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 요단 강, 죽음과 생명의 액체
 

바다
바다
1 뫼벤픽 리조트&스파 사해의프라이빗 비치. 머드를 두텁게 바르지않고 입수하면 상당한 강도의 쓰라림을경험한다.

팔라펠
팔라펠
2 현지 식재료를 최대한활용해 싱그러운 맛을 내는 마다바의한 레스토랑. 요르단에 머무는 동안먹었던 음식 중 단연 최고다. 팔라펠이특히 훌륭하다.

꽃
3 흐드러지게 핀꽃이 저무는 햇빛을 받아 한층 선명한색을 띈다.

“물은 싹을 눈뜨게 하고 샘을 넘치게 하는 탄생을 뜻한다.” 바슐라르가 쓴 <물의 꿈>의 일부다. 사해, 죽은바다에도 이 문장을 적용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도 아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는 고유명사일 뿐. 지형학적으로는 강우량이 적고 건조한 지방에 형성되는 짠물호수, 즉 ‘함수호’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다. 날은 뜨겁고, 물은 증발하고, 1리터당 275그램의 염분이 잔뜩 남아 지금의 상태가 됐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알려진 것과 다르게 어떤 특별한 미생물들은 이 척박한 조건에서도 생명력을 발휘하며 나름의 생태계를 꾸려간다. 몇 해 전, 바닥 어딘가에서는 지하수가 샘솟는 구멍도 발견됐다. 게다가 염도 높은 물이 지닌 마력은 많은 이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퀸알리아국제공항에 막 도착한 여행자들은 대개 표지판 ‘DEAD SEA’가 가리키는 쪽으로 냅다 달린다. 도로는 아래로, 계속 아래로 기운다. 지대가 해수면보다 400미터가량 낮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구상의 최저지대다. 사람들은 이 낮은 땅에서 나는 질 좋은 머드를 두껍게 바르고 유영하며 묵은 여독을 푼다. 기적적인 부력을 이용해 ‘시체놀이’하는 건 덤이다. 그렇게 한낮의 사해는 늘 북적북적하다. 요르단의 서민들이나 배낭여행객들은 공공 해수욕장을 찾지만, 부유하고 나이 지긋한 이들을 비롯해 한껏 안락과 여유를 즐기려는 향락객들은 대부분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를 애용한다. 365일 중에서 330일은 쨍쨍하다는 고운 볕 아래, 까르르 웃고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못내 ‘죽은 바다’라는 이름이 섭섭하게 느껴진다. 어느덧 그림자는 사라지고 ‘사해의 기적’ 놀이도 그만두는 시간, 멀리 이스라엘 땅으로 해가 넘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일몰은 어쩐지 더 아득하고 몽롱하게 느껴진다. 약동하는 지구의 맥박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이 일대는 구약성서의 주 무대다. ‘성지순례’라는 거창한 명목을 붙이지 않고도 이곳의 고대사를 따라가며 유적을훑는 일은 퍽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베다니Bethany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 교황청에서 공식 지정한 요르단의5대 성지 중 하나로 그 유명한 ‘요단 강Jordan R.’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요단 강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향하던 길이며, 신약에서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거행한 무대이자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성소다. 죄를 씻거나, 속세를 떠나 천국으로 건너가거나,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공간적 배경이자 상징으로성경에 자주 등장해왔다. 지리적으로는 레바논의 헤르몬 산에서 발원해 갈릴리 호수를 거쳐 팔레스타인, 사해까지흘러 들어간다. 사해가 죽음의 물이라면, 요단 강은 ‘이’와 ‘저’를 잇는 영험한 물이다.눈여겨봐야 할 것은 세례 터가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한편은 요르단, 반대편은 이스라엘 영토로 나뉜다는 사실.이쪽의 세례 터는 낡아빠진 목재로 얼기설기 지었는데, 저쪽의 세례 터는 흡사 신전의 위용을 갖췄다는 게 상당한아이러니다. 가이드 압둘라는 일행들의 머리에 물을 튕기면서 아랍어를 읊조렸다. ‘당신을 축복한다’는 뜻이란다.그는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적의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그와 마찬가지다.사해의 이웃 도시는 마다바Madaba다. 시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건 보랏빛 꽃망울을 한창 틔운 자카란다 나무다. 온화하고도 향기로운 첫인상. 자국 내에서는 부유한 기독교도들의 소도시이자 유럽 여행객들이 유독 즐겨 찾는 여정지, 그리고 비잔틴 제국과 우마이야 왕조 대에 남긴 모자이크 지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도시의랜드마크인 성 게오르그 성당 바닥 한가운데를 내려다보면 팔레스타인부터 나일 강 권역까지 그려낸 그림을 만난다. 기원전 6세기, 사해에서 요단 강으로 역류하는 물고기와 가젤을 겨누는 사막의 사자, 예리코의 종려나무까지 모자이크 조감도로 섬세하게 표현한 이 지도는 놀랍게도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약 3분의 1 정도를 보존하고 있다. 실컷 구경했다면 카페에 앉아 걸음을 쉬어갈 때. 향이 좋은 레몬민트는 요르단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음료로, 절인 레몬청에 민트잎을 잘게 빻아 넣어 만든다. 그 싱그럽고 달큼한 액체의 맛, 혀끝에 생생하다.


해변
해변

4 사해를 마주한 리조트의야외 수영장. 소금물에 입수하는 게두렵다면 이곳에서 유영하며 기분을내도 좋다. 물론 자유자재로 붕 뜨진못한다.
 
 

나귀
나귀

1 페트라에서의 평화로운 풍경.사실, 나귀를 타고 있는 이들은 대개능글맞은 호객꾼이다.
 

지프투어
지프투어

2 와디럼을달리는 지프 투어. 해가 저물기 2시간전에 떠나면 그림보다도 아름다운일몰을 마주할 수 있다.
 

캠프
캠프

3 캡틴스데저트 캠프의 아침 풍경. 오전에는예상 외로 햇살이 뜨겁지 않다.
 

아랍식 웰컴 티
아랍식 웰컴 티

4 와디럼의 기념품 노점에서 만난한 여인. 전통 수공예품을 가지런히정리하는 중이다. 5 지프 투어 중 들른한 천막 카페에서 달콤하고 따뜻한아랍식 웰컴 티를 마셨다.
 

와디럼의 노점상
와디럼의 노점상

4 와디럼의 기념품 노점에서 만난한 여인. 전통 수공예품을 가지런히정리하는 중이다. 


2페트라 & 와디럼, 모래바람이 이끄는 대로

데저트 하이웨이Desert Highway를 타고 남하한다. 가도 가도 낙타, 광야, 다시 낙타와 광야만으로 이뤄진 디오라마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하릴없이 사막 여행의 주제가를 꺼내 듣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이어진 사막 길, 아마 네가 있는 곳보다는 나은 곳이겠지.…” 제베타 스틸의 먹먹한 음성을 듣고 있자니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고, 종착지도 정해져 있으면서. 다만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이어진 사막길’이라는 표현만은 맞는지도 모른다. 이 길 끝에 이르면, 어디에도 없는 장밋빛 도시 페트라Petra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 황량한 사막을 당대의 첨단도시로 탈바꿈한 건 나바테안왕국의 빛나는 문명이다. 향료 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이들은 홍해와 지중해를 건너며 이곳을 거점 삼았다. 결국 기원전 6세기, 수도인 페트라를 이 자리에 건설했는데 이후 로마 제국이 왕국을 집어삼키면서도 개발을 계속이어갔던 것이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한동안은 대지진으로 흙 속에 묻혀 있었다가 19세기 들어서야 스위스 출신의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재발견됐고, 2007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올랐다. 그 사이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에 등장해 위용을 떨치기도 했다. 페트라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한 이들은 거대한 사원 알 카즈네Al Khasneh만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막상 가서 보면 입구부터 알 마드바흐, 왕실의 무덤, 목욕탕, 원형극장, 외곽의 알 데이라 사원까지 아우르는 광활한 규모를 지녔다. 아마 다 둘러보려면 꼬박 이틀은 족히 걸릴것이다. 낙타 위에 올라 편안하게 곳곳을 누비고 싶다면 기꺼이 호객에 응해도 좋지만, 헥헥거리면서도 협곡 통행로인 시크As-Siq를 따라 두 발을 놀리는 것이야말로 페트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여행법이다.유네스코의 활동가들이 우회로를 만들어놓고 시크의 일부를 재건하는 모습은 이곳에서 목도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데, 걷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만약 뙤약볕을 피해 쉬려거든 어느 건물에나 들어가면 그만이다.빌라든, 무덤이든, 사원이든, 어디나 곱디곱게 비어 있다. 잠자코 뒤통수를 누인 채 ‘텅 빈 자리’에 대해 생각한다.이곳의 빈자리는 공허감보다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의 상태다.다시 데저트 하이웨이다. 아래로, 좀 더 아래로 향한다. 유목민들의 땅, 와디럼Wadi Rum으로 간다. 이곳의 주인은베두인이다. 베두인이란 도시 바깥에 사는 이들을 지칭하는 아랍어 ‘바드우’에서 유래한 말로 사막에 사는 아랍계유목민을 뜻한다. ‘아랍’이라는 단어 자체가 베두인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흘러나왔다는 설도 있다. 와디럼의 한캠프에 여장을 푼 뒤 잘생긴 베두인 가이드 청년을 따라 지프 선셋 투어에 나섰다. “넌 언제부터 여기서 일했니?”앳된 얼굴을 보고 물었더니 “일한 적 없어. 여기 살 뿐이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두 사람의 대화는 직관적이고 집약적으로 흘러간다. 우문에 현답이란 이런 걸까. “배고파.” “차를 마시자.” 달고 향긋한 민트티를 쉼 없이 따라준다. 이곳에서의 민트 티란 수분과 당을 함께 보충해주는 약물이다. “맛있네. 어떻게 만들어?”“응, 립톤 티에 설탕을 녹이고 애플민트를 넣어.” 이렇게 단순하고 속세적인 레시피였다니, 웃음이 픽 새어 나온다.아라비아의 통일에 공을 세웠다던 그 유명한 영국 장교 ‘로렌스’가 살았다는 집, 나바테안들이 그린 암각화, 그리고온갖 기암괴석들을 다 둘러본 뒤에 지프가 마지막 당도한 곳은 해넘이를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탁 트인 절벽앞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한 자리씩 차지한다. 누군가는 셀피를 촬영하고, 누군가는 연인의 어깨에 볼을 비비며 해가 떨어지는 광경을 본다. 새빨간 하늘과 새빨간 땅이 로스코의 그림처럼 스며드는 순간, 긴장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마침 모래바람도 불어온다. 그리고 어느덧 밤. 광공해 없는 새카만 하늘엔 달이 해 노릇을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형형한 달빛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궤적이 훤히 보일 정도다. 다만 이 밤의 끝자락은 어디인지 보이질 않는다. 영원히 붙들고 싶었는데.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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