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며, 각각의 종교가 내세우는 신념과 규율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종교의 가장 큰 목적은 인간의 삶을 더욱 나은 쪽으로 이끌어가야 하는데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신을 믿는 여부를 떠나 누구나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 할 도시이다. 인간은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순례자’일 테니까. 현재 속의 과거가 살아 숨 쉬는 세계 3대 종교의 성지(聖地), 예루살렘으로 떠나보자.

낙타와 이스라엘 시가지 전경. 낙타의 평온한 모습이 도시의 모습과 어우러진다.

현재 속에 과거가 숨 쉬는 도시

다윗왕이 수도 예루살렘을 3천여 년 전에 건설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첫 성전을 건축한 이후, 그 도시명은 바로 경이롭고 성스러운 도시, 그 자체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이기도 한 예루살렘 안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가 공존하며, 이 3대 종교의 성지(聖地)가 곳곳에 있다.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40여 분 정도 달려 성도(聖都)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이곳 동예루살렘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의 성지가 한자리에 들어서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과거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유대인은 이곳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웠지만,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회당은 불타고, 유대인들은 무려 2,000년 동안 세계를 떠도는 크나큰 아픔을 겪었다. 기독교인에게도 예루살렘은 제1의 성지로, 올리브산(감람산)은 예수가 예루살렘이 입성한 뒤 자주 찾았던 곳이며 예수가 부활 후 승천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그 밖에도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최후의 만찬을 했던 곳, 다윗왕의 무덤 등 상징적인 곳들은 무수히 많다.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모리야 바위 위에서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에게도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꼽는 중요한 도시다. 오늘날 예루살렘 성벽 안쪽에는 이슬람 사원인 알 아크사 사원이 있다. 이처럼 세 가지 유일신 종교들은 이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각 종교마다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성지순례의 절정을 이루는 중요한 성지인 것이다.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 안에 있는 기독교 성지에 더 많은 이슬람인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와 독특한 문화가 혼재한다.

통곡의 벽에서 비아 돌로로사까지

전 세계 유대인의 중요한 순례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에 들어선다. 현재의 예루살렘 성에서 헤롯왕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서쪽 성벽인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에게는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의 상징이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는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의 성지로 점철되는 곳이다. 하지만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으로 다수의 사상자까지 나게 돼, 통곡의 벽에는 오랜 기간 이어진 슬픔이 묻어난다.

통곡의 벽.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비아 돌로로사 표지판. 총 14처소가 있는 슬픔과 고난의 길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남자와 여자가 들어서는 입구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복장도 민소매 셔츠는 허용되지 않으며, 무릎 위 이상의 바지나 치마는 입으면 안 된다. 또한 이곳에서 기도한 후 나올 때는 뒷걸음질 쳐 나와야 된다. 이곳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각자 기도하거나, 종이에 자신의 간구함을 적어 벽에다 끼어 넣는 사람들, 아예 작은 책상과 의자에 자리를 잡고 성경을 읽는 이도 볼 수 있다. 종교적 갈등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짧게 기도하고 광장을 나와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박물관에 있는 고대이스라엘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보면, 정말 정교하고도 세심하게 만들어 놓아 시선이 자연스레 머물게 된다. 한참을 구경하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둥글게 생긴 흰 지붕의 건물을 보게 된다. 그 유명한 사해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의 서적관이다. 사해문서는 1947년 2월, 한 베두인족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쿰란동굴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위대한 발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귀중한 문서이다.

이제 박물관을 나와서 다시 통곡의 벽 광장을 지나면, 아랍 상인들의 상점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그 길을 따라 죽 걸으면, 골목길 끝에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가 있다. 이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던 고난의 길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한발씩 올라가는 장면이 눈에 선해, 벌써부터 눈이 시리다. 약 1.6km 정도의 구간인 이 길에는 14개의 처소가 있는데, 예수의 마지막 여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표지가 곳곳에 있다.

고대 이스라엘 미니어처. 사람들에 대비해 보면, 얼마나 정교한지 알 수 있다.

제12처소. 예수가 숨을 거둔 장소이다.

예수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다

비아 돌로로사의 마지막 유적지들이 있는 곳,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를 찾는다. 이 교회 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유해가 내려지고, 묻혔다가 부활한 무덤이 있는 곳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서기 335년 처음 세웠다. 1960년 본격 복원공사를 시작해 1997년 현재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성유석(기름부은 돌)을 볼 수 있는데,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를 무덤에 안치하기 위해 염했던 돌이라고 한다. 순례자들이 뿌린 기름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돌을 손으로 만지며, 그 당시 광경을 묘사한 모자이크를 바라보면,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든다.

성묘교회 안에는 비아 돌로로사의 10처소부터 14처소까지가 있다. 각각의 처소를 따라 걸어가면, 예수의 옷이 벗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고, 종부성사가 이뤄져 무덤에 안장되기까지의 여정을 느낄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와서 예수의 마지막 길을 순례했다.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과 방문객들이 이 길을 걷고 있으며, 성경에 쓰인 과거의 이야기들을 현재의 유적지들 속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그야말로 과거의 현재가 끊임없이 이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발원지이고,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곳이지만, 전쟁과 파괴, 지배가 반복된 불행한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 하나가 수천 년 전부터 기구하고 복잡한 역사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기구한 일생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나라 잃은 유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맞물려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종교적인 대립과 갈등보다는 우리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통곡의 벽에서 만난 휠체어를 끌며 성지순례를 왔다는 어느 노부부의 환한 웃음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가는 길
현재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까지 직항노선으로 대한항공이 주3회 운항하고 있다. 국영 이스라엘항공인 엘알과 터키항공, 우즈벡항공, 네덜란드항공은 북경, 타슈켄트, 암스테르담을 경유지로 운항하고 있다. 직항의 경우 12시간정도 소요된다.

불모의 삼각주,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홍해를 끌어안은 땅,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순례의 땅 시나이 반도. 인공위성 사진으로 바라본 시나이 반도는 푸른 색채 하나 보이지 않는 무인지경의 사막지형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시나이 반도(시내 반도), 모세산이라 불리는 시나이산(시내산)에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6시간 만에 도착했다. 시나이 반도는 수에즈만아카바만 사이의 삼각형 모양의 반도로써 남부는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의 시나이산이라 불리는 험한 산악지대이고 북부는 황량하고 뜨거운 광야이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고 하는 시나이산 정상. 울퉁불퉁한 암반투성이의 정상은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신비한 산이다.

넓이 6만 1천㎢의 이 광활한 땅에서는 생명이 살기도 쉽지 않다. 낮에는 작열하는 강한 햇빛이 내리 쬐고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한다. 4만여 명의 베두인족 들만이 이곳 각처에서 살고 있다. 계곡이 거의 없어서 물을 구하기도 어려운 곳이지만, 이곳에도 대추야자, 옥수수 등이 재배되고 있는 옥토가 있다. 파이란 오아시스(Fairan Oasis)로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다. 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베두인족들은 낙타, 양, 염소 등 가축들을 키우며 유목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통로일 뿐 아니라 지중해 저편, 유럽 대륙이 시나이 반도를 거쳐서 홍해와 인도양 뱃길을 따라 동양으로 갈 수 있는 선박로이자 문화의 교량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예로부터 시나이 반도는 문화 교류와 교통로로써 중요한 땅이었으며 국제적 사건들이 계속되어왔다.

이스라엘인들의 광야생활 40년의 무대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약속의 땅인 시나이산은 이곳 시나이 반도 남단에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코란에서도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시나이산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어 사실상 시나이 반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동 성지이다. 베두인족들의 유목의 터전, 불타는 듯 뜨거운 광야가 펼쳐지는 이곳 ‘위대한 광야’의 성산을 찾아 세계인들의 순례의 발걸음 이어지고 있다.

가라! 약속의 땅을 향하여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시나이산 정상에서의 모세 십계명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과연 그곳은 어떠한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을까? 세계인들은 그 궁금증 혹은 십계명의 발원지를 찾아 시나이 반도 남단, 시나이산 등정을 꿈꾼다. 멀고 험한 불편의 시간을 감수해야 하지만, 인간은 그곳에 오른다. 정상을 향한 시작은 새벽에 시작되며, 원점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아침나절이나 되어서야 가능하다. 성서에 등장하는 시나이 반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시나이산 정상을 향하는 길은 험난하고 고단한 여정이다.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의 시나이산 정상.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간절한 소망을 꿈꾸는 곳이다.

여명을 알리는 시각, 파르스름한 새벽이다. 새벽 2시에 출발하여, 아직 어두운 5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한 시나이산 정상. 오르는 도중에는 그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떻게 그 길을 올랐는지 알 수가 없다. 칠흑 같은 어둠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오직 침묵으로 시나이산 정상을 향해 묵묵히 오른다. 그리고 찬란한 아침 해를 벅찬 감동으로 맞이한다.

마치 한 무리의 군단들이 새벽에 적진을 향하여 매복을 하듯 전진하는 형색으로 성산을 향해 전세계에서 찾아든 사람들이 새벽을 가르며 힘차게 오른다. 붉은 해가 힘차게 대지를 향해 오른다. 시나이산에 찬란한 해가 솟아오른 것이다. 붉은빛이 감돌고 울퉁불퉁 골이 진 화강암으로 뒤엉킨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아 장엄하다. 신비로운 생동감을 품은 정상의 골짜기는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겨 다양한 색채로 변신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에 태양은 더욱 붉게 떠오르고 있다. 그 순간, 홍해 골짜기에는 성스러운 축복을 기리는 수많은 영혼들의 기도가 울려 퍼지고 있다. 새벽에 오른 길이 아스라히 보이는 순간이다. 모두들 묵묵히 올라 정상에 선다.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시나이 반도 시나이산 정상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세상, 또 하나의 창조의 하루를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인파가 파르스름한 새벽, 드디어 시나이산 정상에 당도하는 순간이다.

2,285m 시나이산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순간은 장관이다.

천지창조를 경험하듯, 시나이산 정상에서의 아침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칠흑 같은 어둠이 파란 하늘로 변모하고, 삶에 지치고 고단했던 인간들은 새로운 희망을 안고 다시 시작할 용기도 얻는다. 거대한 돌산으로 겉으로 보면 쓸모가 없는 땅으로 보이는 이 땅을 지리학자들이 매혹의 땅이라고 부른 이유를 정상에 서면 알게 된다. 새벽의 고난을 이겨낸 순례자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듯이 하늘의 기운과 희망 가득한 생의 메시지를 안고 발걸음을 돌린다.

따가운 태양을 견뎌내며, 시작한 자리로 되돌아간다. 시나이산 영혼의 울림에 귀 기울여보고, 아침 해의 웅장한 비상에 감동한 떨리는 가슴도 쓰다듬어 본다. 함께한 캐러밴(대상, caravan), 낙타들의 이동은 새벽부터 이 아침까지 흔들림 없다. 다시 돌아온 그 자리, 흑암의 새벽에 이 자리를 출발하여 뜨거운 태양 대지를 달구고 하늘 높고 높은 눈부신 아침에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적막과 어둠을 뚫고 푸른 빛과 태양을 맞이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 일련의 과정, 시나이산 순례의 길.

광활하고 거대한 시나이산의 위용. 낙타의 희생이 없었다면, 시나이산 캐러밴은 감동으로 마쳐내지 못했을 것이다.

파란 하늘 아래, 시나이산 골짜기 사이로 줄지어 이어지는 캐러밴 행렬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정상을 다시 출발한 낙타의 행렬은 성 카타리나 수도원(Saint Catherine's Monastery)에 당도한다. 순례의 끝이자, 희망의 시작이다. 낙타의 희생과 베두인족의 동반 없이 이 경이로운 순례의 길을 감동으로 마쳐내지 못했을 것이다. 최고의 감동 이면에는 희생과 헌신이 동반된다. 베두인족 일상의 반복과 낙타의 헌신이 허락한 시나이산 새벽 순례는 시나이산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의 캐러밴이 될 것이다.


가는 길
대부분 이스라엘과 이집트 두 곳에서 출발하지만, 이집트 카이로에서 떠나는 여정이 일반적이다. 그룹 투어의 경우에는 태양의 열기가 잠잠해진 오후 3시경 카이로를 출발하여, 성 캐서린 수도원에 늦은 밤 도착한다. 시나이 터미널에서 아침 9시, 압둘 무님 리아드(Abdul Munim Riad) 터미널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보통 새벽 2시에 기상하여 등반을 하므로, 도착하여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청한 후 다시 출발한다. 체력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랜턴과 물은 필수품이다. 걷는 사람도 많지만, 왕복 15$ 정도를 내고 낙타 캐러밴에 동참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영웅 즈비카와 이스라엘

단신으로 골란고원 사수한 즈비카 "본능으로 싸워서 나라를 지켰다"
기독교… 유대 역사… 서구 문명의 뿌리
역사 속에 세속적 욕망의 흔적들
사해(死海)에는 관광객들이 둥둥… '힘이 받쳐주는 평화'를 느끼기도

박종인의 땅의 歷史
기독교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해 승천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2000년 전 벌어진 사건이다. 그 자리에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서 있다. 교회는 서기 4세기에 건립됐다가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이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오른쪽 사진이 그 입구 광장 풍경이다.

사진에는 불가사의한 사실이 숨어 있다.

가운데 건물 2층 오른쪽 창문 아래 있는 사다리가 그 첫째다. 사다리 이름은 '부동(不動)의 사다리(Immovable Ladder)'다. 1852년 이후 163년째 그 누구도 이 나무 사다리를 건드리거나 감히 치우려 하지 않는다.

가운데 있는 교회 현관문이 둘째 비밀이다. 서기 637년 이래 이 문의 열쇠는 조우더(Joudeh)와 누세이베(Nusseibeh) 가문이 가지고 있다. 1400년 가까이 교회 문을 여닫는 이 두 가문은 놀랍게도 기독교도가 아니라 무슬림이다. 움직이지 않는 사다리와 무슬림이 지키는 교회가 있는 이스라엘, 그 땅과 하늘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 부대 즈비카

이스라엘 전쟁 영웅, 즈비카 그린골드.
이스라엘 전쟁 영웅, 즈비카 그린골드.
예순세 살 된 사내 즈비카 그린골드(Zvika Greengold)는 이스라엘 북서쪽 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즈비카가 장교로 입대한 1973년 전쟁이 터졌다. 10월 6일 오후 2시 시리아 탱크 부대가 북동쪽 골란 고원으로 진격했다. 골란 고원은 이스라엘 북동부 전선의 절대적 전략지다. 골란 고원에서 대포를 쏘면 갈릴리 호수 지역까지 포탄이 떨어진다. 전쟁은 유대교 휴일인 욤 키푸르에 터졌다.

휴가 중이던 즈비카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고 부대로 복귀했다. 이미 이스라엘 탱크들은 파괴된 상태였다. 즈비카는 두 대를 긴급 수리하고 병사를 태워 골란 고원으로 달려갔다. 무전으로 소속을 묻는 사령부에 즈비카는 "즈비카 부대 부대장"이라고 대답했다. 감청을 우려해 단독이 아님을 위장한 대답이었다. 사령부도 즈비카 부대가 무엇인지 몰랐다.

시리아 탱크는 모두 1500대였다. 밤 9시 첫 교전에서 즈비카는 여섯 대를 격파했다. 동료 탱크와 교신이 끊긴 즈비카는 포탄을 쏴대며 전속력으로 전선을 누볐다. 어둠 속 사방에서 포탄이 쏟아지자 시리아군은 대병력이 있는 줄로 착각했다. 타고 있던 탱크가 파괴되면 또 다른 탱크를 잡아타길 반복하며 20시간을 쉬지 않고 싸운 결과 시리아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지원군이 도착하자 즈비카는 사령부로 복귀해 또 전투를 벌였다. 전투가 끝날 무렵 해치를 열고 얼굴과 두 팔이 불에 탄 즈비카가 땅으로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더 못 해(I can't anymore)."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즈비카는 20대를 격파했다고 했고, 목격자들은 40대가 넘는다고 증언했다. 즈비카는 "그때는 본능으로 부대에 복귀했고, 싸웠다"고 했다. 스물한 살 청년의 본능 덕분에 착한 사람들, 악당들 그리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하나가 구원됐다.

▶▶사다리와 교회의 문, 그리고 본능


역사에 기록된 본능은 즈비카의 본능과 일치하지만은 않았다. 서기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이스라엘 전역에는 수많은 교회가 건립됐다. 순례자가 아니어도 그 건축미를 즐기는 것만으로 이스라엘 여행은 충분히 가치 있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 광장이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 광장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묻히고, 부활한 장소다. 만국에서 온 순례자와 관광객으로 광장은 늘 붐빈다. 렌즈=삼양옵틱스14㎜ F2.8 ED AS IF UMC, 조리개=f16, 셔터스피드=1/60초. /박종인 기자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종파가 생겨났다. 성지는 비좁아졌다. 관할권을 두고 갈등이 빈발했다. 성직자끼리 십자가를 휘두르며 싸우는 해프닝이 잦았다. 신앙이 세속적 본능과 욕심으로 경도됐다. 성묘 교회는 그리스정교, 아르메니아정교, 로마 가톨릭, 이집트 콥틱, 에티오피아와 시리아 정교가 권리를 다퉜다. 7세기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장악하고도 분쟁은 계속됐다. 결국 해답이 나왔다. '현상 유지(Status Quo)' 즉 "현재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더 이상 변경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상 유지 정책은 1853년 당시 지배자 오스만 튀르크 황제 칙령으로 공식 확립됐다.

그리하여 성묘 교회의 모든 제단은 칼로 자른 듯 관할권이 정해졌다. 예수의 무덤을 에워싼 작은 건물은 1947년 철골 구조물로 보강했지만 이후 그 누구도 보수 작업에 합의하지 않아 68년째 임시 구조물이 씌워져 있다. 2008년 여름에는 교회 지붕에서 한 종파가 의자를 그늘 쪽으로 20㎝ 옮겼다가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칙령 전해인 1852년 어느 날 아침 성분묘 교회 창문 아래에서 사다리 하나가 발견됐다. 누가 두고 갔는지 알 수 없었으니 누가 관할하는지도 몰랐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몰랐다. 지금까지 여섯 종파 그 어디도 사다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163년째 치울 엄두를 못 내는 '부동의 사다리'가 되었다.

사해 풍경. 건너편은 요르단 땅이다.
사해 풍경. 건너편은 요르단 땅이다.
교회 열쇠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종파도 다른 종파에 열쇠를 맡기려 들지 않았다. 골머리를 앓은 7세기 이슬람 정권은 제3자인 무슬림 가문에 열쇠를 주는 방안을 내놨다. 모든 종파가 찬성했다. 성지에 충만한 믿음과 평화의 향기 속에, 세속 욕망의 흔적이 보인다.

▶▶흔적에 열광하는 관광객들


로마에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유대인들은 로마인, 기독교 세력, 이슬람 세력과 근대 영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배와 억압을 받으며 흔적을 쌓아갔다. 19세기 민족주의 흐름 속에 건국 운동이 벌어지면서 떠났던 유대인들이 속속 복귀했다. 언어학자들은 현대 히브리어를 창안했고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역사를 복구했다. 1948년 영국이 군대를 철수하면서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다. 이슬람 국가들은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했고,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차곡차곡 준비해왔던 나라"라고 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관광객은 즐겁다. 1인당 GDP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서구 정신문명의 뿌리를 대면할 수 있으니까. 관광부 장관 야리브 레빈이 고백했다. "거짓말 못 하겠다. 그래, 이스라엘에서 볼거리는 대부분 종교 관광지다. 그래서 뭐."

솔로몬의 성전터에 세워진 이슬람 성지 황금사원.
솔로몬의 성전터에 세워진 이슬람 성지 황금사원.
기독교를 제외하고 서구 문명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기독교를 논할 수 있을까. 그 서구 문명의 원천을 눈앞에서 느끼는 관광지가 이스라엘이다. 레빈 장관의 대답은 고백이면서 자신감이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그 자체다. 수십 겹 지층이 이 고성(古城)에서 발굴됐다. 다윗 시대 성터를 비롯해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 터와 헤롯왕이 세운 성벽(남아 있는 서쪽 벽은 유대인의 성지다), 사라진 성전 터에 세운 이슬람의 황금 사원, 예수가 "나에게 주어진 잔을 거둬 달라"며 고뇌했던 겟세마네 동산(예수 시대로 추정되는 올리브 나무 여덟 그루가 살아 있다!),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예수 탄생 교회 지하에 있는 예수 탄생 표지 은판이 행방불명되자 관할 공방을 벌이던 러시아가 이를 핑계로 크림전쟁을 일으켰다)이 그 예다.

북쪽으로 가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예리코(Jericho·여리고)가 나온다. 예수가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예리코 꼭대기 유혹의 산 절벽에는 그리스정교 교회가 있다. 그 남쪽 쿰란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사해의 서(書)'가 발굴됐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이 구약성경 필사본은 지금 이스라엘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 동쪽 바다는 사해(The Dead Sea)다. 해발 고도가 해수면 아래 400m에 염분 농도 33%로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다. 동시에 사람이 둥둥 떠다니는 관광지다.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사해 바닷물과 진흙은 온갖 피부병에 특효라 해변에는 특급 리조트가 즐비하다. 사람들은 바다에 떠서 책을 읽고 이스라엘 와인을 만끽한다.

이스라엘
요르단 계곡을 따라 북상하면 갈릴리 호수가 나온다. 나사렛에서 청년기를 보낸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활동하던 곳이다. 첫 설교인 산상수훈을 행한 팔복산,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로 오천 군중을 먹인 타브가,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 바위(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서 있다)가 호수 북쪽에 있다. 갈릴리 남서쪽 나사렛에는 수태고지 교회가 서 있다. 지하에는 성모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에게서 예수 수태를 통보받은 동굴이 남아 있다. 반드시 일요일 미사에 갈 일이다. 적요함 속에 울려 퍼지는 칸타타는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도 평화를 느끼게 만든다.

한국 사람이라면 되도록 골란 고원에도 가봤으면 한다. 전쟁 영웅 즈비카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땅이기도 하고, 그래서 분단 현실 속에서 삶에 대해 잠깐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고원에 서면 국경선 너머 내전으로 엉망이 된 시리아가 보인다. 전력 차이가 너무 커서 이스라엘 쪽으로는 권총 한 발 쏠 엄두를 못 내고 자기들끼리 포를 쏴대는 한심한 풍경이 펼쳐진다. 힘을 제외하고 평화를 논할 수 없다. 2년째 사륜구동 차를 몰고 관광객을 안내 중인 청년 에레츠(23)가 말했다. "이스라엘은 안전하다. 저건, 나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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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골고다 언덕 성소(聖所)에서 시작해 골란 고원에서 끝났다. 서구 문명의 원류와 진귀한 자연에 흠뻑 취하고 현실로 복귀한 여행이었다.


[이스라엘 여행수첩]

1. 기본 정보:
 ①대한항공이 텔아비브까지 주 3회 운항. 낮 3시 출발해 현지 밤 9시 도착. ②관광비자: 필요 없음. ③화폐 단위는 셰켈(1달러=3셰켈 정도) ④시차: 이달 중순 이후 서머타임 해제되면 7시간 늦다. ⑤한국 여름보다 덥다. 갈릴리와 사해 등 해수면보다 낮은 요르단 강 주위는 몹시 덥고, 해발 700m 정도인 예루살렘은 밤에는 선선하다.

2. 주의 사항: ①통곡의 벽은 모자나 입구에서 빌려주는 일회용 유대인 전통 모자 키파를 써야 한다. 통곡의 벽 위 성전산(Temple Mount)은 무슬림 구역이다. 긴 바지 필수. ②유대인 휴일 사바스(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상가, 관공서 모두 문을 닫는다.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
3. 여행 상품: 많은 여행사가 성지순례 상품을 취급한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베스트래블(www.bestravel.co.kr) 여행사 추천. 5성급 숙소와 현지인의 맛집, 한국 DMZ에 해당하는 시리아 국경 골란 고원 지프 투어, 사해를 비롯해 고대 유대인과 로마, 기독교, 오스만튀르크 역사 유적 탐방 상품. 이스라엘 최대 여행사 아시아투어(www.asiatours.co.il)가 안내를 맡는다. (02)397-6100

4. 기타 정보: 택시는 미터기가 있어도 쓰지 않는다. 호텔 데스크에서 예상 금액을 알아두고 흥정할 것.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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