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보다 향긋하고 초콜릿보다 달콤한 프랑스 

낭만적인 프랑스 고성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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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고성 호텔 (샤토 호텔) - 베흐히 호텔/Château de La Verrerie

 

고성을 호텔로 개조한 '샤토 호텔'은 유럽 전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숙박 형태. 주로 옛날 각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의 성을 호텔로 만든 것이다. 모두 도시에서 떨어져 자연경관이 훌륭하다는 것이 특징. 또 각 샤토 호텔마다 중세 시대 유물과 많은 예술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소규모의 박물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를 가볍게 체험하는 투어 프로그램 등도 갖추고 있어 호텔 자체가 관광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단, 대부분의 샤토 호텔이 시내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배낭여행객들이 찾아가기에는 다소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감수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혹시 당신이 프랑스에서 렌터카로 여행을 하는 중이라면 한번쯤 숙박해보길 권하고 싶다. 물론 숙박비는 꽤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신혼여행이나 가족여행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멋진 기회가 될 듯!

  

 

프랑스의 결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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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남쪽으로 2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가면 Ivoy-le-Pré 라는 마을이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읍이나 면 규모에 해당한다. 아이와 함께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바로 친구 결혼식이 이 마을의 성당에서 치러지기 때문이았다.

이 결혼식에서 내 딸아이는 가장 어린 꼬마 화동 역할을 맡았다. 아이들은 예쁘게 차려 입고는 공주가 된 것 마냥 신이 났고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쉽게 어울렸다. 프랑스의 결혼식에는 신랑 신부의 들러리가 있고 또 어린 화동들이 여럿 있는데, 어린 화동들은 신부의 앞에 서서 결혼식에 입장하고 예식이 끝나기 전에 바구니를 들고 교회의 기부금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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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관할 시청에서 간단하게 선서만 하고 결혼식을 끝내는 커플들도 많이 있으나, 아직도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것이 보편적이다. 꼭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카톨릭이라는 종교가 일상 생활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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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준비 중인 피로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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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신부가 나타나자 손수건을 흔들며 환영을 하는 하객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신랑·신부는 피로연장에서 하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다니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결혼식 피로연은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거리의  베흐히 샤토 호텔(Château de La Verrerie)에서 치러졌다. 프랑스 사람들은 결혼식 자체보다는 피로연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프랑스의 저녁식사가 보통 저녁 8시 이후에 시작되는 것처럼, 피로연도 그 무렵 시작하여 새벽 4-5시까지 파티는 계속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도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 받으며 토론을 서슴지 않는 프랑스인들. 어찌 보면 너무 저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친근한 사람들이 바로 프랑스 사람들이다. 낯선 이들과도 오랫동안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하고 축배를 들며, 새벽까지 춤과 음악을 즐긴다. 결혼 피로연은 마치 그들의 또 다른 축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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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연장에는 베이비시터가 있어서 아이들을 따로 모아 돌봐주었다.  아이들은 다른 방에 모여 따로 식사를 하고 베이비시터의 보호 아래 서로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자유롭게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위기가 참 부럽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고성 호텔, Château de La Verr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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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피로연이 열린 베흐히(Verrerie) 호텔은 파리에서는 185 km, 부르쥬(Bourges)라는 작은 도시에서 45km 정도 떨어져 있는 4성급 호텔이다. 그러나 경치와 운치로 본다면 6성급 호텔과도 비교하기 힘든 호텔이다.

프랑스 각지의 샤토 호텔마다 건물의 모양과 특징, 주변 경관이 모두 다른데, 고성을 개조하긴 했지만 내부는 현대식에 가까운 곳도 있고 이곳처럼 내부도 옛날 방식 그대로인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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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는 동화에서나 보았던 공주가 사는 곳이라며 침대 위에서 뛰어 보기도 하고 뒹굴 뒹굴 굴러 보기도 하고 아주 신이 났다. 우리는 일행이 아이와 나, 둘뿐이라 작은 방을 배정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널찍한 침실과 고전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책상과 욕실, 눈부신 전망이 감동적이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중세의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인테리어였다. 다행인 것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는 달리 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는 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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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족이 머무는 방에는 큰 거실이 따로 있는데,  오래된 서적들이 있는 서재와 피아노가 있다. 

 

이 호텔은 이상하게도 방 열쇠를 주지 않는다. 호텔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별로 필요 없을 거라는 말만 돌아온다. 이제껏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열쇠가 필요 없는 호텔이라...... 이곳에는 좋은 사람들만 오고 가는 것일까 아니면, 이곳이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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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정원과 산책을 하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호수, 예쁜 정원수들…... 호텔 앞의 호수는 고요하고 평화로워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워 파티의 소음도 잔잔한 바람에 실려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멋진 성에 살았던 과거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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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âteau de La Verrerie , France

 

샤토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아이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특히 아이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예쁜 화동들이 이곳에서 결혼식 피로연 파티를 했기에, 아직도 이곳이 공주가 사는 집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 

 

 

Information

 

Château de La Verrerie

- 홈페이지: http://www.chateaudelaverrerie.com/

- 주소: La Verrerie, 18700 Oizon, France / 전화 : +33 2 48 81 51 60

- Email : info@chateaudelaverrerie.com

- 기차를 이용할 경우, 파리(Paris)에서 기엉(Gien)이나 부르쥬(Bourges), 비에흐종(Vierzon) 역으로 간 후 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한다.

- 샤토호텔 예약 및 검색: http://www.chateauxhotels.com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혁명'이란 언제 일어난 무슨 사건이었을까? 일부에선 '프랑스 대혁명'(1789)이나 '7월 혁명'(1830)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1832년 6월에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6월 봉기' 또는 '파리 봉기'를 말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수립된 공화정이 무너진 뒤 나폴레옹의 제정(帝政)과 왕정 복고가 이어졌고, 7월 혁명의 결과 루이 필리프의 입헌군주제 왕정이 들어섰다. 공화주의자들은 '피는 우리가 흘려 놓고 혁명의 열매를 빼앗겼다'는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1832년 4월 콜레라가 일어난 데다 경제 위기가 겹쳐 민심이 흔들렸고, 6월 1일에는 공화주의자의 존경을 받던 자유주의 정치가 라마르크가 사망했다. 공화주의자들은 6월 5일 라마르크의 시민장 도중 장례 행렬을 바스티유 광장으로 이끌면서 '거사'를 일으켰다. 봉기 참가자의 3분의 2는 노동자 계층이었다. 이들은 하룻밤 만에 파리 동쪽 지구를 장악했으나 투입된 정규군 2만5000명과 맞서게 됐고, 군인 73명과 시위대 93명이 사망하면서 봉기는 진압됐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이 '6월 봉기'를 재조명한 사람이 바로 빅토르 위고였다. 위고는 사건 당시 튈르리 정원에서 희곡을 쓰던 중 총성을 듣고 현장으로 가다가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됐고, 기둥 사이로 간신히 몸을 피했다. 이후 '레미제라블'을 통해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1833년에 이르는 많은 인물의 장대한 이야기를 썼다. 소설 속 가상의 결사체 'ABC의 친구들'과 그 지도자 앙졸라는 문학이 형상화한 혁명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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