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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에펠탑. 높이 324m, 무게 1만100t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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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에 높이 324m, 무게 1만100t에 육박하는 거대한 철탑이 등장했다. 석조 건축물이 지배하던 세계의 종말을 고하고 철로 대변되는 산업사회의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듯, 세계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뻗어나간 이 탑의 이름은 에펠(Eiffel). 프랑스의 저명한 엔지니어이자 이 탑을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었다.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료 기념물, 파리를 넘은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을 수식하는 문장들은 이다지도 화려하다. 그러나 에펠탑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에펠탑은 건축되기 이전부터 극심한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파리 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고풍스러운 파리 한복판에 흉물스러운 철골 구조물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했다. 1887년 2월 14일에는 일간지 '르 탕(Le temps)'에 작가 에밀 졸라, 작곡가 샤를 구노,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를 비롯한 46인의 예술인들이 서명한 에펠탑 반대 서한이 발표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대문호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에펠탑을 특히 혐오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에펠탑을 두고 '쓸데없는 괴물'이라 일컬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종종 에펠탑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곤 했는데,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에펠탑만이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에펠탑은 성공적으로 세워졌지만, 이후에도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패전을 직감한 히틀러는 당시 군정 장관이었던 디히트리 폰 콜티츠에게 "퇴각 전 파리의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곧 에펠탑을 비롯한 파리의 주요 건축물에는 폭약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파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던 콜티츠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후에 명령을 거역한 이유에 대해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수많은 논란과 역경을 딛고 오늘날의 에펠탑은 모두가 사랑하는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파리 시내에는 고층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는 탓에 파리 대부분의 장소에선 에펠탑이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센강 위에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탑 옆에도, 튀일리 정원의 뒤편에도,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에도, 개선문 저편에도. 파리의 모든 순간에는 그녀가 서 있다. 

에펠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유독 아름답게 기억되는 풍경 하나가 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 무심코 바라본 창 속에 에펠탑이 걸려 있었다. 푸르른 나무 사이로 태양보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 모습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다. 하루의 무게가 어떠했든 간에 에펠탑은 변함없이 그곳에 서 있다. 언제나 곁에서 당신을 위로하겠노라 속삭이며. 그러니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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