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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동유럽의 오랜 향수가 투영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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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열차에 오르면 중세로 떠나는 슬로바키아(Slovakia) 여행은 시작된다. 열차 안의 낯선 언어는 무뚝뚝해도 친근함이 있다. 보헤미안의 풍류가 서린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는 고풍스럽고 정감 넘친다. 잊혀졌던 ‘원초적’인 동유럽의 향수가 담겨 있다.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깊은 동유럽’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여행자들로 가득 채워진 프라하의 카를교나 부다페스트 왕궁에 서면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와 있는 듯하다. 다국적 사람들의 혼란스런 언어, 빠른 발걸음 소리는 귀를 어지럽게 만든다.

미카엘스 탑은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탑 주변에는 노천바들이 늘어서 있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한가운데 놓여 있으면서도 생소하게 다가왔던 브라티슬라바는 그런 점에서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오스트리아 의 수드반호프역(Südbahnhof, 남역)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열차로 불과 1시간 걸릴 뿐이다.


오스트리아 동쪽 끝, 마세그역(Marchegg)을 넘어서면 풍경은 달라진다. 빈의 도시 향은 사라지고 정겨운 시골풍경이 나타난다. 열차로 동유럽 국경을 넘는 것은 재미와 스릴이 넘친다. 차장이 도중에 바뀌고 출입국 검사도 까다롭다. 독일어를 쓰는 배낭족은 수프도 끓여 먹고 피리도 불어 대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촌스런 유니폼의 차장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다.

동유럽의 오랜 향수가 투영된 도시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행 열차에 오르는 순간
고풍스런 동유럽 여행은 시작된다.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은 유럽의 외딴 시골역 같은 정경을 만들어낸다.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인 흘라브나 스타니카(hlavná stanica)는 기대만큼이나 여유롭다. 수드반호프역에서 봤던 마음 급한 단체관광객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MT라도 온 듯 배낭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퉁긴다. 슬로바키아의 수도가 아니라 소박한 시골 마을의 정경이다.

역 주변에서 구시가로 이어지는 길목은 고즈넉하다. 골목 어느 곳에서나 이정표가 되는 곳은 브라티슬라바성이다. 성은 슬로바키아의 동전에도 새겨져 있고 각종 기념품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로마와의 변경(邊境)을 지켜냈던 성은 1800년대 헝가리의 지배 때 파괴됐다가 재건축됐다. 한때는 대통령의 거처였고 국회의사당 건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성루에 오르면 브라티슬라바는 도나우 강(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뉜다. 한쪽은 창백하고 다른 한쪽은 소담스럽다. 구시가, 신시가에 대한 경계선은 어느 도시보다 명확하다. 구시가지는 헝가리 통치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리 건너 신시가는 사회주의식의 황량한 회백색 건물로 채워져 있다.

슬로바키아 기념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브라티슬라바 성.

도시에는 슬로바키아의 애틋한 역사도 서려 있다. 슬로바키아는 오랜 기간 헝가리의 통치를 받았고, 브라티슬라바에는 200년 넘게 헝가리의 수도가 들어서기도 했다. 체코와 병합돼 체코슬로바키아를 세운 뒤에도 경제 발전은 대부분 체코 중심으로 이뤄졌고 전통 농업 국가였던 슬로바키아는 늘 뒷전이었다. 뒤늦은 개발은 1989년 벨벳혁명 이후 재분리된 슬로바키아가 오히려 옛 흔적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보헤미안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정취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 여행은 미카엘스 탑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14세기에 세워진 미카엘스 탑은 오랫동안 브라티슬라바의 관문이었다. 성 마틴 대성당, 성 프란시스코 교회, 시청사 등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인근에 몰려 있다. 성 마틴 대성당은 슬로바키아의 역대 왕과 왕비를 기리고 있으며 성 프란시스코 교회는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 골목은 중세의 ‘고도’임을 항변하듯 규칙 없는 미로 같은 길이다. 흐비쯔도슬라보브 광장(Hviezdoslav Square) 등 구도시의 거리들은 빛바랜 건물과 그 건물에 기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미로같은 구시가의 상징적인 기준이 되는 미카엘스 탑.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성 프란시스코 교회.

옛 시청사가 있는 광장 앞 주변은 노천바와 조각품들로 채색된다.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인 소를 주제로 한 조각과 거리의 악사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이곳이다. 노천바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면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 가득 담겨 나온다. 알싸한 맛이 강한 보헤미안 맥주는 구시가의 향취를 더욱 몽롱하게 만든다.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 역시 도시에 취해 15차례나 브라티슬라바를 찾았다고 한다.

브라티슬라바 외곽에서는 외국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헝가리어, 체코어가 국어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기에, 슬로바키아어를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이곳 사람들의 자국어에 대한 애착심은 대단하다. 그렇다고 여느 식당이나 모텔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한 경우는 없다. 그림을 그려주면 그림으로 화답할 정도의 정성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의 흥청대는 관광지와 달리 때가 묻지 않은 게 슬로바키아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구시가의 골목들은 다른 동유럽의 수도와 달리
고즈넉한 풍경이다.

브라티슬라바는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정감이 묻어나는 도시다.

슬라브족 여인들은 덩치도 아담하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가족뿐 아니라 체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동양인들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순박하고 단아한 사람들을 동유럽의 숨겨 놓은 도시는 소중하게 간직해내고 있다.

가는 길
오스트리아 빈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차를 타는 게 일반적이다. 빈의 수드반호프역에서는 평균 1시간 단위로 열차가 다닌다. 동유럽구간의 이동 때는 동유럽 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빈에서 유람선을 타고 닿을 수도 있다. 슬로바키아 입국 때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다. 물가는 오스트리아, 체코와 비교해 저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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