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이자 소설가인 그녀 1년간 무작정 여행을 떠나다
이탈리아에선 마음껏 먹고 
인도에선 열렬히 기도하고
발리에선 자유롭게 사랑하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 찾다

여행기가 영화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만약 소설가가 쓴 여행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들의 무의식 속에는 이야기에 대한 어마어마한 욕구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상의 편린들 속에서도 이야기의 조각을 계속해서 줍는다. 길 가다 본 비둘기의 사체, 과일상인들의 격정적인 제스처, 카페에서 어쩌다 듣게 된 연인들의 다툼…. 그것은 직업병의 결과물이기도 한데, 잘 멈춰지지 않는다. 그래서 맹장수술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 중 자신에게는 일어난 일, 가령 몸에 맞지 않는 마취제 쇼크로 꽤 드라마틱한 심장마비를 겪고, 꼼짝없이 누워 일주일 넘게 수없이 피를 뽑고, 오줌을 받고, 맛없는 병원 밥을 우겨넣으면서도 이렇게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돌아가면 당장 이걸 소설로 써야겠어!

"이탈리아에서는 쾌락의 기술을, 인도에서는 신을 섬기는 기술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둘의 균형을 찾는 기술을 탐색하고 싶었다. 이런 내 꿈을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이 나라들이 알파벳 'I(나)'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Italy, India, Indonesia. 이는 자기 탐색의 여행을 암시하는 상서로운 사인이 아닐까."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하며 행복을 느낀다. 사진은 발리의 한 리조트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관광객들. / 조선일보 DB
자신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 이 특별한 여행기를 만약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읽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마음을 고쳐먹고 이곳에 몇 달이고 눌러앉아야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분명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울에 전화해 이렇게 소리쳤겠지. "여기서 소설 좀 쓰고 갈게!" 정작 써야 할 원고는 펑크 낸 채로 말이다.

소설가이면서 패션지 'GQ'의 기자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남편과 이혼하는 지리멸렬한 과정 속에서 정신과 몸 모두가 망가진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삶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이것이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을 갖게 된 서른 몇 살 저널리스트의 일생에 위기가 오는 것이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정해진 삶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무작정 1년간의 긴 여행을 떠나고 여행의 주제를 정한다. 이탈리아에서 마음껏 먹고, 인도에서 열렬히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분명 이 책에 대한 내 첫인상은 좋지 못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그것은 머릿속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로 변주된 스타일의 책들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내 지독한 편견에 의하면 그런 제목의 책들은 어쩐지 신도들 대부분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침 예배 목사님의 설교 목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책을 여는 순간, 나는 이 마술 같은 책에 곧장 다이빙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으로 나온 동명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책이 영화보다 100배쯤 좋았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각 도시의 키워드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만큼은 꽤 재미있었다.

런던은? 고루하다. 스톡홀름은? 당연히 순응이죠. 뉴욕은? 야망 아니면 매연. 로마는? 말할 것도 없지. 섹스!

만약 누군가 내게 서울을 상징하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서울은 불안의 도시라고. 사람들은 빠르게 걷고, 누구도 마음껏 쉬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며 일하고, 공부하고, 매진하는 것. 그것이 내게 비친 서울의 이미지다. 서울을 떠올리면, 나는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늘 안쓰럽다. 이 도시에선 심지어 '노는 것'까지 '1박2일'이나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연예인들이 '대신'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연휴가 긴 명절에 닫혀 있는 상점들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텅 빈 상점들의 거리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이었다. 문 닫힌 상점들을 보면 나는 늘 "저 가게 주인은 지금쯤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겠지. 가족들과 공원에서 쉬고 있겠지.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내가 발리를 찾은 지 사흘째 되는 3월 5일은 우연히도 발리힌두력의 새해인 '녀피(Nyepi)'였다. 이날 발리의 모든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정지되고, 상점은 전부 문을 닫는다. 신의 섬 발리가 온통 침묵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이날 하루는 국제공항과 국제 항구의 어떤 비행기나 배도 뜰 수 없고, 관광객들 역시 호텔에서 나올 수 없다.

이 침묵의 날 전날, 나는 발리 사원 근처의 한 거리를 걸었다. 마을은 온통 새해 준비로 바빴고, 사람들은 빨갛고, 파란 색색깔의 거대한 인형들과 함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신의 얼굴을 본뜬 인형들이 마을의 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이토록 시끄럽고 요란한 축제가 끝나면 다음 날, 섬은 거대한 침묵 속에 젖어들 것이다.

"나는 행복에 대한 구루의 가르침을 계속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행복을 일종의 행운, 운이 좋은 사람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런 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은 개인적 노력의 결과다. 행복을 얻기 위해 싸우고, 노력하고, 주장하고, 때로는 행복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기도 해야 한다. 자기 행복의 발전을 위해 무자비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거의 마지막에는 여행을 통해 얻은 '행복'에 대한 저자의 깨달음이 나온다. 그때 만약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 이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행복하다'라는 동사를 써넣었을 것이다. 나는 발리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참으로 행복했다. 우리가 때때로 '노는 것'과 '쉬는 것'을 쉽게 혼돈하듯, 쉬기 위해선 절대적인 침묵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던 순간이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순례자들’이란 단편집과 ‘엄격한 남자’라는 장편을 쓴 소설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작품. ‘GQ’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미국 잡지 대상에 세 번이나 후보로 올랐다. 잡지에 쓴 그녀의 바텐더 시절 이야기는 ‘코요테 어글리(Coyote Ugly)‘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국내도서
저자 : 엘리자베스 길버트(Elizabeth Gilbert) / 노진선역
출판 : 솟을북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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