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자이푸르의 거리모습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들은 저마다 중독증에 시달린다.

사랑에, 영화에, 돈에, 알코올에 그리고 사람에. 집 떠나면 고생인 줄 알면서도 틈만 나면 떠나고 싶어 쩔쩔매게 되니, 여행 역시 중독의 기운이 있다. 그리고 여행목적지 가운데 가장 중독성이 강한 곳을 고르라면 하릴없이 인도를 꼽게 된다.

인도를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 너무 좋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와 "고생을 하도해서 생각도 하기 싫다"는 두 부류로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두 진영의 의견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로, "인도가 자꾸만 부른다"로, 무엇이 인도 중독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무엇이 그 수많은 관광지 중에서도 인도를 독특한 자리에 위치 지우는 것일까. 어떤 광휘로 사람들의 마음을 몰아치는 것일까.

그 해답의 단초는 극단의 경험에서 오는 어떤 깨달음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어느 나라이건 간에 저쪽 끝과 이쪽 끝, 저편과 이편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인도만큼 유별난 곳도 드물다. 최고와 최저, 무한과 유한, 화려함과 초라함 등 양 극단의 모습을 시치미 뚝 떼고 보여 준다.

양쪽 끝을 체험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지럽고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인도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그렇게 느끼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어느 시점부터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저 보면 느끼고, 느끼면 보인다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다.



↑ 인도 자이푸르의 거리모습

극단의 모습을 오간다는 것은 인도가 그만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길거리 여기저기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반면 과거 지배층의 맥을 잇는 현재 인도 부호들의 여유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봉건시대에서나 남아 있음직한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뉴 밀레니엄의 시대에도 버젓이 남아 있고, 불교와 힌두교의 발상지로서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수많은 문화유적과 고단한 삶의 애환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어깨를 부딪는다. 어딘가 허전해 보이고 가열찬 희망의 빛이 희박한 듯 하면서도 볼리우드라 불릴 정도로 많은 영화를 생산해내고 있다. 영화가 꿈의 공장임을 떠올릴 때 참 묘한 이중성이란 생각이 든다.

서로 융화화기 어려울 것 같은 다양한 면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 인도 기행의 가장 큰 매력이자 수확임을 감안하면 인도에 대한 지레짐작, 예단은 당연히 금기사항에 속한다. 다시 말해 인도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다단하여 인간의 조악한 마음과 작은 머리로 가늠하기란 어림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인도하면 바랜 황토빛만이 너울거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빨강, 노랑, 파랑, 분홍 등의 선명한 원색이 눈길을 잡아끌기도 한다.

어떤 로맨틱한 기운마저 피워 올린다. 그리고 인도의 어느 주보다도 화려하고 강렬함을 전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인도 북서부의 라자스탄이다. 그리고 라자스탄의 주도가 바로 자이푸르다.

◈극단의 미학이 펼쳐지다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자스탄은 독특한 느낌으로 중무장한 곳.

역사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전설과 다양한 이야기 거리들이 발길에 채이고, 광활한 사막을 울타리 삼은 아름다운 궁전과 산과 호수가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자스탄은 인도에서도 대표적인 저개발 지역이다.

인구밀도도 가장 낮고 문자가득률 또한 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팽팽한데, 면면히 흘러온 역사 그리고 라즈푸트족과 관련이 있다.



↑ 인도 자이푸르의 거리모습

라자스탄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내민 것은 기원 후 4세기에서 6세기 경. 8세기에서 12세기에는 오늘날 라자스탄의 특색과 전통을 이루는 데 골간이 되는 라즈푸트의 여러 왕조가 흥과 쇠를 거듭했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라즈푸트족은 용맹스러운 전사였다. 전쟁에 임하면 죽을지언정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정신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용맹함이 있었기에 인도 전역을 통일하였던무굴제국도 라자스탄만은 무력에 의한 점령 포기하고 혼인을 통한 유화정책으로 화해를 이뤄냈다.

라즈푸트족의 남자들은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하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마저 적을 피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불굴의 의지가 오늘날의 자부심을 형성했다.

라자스탄의 여행은 자이푸르에서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인도의 수도 델리,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더불어 소위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린다. 인도의 참모습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코스로 힌두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어우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델리와 아그라에 무굴제국의 흔적인 선연하게 남아 있는 반면에 자이푸르는 힌두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첫사랑 찾으려다 사랑에 빠지다'뻔한 스토리? 그래도 매력적인 소재인걸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첫사랑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단연코 후자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내 첫사랑은 예기치 않게 '인간극장'에 등장했었다. 그것도 자신의 부인과 함께. 아이도 두 명 있었다. 나는 그가 지방 어디에서 무슨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지, 심지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의 부모님의 얼굴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15년 만이었다. 내 첫사랑의 판타지는 그렇게 박살났다. 그의 자글자글한 눈 밑 주름과 출렁이는 배를 봐버렸으니 어쩐다. 맙소사! 나는 그의 아내가 아이에게 수유하는 장면까지 봐버렸다.

고백하면 나는 첫사랑 타령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싫다. '겨울연가'니 '가을동화'니 내 취향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떤 특별한 공간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도 한다. 이유 없이 열병에 시달리게 하고, 걸신들린 것처럼 두리번거리게도 한다. 특별한 공기, 날씨, 태양의 빛, 향신료, 독특한 억양의 언어들은 사람의 '외로움'을 더욱 기울게 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더군다나 그곳이 서걱대는 모랫바람이 부는 사막 한가운데의 도시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인도의 '라자스탄'이 그런 곳이라고 믿고 있다.

여행은 외로움을 느낀 사람들을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인도인들이 신혼여행을 많이 가는 라자스탄(Rajasthan)의 모습. / 인도 라자스탄주 홈페이지
조드푸르, 자이푸르, 우다이푸르를 아우르는 '라자스탄'은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 경주처럼 인도인들이 신혼여행을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사막을 끼고 있는 도시라 꽤 척박하고 메마른 느낌이 나지만, 낙타가 많아서인지 낙타 가죽으로 만든 아름다운 물건들이 즐비하고, 알싸한 '짜이'향기를 풍기는 시장 주변엔 싸고 맛있는 오믈렛 가게나 카레 집들이 많다.

그런 질척한 음식을 인도인처럼 젓가락 아닌 손가락 끝으로 휘저어 빨아 먹다 보면 누구라도 본능에 더 충실해질 것이다. 그림자조차 말라버린 오후 두 시의 땡볕, 나무며 사람들이며 겨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뜨거운 도시에 앉아 멍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쳐다보면 몸에 난 구멍들 사이로 뭔가 줄줄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는 인도에서 대책 없는 사랑에 빠진 남녀들을 참 많이도 봤었다.

'블루시티'라 불리기도 하는 '조드푸르'는 특히 구 시가지의 대부분이 푸른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도시를 걸을 때는 느낄 수 없지만 '메헤랑가르 포트'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면 온통 파란 물감을 뿌려놓아 '스머프 왕국'처럼 보일 지경이다. 힌두의 '시바'를 상징하는 색이 푸른색이기 때문이다.

'김종욱 찾기'는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뮤지컬 무대감독인 서지우는 인도에서 만난 김종욱을 잊지 못해 '첫사랑 찾기 사무소' 한기준에게 사람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밑도 끝도 없이 이름 하나 가지고 사람을 찾자니, 두 사람은 이름이 비슷한 김종묵을 찾기도 하고, 축구 선수 김종욱이나 출가해 머리를 깎은 김종욱을 찾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리고 그런 우여곡절 끝에 한기준과 서지우는 '김종욱'을 매개로 자신들이 진짜 서로의 인연이었음을 깨닫는다.

내용이 꽤 빤하지 않은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상투성은 결국 그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보니 자꾸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니 더 진부해진다는 것이다. 돌고 돌고 도는 이 진부함의 굴렁쇠의 결말은 이렇다. 사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원래 진부했다.

장 마르크 파라시의 '마지막 첫사랑'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기억하라. 세상 모든 사랑은 첫사랑의 상처였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세상 모든 사랑은 첫 사랑의 유적들이었으니." 김종욱을 찾다가 김종묵이나 김종육이나 김종혁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 역시 모두 '김종욱'의 변형들이 아닌가. 첫사랑이란 좋든 싫든 그런 황당한 존재들인 것이다. 

●김종욱 찾기: 인도네시아에 여행가겠다는 고객들에게 '쓰나미'를 경고할 정도로 고지식한 여행사 직원 한기준은 좀 더 뜻깊은 일을 하고자 사표를 쓰고 '첫사랑 사무소'를 연다. 

아버지에게 끌려 '첫사랑 사무소'의 고객이 된 서지우. 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라곤 첫사랑의 이름 석 자인 김종욱뿐이다. 동명 뮤지컬 연출자이자 작가인 장유정 감독의 첫 번째 영화 연출작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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