효나 훈제처럼 전통 보존·조리 방식도 부활시켰다.

레드제피는 "모든 요리는 과학적이다. 된장, 간장,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은 얼마나 과학적인가"라고 반문했다. "노마의 음식이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자연의 리듬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엘 불리에서는 아스파라거스가 어디에서 났느냐는 따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일 년 사계절에 따라서 음식을 만듭니다. 그때그때 제철인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요리가 결정됩니다."

레드제피는 틈날 때마다 코펜하겐 주변 산과 들로 나가 각종 풀과 버섯을 채집한다. 전문 수렵꾼을 고용해 식재료를 공급받기도 한다. "모든 행위의 중심 목표는 '맛'입니다. 우리가 덴마크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에서 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건 맛이 덜해서입니다. 샐러드에 레몬 대신 개미를 사용했던 건, 지중해에서 비행기로 오랜 시간이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코펜하겐 인근 흙에서 잡은 개미에서 더 좋은 신맛이 났기 때문이죠. 비행기로 3일 걸려 날아온 냉동 고기와 30분 전 도축한 순록 고기, 어떤 게 더 맛있겠어요?"

◇레몬 대신 개미! 메뚜기로 담근 액젓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Michael Edwards
레드제피는 맞은편 선반에서 또 다른 흰색 버킷을 꺼내 열어 보였다. 액젓 비슷한 액체가 들어 있다. 살짝 찍어 맛을 보니, 액젓보다 짙고 구수한 맛이 소고기·돼지고기 등 고기로 담그는 육장(肉醬)을 떠올리게 했다. "메뚜기로 만든 가룸(garum)"이란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룸이라고 하는 고등어나 참치로 만든 액젓으로 요리했습니다. 가룸을 똑같이 되살리면 너무 비리고 짜서 현대인 입맛에 맞지 않지요. 가룸의 전통 기법을 사용하되 메뚜기를 재료로 써서 실험하는 겁니다."

이런 노마의 노력은 전 세계 요리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줬다. 북유럽 사람들조차 "북유럽엔 음식다운 음식이 없다"고 자조했지만, 노마가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얻으면서 자신들의 음식 문화와 전통을 재창조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는 '노르딕(북유럽) 요리'라는 이름으로 확산하고 있다. 발효 음식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음식 평론가 강지영씨는 "요즘 한국 발효 음식이 각광받는 건 노마를 통해 발효가 재인식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미식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으로 무시당하던 나라, 덴마크. 지금은 노마로 인해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는 여행지로 발돋움 중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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