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블랙홀'_ 펜실베이니아 펑추토니<Punxsutawney>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 '성촉절' 다른 뜻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 
이 영화의 흥행 덕에 만들어져
펑추토니로 취재 간 기상캐스터 호텔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오늘 아니고 또다시 어제라고?

한때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남자 배우들은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일단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빌리 크리스털. 작은 키에 토끼 이빨, 듬성듬성한 머리숱. 섹시하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남 '펀치 드렁크 러브'의 아담 샌들러는 어떤가. 어렸을 때 무릎깨나 깨지는 개구쟁이였을 것 같은 귀여운 느낌이지만 입 주위가 튀어나와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앞머리 대부분이 훌렁 벗겨진 데다 울퉁불퉁한 피부에 주름까지 자글대는 '빌 머레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는 미남과 거리가 멀다. 그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소설을 잘 쓴다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미남이라고 말할 만한 아량을 지닌 사람일 거다.

그런데 나는 이 못생기고 시니컬한 남자들이 좋다. 그들이 예쁘고 자아가 강한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 언제나 매혹당한다. 게다가 이런 영화들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만큼이나 교훈적이라,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랑의 힘으로 인생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런 영화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맨틱 코미디는 여름이 아닌 '겨울'에 봐야 한다. 바로 오늘처럼 손이 곱아드는 추운 날씨에!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주인공이 성촉절(다람쥐처럼 생긴 동물 마못으로 봄이 언제 올 것인지 점치는 행사) 때문에 펜실베이니아에 있는‘펑추토니’라는 작은 마을에 가면서 벌 어지는 이야기다. 사진은 지난 2월 2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치러진 성촉절 행사 모습. / corbis 토픽이미지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빌 머레이는 기상 캐스터 '필' 역할을 맡았다. 오만하고, 변덕스러운 데다가 스스로를 '인재'라 부르는 자뻑남 '필 코너스'는 '2월 2일' 성촉절(다람쥐처럼 생긴 마못(Marmot)으로 봄이 언제 올 것인지 점치는 행사)을 촬영하기 위해 프로듀서인 리타와 카메라맨 래리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펑추토니'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 간다. 목적지인 펑추토니에 도착한 이들은 서둘러 성촉절 취재를 끝내지만 결국 폭설로 길이 막혀 펑추토니로 되돌아온다.

이 영화의 독창성은 사실 이때부터 시작된다. 다음 날, 호텔에서 눈을 뜬 필은 어제와 똑같은 라디오 멘트를 듣게 된다. 어제 만난 사람들, 가령 날씨를 묻던 남자와 돈을 구걸하는 거지, 고등학교 동창인 보험판매인까지 그는 오늘이 아닌 '어제'의 풍경을 똑같이 목격하고 놀라게 된다. 어제가 반복되는 기이한 마법에 걸린 필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이런저런 일들을 벌인다. 여자 유혹하기, 돈 가방 훔치기, 촬영차 함께 온 리타 꼬시기! 어제 알아낸 정보를 어제가 반복되고 있는 오늘 써먹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18세기 프랑스 시를 전공한 리타에게 불어 시를 읽어주고, 짐빔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을 숨긴 채 그녀가 좋아하는 스위트 버무스를 시켜 손쉽게 그녀의 호감을 산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어제에 갇혀 있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 필은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 6시면 항상 호텔 위 바로 그 침대 위에서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결국 그가 맞이하는 매일매일의 '어제'는 오지 않는 '내일' 속에 갇혀 죽음까지도 밀어내 버린다. 리타에게 사랑을 느낀 필은 이런 상황을 점점 받아들이며 펑추토니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결심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주고, 타이어가 펑크난 할머니들을 도와주며, 음식을 잘못 삼켜 질식하기 직전인 남자의 목에서 커다란 스테이크 조각을 꺼내준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미숙한 것들이 능숙한 것들로 뒤바뀌는 마술적인 장면들이었다. 초기 성룡 영화의 한 장면들, 이를테면 사부에게 사정없이 얻어맞던 성룡이 기막힌 방어로 사부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장면이라던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아내의 가출로 까맣게 탄 '프렌치토스트'를 만들며 허둥대던 더스틴 호프만이 부엌에서 아들과 능숙하게 '100퍼센트의 프렌치토스트'를 만들던 장면들…. 이런 장면들은 '사랑의 블랙홀'에서 절정을 이룬다. 겨우 바이엘을 치던 '필'이 하루 만에 신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하루 만에 얼음 조각을 만드는 장면과 괴팍한 성격이 온화하게 변화되는 연금술 같은 장면들의 유쾌한 동거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백과사전에서 '성촉절'이란 단어를 찾아봤다. 우리에겐 낯선 '성촉절'은 1886년 2월 2일 펜실베이니아의 펑추토니(Punxsutawney)라는 작은 마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groundhog day'는 바로 성촉절을 의미하는 단어로, 미국에서는 이 날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2월 2일을 말한다. '성촉절'의 또 다른 뜻은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사전적 의미가 갑자기 하나 더 늘어난 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후였다.

영화에서 '필'이 자살을 결심할 만큼 절망했던 건 사랑하는 '리타'가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 채 오늘을 맞이할 거란 깨달음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자신의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일만큼 서글픈 게 있을까. 그러나 '필'은 마치 삶의 비밀을 알아낸 사람처럼 그에게 놓인 하루에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진심을 마음으로 전하던 날, 그는 기적처럼 리타와 함께 침대 위에서 '내일'을 맞이한다. "오늘이 무슨 날이게요? 오늘은 바로 내일이에요. 드디어!"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빌 머레이의 대사와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내가 왜 한결같이 못생긴 남자들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영화 초반에 보이는 빌 머레이의 신경질적인 주름들이 어느덧 자연스럽고 다정해 보이는 마법이 펼쳐지는 바로 그 순간에! 그건 영화가 시작할 때의 모습과 영화가 끝날 때의 모습이 드라마틱할 정도로 너무나 달라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랑의 블랙홀―1992년, 해럴드 래미스 감독 작품.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이 필과 리타 역을 맡았다. 원제인 ‘groundhog day’(성촉절)는 이 영화의 흥행 덕분에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이라는 또 다른 사전적 의미를 갖게 됐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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