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는 보트 누들 골목이 있다. 전승기념탑으로 가달라는 말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차를 몰던 택시 기사는 보트 누들을 먹으러 간다고 하니 "아하!" 하며 입맛을 다셨다. 덕분에 골목 바로 앞에서 내렸다. 유명한 골목이었다.
국숫집 안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테이블마다 산처럼 쌓아 올린 국수 그릇이 진풍경이었다. 2인 테이블이 하나 남았길래 혼자 온 태국인 아주머니와 합석을 했다. 메뉴판의 그림을 보고 국수를 골랐다. 면의 굵기를 정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국수를 골고루 섞어 다섯 그릇 주문했다. 양이 적은 사람은 대여섯 그릇, 많이 먹는 사람은 열 그릇이 넘게 주문을 하는 모양이었다. 한 그릇에 12바트(약 500원)이니 부담 없는 가격이다. 국수에 얹어 먹는 튀김이 두 종류. 돼지고기 껍질 튀김과 만두피 튀김도 각각 12바트이다.
보트 누들 골목은 수로를 끼고 자리 잡았다. 수상 마을이 발달한 태국에서는 보트를 타고 오가며 빨리 먹을 수 있도록 적은 양의 국수를 팔았다고 했다. 국수 그릇이 내 손바닥만 하다.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호로록 입에 넣으면 바닥이 보일 정도. 먹방으로 유명한 대식가 연예인이라면 몇 그릇이나 먹으려나? 100그릇쯤은 우습게 먹겠다고 상상하면서 국수가 나오길 기다렸다.
굵고 가는 쌀국수 면에 갈색의 국물을 자작하게 부은 남똑 국수가 등장했다. 남똑은 돼지나 소의 피를 넣어 끓인 진하고 텁텁한 국물이다. 독특하고 강렬하다. 우리의 청국장 냄새가 누군가에겐 식욕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지만 누군가에겐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꾸리꾸리한' 냄새인 것처럼 남똑 국물의 진한 맛에도 호불호가 갈린다. 강한 향을 가진 다른 음식들처럼 처음엔 좀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국수를 한 젓가락 드시다 말고 만두피 튀김을 주문하더니, 튀김이 나오자마자 내 앞에 들이민다. 튀김을 넣어서 먹어보란다. 인심 좋게 웃으며 자꾸 권하는 통에 몇 조각 집어 국수에 얹었다. 바삭한 식감뿐만 아니라 기름의 향이 더해진다. 휘둥그레지게 뜬 눈과 과장된 손짓으로 감사함을 표현하니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국수를 다 먹었다고 식사가 끝난 게 아니다. 테이블마다 놓인 태국식 디저트 카놈투어이를 먹을 차례다. 쌀가루와 코코넛 밀크를 섞어서 쪄낸 간식이다. 속에 초록색을 띤 판단 소를 넣기도 한다. 푸딩처럼 달고 부드럽다. 진한 국물 맛을 순한 단맛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 남똑 국물과 카놈투어이를 실컷 맛보러 가고 싶다.
[배나영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