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 부드럽지만 시큼한 '람빅' 맥주 맞아? 숙성될수록 달아
체코 - 황금빛 석양을 안주 삼아 황금빛 '필스너'를 마시다

벨기에 브뤼셀의 맥주 카페 ‘라 베카세’ 종업원이 맥주를 따르고 있다. 맥주의 종류 만큼 잔 모양도 다양하다. / 채민기 기자

맥주의 나라? 많은 사람들이 독일을 떠올린다. 하지만 독일을 사이에 둔 유럽의 두 나라, 벨기에체코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다. 벨기에에서는 과일부터 장미, 난초 같은 꽃까지 갖가지 재료가 들어간 맥주가 향기를 뽐낸다. 체코는 1842년 황금빛 라거(효모가 양조통 바닥에서 작용해 발효된 맥주)의 효시로 불리는 ‘필스너’ 맥주가 탄생한 곳이다. 이들 나라를 여행할 때 맥주는 갈증 날 때 홀짝이는 음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의 테마가 된다.

천연 효모로 발효시킨 람빅

대표적인 벨기에 맥주는 람빅(Lambic)이다. 효모를 인공적으로 첨가하지 않고 공중에 떠다니는 천연 효모로 발효시킨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는 칸티용(Cantillon) 양조장은 박물관을 겸한 곳으로 "브뤼셀에서 유일하게 전통 방식으로 람빅을 만드는 곳"임을 자부한다. 곡식 저장고나 대형 맥주통 같은 양조 기구들을 둘러볼 수 있다. 대부분 실제로 양조에 사용하는 기구들이다.

입장료 6유로(약 1만원)에는 맥주 시음도 포함돼 있다. 람빅은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 라거 맥주와 전혀 다른 시큼한 맛이 난다. 이게 맥주인가 싶은 첫인상이다. 통 속에서 해를 거듭하며 숙성되면 단맛이 강해진다. 이렇게 묵은 람빅을 갓 만든 람빅과 섞어 달콤한 괴즈(Gueuze) 맥주를 만든다. 시음용 맥주를 따라주던 직원은 "람빅이 와인이라면 괴즈는 샴페인"이라고 했다.

벨기에엔 맥주 전문 카페도 많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낮에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인다. '라 베카세'는 람빅을 신선한 생맥주로 맛볼 수 있는 곳. 고풍스러운 도기 그릇에 맥주를 담아 준다. '라 모르트 수비테'에서는 트라피스트(벨기에 전역의 수도원 6곳에서 만드는 맥주)의 하나인 '베스트말레'를 생맥주로 판다.

브뤼셀 그랑 플라스 바로 뒤에 있는 '오 브라서'에서는 트라피스트 '베스트블레테렌 12'를 마시는 행운을 경험했다. 이 맥주는 생산량이 적어 예약을 하고 직접 수도원에 가야 살 수 있다. 소매점에 나오기도 하지만 수도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이익을 위해 되팔지 않는 조건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벨기에의 유명 카페 몇 곳을 제외하면 구경하기 어렵다. 쌉싸래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에 이런 희소성까지 더해져 애호가들 사이에서 '세계 최고'로 자주 꼽히는 맥주다.

브뤼셀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가면 운하도시 브뤼헤(Bruges)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맥주 애호가에게는 색다른 면모로 다가온다. 6대에 걸쳐 가족이 운영하는 할베 만(Halve Maan) 양조장에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가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현대까지 양조 기구가 변해온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브뤼헤 조트' 생맥주 1잔을 포함해 6유로를 받는다.

브뤼헤에서 맥주 마시기 좋은 곳은 '브룩스 비르트예'다. 300여가지 맥주를 취급하고, 5∼6종의 생맥주는 주기적으로 바뀐다. 전 세계 맥주광이 몰려드는 유명 카페지만 단골들이 바에 모여 앉아 주인과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도 난다.

황금빛 라거의 효시, 필스너

필스너라는 이름은 체코 제2의 도시 플젠(Plzen)에서 왔다. 프라하에서 기차로 1시간50분쯤 걸리는 이곳 플젠이 필스너의 고향인 셈이다. 플젠역에 내려 5분쯤 걸으면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공장의 고풍스러운 정문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를 만드는 곳이다.

체코 플젠에 있는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공장의 지하 맥주 저장고에서 안내원이 맥주 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안내원 뒤의 대형 나무통에 맥주가 들어 있다. / 채민기 기자
이곳에도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버스로 공장 경내를 돌며 맥주를 나르던 옛 짐마차부터 하루 12만병을 생산하는 최신 포장 공장까지 둘러본다. 투어의 백미는 지하의 맥주 저장고. 땅굴 같은 통로 안에 사람 키보다 높은 나무 맥주통들이 쌓여 있다. 여기에 달린 꼭지를 열어 바로 따라주는 생맥주는 고소한 맛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청량감이 일품이다. 저장고 안은 섭씨 7도 정도로 한여름에도 약간의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프라하로 돌아와 골목길을 걷다 맥주 한 잔 생각이 난다면 '우 즐라테호 티그라'가 제격이다. '황금 호랑이'라는 뜻의 이 집은 카렐 교 근처의 후소바 골목에 있다. 관광객과 단골이 뒤섞여 금세 테이블이 꽉 찬다.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바 주변에 둘러서서 맥주를 마신다. 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골목길까지 들려온다. 허름해 보이지만 1994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체코를 방문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데려갔을 만큼 프라하 펍의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

체코 프라하 리에그로비 사디 비어가든의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저녁 무렵이면 공원의 나무그늘 아래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산책 나온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 채민기 기자
좁은 실내와 떠들썩한 분위기가 힘들다면 비어 가든도 있다. 푸드코트처럼 야외 테이블 주변의 가게에서 맥주를 가져다 먹는다. '리에그로비 사디'는 리에그로비 공원 안의 비어가든이다. 필스너 우르켈과 감브리누스 같은 체코산 생맥주를 팔고, 대형 TV로 운동경기를 중계해 준다. 맥주 한 잔을 사서 들고 공원을 산책해도 좋다. 저녁때쯤 이곳을 찾으면 넓은 잔디밭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멀리 프라하 성 쪽으로 드리우는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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