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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파도키아 : 지구 안의 또 다른 행성…행성 안의 또 다른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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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에서 본 카파도키아 풍경.

광대한 대지 위에 이리저리 흩뿌려진 온갖 모양의 바위 조각들, 파도처럼 일렁이는 오색 빛깔의 계곡. 카파도키아는 그 존재 자체로도 대단하다. 그러나 이곳이 더욱 특별해진 것은 별난 환경 속에서 삶의 터전을 꾸리고 역사를 새긴 사람들 덕분이다. 카파도키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혹독한 기후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사람들은 응회암으로 이뤄진 바위를 깎아 동굴 집을 짓고, 땅굴을 파내 터전을 마련했다. 이후 극심한 종교 박해와 외세의 탄압을 피해 수많은 기독교인이 중앙 아나톨리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바위 집과 지하 땅굴을 은신처로 삼아 뿌리를 내렸고, 박해 기간이 길어질수록 동굴 개수와 땅굴의 크기 또한 확장됐다. 지구 밖 행성 같은 기괴한 대지, 셀 수 없이 많은 동굴과 거대한 지하도시가 숨겨진 땅. 신비의 카파도키아는 그렇게 완성됐다.

개구쟁이 스머프들이 산다는 파샤바 계곡을 지나면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큰 석굴 복합 단지 중 한 곳인 젤베 야외 박물관(혹은 젤베 수도원)이 등장한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환경 자체가 박물관이 된 젤베 수도원은 9~13세기께 수도원 휴양지로 이용됐던 곳이다. 페르시아와 아랍의 종교 박해를 피해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곳에 모여 둥지를 틀었고, 마지막 주민이 이웃 마을 예니 젤브로 이주한 1952년까지 수백 년간 실거주지 역할을 해왔다. 3개 계곡에 걸쳐 넓게 형성된 젤베 수도원은 괴레메, 위르깁 등 석굴 거주촌과 달리 주변이 온통 녹음으로 가득한 것이 큰 특징이다. 동굴 내부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보존 상태나 화려함은 괴레메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광대한 계곡 사이를 거닐며 하늘 높이 솟은 요정 굴뚝 바위와 그 안에 촘촘히 들어앉은 주택, 방앗간, 사원 등을 살펴보는 재미는 훨씬 크다. 다른 주요 관광지에 비해 방문객이 현저히 적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환상적인 비경과 그곳에 조용히 새겨진 인간의 흔적들은 마치 먼 옛날 카파도키아를 보는 듯 거칠지만 순수하다.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땅에 솟아 오른 바위들뿐만이 아닌 대지 깊숙한 곳에도 터전을 꾸렸다. 이 흔적을 찾아 네브셰히르에 위치한 작은 마을, 데린쿠유로 향한다. 소박한 가옥들과 조악한 기념품이 대롱대롱 달린 낡은 상점, 붉은 체리가 가득 찬 좌판대와 능숙하게 손님을 호객하는 꼬마들. 우주적인 풍경으로 대변되는 카파도키아치고는 너무나도 지구 같은 풍경이다.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외딴 시골이지만, 이 마을 땅속에는 터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하도시가 숨겨져 있다.

데린쿠유는 터키어로 '깊은 우물'을 뜻한다. 그 이름처럼 데린쿠유 지하도시 깊이는 85m, 약 지하 8층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발굴된 공간이 이 정도 크기이고,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한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오토만 시대까지 피신처로 사용되다가 20세기 초반 기독교인들이 터키에서 추방되면서 완전히 버려졌다. 이후 1963년 마을의 한 주민이 자신의 집 담장 뒤에서 정체 모를 공간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데린쿠유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지하도시 통로는 성인 한 명이 허리를 완전히 구부려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낮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지하에 도달하면 상상치 못한 넓은 공간이 나타나고, 이는 거미줄처럼 얽힌 수백 개 방으로 어지럽게 이어진다. 공개된 지역은 극히 일부지만 설계가 워낙 복잡한 탓에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내부에는 학교, 교회, 공동주방, 포도주 제조 구역, 곡물 저장 창고, 가축 사육장은 물론 죽은 사람을 위한 무덤 등 공동체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환기 갱도 시스템과 비밀 통로, 적 침입에 대비해 거대한 바위로 출구를 자동 봉쇄하는 방어 시설 등도 마련돼 있다. 과거 데린쿠유 인구는 최대 2만~3만명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거대한 도시 하나가 땅속에 숨겨져 있던 셈이다.

비밀스러운 지하도시를 떠나 네브셰히르에서 서쪽으로 50㎞가량 떨어진 악사라이의 으흘라라 협곡으로 향한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계곡 같지만, 이곳 역시 종교 박해를 피해 동굴로 숨어든 기독교인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길이 약 14㎞에 달하는 협곡을 따라 5000여 개의 동굴 주택과 105개의 암굴 교회가 남겨져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투어를 따라 협곡의 주요 볼거리가 포진한 4㎞가량 구간을 걷는다. 계단을 따라 협곡 바닥으로 내려가면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는데, 산보 수준의 난이도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메렌디즈 강이 흐르는 골짜기 사이를 유유자적 거닐며 병풍처럼 펼쳐진 주상절리와 곳곳에 자리한 동굴 수도원들을 살펴본다. 풍경이 어찌나 싱그러운지 계곡 이름과 닮은 실없는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온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한 아가칼티 교회에서는 푸른빛과 강렬한 붉은빛이 아름답게 보존된 그리스도 승천 프레스코화도 볼 수 있다. 으흘라라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셀리메 수도원도 놓칠 수 없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 자리한 곳으로,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주한 성직자들의 거주지였다.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자리한 동굴로 들어선다. 자연이 만든 창밖으로 카파도키아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자연이 조각하고 사람이 채워나간 땅 카파도키아. 이 땅이 신비로운 이유는 드러난 아름다움보다 숨겨진 아름다움이 많아서가 아닐까.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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