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 박물관'이라는 말은 참 흔하게 쓴다. 고색창연한 땅을 견줄 때 그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기도 하다. 이집트 룩소르(Luxor)에 들어서면 노천 박물관의 챔피언 벨트를 이 도시에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은 나일강변 주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룩소르는 오랫동안 고대 이집트의 수도로 위용을 떨쳤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룩소르를 ‘백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로 칭송했다.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이집트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가면서도 룩소르의 매력에 한동안 퇴진을 멈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굳이 선인들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룩소르는 보이는 것만으로도 오래 구워낸 진흙 빛 신전과 유적들의 세상이다. 천년 걸려 완공된 카르나크 신전, 도심 한 가운데 우뚝 선 룩소르 신전 외에도 강 건너에는 멤논의 거대 석상과 왕들의 무덤이 들어서 있다. 룩소르는 실제로 거대한 박물관 안에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도열한 느낌이다.

이집트의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



200km 뱃길에 드러난 노천 박물관

룩소르에 닿는 가장 매혹적인 방법은 나일강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스완을 뒤로한 크루즈는 나일강을 따라 북쪽 룩소르까지 200km 뱃길을 달린다. 언뜻언뜻 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온통 사막과 오아시스가 뒤범벅된 모습이다. 조각배들이 강 줄기를 오가고 한가롭게 그물을 던지는 풍경들이 덧씌워진다.

해질 무렵 룩소르에 배가 정박하면 강변 뱃머리 코앞으로 룩소르 신전이 조명을 받아 빛을 낸다. 선상에서도 그 윤곽이 또렷히 내려다보인다. 수천 년 석상으로 자리를 지켜온 람세스 2세와 함께 하는 밤은 다가서는 감동부터가 다르다.

태양이 솟으면 룩소르의 자태는 한층 선명해진다. 룩소르는 나일강의 서쪽과 동쪽 풍경이 다르다. 해가 지는 서안은 왕들이 잠든 죽은 자들의 땅이고 동쪽은 산자들의 터전과 신전이 들어서 있다. 강 양쪽을 잇는 다리가 연결됐지만 이곳 주민들은 배를 타고 산자와 죽은 자들의 경계를 쉴새 없이 오간다.

왕들의 계곡으로 불리는 서안 지역은 바위산 계곡 아래 파라오들의 무덤이 늘어서 있다. 왕들의 무덤을 꼭꼭 감춰놓았지만 숱한 도굴에 시달려야 했다. 온전한 모습을 갖췄던 투탕카멘의 유물만이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무덤 내부 벽화에 새겨진 그림이나 조각들은 섬세하고 색감이 또렷하다. 수천년 녹아든 전율은 쉽게 가슴으로 전이된다.



사연과 규모를 뽐내는 석상과 신전들

왕들의 계곡에서 연결되는 하트셉수트 여왕 신전이나 멤논의 거상 역시 그 규모로 감동을 증폭시킨다. 무덤에 부속된 죽은 파라오의 집을 의미하는 제전은 서안에만 30여개가 넘는다. 커다란 좌상인 멤논의 거상에는 해가 뜰 때마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겨 있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긴 멤논의 거상.


동쪽으로 넘어서면 신전들이 내뿜는 호흡은 더욱 가파르고 강렬하다. 이집트의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은 국가 최고신인 아멘라를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건립에만 천년이 넘는 세월이 소요됐는데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배경이 돼 유명해지기도 했다. 대신전 내에는 몇 개의 또 다른 신전들이 들어서 있고, 신전 안 기둥들은 134개나 늘어서 여행자들에게 아득한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정교하게 솟은 오벨리스크나 양들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들도 특이하다. 이곳 파라오의 참배 길은 도심에 위치한 룩소르 신전까지 2km 가량 이어져 있다.


룩소르 시내를 거닐면 마차고 오가고, 바자르(재래시장)가 들어선 차분한 풍경이다. 고대 왕국의 위용이나 웅장한 신전과는 별개로 산 자들의 세상은 오래된 것에 익숙해진듯 평화로운 일상으로 다가선다.


가는 길

인천에서 이집트 카이로까지 대한항공 등이 운항한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항공이동이 가능하며 나일강 크루즈를 이용해 아스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집트 입국에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는 공항 입국장 환전소에서도 즉석 구입이 가능하다. 뜨거운 태양에 견디려면 긴팔 옷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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