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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 새하얀 지평선과 새파란 하늘, 그리고 천국 '남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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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방랑자가 뽑은 내 생애 최고의 길 '남극점'

우연한 기회에 일반인도 남극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동치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결국 떠났다. 온통 새하얀 얼음 땅을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신고 10여 일을 걸어 도착한 남극점. 간절한 마음을 다해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만난 세상 끝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평범하지만 가슴 뛰지 않았던 ‘일상 살아내기’에만 삶이 있지 않다는 가르침을 준 걸음들이자, 얼음 위 고독하지만 가장 나에게 가까이 간 여행이었다.

남극 걷기를 위해선 남극 대륙 내 패트리어트 힐 베이스캠프까지 항공기로 이동한 다음 다시 남위 89도까지 경비행기를 타고 가야한다.
레플 걷기 여행의 묘미, 무엇이 당신을 걷게 만들었나요?

김진아 걷기 여행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의 방식이다. 한 시간에 시속 4km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느리게 걸으며 온갖 세상의 사소하면서 소박한 풍경들과 사람들을 만난다. 평소에는 너무 빨라 쉽게 지나쳐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지 않은가. 그들의 삶의 방식에 잠시나마 나를 들여놓고 소통하는, 걷기 여행은 ‘느리게 소통하는 여행’이다. 생각해 보면 걷기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당시 좋아하던 사람이 산에서 걷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계속 걸어야겠다’라고 계기가 된 것은 남극 걷기 여행이다. 걸으면서 만나게 된 풍경들과 투박하지만 섬세한 자신만의 숨소리, 오롯이 느끼게 되는 두 발과 마음의 움직임들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걷고 있다.

남극의 여름 풍경
레플 이제껏 걸어본 코스 중 최고를 꼽는다면?

김진아 남극점,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 인도 라닥, 다즐링, 네팔 안나푸르나, 랑탕, 파키스탄 K2, 스페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중국 공가산, 쓰구냥산, 매리설산, 모로코 엠곤 등등. 최고의 걷기 경험을 한 곳을 묻는다면 당연히 남극이라고 답을 하겠지만, 몇 번을 가도 다시 걷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묻는다면 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이라고 대답하겠다.

(위에서부터) 1 세상의 끝, 남극점 도달 2 남극 걷기를 위해선 남극 대륙 내 패트리어트 힐 베이스캠프까지 항공기로 이동한 다음 다시 남위 89도까지 경비행기를 타고 가야한다.
레플 남극에서의 걷기 여행이라, 참 생소한데 그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 혹은 당신이 걸었던 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요?

김진아 남위 89도에서 시작해 남위 90도인 남극점까지 10여 일간 걷는 코스다. 우선 남극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까지 항공을 이용해야 하는데 미국을 경유해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곳에서 남극탐험여행사 ANI(Adventure Network International)가 운행하는 항공기를 타고 남극 대륙 내 패트리어트 힐이라는 베이스캠프에 내리게 된다.

남극점 걷기 여행을 시작하는 기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가 걷기 여행이 시작되는 남위 89도까지 트윈오터라 불리는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해 ‘세상의 끝’ 남극점에 도착하게 된다. 걷기를 마치고 남극점과 남극점에 위치한 아문젠-스콧 기지를 둘러보고 있으면 경비행기가 데리러 오고, 그것을 타고 지나온 길들을 날아 패트리어트 힐로 돌아온다. 베이스캠프에서 맛있는 음식들과 날마다 스키와 가벼운 걷기를 즐기며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려 칠레로 향하는 큰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고,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로 돌아오면 비로소 남극 여행의 막이 내린다.

칠레와 남극을 오가는 항공 이동 시간과 기상 대기로 인한 시간까지 모두 더한다면 여행기간은 20일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항공의 이동 가능 여부는 기상 환경에 달려 있기 때문. 나는 기상 대기 시간이 길어서 25일 정도가 소요되었다.

태양 주위로 생기는 둥근 달무리
레플 남극에서 꼭 즐겨야 할 것과 느껴야 할 것, 그리고 가져와야 할 것이 있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즐기고, 느끼고, 가져왔나요?

김진아 걷는 여행은 오롯이 혼자서 스스로 해내야 하는 여행이다. 걷는 동안에 투명한 자기 자신을 꼭 만나길 바란다. 그리고 열심히 걷는 도중 문득 고개 들어 설원의 지평선 위 하늘을 바라봤을 때 태양 주위로 동그랗게 생기는 둥근 무지개, 햇무리를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생경한 감동은 처음이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 돌아도 온통 눈과 얼음뿐인 남극만이 가진 자연환경에도 푹 빠져보길 바란다. 가져올 것이란 그런 벅찬 풍경들과 그 속에서 열심히 걷던 스스로의 용기뿐 인 것 같다.

너무 추워 남극 대륙 안에는 살아 있는 생물체가 없다고 한다. 식물도, 동물도 심지어는 감기바이러스도 살기가 힘들다고. 사람 말고는 생명체가 없지만 순백의 얼음 땅 그것만으로 새하얀 천국이었다. 남극 그 자체를 즐겼다. 그러니 스스로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서른이라는 막막하고도 두려운 시간을 앞두고 떠난 여행이었다. 특별히 산을 열심히 다닌 것도 아니고, 해외 고산 경험이 거의 없던 터라 주위의 반대도 엄청났다. 그런데도 무모한 용기였는지 이상하게도 남극에 끌렸다. 일반인이 남극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추위와 동상으로 고생을 조금 했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걷는 여행자’로 새로 태어나게 해준 계기가 바로 남극 여행이었다.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던 남극점이 나에게는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이었으니까. 남극에서 ‘진정한 나’를 만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의미 깊은 걸음들이었다.

매일 걷기를 끝내고 보금자리용 텐트를 친다.
레플 남극 걷기에서 주의해야 할 유의사항을 귀띔한다면?

김진아 남극을 걸을 수 있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남극의 여름에 해당하는 12월부터 1월까지만 걷기가 가능하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기온이 영하 20도에서 40도까지 내려간다. 하루 종일 해가 떠 있기 때문에 날씨만 맑다면 기온계의 온도와 다르게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동상은 반드시 조심해야 할 문제다. 나 역시 그랬다. 날마다 걷기를 끝내고 텐트를 치는데 거치적거려 아주 잠시 겉장갑을 벗었다가 손가락이 퉁퉁 붓고 살이 검게 죽는 동상에 걸리고 말았다. 다행히 손가락 첫 번째 마디에서 멈췄고, 여행의 막바지에 걸려 걷는데도 크게 지장을 받지 않았지만 사전에 미리 조심하는 것이 좋다. 추위에 장시간 피부를 노출시키는 일은 반드시 방지해야 한다.

1,2 남극 대륙을 함께 걸었던 동료들 3 제자리에서 빙 둘아도 온통 눈과 얼음뿐인 남극. 그런 벅찬 풍경 속을 크로스컨트리를 타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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