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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비에이와 후라노 - 그림 같은 전원마을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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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들어설수록 본토 혼슈(本州)와는 다른 뭉클함이 전해진다. 일본에서 가장 커다란 국립공원을 만났고, 그 산자락이 배경이 된 그림 같은 마을과 꽃밭도 조우했다. 홋카이도(北海道) 중앙의 다이세쓰산(大雪山) 국립공원과 비에이(美瑛), 후라노(富良野) 얘기다.

비에이의 시키사이노오카 언덕. 수십 종의 꽃이 구릉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삿포로(札幌), 오타루(小樽)로 대변되는 홋카이도의 낭만적인 정서는 중심부로 다가설수록 좀 더 시골스럽고 아늑하다. 다이세쓰산 일대는 커다란 품 안에 일본의 은밀한 자연을 품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이세쓰산 국립공원은 약 2,267.64km²로 일본 최대 규모다.(지리산 국립공원의 규모: 438,9km²) 2,000m가 넘는 준봉들 가운데 홋카이도에서 가장 높은 아사히다케(朝日岳) 봉우리(2,290m) 역시 그 한쪽에 위치했다. 산등성이 초입 산장에는 아사히다케 온천이 솟고, 구름인지 연기인지 분간 안 되는 길목에는 고산식물과 야생동물이 얼굴을 내민다. 산 전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다이세쓰산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일본 최대 규모의 국립공원

영험한 봉우리 주변은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산 아래가 맑더라도 비옷은 필수. 1,100m~1,600m 구간을 오가는 로프웨이의 종착역에서는 장화를 빌려주기까지 한다. 정상을 에두르는 길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가가미(鏡), 스가타미(姿見) 등의 산정 연못까지 아득한 길은 뻗어 있다. 이곳에서 구름을 헤치며 걷는 묘미가 또 색다르다.


다이세쓰산은 봉우리를 흐르는 구름만큼이나 계절이 빠르다. 9월 초 도쿄의 날씨는 35도. 이곳은 긴 소매 옷을 덧입어도 찬 기운이 느껴진다. 6월에 시작된 봄은 8월 말이면 이미 가을을 맞는다. 산자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키 작은 관목에도 단풍이 물든다. 정상 부근에는 9월이면 첫눈 소식이 전해진다. 어느 계절이든 밤하늘의 공기만은 깊고 청량하다.

비에이의 언덕에 서면 푸른 풀밭, 꽃동산, 아득한 산자락이 어우러진다.

다이세쓰산을 풍요롭게 만드는 곳이 서쪽 비에이와 후라노다. 다이세쓰산이 투박하고 고요한 산행에 좋다면 이곳 홋카이도의 ‘배꼽’ 마을들은 일본인들에게는 꽃구경 명소로 알려져 있다. 마을을 채색하는 것은 온통 아기자기한 것들이다. 전원 풍경을 오가는 열차와 꽃과 와인과 치즈 등. 잔잔하고 탐스러운 세상이 펼쳐진다.

그림 같은 전원마을에 머물다

비에이는 다이세쓰산에 기댄 그림 같은 마을이자, 예술가와 자연 애호가들이 사랑한 땅이다.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前田眞三)의 갤러리를 비롯해 마을 곳곳에 아트 갤러리와 앙증맞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비에이 역 앞.

비에이는 낮은 동산에 여러 개의 꽃밭이 어우러져 있다.

비에이의 소담스런 건축물들은 지붕아래 건축연도를 표시하고 있다.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비에이는 역 앞 풍경부터가 정감 넘친다. 유럽풍의 마을에는 파스텔 톤으로 단장된 건물들이 늘어섰다. 해 질 무렵이면 가로등 불빛이 촉촉하게 마을을 적신다. 소담스런 집들에는 건축 연도가 지붕 아래 새겨져 있다. 스위스샬레 가옥들이 세모지붕 아래 ‘나이’를 써놓아 고풍스러움을 더했듯 이 마을도 세월의 더께가 어깨너머로 느껴진다. 역 앞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고 그 자전거를 타고 언덕 꽃밭 구경에 나설 수 있다.


여름을 단장했던 라벤더가 지고 나면 10월까지 사루비아, 해바라기 세상이다. 사계절을 의미하는 시키사이노오카 언덕(四季彩の丘)은 수십 종의 꽃이 구릉을 가득 메워 전기차를 타고 꽃밭을 오갈 정도다. 푸른 풀밭과 가을꽃 뒤로는 다이세쓰산의 산자락이 물결처럼 흐른다. 산정에 눈이라도 온다면 돌부처처럼 서서 사계절을 만끽할 듯하다. 비에이에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신에이의 언덕(新の丘)’ 외에도 CF의 배경이 된 각종 나무들이 자태를 뽐낸다.

비에이와 후라노의 전원마을을 오가는 노로코 테마열차.

후라노 곳곳은 아늑한 전원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에서는 비에이와 후라노를 오가는 테마열차가 또 명물이다. 노로코 호로 불리는 열차는 전원풍경이 가득한 마을과 간이역을 가로지른다. 창을 바라보고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것도, 손으로 줄을 잡아당겨야 열리는 오래된 창문도 분위기 넘친다. 창밖으로는 황금 들판과 꽃밭세상이다.


라벤더 꽃밭으로 유명한 후라노의 도미타 농장에는 노로코 열차의 임시역이 마련돼 있다. 임시역 이름조차도 ‘라벤더 하다케(라벤더 꽃밭역, ラベンダー畑駅)’역이다. 꽃이 지기 시작했어도 이곳 라벤더 아이스크림 숍과 디자이너의 손길이 깃든 꽃가게를 들러보는 것은 흥미롭다.

후라노에서도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와인공장 앞에 조성된 꽃밭.

통나무 오두막에서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닝구루 테라스’

비에이보다 제법 큰 후라노는 드라마 한 편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1980년대에 일본 안방극장을 휩쓸었던 [기타노쿠니카라(북쪽 지방에서, 北の国から]가 마을을 배경으로 방영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역 앞에는 드라마 자료관이 들어서 있고 드라마의 작가가 운영한다는 ‘닝구루 테라스(ニングルテラス)’에서는 통나무 오두막집마다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어낸다.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명소로 밤의 정취가 독특하다.


후라노는 가을이면 포도밭, 와인가게, 치즈공방, 과자가게 등을 둘러보는 길목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홋카이도의 전원이 담긴 길을 걷고 포근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알싸하고 풍요로워진다.

가는 길
삿포로 인근의 신치토세 공항으로 대한항공 등 직항편이 운항 중이다. 비에이, 후라노까지는 아사히카와(旭川)를 경유한다. 타키가와역을 경유해 단칸짜리 열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2시간~2시간 30분 소요. 비에이에서 후라노간 이동은 노로코호 열차를 이용한다. JR패스로 탑승이 가능하다. 홋카이도내 이동은 역과 연계된 렌터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대부분의 역에는 이미 한국어 안내판이 설치돼 있으며 마을 인근 작은 호텔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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