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을 강가에서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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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중엔 이상하게도 눈이 빨리 떠지던 나, 바라나시에서는 더 빨리 눈을 떠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침마다 갠지스 강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 풍경, 의식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5:00 AM, 연인을 흔들어 깨워 아씨가트(Assi Ghat)로 향했다. 평소 일몰을 밥 먹듯이 보는데 일출은 정말 오랜만이다. 여전히 어둑한 하늘이다. 곧이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수면 너머의 해가 올라온다. 저녁 노을과 비슷하지만 오묘하게 다른 느낌, 전혀 다른 현상. 강가에서 사람들을 각기 아침 의식을 치르고 성스런 강가의 물로 몸을 씻어 낸다. 

 

 

우리도 내일 나뭇배 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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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평화로운 강가의 움직임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곧 날이 밝았다. 일몰에 익숙해서인지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지는게 이상하다. 가트로 나왔을 때부터 '보팅 보팅~' 보트 왈라들의 외침이 계속 됐는데 오늘은 그냥 이렇게 온전히 가트에서 아침이 밝아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로 했다. 내일 또 일찍 일어나 성스런 강가에 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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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 이방인과 인도인들, 현지주민들과 다른 지역 사람들. 각자 다른 목적으로 바람으로 이 곳을 찾은 사람들. 저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씨가트에서 마시던 뜨거운 짜이가 생각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라 더 생각이 나는 마살라향 그득한 짜이. 짜이왈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아서 마시고 다시 돌아와서 10루피를 건넨다. 여유가 느껴지는 이 짜이아저씨. 믿음을 바탕으로 장사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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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고 동그란 해가 지평선 너머로 올라오더니, 강가를 붉게 물들이며 오늘의 시작을 알린다. 매일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상과도 같은 일인데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가트 위에서 바라보는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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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찌감치 떨어져 가트 위에서 바라보는 강가의 풍경은 더 다채롭다. 요가하는 아저씨, 옆 가트의 모습, 배타는 사람들 그리고 바로 밑에서 또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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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M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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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골목을 누비다 발견한 AUM Cafe. 건강한 채식 카페이다. 아씨가트 골목에 있다. 외관서부터 깜찍함이 느껴지는 카페. 해맞이 하고 온 우리가 첫 손님이다. 동행은 레몬팬케익에 나는 이들리로 여유로운 아침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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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 오늘도 그들의 신, 소님은 쓰레기를 와구와구 자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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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바로 옆에 있는 염소떼. 넘 예뻐서 강아지마냥 예뻐해줬다. 인도 염소들은 왜 더 큰걸까? 염소들과 한창 놀고 있으니 위에서 누가 소릴 지른다. 뭐지 하고 올려다 보는데 아무도 없고. 외국인이라 놀려보고싶은 아이들의 장난인가보다. 귀여운 아이들. 

 

 

 

Information

◎ 갠지스강 해돋이 보팅 

1시간 반, 200루피

해가 뜨는 시간은 계절마다 다르니, 숙소 주인이나 인터넷 정보를 통해 해가 뜨는 시간을 확인하세요. 

이른시간에 나갈 경우, 게스트하우스 문이 잠겨있는 경우가 많으니, 숙소 관리자에게 해돋이 보팅을 간다고 미리 귀띔해주시면 수월합니다.  

 

◎ AUM Cafe

주소: Assi ghat, Shivala, Varanasi, Uttar Pradesh 221005, India 

골목에 있으니 아씨가트에서 로컬 비지니스에 문의 하는 게 빠릅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무, 화-토: 7:30am - 3:30am, 일: 7:30am - 12:00am 

인도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른다는 바라나시(Varanasi). 바라나시에 무엇이 있기에 그 많은 사람은 바라나시에 가는가?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가장 큰 화장터. ⓒ 이형수

어떤 사람들은 바라나시를 ‘삶과 죽음의 경계’, ‘영혼의 쉼터’와 같은 거창한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그보다는 실체적인 것들을 찾아간다.

그 실체적인 것 중에서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바로 화장터다. 어느 문화에서도 화장터를 일반사람에게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곳은 매일 수 없이 시체를 태운 재와 연기를 볼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확연히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본다고 그다지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인도 바라나시 Ghat의 낮 풍경. ⓒ 이형수

인도 곳곳에 강을 옆에 둔 화장터가 있긴 하지만, 가장 성스러운 갠지스 강(Ganges)의 화장터와는 감히 규모나 비용, 인기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매년 약 10만 명 이상의 시신이 갠지스 강(강가 강)의 화장터에 실려온다. 화장터로 가는 좁은 골목에서는 “Ram nam satya hai”라고 외치며 시신을 든 남성들을 몇 분 간격으로 계속 볼 수 있다. 

* Ram nam satya hai : ‘Ram의 이름은 진실이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Ram은 라마 신을 말한다. 이 말은 ‘죽은 사람은 라마신의 진실(숨)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매일 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한다. 의식을 보기 위해, 많은 인도인과 여행자들이 모인다. ⓒ 이형수
갠지스 강(강가 강)에서 화장을 이렇게 헌신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힌두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윤회 사상이 있다. 가장 성스러운 강에서 사후를 맞는 것이 다음 세상에 나올 때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성스러운 갠지스 강(강가 강)의 생성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주민들은 힌두교에서 가장 추앙받는 신 중의 하나인 시바(시와) 신이 전 세계를 집어삼킬 만한 큰물이 떨어지는 것을 자신의 머리로 받아 강으로 흐르게 했다는 설을 가장 많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새벽녘, 우리를 배로 안내하는 소년 ⓒ 이형수
화장터에 가보면, 화장되는 장소도 사회 계급에 따라, 돈의 여유에 따라 다르며 태우는 나무의 종류도 다르다. 가장 비싼 땔감으로는 Sandal Wood(백단향) 종류가 있으며 부자들은 땔감으로 몇 백만 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화장 후, 아들이나 친지가 시체의 가슴뼈를 모아서 배를 타고 갠지스 강(강가 강)에 던진다. 

갠지스 강(강가 강)은 종교적으로는 성스러울지는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아주 오염되어 있다. 책에서는 하천의 대장균 검출 한계치의 30배가 넘는 대장균이 살고 있다고 한다. 화장된 시체와 화장되지 않은 인간의 시체(아이들, 독사에 물린 사람, 임산부, 사두, 나병환자는 순수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화장하지 않는다)와 동물의 시체가 강으로 들어오고, 하수구도 강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건기에는 유속도 느려진다. 침전물들은 유속이 느린 곳에 퇴적된다.

성스러운 목욕을 하는 인도인들. 화장터와 Ghat의 반대편 강가에 혹자는 시체가 많이 몰린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강 반대편을 향해 출발한지 5분도 채 안 되어, 보트의 줄에 걸려 떠내려가지 않는 한 남자의 시체를 봤다. ⓒ 이형수

이런 곳에서 매일 목욕을 하고, 그 물을 마시는 광경이 타지인에게는 신기하다 못 해,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들만의 성스러운 의식과 행동들이 바라나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학적으로는 오염되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순수한 이곳… 모순적인 매력을 지닌 성스러운 이 젖줄을 보기 위해 수 많은 순례자가 찾으며, 축제나 성스러운 기간에는 그 수가 가히 엄청나다고 한다. 이런 바라나시의 풍경이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겠지만, 나의 눈을 통해 본 바라나시의 풍경을 소개한다.

바라나시(Varanasi)의 가장 신비로운 시간은 아침이다. 갠지스 강(강가 강)의 물안개가 신비스럽게 수면을 감돈다. 순례자들은 아침 일찍 목욕재계하고, 목욕이 끝난 후 명상을 하는 순례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여행객이나 관광객들은 아침 일찍 배를 빌려, 이런 광경을 강 중앙에서 바라보곤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길 위의 교실] 현세의 끝에서 - 모순적인 매력이 있는 '인도 바라나시'

사진으로 보는 Varanasi는 매력적인 장소지만, 이상하게도 Varanasi에서 며칠 되지 않아 지쳐버렸다. 매일같이 들어와서, 아침저녁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관광객들과 마리화나를 팔려고 끈질기게 붙는 젊은 인도 애들, 인도의 여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인파로 북적대는 바라나시에서 잠시 방향성을 잃었다고나 할까?

매일 같은 광경 속에서 특별히 할 일을 찾지 못한 나는 3일째부터는 강가에서 멍하니 강을 바라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때로는 시체가 떠내려오는 것도 보고, 때로는 배를 빌려 저 멀리 강 건너편에 혼자 노를 저어 가볼까 생각도 해봤다. 여행하다가 한 곳에 며칠 있게 되면,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장소가 생기게 되고, 다른 곳보다 그곳에 자주 가게 되곤 하는데. Varanasi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지금은 그 Ghat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인적이 뜸했던 곳이었던 것만은 기억한다.

며칠 그 Ghat에서 앉아서 강을 쳐다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

처음 만난을 때 Babu,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하지도 않았지만, 연주를 선보여 주었다. ⓒ 이형수
빠뿌의 딸 무갈 ⓒ 이형수
그 사람도 나만큼 외로이 앉아서 강가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아들로 보이는 4~5살 된 아이가 여기저기 혼자서 뛰놀곤 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빠뿌(Babu),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에, 여태껏 내가 보지 못한 악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아쟁처럼 키는 현악기인데, 빠뿌 말로는 라자스탄 악기인 ‘라븐카’라 했다.
라자스탄이라면, 인도의 서쪽인데, 혹시 거기서 왔느냐고 하니, 라자스탄州 자이푸르 변두리 시골에 자기네 집이 있다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빠뿌와 빠뿌의 딸 무갈, 그리고 동네꼬마 ⓒ 이형수
사진 속에는 무슨 동화처럼 흐릿한 초점에 아리따운 아내 옆에, 전통복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빠뿌가 라븐카를 들고, 호수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아이들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랑스러운 가족을 두고 라자스탄을 왜 떠났느냐고 물어봤다.

그의 얘기인즉, 라자스탄에서 만난 서양 여행객이 있었는데,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다, 라자스탄 다음에는 바라나시로 갈 계획이니, 바라나시에서 다시 음악을 가르쳐달라고 했단다. 물론 교습비를 내고 말이다. 빠뿌에게는 그 교습비가 꽤 괜찮은 수입이었던 것 같다. 황당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 말을 믿고, 빠뿌는 바라나시로 왔고, 하지만 바라나시로 온지 2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전화도 없이 어떤 식으로 그를 만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 여행객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커 보였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한 주 전부터 시름시름 아파서, 돈벌이도 못하고, 낮 동안에 거의 Ghat에서 누워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근처 외국에서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가 있어서, 진통제류라도 조금 받아와서 먹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늘 혼자 놀아야 했던 무갈. ⓒ 이형수
하루는 지나가는 관광객 중에 독일에서 온 간호사가 있어서, 빠뿌를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의사를 만나보라”는 뻔한 이야기만 하고 횅하니 가버린다.
의사에게 가볼 만한 처지로 보이는지? 괜히 내가 화가 났었다.

빠뿌와 나는 거의 매일 만났고, 빠뿌의 딸(처음에는 아들인 줄만 알았다)인 무갈과도 금세 친해져, 무갈을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배도 태워주곤 했다. 

아픈 모습의 Babu ⓒ 이형수
아버지인 빠뿌가 아프니, 무갈은 늘 혼자 놀아야 했고, 그것도 라자스탄 말이 바라나시에서 쓰는 말과 달라, 친구도 만들기 어려웠다. 매일 같은 옷에다, 아직 뒷 처리도 아버지가 주로 해주는데, 며칠이 지나니 옷에서 냄새도 나고, 씻겨주고 싶은 맘이 한결같았으나, 남의 딸을 내가 씻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가 아픈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무갈은 해맑게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빠뿌와 내가 짜이를 마시면, 어느새 금세 나타나서 자기 것도 시켜서 배달해온다.

빠뿌와 만나는 동안 만 31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빠뿌가 내 생일 축하곡을 직접 연주해주었다. 

내 생일날 곡을 연주해준 Babu. ⓒ이형수
매일 몇 잔이고 마시던 설탕과 같던 짜이. ⓒ 이형수
빠뿌, 무갈과 며칠간 계속 지냈지만,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야 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었지만, 여행이 1년도 넘어간 시점에 이별과 만남은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고리같이 느껴졌다. 

떠나기 전, 빠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도 뭐라도 한줌 쥐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늘 설탕이 반인 짜이로 배를 채우는 무갈이 안쓰러워 저녁이라도 같이 한끼 사서 먹이라고, 돈을 좀 쥐어줬다. 다음 날 아침에 물어보니,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협잡꾼한테 사모사(인도식 튀김만두)를 좀 사오라고 시켰는데, 그 길로 날라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을 같이 보곤 했는데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잘 못 먹는 무갈이 안타까워 무갈을 데리고, 근처 한국식당에 가서, 애들이 좋아하는 치킨가스를 사서 먹였더니, 너무 잘 먹었다. 한번은 돈 없는 빠뿌에게 비싼 치킨가스를 사달라고 할까봐, 그 집을 지나쳤더니, 온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어 재꼈다. 할 수 없이 또 사줘야만 했다.

떠나는 날 밤, 내 손에 장난감 헤나로 문양을 그리는 귀여운 무갈. ⓒ 이형수
마지막 떠나는 날 밤, 아쉬움을 달래며 밤늦게까지 이 부녀와 같이 있었다. 빠뿌의 몸도 그렇고, 그 서양여행객이 나타날 일도 없고, 홀로 노는 무갈을 위해서도 최선의 방법은 라자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라자스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라자스탄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빠뿌를 설득하였다. 그도 그러고 싶다고 동의를 한다. 이미 빠뿌가 돌아갈 차비가 없는 걸 알았기에, 빠뿌와 무갈이 서쪽 자이푸르까지 갈 수 있는 차비를 쥐어주며, 꼭 고향으로 가라고 한번 더 얘기해본다. 빠뿌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사실 후에 자이푸르에서 다시 만나자고, 빠뿌의 조카 핸드폰 번호를 받았었는데, 2주 후 자이푸르에 갔을 때 빠뿌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삼촌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바라나시의 밤, 가로등 불 아래 수많은 곤충과 모기떼가 날아다니고, 그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잠자리를 피는 그부녀를 두고 나는 그렇게 돌아서야 했다. 죄책감과 아쉬움, 무력함을 같이 느끼며. 언젠가는 빠뿌가 그의 고향 라자스탄으로 돌아가 그의 아내와 아이들과 사진 속 호숫가에 모여 앉아 라븐카를 키고 있을 것을 상상하며….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인도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른다는 바라나시(Varanasi). 바라나시에 무엇이 있기에 그 많은 사람은 바라나시에 가는가?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가장 큰 화장터. ⓒ 이형수

어떤 사람들은 바라나시를 ‘삶과 죽음의 경계’, ‘영혼의 쉼터’와 같은 거창한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그보다는 실체적인 것들을 찾아간다.

그 실체적인 것 중에서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바로 화장터다. 어느 문화에서도 화장터를 일반사람에게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곳은 매일 수 없이 시체를 태운 재와 연기를 볼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확연히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본다고 그다지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인도 바라나시 Ghat의 낮 풍경. ⓒ 이형수

인도 곳곳에 강을 옆에 둔 화장터가 있긴 하지만, 가장 성스러운 갠지스 강(Ganges)의 화장터와는 감히 규모나 비용, 인기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매년 약 10만 명 이상의 시신이 갠지스 강(강가 강)의 화장터에 실려온다. 화장터로 가는 좁은 골목에서는 “Ram nam satya hai”라고 외치며 시신을 든 남성들을 몇 분 간격으로 계속 볼 수 있다.

* Ram nam satya hai : ‘Ram의 이름은 진실이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Ram은 라마 신을 말한다. 이 말은 ‘죽은 사람은 라마신의 진실(숨)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매일 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한다. 의식을 보기 위해, 많은 인도인과 여행자들이 모인다. ⓒ 이형수
갠지스 강(강가 강)에서 화장을 이렇게 헌신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힌두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윤회 사상이 있다. 가장 성스러운 강에서 사후를 맞는 것이 다음 세상에 나올 때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성스러운 갠지스 강(강가 강)의 생성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주민들은 힌두교에서 가장 추앙받는 신 중의 하나인 시바(시와) 신이 전 세계를 집어삼킬 만한 큰물이 떨어지는 것을 자신의 머리로 받아 강으로 흐르게 했다는 설을 가장 많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새벽녘, 우리를 배로 안내하는 소년 ⓒ 이형수
화장터에 가보면, 화장되는 장소도 사회 계급에 따라, 돈의 여유에 따라 다르며 태우는 나무의 종류도 다르다. 가장 비싼 땔감으로는 Sandal Wood(백단향) 종류가 있으며 부자들은 땔감으로 몇 백만 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화장 후, 아들이나 친지가 시체의 가슴뼈를 모아서 배를 타고 갠지스 강(강가 강)에 던진다.

갠지스 강(강가 강)은 종교적으로는 성스러울지는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아주 오염되어 있다. 책에서는 하천의 대장균 검출 한계치의 30배가 넘는 대장균이 살고 있다고 한다. 화장된 시체와 화장되지 않은 인간의 시체(아이들, 독사에 물린 사람, 임산부, 사두, 나병환자는 순수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화장하지 않는다)와 동물의 시체가 강으로 들어오고, 하수구도 강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건기에는 유속도 느려진다. 침전물들은 유속이 느린 곳에 퇴적된다.

성스러운 목욕을 하는 인도인들. 화장터와 Ghat의 반대편 강가에 혹자는 시체가 많이 몰린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강 반대편을 향해 출발한지 5분도 채 안 되어, 보트의 줄에 걸려 떠내려가지 않는 한 남자의 시체를 봤다. ⓒ 이형수

이런 곳에서 매일 목욕을 하고, 그 물을 마시는 광경이 타지인에게는 신기하다 못 해,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들만의 성스러운 의식과 행동들이 바라나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학적으로는 오염되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순수한 이곳… 모순적인 매력을 지닌 성스러운 이 젖줄을 보기 위해 수 많은 순례자가 찾으며, 축제나 성스러운 기간에는 그 수가 가히 엄청나다고 한다. 이런 바라나시의 풍경이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겠지만, 나의 눈을 통해 본 바라나시의 풍경을 소개한다.

바라나시(Varanasi)의 가장 신비로운 시간은 아침이다. 갠지스 강(강가 강)의 물안개가 신비스럽게 수면을 감돈다. 순례자들은 아침 일찍 목욕재계하고, 목욕이 끝난 후 명상을 하는 순례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여행객이나 관광객들은 아침 일찍 배를 빌려, 이런 광경을 강 중앙에서 바라보곤 한다.


 현세의 끝에서 - 모순적인 매력이 있는 '인도 바라나시'사진으로 보는 Varanasi는 매력적인 장소지만, 이상하게도 Varanasi에서 며칠 되지 않아 지쳐버렸다. 매일같이 들어와서, 아침저녁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관광객들과 마리화나를 팔려고 끈질기게 붙는 젊은 인도 애들, 인도의 여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인파로 북적대는 바라나시에서 잠시 방향성을 잃었다고나 할까?

매일 같은 광경 속에서 특별히 할 일을 찾지 못한 나는 3일째부터는 강가에서 멍하니 강을 바라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때로는 시체가 떠내려오는 것도 보고, 때로는 배를 빌려 저 멀리 강 건너편에 혼자 노를 저어 가볼까 생각도 해봤다. 여행하다가 한 곳에 며칠 있게 되면,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장소가 생기게 되고, 다른 곳보다 그곳에 자주 가게 되곤 하는데. Varanasi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지금은 그 Ghat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인적이 뜸했던 곳이었던 것만은 기억한다.

며칠 그 Ghat에서 앉아서 강을 쳐다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

처음 만난을 때 Babu,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하지도 않았지만, 연주를 선보여 주었다. ⓒ 이형수

 

빠뿌의 딸 무갈 ⓒ 이형수
그 사람도 나만큼 외로이 앉아서 강가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아들로 보이는 4~5살 된 아이가 여기저기 혼자서 뛰놀곤 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빠뿌(Babu),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에, 여태껏 내가 보지 못한 악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아쟁처럼 키는 현악기인데, 빠뿌 말로는 라자스탄 악기인 ‘라븐카’라 했다.
라자스탄이라면, 인도의 서쪽인데, 혹시 거기서 왔느냐고 하니, 라자스탄州 자이푸르 변두리 시골에 자기네 집이 있다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빠뿌와 빠뿌의 딸 무갈, 그리고 동네꼬마 ⓒ 이형수
사진 속에는 무슨 동화처럼 흐릿한 초점에 아리따운 아내 옆에, 전통복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빠뿌가 라븐카를 들고, 호수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아이들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랑스러운 가족을 두고 라자스탄을 왜 떠났느냐고 물어봤다.

그의 얘기인즉, 라자스탄에서 만난 서양 여행객이 있었는데,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다, 라자스탄 다음에는 바라나시로 갈 계획이니, 바라나시에서 다시 음악을 가르쳐달라고 했단다. 물론 교습비를 내고 말이다. 빠뿌에게는 그 교습비가 꽤 괜찮은 수입이었던 것 같다. 황당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 말을 믿고, 빠뿌는 바라나시로 왔고, 하지만 바라나시로 온지 2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전화도 없이 어떤 식으로 그를 만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 여행객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커 보였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한 주 전부터 시름시름 아파서, 돈벌이도 못하고, 낮 동안에 거의 Ghat에서 누워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근처 외국에서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가 있어서, 진통제류라도 조금 받아와서 먹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늘 혼자 놀아야 했던 무갈. ⓒ 이형수
하루는 지나가는 관광객 중에 독일에서 온 간호사가 있어서, 빠뿌를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의사를 만나보라”는 뻔한 이야기만 하고 횅하니 가버린다.
의사에게 가볼 만한 처지로 보이는지? 괜히 내가 화가 났었다.

빠뿌와 나는 거의 매일 만났고, 빠뿌의 딸(처음에는 아들인 줄만 알았다)인 무갈과도 금세 친해져, 무갈을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배도 태워주곤 했다.

아픈 모습의 Babu ⓒ 이형수
아버지인 빠뿌가 아프니, 무갈은 늘 혼자 놀아야 했고, 그것도 라자스탄 말이 바라나시에서 쓰는 말과 달라, 친구도 만들기 어려웠다. 매일 같은 옷에다, 아직 뒷 처리도 아버지가 주로 해주는데, 며칠이 지나니 옷에서 냄새도 나고, 씻겨주고 싶은 맘이 한결같았으나, 남의 딸을 내가 씻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가 아픈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무갈은 해맑게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빠뿌와 내가 짜이를 마시면, 어느새 금세 나타나서 자기 것도 시켜서 배달해온다.

빠뿌와 만나는 동안 만 31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빠뿌가 내 생일 축하곡을 직접 연주해주었다.

내 생일날 곡을 연주해준 Babu. ⓒ이형수

 

매일 몇 잔이고 마시던 설탕과 같던 짜이. ⓒ 이형수
빠뿌, 무갈과 며칠간 계속 지냈지만,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야 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었지만, 여행이 1년도 넘어간 시점에 이별과 만남은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고리같이 느껴졌다.

떠나기 전, 빠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도 뭐라도 한줌 쥐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늘 설탕이 반인 짜이로 배를 채우는 무갈이 안쓰러워 저녁이라도 같이 한끼 사서 먹이라고, 돈을 좀 쥐어줬다. 다음 날 아침에 물어보니,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협잡꾼한테 사모사(인도식 튀김만두)를 좀 사오라고 시켰는데, 그 길로 날라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을 같이 보곤 했는데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잘 못 먹는 무갈이 안타까워 무갈을 데리고, 근처 한국식당에 가서, 애들이 좋아하는 치킨가스를 사서 먹였더니, 너무 잘 먹었다. 한번은 돈 없는 빠뿌에게 비싼 치킨가스를 사달라고 할까봐, 그 집을 지나쳤더니, 온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어 재꼈다. 할 수 없이 또 사줘야만 했다.

떠나는 날 밤, 내 손에 장난감 헤나로 문양을 그리는 귀여운 무갈. ⓒ 이형수
마지막 떠나는 날 밤, 아쉬움을 달래며 밤늦게까지 이 부녀와 같이 있었다. 빠뿌의 몸도 그렇고, 그 서양여행객이 나타날 일도 없고, 홀로 노는 무갈을 위해서도 최선의 방법은 라자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라자스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라자스탄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빠뿌를 설득하였다. 그도 그러고 싶다고 동의를 한다. 이미 빠뿌가 돌아갈 차비가 없는 걸 알았기에, 빠뿌와 무갈이 서쪽 자이푸르까지 갈 수 있는 차비를 쥐어주며, 꼭 고향으로 가라고 한번 더 얘기해본다. 빠뿌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사실 후에 자이푸르에서 다시 만나자고, 빠뿌의 조카 핸드폰 번호를 받았었는데, 2주 후 자이푸르에 갔을 때 빠뿌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삼촌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바라나시의 밤, 가로등 불 아래 수많은 곤충과 모기떼가 날아다니고, 그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잠자리를 피는 그부녀를 두고 나는 그렇게 돌아서야 했다. 죄책감과 아쉬움, 무력함을 같이 느끼며. 언젠가는 빠뿌가 그의 고향 라자스탄으로 돌아가 그의 아내와 아이들과 사진 속 호숫가에 모여 앉아 라븐카를 키고 있을 것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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