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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류블랴나 : 물빛 번지는 호수도 동화 속 풍경도, 지도 한 장으로 충분… 미니 나라에 미니 수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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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여기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Ljubljana)다. 섭씨 15도 오전 열 시. 광장 한편에 자리한 시장을 구경하고 있다. 청포도와 수박, 멜론, 당근, 고구마와 감자 사이를 걸으며 가끔 벌꿀을 시식한다. 좌판 가득 쌓여 있는 싱싱한 달걀들 앞에서는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발걸음은 작은 화병을 파는 어느 도자기 가게 앞에서 오랫동안 멈추기도 한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느리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조그마한 농담에도 웃음을 쏟아낸다. 류블랴나. 평화롭고 조용하고 여유로운 도시.

류블랴니차 강변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며 걸어놓은 자물쇠를 볼 수 있다.
류블랴니차 강변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며 걸어놓은 자물쇠를 볼 수 있다.

사랑스러운 도시 류블랴나

류블랴나. 발음하기 약간 까다로운 이 도시는 슬로베니아라는 나라의 수도다. 슬로베니아는 발칸 반도 북서부에 자리한 나라로 인구가 200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주인공은 "슬로베니아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는 온당치 못한 국제적 무관심이다"라는 황당한 유서를 쓰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슬로베니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수도 류블랴나 역시 인구라고 해봐야 30만이 채 되지 않는다. 미니 나라에 미니 수도다. 슬로베니아를 '미니어처 유럽'이라고도 하는데 알프스의 설산과 아드리아 해의 눈부신 햇살,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와 와이너리 등 유럽에서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류블랴나는 에모나(Emona)라는 로마 도시로 출발했다. 그런 까닭인지 도시 곳곳에 로마 시대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 이후 15세기에 합스부르크 왕조의 통치를 받았는데. 이때 흰색 교회와 저택이 많이 들어섰다. '화이트 류블랴나'라는 별명도 그때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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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 프레셰렌의 동상.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의 이름도 시인의 이름을 딴 프레셰렌 광장이다.

류블랴나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셰렌 광장이다. 프레셰렌은 강렬한 문장으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 그가 죽은 날인 2월 8일은 국경일이며 이날에는 전국적으로 그의 시를 읽는 낭송회와 콘서트, 연극 공연 등이 열린다고 하니 그에 대한 슬로베니아 국민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의 아득한 시선이 닿는 지점에 그가 평생 사랑했던 여인 율리아 프리미츠의 집이 있다. 평생 사랑했지만 신분의 차이로 함께할 수 없었던 그들을 위해 이렇게 동상을 배치했다고 한다.

광장 옆으로는 류블랴니차 강이 흐른다. 강을 따라 늘어선 바로크 양식과 아르누보 스타일 건축물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트리플교(Triple Bridge)와 만난다. 슬로베니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가 설계한 것으로 류블랴나 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류블랴나 거리를 걷다 보면 이 도시의 이름이 왜 류블랴나인지 이해가 간다. 슬로베니아어로 류블랴나는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류블랴나는 작은 도시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다녀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설사 길을 잃더라도 조금만 걸으면 지나갔던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거리에는 유독 젊은이가 많은데, 대부분 류블랴나 대학생이라고 한다.

류블랴나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류블랴나 성이다. 9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가 1511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17세기 초에 재건됐다. 류블랴나 성은 류블랴나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동안 요새, 감옥, 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각종 전시회와 이벤트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류블랴나 사람들이 결혼식장으로 가장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성에 오르면 장난감 도시 같은 류블랴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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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 섬으로 들어갈 때 타는 슬로베니아 전통 나룻배 ‘플레타나’. 작은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이지만 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한다.

동화 같은 풍경, 블레드 호수

알프스 산은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공유하는 산이다. 알프스 하면 스위스를 떠올리지만 사실 절반 이상을 오스트리아가 가지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지분을 갖고 있고 슬로베니아도 발을 걸치고 있다. 줄리안 알프스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북서부 산악지대다.

블레드 호수는 '줄리안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곳이다. 둘레 6㎞ 작은 호수이지만 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알프스 만년설이 녹아 흘러들어 만들어졌다.

흔한 비유지만, 호수가 보여주는 풍경은 정말이지 그림 같다. 푸른 물비늘을 일으키며 햇살을 반사하는 호수와 그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그리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 산맥은 방금 달력에서 오려낸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블레드 호수가 유명한 건 호수에 떠 있는 블레드 섬 때문이다. 이 자그마한 섬은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한 섬으로 전통 나룻배 '플레타나'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가다 보면 블레드 섬에 닿는다. 99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쁜 바로크식 교회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1000년도 더 된 교회다. 성당은 결혼식 장소로 애용되는데, 결혼식은 못 올려도 성당 내부 '행복의 종'을 울리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종을 울리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블레드 섬에는 종소리가 항상 울려 퍼진다.

호숫가 절벽 위에는 블레드 성이 자리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자리한 모습이 동화 속에나 나옴직하다. 마법에 걸려 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이 성은 800년 이상 남부 티롤의 주교가 앉던 의자가 있던 성당이었다.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족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호숫가에는 옛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인 티토가 사용했던 호숫가 별장 '호텔 빌라 블레드'가 있는데 김일성 북한 주석이 14일 동안이나 머물고 갔을 만큼 멋진 풍광과 아늑함을 자랑한다.

블레드 호숫가의 한 레스토랑에서 농어 요리와 화이트 와인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하늘은 찬란하고 호수는 오후의 햇살을 튕겨내며 반짝인다. 바람은 어디선가 불어와 나뭇가지를 유쾌하게 흔들어댄다. 이런 완벽한 날씨와 풍경 속에서 어떻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마음에 낙관과 사랑이 생겨나게 하는 것은 열렬함과 치열함이 아니라, 한낮의 따스한 햇볕과 한 줌의 시원한 바람 그리고 맛있는 음식 아닐까. 블레드 호수에서 가져본 생각이다.

■ 슬로베니아로 가는 직항은 없다. 독일의 뮌헨 공항을 거쳐 아드리아에어(www.adria.si)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저렴하다. 블레드는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 등 인근 국가에서 도착하고 출발하는 국제선 전용 기차역이 따로 있다. 자세한 정보는 유레일 홈페이지(www.EurailTravel.com/kr)를 참조하면 된다. 중부 유럽과 발칸 반도를 잇는 주요 열차편도 류블랴나를 거쳐 간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비자는 필요 없다. 통용되는 화폐는 유로화.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블레드의 그랜드 호텔 토플리체(www.hotel-toplice.com)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이 빼어나다. 류블랴나의 센트럴 호텔(www.centralhotel.si)은 기차역에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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