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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윅로우웨이 - 고독의 절정을 맛보고 싶은 이들이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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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향한 염원과 상처를 다룬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이클 콜린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음악을 통해 쓸쓸한 영혼들을 위무하던 영화 [원스]. 버나드 쇼오스카 와일드제임스 조이스를 낳은 나라. 그리고 기네스 맥주와 아이리쉬 바로 기억되는 땅 아일랜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길

한때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아일랜드는 이제 유럽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로 부상했다. 각종 혜택과 상대적 저임금, 높은 교육 수준의 노동력에 반한 외국 기업들이 아일랜드로 몰려온 덕분이었다. 이제 아일랜드는 지난 400년간 그들을 통치했던 영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높은 나라가 되었다. 정치과 종교라는 이중의 억압에 신음하던 음울한 아일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설과 영화가 남긴 어둡고 우울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실의 아일랜드 속으로 걸어가자.

전형적인 아일랜드의 농촌 풍경

아일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보여행길 윅로우 웨이(Wickrow Way)는 더블린 남쪽 교외의 말레이 공원(Marley Park)에서 시작된다. 윅로우 웨이는 아일랜드 최초의 장거리 도보여행코스로 빼어난 풍경을 품은 고즈넉한 트레일이다. 132km의 길은 거친 바람이 휩쓰는 황량한 무어랜드를 거쳐 우거진 숲과 깊은 골짜기를 지나고 고즈넉한 초원지대로 이어진다. 이 길의 장점이자 단점은 132km를 걷는 내내 한 번도 마을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점. 깊은 고립감과 격리감을 느끼며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걷기를 예찬하는 이들을 불러모으는 길

말레이 공원 안, 길의 시작점에는 노란색 마크가 호젓한 숲길을 가리키며 서 있다. 늙어도 여전히 싱싱한 나무들 사이로 깔린 젖은 낙엽을 밟으며 숲을 빠져나오면 멀리 더블린 항구가 눈에 들어오고 황량한 벌판이 펼쳐진다. 어쩌다 양떼나 소떼들과 마주칠 뿐 인적은 드물다. 첫날은 가볍게 다섯 시간 남짓 20km를 걸어 낙크리(Knockree)에서 머문다. 몸이 살짝 풀렸다면 둘째 날은 30km로 걷는 거리를 늘리자. 전체 구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강을 오른쪽에 끼고 고사리가 무성한 길을 지나 경쾌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나란히 줄지어 선 빽빽한 삼나무숲을 빠져나오면 길이 119m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폭포 파워스코트(Powerscourt)를 만난다. 뒤를 돌아보면 바다가 보이고, 멀리 왼쪽으로는 마을, 오른쪽으로는 황량한 무어랜드다. 거칠고 막막한 야생의 풍경이다. 발걸음이 급하지 않다면 잠시 길을 틀어 주스산(Djouce)에 올라도 좋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정상에 도착해 갑자기 몰려든 안개가 풍경을 꽁꽁 감춰버린다 해도 아쉬워하지는 말자. 아일랜드의 풍경은 그토록 변덕스런 날씨와 빗줄기 속에서 제 멋을 드러내기에. 길은 주스산 정상의 돌탑 뒤로 난 길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생태계를 복원화기 위해 습지 위에 깔아놓은 폭 50cm 정도의 나무길이 기다린다. 처녀의 젖가슴 같고, 제주의 오름 같고, 조선 막사발 같은 봉우리들이 오른쪽으로 따라온다.

말론 기념비가 서 있는 타이 호수

늙어도 여전히 싱싱한 나무들

타이 호수(Lough Tay)의 푸른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화이트 언덕(White Hill)에는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도보여행가 말론(J. B. Malone) 의 기념비가 서 있다. 바로 이 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1914년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채 스무 살도 되기 전인 1932년부터 더블린 근교의 산과 언덕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신문의 칼럼과 책을 통해 아일랜드의 숨겨진 도보여행 코스를 안내하던 그는 ‘윅로우 웨이’의 코스를 만들고, 그 길을 정착시키기 위한 무수한 노력을 쏟아 부었다. 마침내 1981년 10월, 윅로우 웨이는 공식적 표기가 완료된 아일랜드 최초의 장거리 도보여행길로 선을 보였다. 그는 199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윅로우 웨이는 아일랜드의 인기 있는 도보여행길로 남아 걷기를 예찬하는 이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싶게 만드는 풍경

타이 호수의 검푸른 물길 앞으로는 작은 백사장, 뒤로는 부드러운 능선을 가진 산들이 늘어섰다. 차량이 뜸한 도로와 삼나무숲을 거쳐 들어서는 글랜다록(Glendalough)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적지. '두 호수의 골짜기‘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두 개의 호수 발치에 누워있는 이곳은 크고 작은 폭포를 품은 숲과, 호수를 따라 잘 가꿔진 산책로, 7세기에 건설된 사원 도시(Monastic city)의 유적이 남아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가을빛 완연한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잘 가꾸어진 떡갈나무 산책길은 배낭을 내려놓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다. 글렌다록을 지나 산을 넘어 이어지는 포장도로는 영국이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하는 무장게릴라를 진압하기 위해 놓은 군사도로. 한 시간 남짓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철다리(Iron Bridge). 넷째 날은 산을 빠져나와 임도와 지방도로를 따라 걷다가 푸른 초원 지대로 들어선다. 마지막 날, 31km를 걷는 동안 만나는 유일한 바 ’죽어가는 소(Dying Cow)‘에서 뜨거운 로얄밀크티를 마시며 몸을 녹이자. 윅로우 다리를 거쳐 마침내 클로니걸(Clonegall)에 들어서면 132 km의 장거리 트레일의 끝, 비로소 마을이다.


낙엽이 깔린 윅로우웨이.

번잡한 일상의 사슬을 벗어나 철저한 격리감을 누리고 싶다면, 10월의 아일랜드로 날아가자. 아일랜드만큼 김광석의 노래가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빗줄기 사이로 흩어지는 바람소리와 안개 자욱한 시골길을 걸으며 그의 노래라도 듣는다면, 어쩌면 주저앉아 울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윅로우웨이는 조금은 위험한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윅로우웨이를 종단중인 청년들.

코스 소개
윅로우 웨이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장거리 도보여행길이다. 전 구간이 표시된 최초의 장거리 도보여행길로 1982년에 완성됐다. 수도 더블린 남쪽 교외에서 길이 시작되므로 편리한 접근성을 자랑한다. ‘아일랜드의 정원’이라 불리는 윅로우 카운티의 구릉 지대를 거쳐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폭포와 주스산을 지나 화이트 힐(630m), 타이 호수, 사원도시 글랜달로우, 윅로우 마운틴 국립공원을 지나 클로니걸(Clonegal)에서 길이 끝난다. 황무지의 무어랜드, 잘 가꾸어진 숲과 드넓게 펼쳐진 구릉, 호수와 같은 전형적인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길이다. 노랗게 칠해진 배낭 맨 남자 표시가 이 길의 공식 마크. 모든 갈림길마다 예외 없이 나타난다. 표지판마다 영어와 아이리쉬로 표시되어 있다. ‘Wicklow way'의 아이리쉬 이름은 ’Sli Cualann Nua'. 총 길이 132km로 5일이 소요된다.

찾아가는 길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시작점인 말레이 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더블린 시내 오코넬(O'Connell) 거리에서 16번 버스를 탄다. 약 40분 소요. 말레이 그랜지(Marley Grange)에서 내려 공원으로 들어가면 윅로우 웨이 시작을 알리는 표석이 서 있다.

언제 갈 것인가
5월과 9월이 가장 걷기 좋은 달이다. 그 다음은 6월. 비가 많이 내리기로 소문난 아일랜드에서 그나마 햇빛을 쪼이며 걸을 수 있는 시기. 10월 이후에 걷는 다면 내내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씨인데다 도보 여행자를 거의 만나지 못해 고독의 최절정을 경험한다. 7월과 8월은 걷기 좋은 계절이지만 가장 많은 여행자가 몰리는 때이므로 숙소의 예약이 필수다.

여행 Tip
아일랜드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기 때문에 방수잠바와 방수신발, 배낭 커버는 필수준비물이다. 또 충분한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식당이나 펍은 카드를 받지만 숙소는 현금만 받는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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