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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고래 사냥 - 그들은 오늘의 생존만을 위해 고래를 사냥할 뿐 더 많은 고래를 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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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 어느 물고기보다 깊은 심해를 헤엄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물 위로 나와 ‘신화처럼’ 숨을 쉴 수밖에 없는 신비의 포유류, 그런데 이 고래들 중에서도 유독 신화적인 부류가 있으니 그게 바로 그린란드의 일각고래다.

일각고래 사냥을 떠나며 방향을 지시하는 사냥꾼 마마우트

일각고래는 이름처럼 기다란 외뿔(사실은 이빨이다)이 나 있어 전설의 동물인 유니콘에 빗대어 ‘바다의 유니콘’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희귀종에 속하는 일각고래는 북위 70도 위에서만 살아간다고 하는데 주로 북 그린란드의 까낙이 대표적인 서식지이다. 그래서 까낙의 원주민들은 대대로 일각고래를 사냥하며 살아왔다.

우리가 까낙에 온 첫 번째 목적은 물론 탐험대를 픽업하기 위해서였지만, 촬영팀의 가장 중요한 스케줄 목록에는 ‘일각고래 사냥’이 적혀 있었다. 북극의 자연과 신비를 상징하는 동물이 바로 일각고래이고, 세계의 여러 다큐멘터리 제작팀들이 촬영을 시도해왔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다행히 까낙 최고의 사냥꾼들과 친구가 되는 바람에 우리는 두 척의 배를 빌려 일각고래 사냥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냥꾼 기디언의 가족

함께 사냥을 떠난 삐치(9살)와 한시네(5살)

나는 기디언과 그의 열네 살짜리 아들 하시무스와 함께 한 배를 탔고, 촬영팀은 마마우트 가족과 다른 배를 탔다. 주변은 피오르드 안쪽이라 온통 하얀 협곡과 만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계곡마다 얼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행은 약 1시간가량 배를 타고 나가 빙산에 닻을 내리고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 무엇을 왜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열 마리도 넘는 물개들이 물 위로 고개를 쏙쏙 내밀곤 했다. 일루리사트였다면 벌써 총소리가 수없이 울려 퍼졌을 텐데 이 프로페셔널 고래 사냥꾼들은 물개 따위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충 아무 데나 총을 쏘아 물개 녀석들을 내쫓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다시 배가 움직였다. 그렇게 또 한 시간가량 정탐을 하다가 마침내 일각고래를 발견했다. 발견 즉시 기디언과 마마우트는 배의 시동을 껐다. 사방이 적막해지자 고래가 숨 쉬며 이동하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기디언이 먼저 곰털 가죽장화로 갈아 신더니 조심스럽게 카약을 내렸다. 그리고는 우나(창)의 손잡이를 점검하고 아바딱(물개 가죽으로 만든 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는 아주 민첩하게, 그러나 유령처럼 소리 없이 고래 쪽으로 카약을 저어갔다. 고래와의 거리는 약 5km, 어느새 그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갔다. 마마우트도 다른 고래를 찾아 기디언과 반대 방향으로 카약을 젓기 시작했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두 사냥꾼의 소식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 기디언이 먼저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실패했음을 알렸다. 때마침 마마우트로부터 무전이 왔다.

“길라루왁(일각고래), 명중이다!”

우리는 재빨리 배를 몰아 그곳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기디언은 민첩하게 카약을 내리더니 일각고래 등에 두 번째 창을 꽂았다. 역시 명중이었다. 우리는 ‘와아!’하고 함성을 질렀다. 고래는 창과 연결된 두 개의 아바딱을 달고 물속으로 달아나야 한다. 하지만 농구공보다 훨씬 큰 아바딱 두 개를 끌고 잠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오는 횟수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노련한 두 사냥꾼들은 가쁜 숨을 토해내며 올라오는 일각고래의 등에 또 하나의 창과 사냥총 두 방을 쏘았다. 바다 위에 붉은 피가 번지고 일각고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일각고래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지만 다시 사냥꾼들의 몸과 마음속으로 이어져 다시 그들과 함께 여전히 북극의 얼음과 바다를 누비게 될 것이다.

사냥총과 아바딱(물개가죽으로 만든 부표)

북극바다에서의 생을 마감한 일각고래

일각고래 사냥

굉장히 큰 고래였다. 뿔의 길이만 180cm에 몸집은 황소 두 마리 정도의 크기였다. 기디언과 마마우트는 고래의 몸에 칼자국을 내어 끈으로 묶은 다음 배에 연결하고 부표를 달아 근처 육지로 가져갔다. 해체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배에 탄 가족들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셨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린란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딱(고래껍질)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육지에 내리자마자 마마우트의 아내가 일각고래 옆구리 부분을 큼직하게 잘라서 가져오더니 ‘마딱!’이라고 소리쳤다. 고래 해체작업에 앞서 가족들이 먼저 시식을 하는 것이 원래의 풍습인 양 너도나도 칼을 들고 모여들어 마딱을 잘라먹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도 제각기 마딱을 한입씩 물고 제법 능숙하게 칼로 베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누군가 내 입에도 마딱 한 조각을 넣어주었다. 아, 이럴 수가! 질긴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한 그 맛! 정말이지 참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한쪽에서는 마마우트와 사냥꾼들이 고래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갈라낸 위장에서는 새우들과 꼴뚜기 같은 작은 먹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각고래는 덩치에 맞지 않게 입이 작아서 먹이도 이렇게 작은 모양이다. 가장 귀한 부위인 마딱은 사각으로 잘라내어 따로 모아두고 고기와 염통, 내장은 들기 적당한 크기로 분리해서 배에 실었다. 커다란 몸집만큼 고기와 마딱의 양도 1톤이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어른 셋이 달라붙어 4시간 이상 땀을 흘린 후에서야 해체 작업은 모두 끝났다.

해체를 위해 육지로 끌어올려지는 일각고래

약 4시간 뒤 해체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공들여 해체 작업을 마친 다음 일행은 야영지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배에 올랐다. 그런데 가는 길에 또 한 마리의 일각고래를 발견했다. 하루에 두 마리의 고래를 만나다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다. 연장자인 마마우트가 이번엔 동생 기디언에게 기회를 주었다. 기디언은 조심스럽게 카약을 내려 고래를 향해 나아갔다. 우리는 배 위에서 숨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고래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 일행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기디언의 창이 명중했소.” 마마우트가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곧장 배를 몰아 기디언이 있은 곳으로 향했다. 기디언이 카약 위에 소리쳤다.

“명중했는데 워낙 큰 놈이라서 아바딱을 끌고 들어가 버렸어!” 두 개의 부표를 끌고 잠수하다니 정말 대단한 녀석이 잡힌 모양이다.

마마우트도 카약을 내리더니 창을 들고 주위를 감시했다. 약 15분 뒤 부표가 먼저 물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마마우트가 창을 날렸다. 명중이었다. 정말 엄청난 사냥꾼들이다. 두 번째로 잡은 일각고래는 처음 잡은 것보다 훨씬 크고 뿔도 길었다. 마마우트와 기디언이 우릴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소리쳤다.

“당신들 덕분에 오늘 횡재했소!”

까낙의 사냥꾼들이 여름 한철 시즌 동안 잡는 일각고래의 양은 아무리 많아야 열 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일주일, 열흘을 기다리며 바다를 헤매도 허탕 치고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그런데 오늘 사냥에 나선지 10시간 만에 대형 일각고래 두 마리를 잡은 것이다.

두 번째로 잡은 일각고래를 인근 야영지로 옮기고 있다.

자연을 닮은 이누이트 사냥꾼들의 삶

야영지로 향하는 배 위에서 촬영팀 스태프가 ‘일각고래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농담처럼 내게 물었다. 나는 죽은 채 배에 묶여 있는 일각고래를 한참 바라봤다. 문득 고래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누이트 사냥꾼들이 창과 총으로 저 고래를 잡았을 지라도 그것 역시 자연 속에서 생존해가는 이들만의 방식이며 또한 자연의 일부분인 까닭에 고래의 죽음은 결국 자연사인 것이다. 사실 북 그린란드에서 사냥꾼들에게 잡혀 죽는 일각고래는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일각고래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특정한 시기에 피오르드 안쪽으로 모여든다. 그럼 빙산이 서서히 조여 들어 고래들을 가두게 되고, 결국 3천여 마리의 일각고래들이 그 안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다고 한다. 거스를 수 없는 그들의 거대한 자연사 속에 사냥꾼들의 사냥이 미미하게나마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어느덧 배가 야영지에 도착했다. 일행은 잡은 일각고래를 배 위에 묶어놓고 다 함께 야영을 준비했다. 우선 돌을 평평하게 깔고 그 위에 모래를 덮은 뒤 텐트를 쳤다. 이것이 바로 그린란드식 텐트인 ‘뚝박’이었다. 풀이 자라지 않는 자갈 위의 텐트, 그리고 저 멀리 눈 덮인 섬들과 피오르드, 바다와 빙산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해안에는 두 척의 배와 오늘 잡은 일각고래가 보인다. 그 신비로운 풍경 앞에서 우리는 마딱과 고래 염통을 삶아 생애 최고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다들 피곤했던지 밥을 먹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백야의 하늘 아래 일각고래 사냥꾼 가족들과 나란히 누워 북극의 별을 바라본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일깨워주려는 듯 잔잔한 파도소리가 늦도록 귓전에서 살랑거린다. 뚝박 안에서는 사냥꾼의 아내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뜻을 알 수 없는 그린란드 말이 파도소리에 섞여 태고의 자장가처럼 아득하게 들려온다.

평화롭고 고요한 뚝박(그린란드식 텐트)에서의 하룻밤

다음 날 아침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해안에 배를 대자마자 개 짖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벌써 냄새를 맡았군.” 마마우트가 웃으며 말했다. 일각고래는 뿔이 가장 귀하고 그 다음은 마딱이다. 그런데 고기는 어느 정도 먹을 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들에게 준단다. 놀랍다. 우리나라로 치면 최고급 한우를 개들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한우보다 훨씬 더 귀하고 맛있는 일각고래 고기를 ‘개에게나 줘’버리다니!

“어쩔 수 없소.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적어서 어차피 판매할 수도 없소.”

어째서 창고를 더 많이 짓지 않는 걸까? 대형 냉동 창고를 지어서 오래오래 보관하면 안 되나? 그러나 그건 문명세계의 상업주의에 찌든 나의 생각에 불과했다. 까낙의 전통적인 사냥꾼들은 오래 전부터 오늘의 먹을거리를 위해 사냥을 했고 내일은 내일 몫의 사냥만이 있을 뿐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잡아 저장하거나 도시에 내다 팔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해체 후 잘려진 일각고래의 꼬리지느러미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꼬리지느러미 뼈

고래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귀한 양식이다. 어제 잡은 두 마리의 일각고래로 두 사냥꾼 가족은 모처럼 배불리 먹었고 그들의 이웃들도 마딱을 얻었다. 껍질과 고기와 내장을 모두 먹고 뼈만 남게 되면 그것으로 생필품 도구와 세공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고래 기름으로 불을 밝히기도 했다.

까낙이란 땅 끝 마을, 이누이트 전통 사냥꾼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일각고래 사냥, 이 모든 순간순간들 역시 내게는 버릴 게 하나도 소중한 체험이었다. 북극의 ‘자연’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도 거룩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마르지 않는 고래 기름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오랫동안 타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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