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질 무렵 홍등(紅燈)이 차례로 켜졌다. 가파른 골목이 붉게 물들었다. 계단을 딛는 발걸음들이 건물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좁은 계단 폭에 조심조심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멀리 운무(雲霧)에 쌓인 바다가 지붕 위에 걸쳐 있었다. 시장 골목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자연의 고요함이 원근(遠近)으로 함께였다.

타이베이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지우펀(九��). 타이완 북동 해안에서 가까운 마을의 고도는 높다. 바다를 바싹 압박하며 솟은 고산(高山)에 자리했다. 그래서 지우펀행 버스는 자꾸만 굽이를 돌며 높아진다. 그 도로 역시 지우펀 골목을 닮아 좁다.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다가올 때, 버스는 절벽 옆에서 기우뚱했다. 창 밖으론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들어선 마을들의 불빛이 빛났고, 그 빛이 선명해질수록 마을들을 감싼 초록 산맥은 까만 실루엣으로 잠겼다.

1920~30년대 지어진 낡은 목조건물에 홍등(紅燈)을 밝힌 지우펀 수치루. 영화‘비정성시’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지우펀에서 거리는 곧 계단이다. 계단 따라 양편으로 타이완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과 특색 있는 기념품을 전시한 상점이 늘어섰다. 주말이면 좁은 골목은 외지인들로 북적거린다. 이유가 있다. 타이완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허우샤오셴이 '비정성시(悲情城市)'를 여기서 찍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무대 일부를 차용한 곳도, 한국 드라마 '온 에어' 촬영지도 지우펀이다.

본래 지우펀은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외부에서 물자를 조달해 오면 아홉 가구가 9등분 한다 해 이름도 지우펀(九��)이다. 그랬던 마을에 1920~30년대 금광이 발견되며 사람들이 몰려왔다. 지금 남은 목조건물 대부분이 당시에 지어졌다. 채광산업이 몰락하며 한적한 마을이 되었다가 영화 '비정성시' 촬영지로 관심을 끌며 관광명소가 됐다.

금광지대로 이름을 날렸던 진과스. 산등성이에서 고즈넉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우펀 기행의 주 여정은 지산제(基山街)에서 시작해 수치루(竪崎路)에서 마감한다. 지산제는 군것질거리와 공예품 상점으로 가득한 길. 지산제를 지나면 바로 홍등이 계단 따라 늘어선 수치루다. 지산제에서 지친 발걸음을 수치루에 있는 찻집에서 쉴 수 있다. 영화 '비정성시'를 촬영했던 '베이칭청스(悲情城市)'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일부 장면의 모티브가 된 '아메이차주관(阿妹茶酒館)이 모두 여기 있다.

지우펀에서 발걸음을 돌리기 아쉽다면 차로 10분쯤 떨어진 진과스(金瓜石)로 갈 것. 1920년대 금광채굴로 인한 부를 소비한 구역이 지우펀이었다면 진과스는 그 부를 생산해낸 금광지대다. 흔한 회색빛 탄광의 이미지는 진과스에 없다. 버려진 폐광이되 바다가 보이는 산악 풍경으로 진과스는 짙푸르다. 매화와 동백이 골목 곳곳에서 봄을 알린다.

진과스에서 동선은 크게 '생활미학체험방(生活美學體驗坊)' '태자빈관(太子賓館)' '황금박물관(黃金博物館)' '관제당(勸濟當)' 순으로 짤 수 있다. 생활미학체험방은 일본 식민지시대 당시의 목조가옥이며 태자빈관은 1922년 당시 일본 황태자이던 히로히토의 방문을 기대하며 지은 별장이다. 황금박물관에선 진과스 금광의 역사를, 관제당에선 높이 12m의 관우 동상을 볼 수 있다.

여·행·수·첩

환율: 1NT$(대만 달러)=약 38원

항공: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케세이패시픽·타이항공 등에서 대만행 비행기를 운항한다. 2시간30분 정도 소요. 홍콩 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 '익스프레스 버스(135NT$)'가 운행된다

교통: 지우펀·진과스는 기차와 버스로 갈 수 있다. 한국 지하철에 해당하는 MRT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루이팡 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30분 간격으로 있다. 한 시간쯤 소요. 루이팡 역 앞 광장에서 길을 건너 주펀·진과스행 버스를 탄다. 30분쯤 소요.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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