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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까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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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예루살렘이 보이는 언덕 위에 서다

구름 아래로 비행기가 내려갔다. 크고 작은 살구색 주택들이 산을 수북이 덮은 채 지중해를 따라 이어졌다.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라는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 내려 900여년 전 십자군들이 걸어간 길을 더듬어 갔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십자군 이야기'가 길잡이를 맡았다.

레바논: 로마·이슬람·십자군 유적 공존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서 약 85㎞ 떨어진 트리폴리. 이곳에는 1105년 십자군의 레몽 백작이 기병 300명을 데리고 정복한 '트리폴리 성'이 있다. 트리폴리 성은 산등성이에 한가롭게 자리한 중세유럽 성과는 다르다. '수르'라고 불리는 재래시장과 시리아 난민촌이 머리를 맞댄 곳에 놓여 있다. 군데군데 갈라진 성벽 틈새마다 솟아난 들풀과 이끼가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레바논 시돈에 있는 바다성. 십자군은 이슬람에 맞서 수적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바다를 천연 해자로 이용한 바다성을 쌓았다. 900여년 세월 속에서 전쟁과 지진을 견디며 조금씩 무너져내린 바다성 너머로 레바논의 현대적 빌딩들이 보인다.

과거 이 성은 천연의 요새였다. 해발 750m 고지에 있고 옆으로는 강을 끼고 있다. 이중으로 된 성의 정문은 바깥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부수기 어렵도록 내외부의 방향이 다르게 나있고, 성벽은 이중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성 밑바닥에는 거대한 빗물 저장 탱크가 있었고, 4층 규모 성채에는 군사들의 숙소는 물론 창고, 마구간, 예배당까지 갖춰져 있다.

레몽은 이 성을 얻는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1년도 넘게 이곳을 함락시키기 위해 매달렸던 그는 강화조약에 서명한 직후 세상을 떠났다. 적군이 쏜 불화살에 불타오르던 본진에서 분투하다가 입은 화상이 악화된 것이다.

트리폴리에서 남쪽으로 40㎞를 내려오면 '페니키아 유적지'로 유명한 비블로스다. 그러나 그 페니키아 유적 위에는 로마, 이슬람, 십자군, 오스만투르크 등 다양한 유적이 층층이 내려앉아 있다.

유럽에서 성지 순례를 나선 이들이 예루살렘을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기쁨의 언덕’. ‘선지자 사무엘’의 가묘와 로마·십자군·이슬람 등 다양한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비블로스 성은 지진과 전쟁이 많았던 레바논의 다른 유적과 달리 내성(內城)이 그대로 남아있다. 벽에는 수백 년 전의 전투 당시 박힌 쇠공이 천연덕스럽게 녹슬어 가고 있다. 성벽에 올라 해안 쪽을 바라보면 기원전 10세기쯤부터 이어진 레바논 지역의 역사가 펼쳐진다. 해안가로 향하는 들판에 톱니바퀴모양으로 파진 길은 페니키아 시대의 유적이고, 군데군데 흩어진 돌기둥은 로마시대의 유적이라고 한다. 성 주변에는 레바논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으니, 고대와 중세, 현재가 공존하는 바로 그곳인 셈이다. 

비블로스를 지나 베이루트를 거친 뒤, 다시 차로 40㎞를 달리면 ‘시돈 바다성’에 닿는다. 레바논에 있는 십자군 유적은 해안가가 아니면 트리폴리처럼 높은 산지에 있다. 해안은 유럽 쪽에서 오는 해군의 지원을 받기에 유리하고, 산지는 적을 감시하고 방어전을 펼치기에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돈 바다성은 태양이 떠오르면 노란색 사암(沙岩) 성벽이 지중해 푸른 바다 속에서 환하게 빛난다. 거센 파도에 견딜 수 있도록 성벽 곳곳을 로마시대 화강암 기둥으로 보강했지만, 숱한 지진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절반 이상이 파괴됐다. 지금 형체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은 과거 유럽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십자군들이 내륙으로 가기 전 하룻밤을 묵었다는 방 정도다. 900년 전 십자군들이 천장에 난 구멍으로 별을 세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곳이다.

나무탑을 만들어 예루살렘 공격에 나선 십자군을 그린 판화. / 문학동네 제공

깔끔하게 단장된 유적지를 원하는 이들에게 레바논은 어쩌면 불친절한 나라다. 이곳은 유적이 세월 속에서 부서지면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진행 중인 트리폴리 성 복원도 최대한 원래의 성벽 벽돌 잔해를 원형대로 쌓아놓기만 하는 수준이다.

그 이유는 베이루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의회가 있는 베이루트 중심가는 1975~90년까지 이어진 내전 당시 폐허로 변했다. 내전 이후 레바논 정부는 총탄과 포탄의 파편으로 옹이가 생긴 건물들을 내부만 고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보기 좋게 만든다고 다 새로 지으면 우리 역사는 어디에 남느냐”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자들의 행렬

레바논 국경과 가까운 이스라엘의 도시 아코는 특이한 도시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거리를 활보한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은데 정작 국경 인근 아코에서는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듯하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안에 있는 예수 무덤. 연중 성지순례자들로 붐빈다.

아코는 살라딘을 중심으로 뭉친 이슬람이 12세기 후반부터 십자군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밀려난 십자군들과 병원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이 한동안 머물렀던 도시다. 이곳에는 십자군이 머물던 당시 사용된 기사의 방과 위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하수시설, 등대 자리 등이 남아 있다. 성벽 안쪽으로 미로처럼 난 재래시장 길을 돌아다니면 곳곳에서 십자군 요새, 수로 입구 등과 마주친다. 정돈된 유적지라기보다는 재래시장에서 파는 수산물의 비린내와 성의 축축한 이끼 냄새가 정겨운 그런 도시다.

아코를 지나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로마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항구로 활용됐던 가이사리아를 지나게 된다. 해안가에 축구장 크기의 로마시대 유적과 13세기 루이 9세가 십자군을 이끌고 와 증축했다는 5m 높이의 해자가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이사리아는 결혼을 앞둔 부부들이 웨딩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예비부부들이 해안가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위엄있게 솟은 로마시대 기둥과 중세 십자군 성채를 배경으로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이사리아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는 ‘나비 사무엘’이라는 언덕이 있다. ‘선지자 사무엘’이라는 뜻으로 사무엘의 가묘가 있는 곳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기쁨의 언덕’이다. 성지 예루살렘을 찾아 바다와 육지를 지나온 이들은 이곳에 올라야만 비로소 예루살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언덕을 두고 “1099년 6월 7일, 십자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이 멀리 보이는 지역에 이르렀다. 갑옷들의 금속음을 내며 제후들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치 교회에 들어선 것처럼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투구를 벗었다”라고 썼다. 십자군 시대 연병장을 뒤로하고 언덕에서 보면 예루살렘 시가지가 부서지는 봄 햇살 속에서 하얗게 빛난다.

‘사각형 탑의 꼭대기에서 한쪽 변이 소리를 내며 성벽 위로 떨어져 내렸다. … 병사들이 한데 뭉쳐 성벽 위로 우르르 들이닥쳤다. 그들 중 누군가가 성문을 열었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모두 열렸고, 그곳으로 십자군 병사들이, 아니 순례자들까지 예루살렘 시내로 밀어닥쳤다. … ‘성도 예루살렘 해방’은 1099년 7월 15일 드디어 성취되었다. 유럽을 뒤로한 지 3년의 세월이 지나 있었다.’(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1’ 중)

십자군을 따라간 여정은 예루살렘 구(舊)시가의 성묘교회에서 끝이 난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골고다 언덕과 묘지 위에 세워진 교회다. 1099년 7월 15일 예루살렘을 찾아온 십자군들이 감사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지금도 성지를 찾아온 순례자들의 엎드려 입을 맞추고 있다.

레바논 트리폴리 성 안에 있는 십자군들의 침실.

●여행수첩

◆레바논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UAE 아부다비나 두바이를 경유해 가는데 레바논까지 1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스라엘은 대한항공이 매주 화·목·토요일 인천공항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2시간 정도. 10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돌아오는 비행기도 화·목·토요일 뜬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서로 왕복할 수 없기 때문에 요르단을 거쳐야 한다. 이스라엘 입국 때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으면 UAE·사우디아라비아·레바논·시리아 등 일부 중동 국가에는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입국도장은 여권 대신 별도 종이에 받는 게 좋다.

◆‘팔라펠(falafel)’은 콩을 갈아 크로켓처럼 튀겨낸 중동의 대표적 음식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주머니빵에 양고기·채소 등과 함께 채워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레바논에서는 얇은 빵 속에 쌀과 아몬드, 완두콩, 옥수수 등을 넣고 쪄낸 ‘우지’도 맛이 좋다.

맥주 애호가라면 ‘알마자(Almaza)’와 ‘타이베(Taybeh)’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레바논 맥주 알마자는 담백하다. ‘타이베’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만들어서 해외에선 거의 맛볼 수 없는데,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레바논에선 레바논파운드(L£)와 미국 달러(1달러=1500L£)를 함께 쓸 수 있지만, 이스라엘·요르단에서는 호텔이나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현지 화폐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이 안식일이라서, 유대인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공공기관을 이용하기 어렵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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