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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 : 사자들의 저녁식사 5m 앞까지… 피냄새 초원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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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

사자, 한번에 50㎏까지 먹어치워
갈기 휘날리며 수사자가 벌떡 일어나자
초원엔 비… 마음엔 천둥·번개가

1시간만에 드러낸 발톱… 1분만에 뒤바뀐 야생의 주인

피비린내 진동하던 사자 여섯 마리의 코끼리 반찬 저녁식사. 자신의 몫이 부족했던 탓일까. 왼쪽 아래의 암사자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고 있다.
피비린내 진동하던 사자 여섯 마리의 코끼리 반찬 저녁식사. 자신의 몫이 부족했던 탓일까. 왼쪽 아래의 암사자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고 있다. / 사진=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2월 말 3월 초는 건기로 분류된다. 하지만 뚜껑 없는 9인승 지프 위로 떨어지는 건 빗방울이었다. '빨간머리 앤'을 떠올리게 하는 사파리 전문안내인 코트니(Courtney)는 태평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늘 이런 식이었지만, 금방 그칠 거라면서. 하지만 비는 바로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곧 장대비로 바뀌었다.

판초로 온몸을 휘감았는데도 속옷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결국 첫 탐험을 포기하고 로지(lodge) 귀환에 동의했을 때, 코트니는 무선 한 통을 받았다. 얼핏 소년 같아 보이는 우리의 빨간머리 앤이 차를 돌리더니, 비포장 흙길에서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포효하는 표범.
포효하는 표범.
빗속을 뚫고 10분가량을 달렸을 때, 그 장면은 벼락처럼 나타났다. 여섯 마리의 사자가 그 서너 배 덩치의 아프리카코끼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용감한 코트니는 길을 버리고 초원으로 들어갔고, 우리 지프는 현장 5m 앞까지 육박했다. 코끼리는 이미 내장까지 뜯어 먹혔는데도, 사자들은 도륙(屠戮)과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암컷 세 마리와 수컷 세 마리. 네 녀석은 코끼리 다리 하나씩을 독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두 녀석은 코끼리 뱃속을 뒤지고 있는 중이었다. 비 오는 날 동물원에 가본 적이 있으신지. 비 오는 동물원을 지배하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후각이다. 코를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피비린내. 문득 소름이 돋았다. 가림막 하나 없는 우리 지프가 저 무자비한 맹수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까. 런던 대학에서 동물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는 우리의 코트니는 여전히 천하태평이다. 사자들은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면서. 한 번 식사를 시작하면 50㎏까지 먹어치우는 게 사자인데, 남아 있는 코끼리 잔해를 보니 이미 그 이상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자들은 이미 새끼를 가진 것처럼 배가 불룩한데, 그런데도 계속 뭔가를 물어뜯고 있다.

코끼리는 보통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는데, 이 불쌍한 외톨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갈기를 휘날리며 수사자 한 마리가 벌떡 일어난다. "걱정 없다"고 했지만, 이게 논리로 해결될 문제인가. 초원의 비는 부슬부슬 약해졌지만, 마음속에는 천둥과 벼락이 치고 있다. 여기 이곳은 남아공 동부의 크루거 국립공원. 우리는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하는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를 시작한 참이다.

9인승 지프 뒤로 아프리카코끼리가 나타났다. 민첩하게 고개를 돌린다.
9인승 지프 뒤로 아프리카코끼리가 나타났다. 민첩하게 고개를 돌린다. 
◇게임 드라이브를 아십니까

현지 용어 '게임 드라이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파리(safari)다. 자동차를 타고 초원을 달리며 야생 동물을 탐험하는 것. 그런데 왜 'game'일까. 로지 사비사비(sabi sabi)의 매니저 로렌은 "이곳 아프리카에서 game은 동물(animal)이란 뜻"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기원을 알아보니, 이 발랄한 단어에는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가 새겨져 있다.

유럽 식민지 시절 정복자들은 초원에서 사냥을 즐겼고, 이를 '사냥 게임(hunting game)'이라 불렀던 것. 지금이야 국립공원에서의 사냥을 철저히 금지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하기야 '게임'이란 단어 자체에야 무슨 죄가 있으랴. 생존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동물을 죽이고, 그런 기억조차 잊은 인간이 문제겠지. 코트니는 "지금의 게임 드라이브는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이 최우선 가치라는 사실을 늘 강조한다"고 했다.

로지 사비사비의 게임 드라이브는 하루에 두 번이다. 해 뜨기 직전인 아침 6시와 해지기 직전인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한다. 사자들의 저녁 만찬을 목격한 충격으로 밤새 침대에서 뒤척이는데, 새벽녘 누군가 방문을 두들긴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 모닝콜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잠을 깨운다. 로지 측이 준비한 모닝 커피와 머핀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다시 지프에 오른다.

사파리를 위해 특수 제작한 9인승 랜드로버는 의자가 계단형이다. 3개의 3인용 좌석은 뒤로 갈수록 키가 커진다. 왼쪽 헤드라이트 위에는 개방형 의자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그 의자에 앉은 흑인 사내가 자신을 포스터(Foster)라 불러달라고 했다. 그의 호칭은 체커(checker). 드라이버이자 전문 안내원인 코트니를 도와 누구보다 먼저 시야를 확보하고 야생동물들의 움직임을 체크한다. 보기만 해도 위태로운 의자인데, 기막힌 균형 감각으로 떡 버티고 앉아 초원을 안내한다.

기린 앞에 선 지프. 차량 바깥 개방형 의자에 앉은 체커(checker)에 주목하라.
기린 앞에 선 지프. 차량 바깥 개방형 의자에 앉은 체커(checker)에 주목하라.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얼룩말 수컷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새벽의 아프리카 초원은 상쾌하다. 큰 나무가 없고 기껏해야 덤불이나 관목(bush) 수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에 감탄하며, 자연이 만들어낸 흙길을 달린다. 오전 6시의 바람은 에어컨에 댈 바 아니다. 저 앞에 얼룩말(Zebra) 가족이 길을 가로막고 풀을 뜯고 있다. 별수 없이 멈췄다. 동물학 석사 코트니가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한다. 얼룩말 수컷은 세상에 태어나 먹고 짝짓기하는 게 인생의 전부라는 것. 지브라 수컷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일까. 초원에서는 식량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맘에 드는 암컷이 있으면 그 빠른 발로 달려가 '작업'이나 걸면 되고. 오는 수컷 마다않는 게 암컷의 생리라니, 얼룩말 수컷에게 초원은 천국이다. 우리의 빨간머리 앤은 "얼룩말 암컷은 거의 아기 만드는 공장(baby making factory)"이라며 "요즘 초원에 얼룩말이 너무 많다"고 키득거렸다.

새벽의 게임 드라이브로 인사한 동물들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물을 60L나 먹어치운다는 워터벅(waterbuck), 사슴보다 더 가녀린 눈으로 쳐다보던 임팔라(impala), 길고 강한 뿔이 위협적이던 코뿔소, 초원의 난폭한 사냥꾼 버펄로….

여유 있게 설명을 계속하던 코트니가 다시 운전대를 고쳐 잡는다. 중앙으로부터의 무전이다. "치타가 출현했다, 오버!"

이런 프라이빗 사파리의 장점 중 하나는,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고 순발력 있게 코스를 바꾼다는 점. 같은 시각에 출발한 각각의 지프가 치타 앞으로 집결했다.

크루거 국립공원 전체에서도 200마리를 넘지 않는 멸종 위기의 종이라고 했다. 녀석들의 최고 속도는 시속 112㎞. 포유류 중 단연 으뜸이다. 턱선부터 허리선까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치타가 자그마한 둔덕 위에 위엄 있게 서 있다. 치타의 머리 위로 붉은 태양이 선명하다.

사냥한 임팔라의 주인이 바뀌었다. 한 시간의 신경전 끝에 벌어진 표범의 승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 표범의 눈이 불처럼 빛난다. 나뭇가지에 걸린 임팔라 다리는 이제 녀석의 몫이다.
사냥한 임팔라의 주인이 바뀌었다. 한 시간의 신경전 끝에 벌어진 표범의 승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 표범의 눈이 불처럼 빛난다. 나뭇가지에 걸린 임팔라 다리는 이제 녀석의 몫이다.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사파리 빅5의 완성

보통 아프리카 사파리의 '빅 5'는 사자·코뿔소·버펄로·코끼리·표범을 꼽는다. 이날 아침의 탐험에서 유일하게 놓친 녀석은 표범. 오후 4시 30분의 두 번째 저녁 사파리에서 과연 '빅5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코트니가 씩 웃는다. 그녀의 허리에는 10발의 총알이 들어 있는 탄창이 있다. 지프 운전석의 거치대에 사냥총이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총 써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매일 먹는 식량을 이걸로 마련한다"고 했다.

이날 아프리카는 특별히 우리에게만 관대했던 것일까. 해가 진 뒤 빅5는 완성되었다. 그것도 성난 표범의 대결을 목격하는 놀라운 행운. 역시 본부로부터의 무전 덕이다. 죽인 임팔라를 물고 나무 위로 올라간 표범이 발견되었고, 지프는 무전에 따라 집결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나무 10여m 앞의 덤불에서 또 한 마리의 표범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커트니는 흥분한 목소리로 덤불 아래 녀석이 더 무서운 놈이라고 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분명 결투가 벌어질 것이라 했다. 야행성인 표범이 결전을 감행한 순간은 완전히 해가 떨어지고 칠흑처럼 어두워진 뒤였다.

1시간 정도 신경전을 벌였을까. 덤불 밑의 녀석이 순식간에 나무 위로 솟구쳤고, "크아아악"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임팔라의 주인은 바뀌었다. 1분도 걸리지 않은 승부. 나뭇가지 위로 핏방울이 보였다. 승리한 녀석은 빠닥빠닥 소리를 내며, 임팔라 다리를 뜯고 있다. 저녁 8시. 완벽하게 고요한 사위, 오직 이빨과 뼈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가득한 아프리카의 밤이다.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
인포메이션
여행수첩

1. 3~5월까지 남아프리카는 가을이다. 아침 저녁은 15도 안팎으로 선선하지만 낮은 한여름. 대신 습기가 없어 그늘만 가면 시원하다.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화폐는 랜드(Rand). 국제 금융기호로는 zar로 표기되고, 1R은 90원가량.

2. 사비사비 리조트(sabisabi.com): 하루에 두 번 게임 드라이브(사파리)를 떠난다. 새벽 6시부터 3시간, 오후 4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된다. 리조트는 올인클루시브 개념으로 3끼 식사와 간식이 모두 포함된다. 가격은 센 편. 일박 R9700부터.

3. 크루거 국립공원(sanparks.co.za/tourism/reservations): 미리 준비할 시간과 의지가 있는 개별 여행의 경우, 저렴한 여행도 가능하다. 국립공원 휴양림의 경우 일박 R280부터. 성수기에 가려면 6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국립공원 사파리는 1인당 R260부터.

4. 국내에서 판매하는 여행상품도 있다. 뚜르 디 메디치의 '남아공 핵심 4박 7일'은 사비사비 리조트 2박과 케이프 타운 2박 패키지를 운영 중이다. 성수기 2인1실 기준 549만원. 문의(02)545-8580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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