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에게, 실크로드 41] 악마의 눈의 정체는? - 터키 동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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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초대, 쿠르드 인을 만나다

빨간색 꽃무늬 스카프. 이란을 떠난 지 하루 만에 내 머리에는 다시 스카프가 둘러졌다. 두 번 다시 스카프는 안 쓸 거라고 다짐했는데. 애매한 표정이 되었지만, 내게 스카프를 씌운 여인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반 성채에서 만난 현지 가족들이다. 낯선 여행자의 방문으로 온 집안이 축제 분위기였다.

반 성채 인근은 치안이 나쁘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실제로 버스에서 내려 반 성채로 가는 길에 껄렁껄렁한 아이들이 보였다. 때마침 경찰차가 지나가기에 반 성채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경찰도 이 주변은 안전하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몇 번 주의를 줬다.

▲ 터키 반 성채 반성채 아래에는 공원이 있고 산 성채도 관광객이 많은 시간대는 안전하다. 단지 반성채 인근 도로나 공원반대편 공동묘지쪽에 껄렁한 동네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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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공원을 지나 반 성채에 올랐다. 바위산 위에 우뚝 서있는 이 성채는 기원전 9세기 우라루트 왕국이 세웠다. 가파른 돌산을 올라가면 오래된 흙 담과 성채가 나온다. 성채 꼭대기에서는 광활한 반호수가 보이고, 성벽 끝에는 반 호수를 비추기 위한 등대가 있다.

해가 떨어지며 반 호수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이다. 경치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하필 길목에 이 지역 청년 몇 명이 보인다. 나를 보더니 서로 웃으며 눈짓을 하는 모습에 내 직감이 강하게 외쳤다. '저쪽으로 가지 마!'

잠시 고민하는데 마침 한 무리의 현지 가족이 지나갔다. 얼른 친한 척을 했다. 그러다 이들과 친해져 집에 초대받았다. 노 할머니, 할머니, 아이들, 남자들, 여자들 총 12명의 대가족이었다. 30분이 지나자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어느새 가족이 되었다.

함께 요리를 준비하고 기도 시간에는 함께 팔, 다리, 머리를 씻고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밥을 먹을 때는 남자들은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쪼그려 앉아 먹었다.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부엌에선 여자들만의 잔치가 벌어졌다.

▲ 남의 집 부엌에서 일하는 중 빨간 스카프를 쓰고 함께 저녁밥을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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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숙소 주인에게 이들의 사진을 보여주자 숙소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쿠르드인 가족을 만났네." 그때야 이들이 쿠르드인임을 알았다. 아라랏산의 사람들, 쿠르드인들은 터키에 살고 있지만, 언급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아라랏산의 사람들

아라랏산은 5165m 중동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현지어로는 아으르 산이라고 부른다. 이란 국경을 넘으면 바로 보이는 설산이다. 이곳 사람들은 대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이 아라랏산에 방주의 닻을 내렸다고 믿고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세 민족이 있다.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

▲ 터키 국경에서 바라본 아라랏산 현지인어로는 '아으르산' 이다. 이들게겐 백두산이나 마찬가지인 성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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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터키 동부 지역은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이 이웃하여 살고 있었다. 실제로 반 호수의 악다미르섬에는 아르메니안 정교회가 있다. 배를 타고 섬에 가면 10세기에 지어진 교회를 볼 수 있다.

교회 내부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외벽에는 구약의 인물이 조각되어 있다. 섬에 살고 있는 타미르라는 소녀를 사랑하던 한 소년이 소녀의 아버지의 계략으로 물에 빠져 죽으며 '아~ 타미르'라고 외친 것이 이 섬 이름의 전설이다.

정교회를 믿는 아르메니아인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을 지지하며 오스만 제국의 미움을 사게 된다. 결국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국경 근처 아르메니아 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수십 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터키는 '내전'이었다고 주장하며 과거사를 부정하고, 아르메니아는 '학살'이라고 부르며 치를 떤다. 2015년, 올해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100주년이다.

▲ 아르메니안 정교회 반호수의 악다미르 섬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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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르메니아인이 사라지고 이 지역에 쿠르드인이 남았다. 쿠르드인은 중동의 집시라고 불린다. 전체인구는 3000여만 명, 터키 국가를 이루지 못한 최대 단일 민족이다. 지금은 이라크, 시리아, 이란, 터키 등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1923년 터키정부는 나라를 세우며 국가의 통합을 위해 쿠르드인을 억누르는 동화정책을 편다. 쿠르드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이들을 쿠르드인이라 부르지 않고 '동부터키인'이라 불렀다. 일제가 조선사람들을 '황국신민'이라 부르고 우리 말과 글을 지운 것과 마찬가지다.

터키 내부에서 이 문제는 아직도 민감하다. 한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오르한 파묵은 한 언론인터뷰에서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에 대해 언급했다가 터키에서 기소되고 살해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은 터키 내부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 다름으로 인해 늘 고통 받는 존재들이다.

반 지역에는 눈 색깔이 다른 고양이(오드아이)가 유명하다. 한쪽 눈은 황금색, 한쪽 눈은 파란색이다. 유전학적 돌연변이지만 오히려 그 특이함으로 사랑받는다. 이 지역에는 반 고양이연구소가 있어 실컷 고양이를 구경하고 또 만져볼 수도 있다. 모든 고양이가 눈 색깔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생후 90일 정도에 일부 고양이에게만 변이가 찾아온다고 한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사는 우리속에 들어가 눈 색깔이 다른 귀한 고양이를 찾아다녔다. '다름'으로 사람에게 사랑받는 고양이들. '다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 눈 색깔이 달라 사랑받는 반 고양이 사람들도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다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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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눈의 정체는?

옷을 갈아입고 돌아서려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처음엔 놀랐는데 이젠 익숙하다. 방문 앞에 걸린 액막이 부적, 나자르 본주다. 터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파란색의 눈알 모형이다. 작게는 팔찌로 만들어 차고 다니거나 핸드폰 장식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현관 앞이나 방문 앞엔 이렇게 얼굴 만한 크기로 크게 걸려있기도 하다.

▲ 터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악마의 눈 이슬람 신앙이라고 꺼려하시는 한국 기독교도분들도 만났는데 카파도키아의 옛 교회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걱정안하셔도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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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방 마다 걸려있었는지 저녁 먹으러 모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이게 '눈'이라고 생각하고 접하니 무섭다는 거다. 숙소 주인은 웃으며 설명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부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질투야."

악마의 시선으로터 자신을 보호하는 이 액막이 풍습는 지중해와 아시아에 널리 퍼져있다.사실 눈 모양은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악의 세력에 대한 보호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청색은 지중해 연안에서 보호의 색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 악령은 실제 악령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투의 시선이라고 한다. 누군가 가지고 있는 멋진 것을 보면 질투의 감정이 솟는데, 그 타인의 소유물을 응시하는 시선에서 악함이 피어난다는 거다. 그래서 터키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전할 때 악령을 ?기 위해 테이블을 탁탁 치거나, 귓불을 당기며 쪽 하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 히바 이찬칼라내 건물 일부러 덜 지어진 것 처럼 만들어 시샘하는 악마의 시선을 피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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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가 화를 불러일으키긴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것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종교에서는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탐욕으로 물들어 남의 것을 응시하는 눈길은 이 나자르 본주를 만나면 화들짝 놀랄 것이다.

이 곳에 모인 여행자들은 모두 넴루트 산 투어를 위해 모였다. 말라티아에서 출발해 3시간에 걸쳐 이 산 아래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넴루트 산 정산까지는 가파른 산길을 차를 타고 30분, 산 아래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 넴루트 산 서쪽 테라스 넴루트 투어는 저녁에 서쪽테라스에서 일몰을 보고 다음날 아침에 동쪽테라스에서 일출을 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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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루트 산엔 기원전 1세기 이 지역을 통치했던 콤마게네왕국의 안티오코스 1세의 능묘가 있다. 사실 유명한 것은 분묘보다 동쪽과 서쪽 테라스에 위치한 높이 7미터의 거대한 석회암 석상들이다. 석상의 주인공은 안티오코스 1세와 신들이다.

이 신들은 나라를 여신으로 표현한 콤마게네 여신 포르토나, 그리고 제우스와 아폴론, 헤라클레스 등과 같은 서방의 신과 페르시아의 신들이 섞인 '동서 혼혈' 신들이다. 그러고 보면 안티오쿠스 1세도 아버지는 다리우스의 후예이고 어머니는 알렉산드로의 후예라고 기록되어 있다.

▲ 넴루트산 동쪽 테라스 지진의 여파로 무너진 석상들. 신기하게도 석상들의 몸통은 무너지지 않고 머리만 '똑'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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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넴루트산 동쪽 테라스 일출과 함께 변하는 석상들을 볼 수 있다. 추우니 담요나 두꺼운 옷을 가져가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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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단한 석상들은 모두 지진의 여파로 목이 떨어져 아래에 놓여있다. 전체 석상이 무너지지 않고 목만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심각한 표정의 얼굴과 거대한 몸통이 따로 놓여있는 모습이 더욱 기괴하다. 저녁엔 서쪽 테라스에 올라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동쪽 테라스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왕은 자신이 죽으면 하늘에 갈 것이라 믿고 자신의 묘를 하늘 끝에 지었다. 수천 명의 인부가 이 거대한 돌을 나르다 죽었을 것이다. 진시황릉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지만, 옛사람들은 사후세계라는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너무 큰 투자를 한 듯하다. 우리야 덕분에 진기한 구경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왕이 하늘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왕의 무덤을 짓다가 죽은 수많은 일꾼들도 함께. 아마 그곳에서 그는 더이상 왕이 아닐 것이다.

필연의 건축물, 카파도키아

"사막엔 보물창고가 있어."

야즈드에서 50km 떨어진 사막도시 메이보드. 기온은 45도를 넘었지만 보물창고가 있다는 가이드의 꼬임에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그 곳은 원뿔형의 진흙 건물이었다. 건물 안에는 사다리가 놓여진 지하공간이 있고 원뿔의 꼭대기 구멍에선 한줄기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옛 페르시아 장인이 만든 얼음 창고였다.

▲ 이란 메이보드 시의 얼음 저장고 45도가 넘는 날에 얼음이라니. 보물창고로 불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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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막에서 사계절 시원한 얼음을 품고 있는 얼음 창고, 과연 사막의 보물창고라고 불릴 만 하다. 이 두꺼운 벽을 만들기 위해선 진흙과 모래, 염소털 그리고 달걀 흰자를 넣었다고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열사의 땅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런 건축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인간의 건물은 생존을 위한 활동의 결과물이다. 생존의 과정에서 인간은 주변 환경을 이용하거나 극복해왔다. 그래서 건축물에는 환경과 사회상이 새겨져있다. 때문에 모든 건축물은 필연의 건축물이다.

터키, 카파도키아. 300만 년 전 화산이 분화되며 형성된 이 지역에서 또 다른 필연의 건축물을 만났다. 깊이 55미터, 8층 규모의 지하도시 데린구유다.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층층이 거미줄처럼 공간이 분포되어 있다. 이 안에 우물, 교회, 학교, 가축우리, 포도주 저장소가 있었다.

▲ 지하도시 데린구유의 교회자리 일행을 잘 따라다니지 않으면 미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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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부터 고대 히타이트인이 이곳을 살기 시작해, 실크로드가 번성하던 시절 이곳은 교역의 중심지기도 했다. 이 지역을 차지하려는 쟁탈전은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이곳으로 숨어 전쟁을 피했다.

초기 기독교시대에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통로에는 둥근 돌문이 있는데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생존에 가장 최적화된 주거지, 이곳에선 지하도시였던 것이다.

▲ 벌룬위에서 본 괴레메 이곳엔 개구쟁이 스머프의 배경이 되었다는 파사바계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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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벌룬투어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괴레메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사고가 있을 수도 있으니 싸다고 아무 회사나 선택하기 보다 벌룬회사의 경험과 사고유무를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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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버섯 모양의 바위가 즐비하고 사람들은 이 바위를 파서 살았다. 화산재가 굳어 생긴 부드러운 바위가 지천인데 힘들게 나무를 베어 집을 지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동굴을 이용한 동굴숙소가 인기다.

집만 지었던 게 아니었다. 괴레매 야외박물관에서는 바위를 파서 만든 수도원과 교회를 볼 수 있다. 비잔틴시대에 만들어진 이 동굴교회 내부에는 예수와 사도의 모습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가득하다. 별도로 5리라를 내는 '어둠의 교회'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특별히 더 보존상태가 좋은 벽화를 볼 수 있다.

▲ 카파도키아 동굴교회 괴레메 야외박물관에서 비잔틴시대부터 이어온 동굴교회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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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교회에 서 있는데 그동안 지났던 석굴사원이 생각났다. 병령사, 막고굴, 키질석굴, 베제클리크 석굴 등 다양한 불교 석굴사원을 지나왔다. 석굴은 정복전쟁이 잦은 오아시스 지역에 있었다. 그리고 굴을 파기 좋은 사암절벽으로 되어 있었다. 화가들은 비싼 안료를 써 불국토를 그려냈다. 부자들은 돈을 내서 안전을 기원하는 석굴을 만들고, 사막을 건너야하는 대상들은 출발 전 이곳에 들러 무사를 기원했다.
이곳 카파도키아 역시 정복전쟁이 잦은 실크로드의 교차로였다. 그리고 경도가 낮은 사암과 응회암으로 되어 있다. 무른 재질의 바위를 파 석굴을 만들고 화가들은 신의 음성을 그려냈다. 시련이 있을 때 신앙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석굴사원과 석굴교회. 비록 종교는 다를지라도 필연의 건축물은 사람들의 소망을 품고 동서를 가로질러 존재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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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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