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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 인류사의 보물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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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의 도시…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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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의 면모는 현대 맨체스터의 풍경 속에도 도저하게 담겨 있다. 맨체스터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공 항공 샐퍼드 키와 미디어 시티./ⓒShutterstock_Gordon Bell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하면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도시인 맨체스터. TV 중계 화면으로 셀 수 없이 드나든 올드 트래퍼드는 버킷리스트 맨 위에 올라 있는 꿈의 구장이다. 축구가 이유가 되었든, 런던 너머의 영국이 궁금해서 찾게 되었든,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모두 기대와 상상 이상의 경험에 놀라게 된다. 축구는 맨체스터를 장식하는 영롱한 보석 중 단 하나일 뿐. 오랜 역사의 맨체스터는 여러 빛깔의 크고 작은 찬란한 보물을 품고 있다.



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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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가 있어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Shutterstock_Shahid Khan

어웰강과 작은 운하들이 흐르는,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Castlefield)는 맨체스터에서 가장 운치 있기로 이름난 곳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라면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하루를 오롯이 보낼 만하지만, 고맙게도 캐슬필드에는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산업박물관(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곳은 직물 산업으로 일찍이 부를 축적한 맨체스터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룬 이 도시의 업적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견고한 벽돌 건물에 자리한 박물관을 찾는 것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알 수 있다. 롤스로이스와 스피트파이어 항공기 엔진을 비롯해 맨체스터에서 발견·발명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250여 종의 물건과 기술을 산업 직군별로 분류해놓은 전시는 기술 발전과 맥을 같이하는 인류의 역사를 차근히 되돌아보게 한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곳은 맨체스터를 일명 ‘코트노폴리스(Cottonopolis, 면의 수도)’라 불리게 만든 면 산업에 헌정된 ‘텍스타일스 갤러리’. 낡고 불편해 보이는 기계들이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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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업박물관 내 '텍스타일스 갤러리'에서는 맨체스터를 '면의 수도'라고 불리게 한,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던 방적기를 볼 수 있다. /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 산업박물관

가상 항공기 조종 체험, 실내 스카이다이빙 등 정적이고 조용한 박물관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 짜릿한 체험도 마련되어 있으며, 4세 미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각 놀이를 통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은 몇 주 전에 예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맨체스터 시내에 위치한 새크빌 공원(Sackville Park)의 벤치에 앉아 있는 천재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공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의 동상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꿈을 꾸다

파리에 에펠탑이,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스케일 큰 맨체스터에는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가 있다. 이 도시의 상징이자 최고의 여행 명소인 올드 트래퍼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 팬들이 ‘OT’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7만5,000석 규모의 대형 스타디움. 수십 년간 맨유를 세계 축구의 정점에서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경의 동상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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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축구 박물관 내부 모습 /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신화적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

박지성 선수도, 퍼거슨 감독도 지금은 맨유를 떠나고 팀의 영광은 예전만 못하지만, 스타디움과 박물관 투어를 통해 명문 구단의 화려한 역사를 살펴보노라면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양손 가득 유니폼과 구단 굿즈를 들고 OT를 나서는 것만으로 성에 안 찬다면, 혹은 올드 트래퍼드에 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축구 문외한이라면 맨체스터 대성당 옆에 위치한 맨체스터 국립 축구박물관(The National Football Museum)으로 향하자. 무료로 운영하는 축구의 보고에서 방문자들은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이 스포츠의 규칙과 유산, 최고의 선수들과 감독들, 전술과 리그, 대륙 대회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직접 페널티 킥을 차보고 BBC 캐스터들의 생동감 넘치는 해설을 들어볼 수 있으며, 명장들의 노하우를 짚어보고 최고의 브랜드와 함께해온 축구용품의 변천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서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다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시티의 경기 일정을 확인하게 될 정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알차고 유니크한 전시관이다.

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명장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하며 EPL(English Premier League)의 최강자로 떠올라 군림 중인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를 연고지로 하는 맨유의 라이벌로, 맨체스터 시내를 가운데 놓고 올드 트래퍼드의 반대편에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두고 활약 중이다. 시즌 중 두세 번 맞붙는 이 두 팀의 ‘맨체스터 더비’는 열정 넘치는 맨체스터 사람들의 에너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축제. 운이 좋아 여행 중 더비를 볼 수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표를 구해보자. 수만 명이 “골!”을 외치며 열광하는 90분간의 아드레날린 파티에 참여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항구

맨체스터를 여행하는 날들 중 하루는 온전히 인공 항구 샐퍼드 키(Salford Quays)에서 보내자. 항구 한쪽에는 올드 트래퍼드와 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 North)이, 시내와 가까운 반대편에는 황홀한 부둣가 경관을 이루는 로우리 극장(The Lowry)과 비즈니스 센터인 미디어시티(MediaCityUK)가 있다.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란 화가 L. S. 로우리의 이름을 따고 2000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관한 로우리 극장과 BBC 등 여러 방송국이 밀집해 있어 한국의 상암동이 떠오르는 미디어시티와 함께 전쟁박물관은 항구 부근에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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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이 화가 로우리의 이름을 따서 개관한 로우리 극장.ⓒShutterstock_Alastair Wallace / 단순한 전쟁 소개가 아닌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해 더욱 무게감이 느껴지는 전쟁박물관

한국에도 몇몇 작품을 세워놓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전쟁박물관은 맨체스터 스카이라인의 큰 부분을 책임지는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다. 깨어져 조각난 지구본을 모티브로 한 전쟁박물관은 외관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엄과 무게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세계의 크고 작은 전쟁의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물론, 한국전쟁에 대한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박지성 선수만을 위한 응원가도 불러주었던 맨체스터 사람들은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분단국가 그 이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평화로운 결실을 맺은 나라로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맨체스터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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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

맨체스터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무료 공공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이 있다. 영화 <해리 포터> 속 도서관의 배경이기도 한 이 도서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저력을 짐작케 한다. 맨체스터의 미래가 밝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의 뒤를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연구 역량을 자랑하는 맨체스터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거쳐 간 맨체스터 대학에서는 오늘도 석학들이 도시의 영광을 재현하고 인류의 발전에 다시금 이바지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누가 훗날의 스티글리츠가 될지를 단박에 찾아낼 수는 없지만 대학교가 지닌 가치를 공적으로, 대중적으로 치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캠퍼스 안의 맨체스터 박물관을 찾아 짐작해볼 수는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제조업자 겸 수집가인 존 리 필립스(John Leigh Philips)의 컬렉션으로 시작된 이 박물관은 ‘2016~2026 10개년 프로젝트’를 통해 맨체스터를 영국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민주적인 도시로 만드는 시의 목표에 일조하고 있다. 연령과 성별 등 신분을 초월해 접근하는 지속 가능한 전시와 교육 과정 개발, 물리적인 제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시 주최 등을 추진 중이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2013년부터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 세계의 이목을 끌어온 이집트 오시리스상인데, 아직까지도 조각상이 회전하는 이유를 정확하게는 밝힐 수 없어 매일 큐레이터가 박물관 오픈과 함께 반 바퀴 돌아가 있는 오시리스상을 다시 앞으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심지 굳은 이 도시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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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민들이 사랑하는 피카디리 가든에서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Shutterstock_Moomusician
작년 봄,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맨체스터 아레나 콘서트 중 폭탄 테러 사건이 있었다. 22명이 숨지고 116명이 다친,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이후 최악의 영국 테러 사건으로 기록된 비극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 마지않는 맨체스터 시민들은 분노하고 슬퍼했다. 애도와 추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것이지만, 금세 다시 일어나 추모 공연을 열고 ISIS 테러 집단에 함께 대항하는 맨체스터 시민들을 향해 전 세계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세월의 풍파와 빠르고 느린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하며 성장해온 이 도시의 진정한 유산은 산재한 박물관과 스타디움, 학교와 건축물보다도 굳은 심지를 지닌 사람들, 그들의 영혼이 아닐까.

· 글 : 맹지나(여행 작가, 작사가. '이탈리아 카페 여행', '크리스마스 인 유럽', '그리스 블루스', '그 여름의 포지타노', '바르셀로나 홀리데이',  '프라하 홀리데이', '포르투갈 홀리데이' 등 다수의 유럽 관련 여행 서적의 저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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