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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 깃털 하나도 손대지 말고 멋진 추억만 가져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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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들의 낙원이 따로 없었다. 남위 62도 20분, 바리엔토스(Barrientos)섬. 남극 반도 서쪽 남셔틀랜드군도(South Shetland Islands) 복판의 작은 섬에 수천 마리 펭귄들이 바글거렸다. 부리에 주홍빛이 선명한 녀석은 '남극의 신사' 젠투(gentoo) 펭귄. 머리와 등의 검정털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따사로운 초여름 햇살에 배와 눈 주변의 새하얀 털이 눈부시게 빛났다.

살아 있는 자연 생태관이 따로 없었다. 구애(求愛)하고 영역을 주장하는 펭귄들의 외침이 해변에 가득했다.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세워 "꾸루루루" 선창하면 주변의 펭귄 수백 마리가 덩달아 울어댔다. 눈이 녹아 푸르스름한 이끼가 낀 해변부터 두꺼운 눈에 덮인 산꼭대기까지 펭귄 수백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둥지를 틀고 있었다. 수산시장을 찾은 듯 펭귄들의 비릿한 배설물 냄새가 주변에 가득했다. 펭귄들의 먹이는 바다에 지천인 크릴새우. 배설물 색깔도 진한 분홍빛이었다.

조류 전문가 수잔(Susan)을 따라 본격적인 생태 탐험이 시작됐다. 원칙은 단 하나, '펭귄 퍼스트'였다. 이곳의 주인은 펭귄인 만큼 그들의 움직임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동은 반드시 단 한 줄(in a row)로 해 주세요. 펭귄들과 거리는 최소한 5m를 유지해야 합니다. 펭귄이 다가오면 조용히 뒤로 물러나면 됩니다. 사진 촬영은 괜찮지만 플래시 사용은 절대 불가! 펭귄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한 줄로 이어진 행렬은 걷다 서다를 반복했다. 날개를 바짝 뒤로 젖히고 뒤뚱거리며 나타난 펭귄들이 저만치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방인들의 출현에 깜짝 놀랐는지 썰매 타듯 정신없이 눈 위를 내달리는 녀석도 있었다.

“이크, 어서 가자고.”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화들짝 놀란 펭귄 두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눈길을 달리고 있다.
바리엔토스섬 해변은 번식기를 맞아 수컷 펭귄들이 목청껏 내지르는 구애의 울음소리로 떠들썩했다.
바다 위를 멋지게 활공하는 완더링 알바트로스.
섬 뒤쪽 해변으로 이동했다. "저쪽!" 수잔이 가리킨 곳에 1t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수컷 코끼리물범(elephant seal)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도 냉혹한 생존 법칙은 존재했다. 바위 틈 곳곳에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완더링 앨버트로스(Wandering Albatross)의 먹잇감이 된 펭귄들의 뼈대가 보였다. 해변에는 직경 1m가 넘는 고래의 허리뼈가 버려져 있었다.

또 다른 펭귄을 찾아 남위 65도 10분, 페터만(Petermann)섬까지 내려갔다. 1873년 독일 포경선원들이 발견해 자국(自國) 지리학자인 아우구스트 페터만의 이름을 붙인 곳. 고무보트 조디악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는 파도를 뚫고 해변에 도착했다. 바늘 끝같이 날카로운 진눈깨비가 얼굴을 찔렀다. 턱에 검은색 줄이 선명한 친스트랩(Chinstrap) 펭귄들이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부터 거칠게 깎인 해발 135m 산 정상까지 깨알같이 박혀 있었다. 거센 눈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에서 작은 돌멩이를 물어와 산 정상에 둥지를 쌓는 수컷의 부성애가 눈물겹다.

남극 대륙 서안(西岸) 겔라체(Gelache) 해협을 지날 때는 갑판에 나와야 한다. 운이 좋으면 오르카(Orca)라 불리는 범고래(Killer Whale)의 유영(游泳)을 관찰할 수 있다. '우웅~'하는 낮은 진동음에 이어 수면 위로 뿜어내는 하얀 물기둥. 탄성이 절로 터진다. 수백 마리 펭귄들이 수면 위아래를 넘나들며 무리지어 헤엄치는 모습도 놓칠 수 없는 장관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을 오가는 동안 우슈아이아호(號)에서는 생태 강의가 계속됐다. 가슴팍이 붉은 황제펭귄, 머리에 붉은 왕관을 두른 마카로니펭귄, 머리가 온통 까만 아델리(Adelie)펭귄 등 갖가지 다른 펭귄의 모양과 특성을 쉽게 배울 수 있다. 바닷새의 생태, 남극의 지질, 남극 대륙을 횡단한 어니스트 섀클턴(Shackleton)의 모험 등에 대해서도 실감 나는 강의가 이어진다.

수십 차례 남극을 다녀왔다는 조류 전문가 수잔의 당부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무엇 하나 가져가지 않기로 약속해요. 돌멩이나 새의 깃털, 동물의 작은 뼛조각 하나도 손대지 않기로. 참, 아름다운 추억과 멋진 사진은 괜찮아요."


남극만 보고 오기 아쉽다면? '파타고니아' 트레킹 코스 추천

남극. 어렵게 간 여행길이다. 한국에서 하늘길, 바닷길로 오가는 여정을 감안하면 남극만 둘러보고 돌아오기엔 뭔가 아쉽다. 시간,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남극 크루즈에 남미 대륙 최남단의 파타고니아(Patagonia) 트레킹을 결합한 23박24일 일정이 있다. 눈이 시릴 듯 빛나는 남극의 빙산, 거기에 '남미 대륙의 숨겨진 보석'으로 불리는 파타고니아의 자연과 산군(山群)을 체험하는 코스다.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를 출발해 남극 반도와 남극 대륙을 돌아본 뒤 한국으로 떠나는 대신 칠레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로 발길을 돌린다. 트레킹의 시작은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빙하 침식을 받아 이뤄진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를 바라보며 걷는 코스다. 표면이 거친 빙퇴석을 밟는 맛이 일품이다. 시시각각 색깔이 달라지는 프렌치 계곡, 터키석 빛깔의 물빛으로 유명한 페호 호수도 놓쳐선 안 된다. 독특한 전통 음식을 제공하는 산장의 식사도 잊지 못할 경험이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명물인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 빙하를 찾아 떠나는 데이 투어도 있다. 알싸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눈이 시릴 듯 아름다운 대자연 속을 두 발로 걷는 느낌을 어디서 비길 수 있을까. 배낭여행 및 오지 전문 여행사인 신발끈여행사(www.shoestring.kr ·02-333-4151)에서 항공권과 크루즈+트레킹 예약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23박24일 상품가격이 1349만원.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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