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 요리의 원조는 어딜까. 곱창전골이나 순대국을 즐겨 찾는 대한민국 남정네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자신감은 금물이다. 우리보다 더 풍성한 곱창 요리를 발전시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프랑스 리옹 사람들이다.

리옹 특유의 음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소박한 음식점 부숑(bouchon)에 가보면 그런 비웃음이 금방 경탄으로 바뀔 게 틀림없다. 음식을 먹기에 앞서 식전주(aperitif)를 시키면 주인장이 곧바로 작은 접시에 안주거리를 내오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게 돼지곱창 튀김과 돼지 내장에 고기를 썰어 넣어 말린 소시송이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풍자소설로 1532년 리옹에서 출간된 '가르강튀아'에는 소나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가 언급돼 있어 리옹 곱창 요리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됐음을 말해준다. 전채와 주요리를 시키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보면 3분의 2 이상이 돼지고기 요리고 그중 절반은 곱창을 응용한 요리다.

그러면 왜 이런 곱창 요리가 발달한 것일까. 여기에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리옹은 로마시대 갈리아의 수도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리상 이점으로 오래 전부터 상업 거점도시로서 번영을 누렸다. 그 중심이 바로 리옹 서쪽 손강 좌안에 자리한 구시가지다(손강은 론강과 함께 리옹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강으로 도시의 남단에서 론강과 합류한다).

실크산업과 교역이 도시의 주축이었던 만큼 귀족문화보다 서민문화가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숑은 바로 상인과 공장 노동자들이 즐겨 먹던 서민 음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전의 부숑 주인들은 식사시간이 되면 간판에 말 먹이인 건초 묶음을 매달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차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상인들로 하여금 말에게 먹이를 주고 쉬어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부숑은 돼지고기와 내장을 주축으로 한 리옹의 독특한 먹거리 문화의 산실이 됐다. 구시가의 '샤베르 에 피스' '레 리요네' 등 대표적인 부숑은 지금도 끼니 때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댄다. 이제 주 고객은 노동자에서 관광객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말이다. 세계 최고의 셰프로 손꼽히는 폴 보퀴즈가 이곳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구시가지는 리옹 문화의 요람이다. 오늘날까지도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16세기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세월의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광객을 매혹한다. 역사적 기념물의 상당수가 이곳에 모여 있다. 12세기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생장 대교구교회, 푸르비에르 언덕의 로마시대 원형 극장을 비롯, 실크산업을 주도했던 각종 건물이 옛 영화를 소리없이 들려준다. 1998년 유네스코가 리옹 구시가 전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이런 역사·문화적 중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리옹은 결코 달콤한 과거의 영화만을 읊조리는 도시는 아니다. 리옹은 끝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도시다. 이 점은 도시의 구조에 잘 드러나 있다. 손강 서쪽에서 발아한 리옹의 문화적 씨앗은 근대와 현대로 이행하면서 도시의 영역을 동쪽으로 계속 확대해갔기 때문이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영예는 이런 '리요네(리옹사람)'의 도전정신의 산물인 셈이다.

리옹이 프랑스의 근대 문화 예술의 형성에 끼친 공로는 절대적이다. 리옹은 프랑스만의 독특한 인형극 '기뇰'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19세기 초 리옹의 실크 공장은 사양길로 접어들어 노동자들은 일감을 찾기 어려웠다. 로랑 무르게라는 노동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인형극을 호구지책으로 삼았는데 평소 재치 있는 입담으로 주위를 웃겼던 그는 뜻밖에도 대흥행을 거둔다. 그는 기뇰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레퍼토리를 개발했는데 이때부터 사회 현실을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풍자한 무르게의 인형극을 기뇰이라고 불렀다. 기뇰은 오늘날에도 공중파 텔레비전 정치풍자 프로그램에 등장할 정도로 인기다. 구시가의 가다뉴박물관 내에 자리한 국제인형박물관과 작은 기뇰박물관에 가면 기뇰 인형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고, 기뇰극장인 '매종 드 기뇰'에서는 기뇰 인형극을 관람할 수 있다.

근대 영화가 탄생한 곳도 리옹이다. 1895년 사진사의 아들인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는 오랜 실험을 거쳐 이곳에서 '뤼미에르 공장을 떠나며'라는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고, 같은 해 12월28일 파리 '그랑카페'에서 33명의 친구를 초대해 처음으로 상영함으로써 근대영화의 서막을 열었다. 리옹 8구 프리미어 필름 거리의 뤼미에르 박물관에 가면 두 형제의 치열한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영사 기기들과 그들이 제작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리옹은 현대건축의 실험실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은 프레스킬 코메디광장의 유서 깊은 리옹 국립오페라극장을 세련된 현대건축으로 탈바꿈시켰다. 장식적인 건물의 몸체는 그대로 둔 채 삼각형이었던 지붕을 반원형으로 단순하게 처리, 모던한 아름다움이 흘러넘친다. 이 건물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맞은편의 시청건물과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리옹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리옹 건축의 압권은 콘플루언스 지역의 오렌지 큐브(Orange Cube)다. 손강과 론강 사이에 반도처럼 길게 다리를 뻗은 프레스킬 지역 남단에 자리한 이 건물은 화려한 오렌지 빛 외관으로 행인을 매혹한다. 놀라움은 건물 가까이 갈수록 증폭된다. 건물 두 곳에 거대한 구멍이 파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물 전면 왼쪽에 깊게 파인 구멍은 시각적인 놀라움뿐만 아니라 건물 내부 깊숙한 곳까지 자연광이 도달, 환경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놀랍다.

이 밖에 리옹은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고향으로 유명하고 세계적인 비엔날레 중의 하나인 리옹비엔날레가 열리는 현대미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리옹은 현재의 그릇 속에 과거를 담은 도시다. 이곳이 간직한 다양한 문화적 자산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렵고 오직 리옹에서만 찾을 수 있다. 리옹시가 '온리 리옹(Only Lyon)'을 내세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 여행팁


리옹의 주요 관광지는 손강 왼편의 구시가지(Vieux Lyon), 손강과 론강 사이의 프레스킬 지역에 몰려 있다. 동선만 잘 짜면 대부분 도보로 방문할 수 있다. 이틀 이상 머물 계획이라면 리옹 시티카드를 구입하는 게 좋다. 대부분의 미술관 박물관 극장 등을 무료 또는 할인한 가격에 입장할 수 있고 지하철이나 트램 전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하루 이용권은 21유로, 이틀짜리는 31유로다.

부숑은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리옹 관광사무소가 선정한 리옹의 대표적인 부숑 17곳 중 10곳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요리에 대해 잘 모를 땐 오늘의 요리(plat du jour)나 업소의 정식메뉴를 선택하는 게 좋다. 오늘의 요리는 15유로 내외, 정식은 25유로 내외에 즐길 수 있고 와인 한 잔을 곁들여도 30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유명 부숑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입맛만 다시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명품 숍은 프레스킬의 자코뱅 광장과 벨쿠르 광장 사이에 몰려 있다. 에르메스, 구찌, 샤넬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치고 이곳에 매장을 열지 않은 곳이 없다. 매년 6월 말에는 대폭적인 세일 기간이므로 알뜰 구매 고객은 염두에 둘 만하다.

현대적인 숙박시설은 론강 동쪽의 파르듀 지구에 많다. 3성급 호텔의 숙박비가 파리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

리옹 인근에는 안시, 부르강 브레스 등 당일 코스로 방문할 수 있는 소도시들이 많다. 평창과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놓고 겨뤘던 안시는 아름다운 호수와 몽블랑의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진 프랑스의 베네치아다. 에밀의 작가 장 자크 루소가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부르강 브레스는 프랑스 최고의 맛과 육질을 자랑하는 브레스 닭의 산지로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은 모두 이곳의 닭을 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프랑스 리옹관광사무소 홈페이지(www.lyon-france.com)와 프랑스관광청 한국지사 홈페이지(kr.rendezvousenfrance.com)를 방문하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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