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의 끝에서 - 모순적인 매력이 있는 '인도 바라나시'사진으로 보는 Varanasi는 매력적인 장소지만, 이상하게도 Varanasi에서 며칠 되지 않아 지쳐버렸다. 매일같이 들어와서, 아침저녁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관광객들과 마리화나를 팔려고 끈질기게 붙는 젊은 인도 애들, 인도의 여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인파로 북적대는 바라나시에서 잠시 방향성을 잃었다고나 할까?

매일 같은 광경 속에서 특별히 할 일을 찾지 못한 나는 3일째부터는 강가에서 멍하니 강을 바라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때로는 시체가 떠내려오는 것도 보고, 때로는 배를 빌려 저 멀리 강 건너편에 혼자 노를 저어 가볼까 생각도 해봤다. 여행하다가 한 곳에 며칠 있게 되면,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장소가 생기게 되고, 다른 곳보다 그곳에 자주 가게 되곤 하는데. Varanasi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지금은 그 Ghat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인적이 뜸했던 곳이었던 것만은 기억한다.

며칠 그 Ghat에서 앉아서 강을 쳐다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

처음 만난을 때 Babu,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하지도 않았지만, 연주를 선보여 주었다. ⓒ 이형수

 

빠뿌의 딸 무갈 ⓒ 이형수
그 사람도 나만큼 외로이 앉아서 강가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아들로 보이는 4~5살 된 아이가 여기저기 혼자서 뛰놀곤 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빠뿌(Babu),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에, 여태껏 내가 보지 못한 악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아쟁처럼 키는 현악기인데, 빠뿌 말로는 라자스탄 악기인 ‘라븐카’라 했다.
라자스탄이라면, 인도의 서쪽인데, 혹시 거기서 왔느냐고 하니, 라자스탄州 자이푸르 변두리 시골에 자기네 집이 있다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빠뿌와 빠뿌의 딸 무갈, 그리고 동네꼬마 ⓒ 이형수
사진 속에는 무슨 동화처럼 흐릿한 초점에 아리따운 아내 옆에, 전통복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빠뿌가 라븐카를 들고, 호수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아이들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랑스러운 가족을 두고 라자스탄을 왜 떠났느냐고 물어봤다.

그의 얘기인즉, 라자스탄에서 만난 서양 여행객이 있었는데,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다, 라자스탄 다음에는 바라나시로 갈 계획이니, 바라나시에서 다시 음악을 가르쳐달라고 했단다. 물론 교습비를 내고 말이다. 빠뿌에게는 그 교습비가 꽤 괜찮은 수입이었던 것 같다. 황당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 말을 믿고, 빠뿌는 바라나시로 왔고, 하지만 바라나시로 온지 2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전화도 없이 어떤 식으로 그를 만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 여행객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커 보였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한 주 전부터 시름시름 아파서, 돈벌이도 못하고, 낮 동안에 거의 Ghat에서 누워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근처 외국에서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가 있어서, 진통제류라도 조금 받아와서 먹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늘 혼자 놀아야 했던 무갈. ⓒ 이형수
하루는 지나가는 관광객 중에 독일에서 온 간호사가 있어서, 빠뿌를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의사를 만나보라”는 뻔한 이야기만 하고 횅하니 가버린다.
의사에게 가볼 만한 처지로 보이는지? 괜히 내가 화가 났었다.

빠뿌와 나는 거의 매일 만났고, 빠뿌의 딸(처음에는 아들인 줄만 알았다)인 무갈과도 금세 친해져, 무갈을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배도 태워주곤 했다.

아픈 모습의 Babu ⓒ 이형수
아버지인 빠뿌가 아프니, 무갈은 늘 혼자 놀아야 했고, 그것도 라자스탄 말이 바라나시에서 쓰는 말과 달라, 친구도 만들기 어려웠다. 매일 같은 옷에다, 아직 뒷 처리도 아버지가 주로 해주는데, 며칠이 지나니 옷에서 냄새도 나고, 씻겨주고 싶은 맘이 한결같았으나, 남의 딸을 내가 씻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가 아픈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무갈은 해맑게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빠뿌와 내가 짜이를 마시면, 어느새 금세 나타나서 자기 것도 시켜서 배달해온다.

빠뿌와 만나는 동안 만 31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빠뿌가 내 생일 축하곡을 직접 연주해주었다.

내 생일날 곡을 연주해준 Babu. ⓒ이형수

 

매일 몇 잔이고 마시던 설탕과 같던 짜이. ⓒ 이형수
빠뿌, 무갈과 며칠간 계속 지냈지만,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야 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었지만, 여행이 1년도 넘어간 시점에 이별과 만남은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고리같이 느껴졌다.

떠나기 전, 빠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도 뭐라도 한줌 쥐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늘 설탕이 반인 짜이로 배를 채우는 무갈이 안쓰러워 저녁이라도 같이 한끼 사서 먹이라고, 돈을 좀 쥐어줬다. 다음 날 아침에 물어보니,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협잡꾼한테 사모사(인도식 튀김만두)를 좀 사오라고 시켰는데, 그 길로 날라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을 같이 보곤 했는데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잘 못 먹는 무갈이 안타까워 무갈을 데리고, 근처 한국식당에 가서, 애들이 좋아하는 치킨가스를 사서 먹였더니, 너무 잘 먹었다. 한번은 돈 없는 빠뿌에게 비싼 치킨가스를 사달라고 할까봐, 그 집을 지나쳤더니, 온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어 재꼈다. 할 수 없이 또 사줘야만 했다.

떠나는 날 밤, 내 손에 장난감 헤나로 문양을 그리는 귀여운 무갈. ⓒ 이형수
마지막 떠나는 날 밤, 아쉬움을 달래며 밤늦게까지 이 부녀와 같이 있었다. 빠뿌의 몸도 그렇고, 그 서양여행객이 나타날 일도 없고, 홀로 노는 무갈을 위해서도 최선의 방법은 라자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라자스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라자스탄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빠뿌를 설득하였다. 그도 그러고 싶다고 동의를 한다. 이미 빠뿌가 돌아갈 차비가 없는 걸 알았기에, 빠뿌와 무갈이 서쪽 자이푸르까지 갈 수 있는 차비를 쥐어주며, 꼭 고향으로 가라고 한번 더 얘기해본다. 빠뿌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사실 후에 자이푸르에서 다시 만나자고, 빠뿌의 조카 핸드폰 번호를 받았었는데, 2주 후 자이푸르에 갔을 때 빠뿌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삼촌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바라나시의 밤, 가로등 불 아래 수많은 곤충과 모기떼가 날아다니고, 그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잠자리를 피는 그부녀를 두고 나는 그렇게 돌아서야 했다. 죄책감과 아쉬움, 무력함을 같이 느끼며. 언젠가는 빠뿌가 그의 고향 라자스탄으로 돌아가 그의 아내와 아이들과 사진 속 호숫가에 모여 앉아 라븐카를 키고 있을 것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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