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남부의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는 보헤미안의 흔적이 서린 중세도시다. 블타바강이 감싸고 도는 작고 아담한 마을에서는 길바닥을 채운 둔탁한 돌길이 정감 있게 다가선다. 주말이면 전통 복장을 곱게 차려입고 마을을 서성이는 주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은 오렌지색 지붕이 늘어선 중세마을의 상징 같은 존재다.


두 칸짜리 붉은색 열차를 타고 체스키 크룸로프로 향하면서부터 설렘은 시작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보헤미안들의 삶이 담겨 있는 중세마을로 향하는 기찻길에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환승역인 체스케 부데요비체(České Budějovice)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닿은 체스키 크룸로프역에는 이방인들을 위해 유스호스텔 및 펜션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다.



보헤미안의 흔적이 서린 중세마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는 남부 보헤미안 지역의 자유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중세마을은 300년 동안 커다란 변화 없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유구한 풍경 때문에 주말이면 사람들이 깊은 휴식을 위해 몰려드는 곳이다. 체스키 크룸로프성 인근 역사지구에는 고딕, 르네상스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도심의 절반은 유적과 상점이고 나머지 절반은 펜션, 민박집들로 채워진다.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성.


구시가 등을 둘러보는 데는 걸어서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도시는 인구 1만 5,000여 명의 아담한 규모고 마을의 관문인 부데요비츠카 문(Budějovická Brána)을 지나면 옛 영주들을 모시던 하인들이 거주했던 라트란(Latrán) 거리가 이어진다. 꼭 특별한 테마를 찾으려 하지 않더라도 도시 자체가 오롯하게 문화유적지라는 느낌이 전해진다. 오렌지색 지붕과 흰 담벼락은 동화 속 골목을 산책하는 착각을 안겨 준다.


중세마을의 관문인 부데요비츠카 문.

예전 영주를 모시던 하인들이 거주했다는 라트란 거리.


마을 어느 곳을 서성거리든 체스키 크룸로프의 우뚝 솟은 상징은 체스키 크룸로프성이다. 보헤미아 지역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성은 르네상스 양식의 방, 바로크 양식의 홀 등 귀족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3세기 크룸로프 영주가 성을 건축했지만 그 후 시대별로 유행하던 건물들이 하나하나 덧씌워졌다. 각각 다른 양식의 정원과 건축물들을 지나면 가장 안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넓은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으로 향하는 ‘붉은 문’ 아래에는 곰들도 사육되고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은 세계 300대 건축물로도 지정된 바 있다.



마을의 상징인 체스키 크룸로프 성

160여 개의 계단을 지나 원형 탑에 오르면 구시가와 그곳을 ‘S’ 자로 감싸고 흐르는 블타바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헤미아 삼림에서 시작된 블타바강은 이곳 보헤미아 남부 땅을 거친 뒤 체코를 경유해 독일까지 흘러 들어간다. 성루에서 바라다보면 마을의 윤곽은 또렷이 전해진다. 외지인들은 여름이 오면 블타바 강변에서 중세마을을 배경으로 카누를 즐기기도 한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이 있는 라트란 거리와 강 건너 구시가를 연결하는 다리가 ‘이발사의 다리(Lazebnický most)’다. 예전에 다리 인근에 이발소가 위치해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귀족과 이발사 딸의 비운의 사랑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다리 위에는 십자가에 박힌 예수상이 세워져 있다.

라트란 거리와 구시가를 잇는 

이발사의 다리.

체스키 크룸로프로 향하는 두 칸짜리 붉은색 열차.



마을로 들어서면 체코를 대표하는 인상파 화가인 에곤 실레의 미술관을 둘러본 뒤 구시가 광장 옆의 체스키 크룸로프 성당을 감상해도 좋다. 에곤 실레는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도시 곳곳을 담아냈다. 보헤미안 지역의 유물을 보관한 역사박물관이나 체코 인형극의 인형들을 보관한 마리오네트 박물관 역시 이곳만의 정취가 묻어난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작은 책방과 골동품 상점이 나타나며 오래된 도시의 산책을 풍요롭게 한다.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Náměstí Svornosti)에서는 주말이면 흥겨운 공연이 열린다. 보헤미안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며, 예전 수공업으로 빚어냈던 각종 물건들을 파는 장이 들어선다. 중앙광장은 13세기에 형성된 체스키 크룸로프의 또 다른 상징으로 마을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으며 광장 주변의 오랜 건축물들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지인들은 주말이면 일찌감치 이곳에 숙소를 잡아놓고 영주들이 누렸을 옛 정취에 취한다. 펜션들은 대부분 강이 흐르는 목 좋은 곳에 들어섰고, 마을 뒷골목에는 운치 있는 레스토랑들이 차곡차곡 늘어서 있다. 길 모퉁이 작은 클럽의 문을 열면 밤늦게까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체코 프라하의 물가가 비싸고 도시 분위기가 위압적이라면 이곳은 저렴하고도 포근하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쓸만한 쉼터를 찾기 위해 한두 시간 짐을 끌고 다니는 수고쯤은 유쾌하게 한다.



가는 길

오스트리아 , 잘츠부르크나 체코 프라하에서 열차로 이동한다.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붉은색 열차로 갈아타고 30분 달리면 체스키 크룸로프다. 중앙역에 도착하면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선다. 체코 프라하에서도 버스가 2시간마다 다닌다. 프라하에서는 약 3시간 30분 소요. 마을 규모와 달리 펜션 등 숙소가 꽤 많은 편이다. 주말에는 예약이 필수. 중앙광장 인포메이션 센터에 짐을 맡길 수 있으며 숙소도 알선해준다.

체코 프라하·쿠트나 호라·카를로비 바리

백마 두 마리가 끄는 관광 마차가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고 있다. 가운데 동상의 주인공은 종교개혁가 얀 후스. 뾰족한 두 개의 첨탑이 있는 건물은 틴 성당이다.
체코 특산품은 '자유'와 '낭만'일 듯하다. 낡은 여관의 허름한 창틀에도, 거리 악사의 동전 바구니에도 근사한 추억과 이야기들이 쌓이고 넘칠 것 같다. 체코의 기운을 머금으면 내 삶이 조금은 멋스러워질 거란 기대 때문에 전 세계 여행자들이 사계절 내내 이곳을 찾아오는 게 아닐까?

프라하: 1000년 넘게 동시대와 호흡해온 고도

체코 여행의 시작점은 프라하의 중심 구(舊)시가지(Old Town).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값대로 중세 시대 건물들이 옛 모습대로 촘촘하고 빽빽하게 모인 멋스러움에 끌려 해 뜰 녘부터 몰려든 여행자들의 부산스러움으로 아침이 시작된다.

멀게는 400년 전, 가까이는 200년 전 지어져 세월을 버텨내고 지금도 패스트푸드점·명품점·호텔 등으로 쓰이며 동시대와 호흡하는 상점가 복판 광장. 14세기 종교개혁운동가 얀 후스의 동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사진촬영 명소이자 거리 악사들의 공연장이고 관광마차를 모는 백마들의 쉼터다.

빠른 시간에 많은 풍경을 담고 싶다면 광장 서쪽 시계탑으로 가자. 70m 전망대에 오르자 뾰족하고 시커먼 첨탑을 어깨에 인 육중한 틴 성당이 보인다. 그 뒤로 이어진 고딕·바로크 건물들의 붉고 검은 지붕들, 그 너머 블타바 강 건너 프라하 성채, 지금이 21세기임을 알려주는 TV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프라하성 안의 상점가 골목 ‘황금소로’. 마리오네트 인형 등 체코 특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프라하의 속살을 최대한 가까이 만져보고 싶으면 지도책을 덮고 아무 골목이나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인형가게, 환전소, 보석상, 공방, 자그마한 식당, 문신가게 등이 저마다 삶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북적이는 시가지를 뒤로하고 서쪽으로 10여분만 걸으면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카를교다. 난간 양옆에 세워진 30개의 가톨릭 성인상 중 14세기에 순교한 네포무크 성인상에 유독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몰린다.

그는 왕비의 외도를 알면서도 비밀을 지키다 왕의 노여움을 사 외도의 또 다른 목격자 개와 함께 살해당한 비극의 주인공. 동상 아래엔 성인과 개의 살해 장면을 그린 동판이 있다. 이 슬픈 얘기에 누군가가 낭만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개에게 손을 얹으면 프라하로 다시 오고, 성인에게 얹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것. 팔 걷고 줄 선 여행자들은 똑같은 표정이다. '안 이뤄지면 또 어때?'

카를교 건너 프라하 서편 언덕길 위엔 프라하성이 있다. 대개의 성이 과거와 단절되어 있다면, 이 성은 1000년 넘게 동시대 사람들과 호흡해온 삶터로 남아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걸 마리아 테레지아 시절 지어졌다는 대통령 집무실, 1300년대부터 60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돼 아직도 마무리 장식이 덜 끝난 100m 높이의 비투스 대성당 등은 성채의 일부이자 자체로 건축 명소다. 북동쪽 성벽을 따라 좁은 언덕길에는 '황금소로'라 불리는 작은 골목이 있다. 마법이 위용을 떨치던 중세엔 연금술사들의 집으로, 공산주의가 득세했을 땐 빈민가로,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뒤엔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기념품점으로 탈바꿈한 사연 많은 곳이다.

쿠트나 호라와 카를로비 바리: 역사의 운치

프라하 밖 보헤미아 평원으로 나서면 숨어 있던 또 다른 체코가 손짓한다. 체코 관광청 가이드 미하일(40)씨는 "늦가을·초겨울 정취와 어우러진 체코의 운치는 지금이 아니고선 느끼기 힘들다. 프라하는 그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카를로비 바리 시가지 전경. 강줄기와 고풍스러운 건물이 운치있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쿠트나 호라. 중세시대 은(銀) 생산지로 번영을 누리다 작은 마을로 쇠락한 이곳은 프라하처럼 동네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평화로운 유적지지만 슬프고, 끔찍하고, 기괴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가지 남서쪽 끝 성 바르바라 성당은 쿠트나 호라 여행의 시작점. 기독교를 믿지 않는 아버지에게 잔혹하게 살해된 바르바라 성녀를 위해 지은 성당엔 예수·마리아·성인들과 더불어 고된 노동에 지친 표정의 광부 상(像)이 있다. 성당 뒤 호젓하고 아담한 산책길에서 만나는 잿빛 벽에는 한 귀족이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진 가난한 청년을 못마땅히 여겨 벽에 묻어버렸다는 끔찍한 사연이 전해진다.

'힐링'이 필요하다면 프라하 서쪽 130㎞ 거리에 있는 카를로비 바리도 좋은 여행지다. 1300년대 카를 4세왕이 사냥에서 사슴을 쫓던 중 물에 빠져 우연히 온천을 발견한 이후 유럽에서 손꼽히는 온천 휴양지로 개발됐다. 저마다 탁월한 효과를 내세운 스파와 호텔·리조트들이 다양한 온천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도시 홈페이지(www.karlovy-vary.cz)에서 상세히 안내한다. 강줄기를 따라 20세기 초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늘어선 풍경을 보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행수첩

●대한항공이 매주 월·수·금·토요일 인천공항발 프라하 직항편을 운행한다. 동아시아와 체코를 바로 잇는 유일한 여객 노선이다. 프라하까지는 11시간 30분, 돌아올 때는 10시간 30분 걸린다.

체코관광청: www.czechtourism.kr (02)776-9837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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