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 Gerorgia ]

  • 위치 : 흑해 연안 러시아 남부
  • 인구 : 463만 841명(2008년 현재)
  • 면적 : 6만 9700㎢
  • 수도 : 트빌리시 
  • 정치·의회형태 : 공화제,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 
  • 화폐단위 : 라리(Lari, GEL)
  • 언어 : 그루지아어 
  • 종교 : 동방정교, 이슬람교, 아르메니아사도교
  • 수교일 : 1992년 12월 14일
정의

아시아 흑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

지리 및 기후

그루지야는 중앙과 동부의 코카서스 지형을 차지하고 있다. 주변국가는 북부에 러시아, 동부에 아제르바이잔, 남부에 아르메니아, 남동부에 터키가 위치한다. 산악지역으로 대 코카서스 산맥이 북쪽 국경으로 이어지고, 소 코카서스 산맥은 남부 국경이고 두 산맥의 중앙으로 330㎞의 평지가 흑해로 연결된다. 작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동서양 기온의 조화로 인해 다양한 식물이 서식한다. 산맥은 기온의 변화를 막아 그루지야는 지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상태학 시스템이 격리되어 특유한 다양성이 분포한다. 산림지역은 2.7백 만 헥타의 크기로 국토의 38%를 차지하며 100여 종의 동물, 330여 종의 조류, 48종의 파충류, 11종의 양서동물, 160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기온은 지역에 따라 습한 아열대 기후부터 빙하 지형까지 다양하다. 아열대 기후는 서부지역에 분포하며 동부보다 적은 비가 내린다. 티빌리시(티빌리는 현지어로 '따뜻하다'는 의미)의 평균 겨울 기온은 1월에 1도이며, 여름에는 25도로 쾌적한 온도다.



개설

러시아 남부 흑해 연안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는 310㎞이다.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이나 2009년 6월 의회에서 탈퇴를 의결하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면적은 6만 9700㎢, 인구는 463만 841명(2008년 현재),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 주민은 그루지아인 83.8%, 아제르바이자인 6.5%, 아르메니아인 5.7%, 러시아인 1.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그루지아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동방정교 83.9%, 이슬람교 9.9%, 아르메니아사도교 3.9% 등이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악지대이며, 평야지대에는 목축과 포도재배가 매우 성하다. 강우량은 많은 편이며 기온 차가 심하다. 석탄과 철광석, 원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중공업이 발달되어 있고 발전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2007년 현재 국민총생산량은 103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355 달러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150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민족연합운동당, 통합국민의회, 기독민주당, 공화당, 노동당 등이 있다.

약사

기원전 3세기 카틀리 왕국으로 출발한 이 나라는 1936년 소연방 구성공화국으로 발족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하여 왔다. 그루지아인들은 타마라여왕시대(1184∼1213)에 최전성기를 이룩하였으며, 이때 카프카즈지방에서 최강의 국력을 누렸다. 철학과 과학이 발달하였으며, 건축과 예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것도 이 시대였다.

1386∼1403년 몽고의 티무르에 의하여 8차례나 침공을 당하여 국력이 크게 쇠잔되었으나, 1453년 오스만터키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장악으로 그루지아는 서유럽과 직접 관계를 수립, 15세기 말까지 통일국가를 유지시켜 왔다. 16세기 초 그루지아인들은 터키와 사파비 이란과의 전투에 휘말렸고, 오랜 전쟁 끝인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되찾았다.

그러나 1783년 러시아와 보호조약을 체결하였고, 1795년 이란군의 침입을 받게 된 이후 러시아제국에 병합되었다. 1918년 5월 공화국이 수립되고 유럽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22개국의 승인을 얻었으나, 1922년 12월 소연방에 편입되었고, 1936년 12월 소연방구성공화국으로 되었다.

1989년 11월 그루지아최고회의는 소연방 탈퇴를 결정하였고, 1990년 11월 14일 주권을 선언, 1991년 4월 9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독립 당시에는 독립국가 연합에 참여를 원하였으나 인권탄압을 이유로 거부당해 오다가 1993년 12월 9일 독립국가연합의 1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였으나 2009년 6월 의회에서 탈퇴를 의결하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995년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남부 오세티아의 소수민족이 독립을 선언하여 민족분규에 시달리고 있다. 2004년 1월 취임한 사카쉬빌리(Mihail Saakashvilli) 대통령이 정부를 이끌고 있으며, 대외정책은 우경중립의 외교를 펴고 있으며, 1992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와는 1992년 12월 14일 수교하였고, 2007년 현재 주 우크라이나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 그루지아 수출액은 3984만 9000 달러로 화학제품과 자동차가 주종목이며, 수입액은 350만 5000 달러로 주종목은 섬유와 알루미늄이다. 현재 20명의 한국민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94년 11월 3일 수교하였으며, 2007년 현재 대 그루지아 수출액은 45만 달러, 수입액은 84만 9000 달러를 기록하였다.

 



일본이나 한국 출신의 여행객들은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있고 조금만 협박해도 가진 돈을 순순히 내놓는다는 소문 때문에 범죄자들의 표적이 됐다. 당연히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루지야를 여행할 때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장미혁명이 일어난 지 일년 반이 지나면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됐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그루지야를 향했다.

터키의 북쪽에서 그루지야 국경을 향해 버스를 타고 갔다. 터키에서 그루지야로 넘어오는 길은 거칠고 험한 산길,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아니라 산 사이의 큰 계곡으로 난 길이었다. 길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거대한 산이 솟아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내 평생에 그렇게 아름다운 산악지대를 본 적은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미도 넘칠 것”이란 상상을 하면서 그루지야에 가까워졌다. 같이 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여행객은 비자가 없어서 국경검문소에서 터키로 되돌아가야 했다. 나는 문제없이 그루지야로 들어왔는데… 모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국경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대여섯명의 운전사가 중고 승용차를 대기해놓고 국경을 넘어오는 외국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높은 요금을 불렀기 때문에 마을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잡아타기로 했다. 그런데 승용차 하나가 나의 뒤를 따르다가 갑자기 내 앞에 서더니 나에게 타라고 강요했다. 내가 강하게 거절하자 운전사는 되돌아갔다. 그러나 다른 승용차가 다시 나를 따랐다. 승용차의 운전사는 무지막지하게 생겨먹은 사내였다. 나를 향해 타라고 손짓했지만 나는 다시 거절했다. 그는 계속 내가 걷는 길 옆으로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승차할 것을 강요했다. 나는 그에게 취재증을 보여주면서 물러서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그는 도리어 경찰관 신분증을 내보이면서 자신이 경찰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트빌리시에 가면 정부에 가서 당신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랜 외국여행을 했지만 이런 나라는 처음이었다. 비자 문제로 터키로 되돌아간 오스트레일리아 여행객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나는 “계속 뒤따라오면 터키로 되돌아갈 것”이라며 방향을 돌려 터키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한참 동안 차를 세우고 있다가 국경검문소로 되돌아갔다.

거의 반시간 동안 길을 걷다가 유조차를 세워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갔다. 나를 태워준 60대의 유조차 운전사는 깡마른 얼굴에 백발을 휘날리는 인자한 인상의 소유자로 조금 전의 범죄자들과는 극단적으로 대조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악마와 천사를 모두 만난 느낌이었다.

아침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던 어느 날, 수도 트빌리시의 큰 상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동양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었고 또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갑자기 검은색 BMW 승용차 한대가 급하게 내 앞에 멈추었다. 나는 그 승용차가 나 때문에 멈춘 것을 알아챘고 그 자리를 피할 궁리를 했다. 승용차에서는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은 두 ‘맨 인 블랙’ 청년이 급하게 내렸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처럼 이들은 나를 향해 자신들의 신분증을 내보였다. “경찰이다, 경찰!” “신분증! 여권!”나는 이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길 차량들이 질주하는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나를 따라왔다. 그는 계속 신분증을 달라며 큰소리를 쳤지만 나는 호텔에 신분증이 있다면서 호텔로 따라오라고 큰소리를 쳤다. 뒤를 쫓아오던 사람이 나의 팔을 잡았지만 뿌리치고 계속 도로를 건넜다. 나의 완강한 저항에 굴복한 듯 나를 따라오던 사람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검은색 복장을 한 사람들은 모두 마피아 단원이며 검은 복장은 마피아 유니폼이었다. 트빌리시 거리 모퉁이 어디서나 검은 복장에 검은 선글라스 차림의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무법천지의 상황에서도 나는 트빌리시에 두주 동안 머물렀고 취재해 기사까지 송고할 수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위기의 순간 천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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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흑해의 신비' 간직한 그루지야에 가다
카프카스산맥 해발 2,200m 산꼭대기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
옛 소련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그루지야는 흑해의 신비를 간직한 땅이다. EBS '세계테마기행'이 주변국과의 분쟁과 내전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자연과 독특한 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나라, 그루지야를 소개한다.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오후 8시50분 방송될 이번 다큐의 내레이션은 영화 '미스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맡았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독특한 재미를 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그녀가 들려주는 미지의 나라, 그루지야는 어떤 모습일까?

그루지야는 터키와 러시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카프카스 지역을 품고 있다. 동쪽으로는 카스피해, 서쪽으로는 흑해를 끼고 있어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번영을 누리던 곳이다. 또 그리스신화에서 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자주 등장하는 카프카스산맥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여행지로 가득하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이곳은 여행자들이 쉽게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 '그루지야 군사도로'를 만난다. 이 도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실크로드의 일부로 1799년 러시아가 군용물자 수송을 위해 만들어낸 도로이다.

만년설과 아찔한 절벽이 만들어내는 풍광을 자랑하는 이 도로를 따라 카프카스산맥을 오르면 해발 2,200m의 산꼭대기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카즈베크 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세워진 이 교회는 그루지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적이 일어나는 성스러운 곳이라 불린다. 신이 선택한 그루지야인들의 성지 카프카스를 찾아가 보자.


최근 그루지야에서 반정부 시위가 한달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서방의 지원을 기대하고 시작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경제상황마저 나빠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 이처럼 주변국과의 분쟁과 내전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했던 미지의 나라 그루지야를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찾았다. 평범한 일상을 독특한 이야기로 끌어내 주목받았던 영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큐레이터로, 정국불안이 고조되기 이전의 그루지야 구석구석을 포착해냈다.


동쪽으로 카스피해, 서쪽으로 흑해를 끼고 있는 카프카스 지역은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번영을 누렸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자주 등장한 이곳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여행지로 가득하다.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를 만난다. 실크로드의 일부이기도 한 '그루지야 군사도로'다. 1799년 러시아가 군용물자 수송을 위해 만들었던 이 도로는 카프카스산맥의 만년설과 아찔한 절벽이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도로를 따라 더 오르면 해발 2,200m의 산꼭대기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볼 수 있다. 카프카스 지역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카즈베크 산(5,047m)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그루지야 사람들은 이 교회가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루지야는 일본, 불가리아, 파키스탄과 함께 장수의 나라로 꼽히기도 한다. 유쾌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루지야 사람들의 장수 비밀은 다름 아닌 와인.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료인 와인이 기원전 약 8000년에 이곳 카프카스 지방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루지야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여타 유럽지역 와인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이미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최고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그루지야 사람들은 건강한 땅에서 일궈낸 와인을 '성스러운 액체'라 부르며 중요한 음식으로 여긴다.


그루지야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호수 같은 바다 '흑해'다. 터키, 러시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여러 개의 나라가 둘러싸고 있는 흑해 연안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중에서도 그루지야 아자르 자치공화국 수도인 '바투미'는 흑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휴양지다. 흑해의 5대 미항 중 하나인 바투미는 그리스 신화 <이아손의 황금양털> 이야기가 유래한 곳이기도 하다.


국내 시술비용 절반대로 머리카락 심고 관광까지

서울에 사는 김영구씨(29)는 지난 10월 9일간의 ‘특별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젊은 나이에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머리숱 때문에 고민하던 중 외국에서 모발이식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김씨의 여행지는 지난 8월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그루지야. 그곳에 도착한 김씨는 모발이식전문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 15명이 참여한 가운데 모낭 3500개를 이식 받았다.

그 뒤 김씨는 그루지야 수도 티빌리시의 고급숙소에서 병원이 고용한 한국인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인근에 있는 고성(古城)과 와인공장 등을 관광했다. 우리나라로 돌아오기 전날엔 병원이 연 바비큐파티에도 참석했다.

김씨가 이 여행에 쓴 돈은 약 650만원. 모낭 당 1유로씩 현지병원에 내는 이식수술비와 항공료, 체류비, 여행비용 등을 포함한 비용이다.

우리나라에서 약 3500모낭을 이식 받을 경우 수술비만 약 1000만원쯤 든다. 머리카락도 심고 현지관광까지 하면서 쓴 돈이 국내 시술비의 절반 조금 넘을 만큼 싸게 한 셈이다.

김씨는 “그루지야는 모발이식술이 발전해 있으면서도 선진국이나 국내에서 드는 비용보다 무척 싸다”면서 “지금 머리가 조금씩 올라오는데 6개월 뒤 달라져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다”고 만족했다.
해외 모발이식 전문 병원을 찾은 한국인 탈모환자의 두피에 현지 의료팀이 식모자리를 내고 있다.

머리를 심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해외원정 모발이식’이 늘고 있는 추세다.

세계적인 모발이식전문센터가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아시아권으로도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모발업계 및 의료계에 따르면 비용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모발이식술 선진국인 미국과 캐나다 등지를 찾고 다소 싸게 머리를 심으려는 이들은 인도와 그루지야 등지를 찾고 있다.

국내 최대 탈모커뮤니티인 ‘대다모(대머리는 다모여라)’ 홈페이지와 인터넷카페 등에선 해외 모발이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원정대’를 모집하는 글들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모발이식을 위해 외국을 찾는 한국인들이 늘자 캐나다 ‘라할’이나 ‘H&W’, 그루지야의 ‘TALIZI모발이식센터’ 등 국내 탈모인들의 주목을 받는 해외 주요 모발이식센터들은 한국인 전용 서비스도 만들었다.

이들 병원은 한국인을 채용, 수술상담은 물론 시술일정예약, 숙박, 식사, 여행가이드 등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비교적 비용이 덜 들고 부대서비스가 좋은 그루지야로 모발이식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 눈길을 끈다.
그루지야 모발이식 전문 병원의 의료진이 현미경을 보며 이식할 모낭을 분리하고 있다.

그루지야 원정 모발이식이 국내 탈모인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그루지야 모발이식수술을 여행상품으로 내놓은 여행사(새로모투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서울에 문을 연지 3년이 된 이 여행사는 특별한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도 150여명의 고객을 모아 현지로 ‘머리심기 나들이’를 다녀왔다.

관련여행문의도 꾸준히 늘어 내년 1월에만 3~4명이 팀을 이뤄 그루지야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송의섭 새로모투어 대표는 “그루지야에서의 모발이식은 시술료에 항공비, 체류비, 여행비를 다 합쳐도 국내 모발이식비용보다 싼데다 의료진 10여명이 달라붙어 수술하므로 생착률이 높은 게 장점”이라며 “국내 탈모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그루지야행 모발이식여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흑해 연안의 신비를 간직한 땅, 그루지야. 옛 소련 남부의 땅이었던 그루지야는 그동안 주변국과의 분쟁과 내전으로 여행자들의 방문이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자연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18일부터 21일까지 오후 8시50분에 방송되는 EBS '세계테마기행-카프카스의 영혼, 그루지야' 편은 터키와 러시아 사이 카프카스 산맥에 드리워진 그루지야의 매력 속으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이번 기행의 안내자는 영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그가 보여주는 그루지야의 첫 장면은 18일 방송되는 1부 '신들의 산, 카프카스를 가다'에 담긴 카프카스 산맥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번영을 누리던 지역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자주 등장하는 카프카스 산맥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여행지로 가득하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인 그루지야 군사도로를 만난다. 

만년설과 아찔한 절벽이 만들어내는 풍광을 거느린 이 도로를 따라 오르면 해발 2,200m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볼 수 있다. 그루지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로 그루지야인들은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 믿는다.

19일 '카프카스의 영혼, 그루지야' 에선 그루지야인들의 장수 비밀인 와인을 만난다. 와인은 기원전 약 8,000년 전 카프카스 지방에서 만들어져 전세계로 전파됐다.

그루지야 와인은 프랑스이탈리아 등의 와인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선 최고로 인정받는다. 건강한 땅에서 일궈낸 와인과 그루지야 전통방식의 빵, 그리고 그루지야인들의 친절함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식탁으로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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