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는 쾰른대성당을 멀리 하자 1949년부터 옛 서독의 수도였던 본이 눈앞에 바로 다가선다. 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었을 때 40여 년간 서독의 수도로서 독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본은 우리에게 악성 베토벤의 고향이자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본과 쾰른 사이에 놓여진 무한질주의 아우토반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도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 베토벤 동상과 뮌스터 교회 첨탑이 한 눈에 들어오는 구시가지 광장 

본의 첫인상은 수도라는 선입견과 달리 너무나 소박하고 조용한 도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개의 수도들은 세련된 고층 빌딩이나 화려한 네온사인이 도시를 감싸고, 빌딩 숲 사이로 수많은 자동차의 물결이 흐르며, 잘 차려 입는 도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본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런 것은 하나의 선입견에 불과함을 느끼게 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도 없고, 자동차로 인해 교통이 막히는 현상도 볼 수 없다. 그 대신 로마시대 때부터 지어진 대성당과 중세시대 때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축물, 시간에 의해 낡아진 옛 시가지 광장 등이 여느 수도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본이 과거에 수도였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세련된 거리와 카페, 레스토랑, 호텔 등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본의 분위기는 중세풍의 우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로마시대 때 '카스트라보넨시아'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던 본은 16세기 이후 쾰른 대주교 겸 선제후의 궁정도시로 성장하였다. 궁을 둘러싼 귀족들의 집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본은 독일에서 부유하고 교양이 넘치는 도시로 변모하였다. 많은 귀족과 부를 바탕으로 본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화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베토벤 같은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베토벤이 태어날 당시 인구는 1만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30만명이 훌쩍 넘는다. 여느 도시와는 달리 이런 역사적인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본은 생각만큼 번잡스럽지 않다. 프랑크푸르트의 높은 현대식 빌딩이나 뮌헨처럼 높은 시청사처럼 도시를 상징할 만한 건축물이 없다. 굳이 본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꼽는다면 본대학이나 베토벤 하우스처럼 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중산층 집들이다. 어쩌면 소박한 본의 이미지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된다.

바로크 양식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옛 시가지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인해 활기가 넘쳐난다. 오렌지 빛의 오후 햇살이 뮌스터광장에 뒹굴고, 광장 중심에 세워진 베토벤 동상은 햇살을 받아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리고 지나치는 노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본의 여행은 시작된다.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은 단연 베토벤 생가다.

보통 여행의 출발점이 중앙역이나 시청사지만 본에서만큼은 악성 베토벤이 태어난 집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본의 건축물이나 박물관을 관람하기보다는 베토벤이 22세까지 살았던 곳을 찾아가 그의 향기를 쫓는 것이다. 위대한 음악가가 태어난 집과 그가 뛰어놀던 골목길, 부모님 손에 끌려가던 교회, 산책을 즐겼던 라인 강변, 오르간을 연주하던 대성당,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꽃피웠던 선술집 등 그와 관련된 유적지는 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두툼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짙은 담쟁이 잎 사이로 여러 개의 베토벤 흉상이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생가는 외부에서 보면 다른 집과 별 차이 없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과 파릇한 담쟁이넝쿨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외부에서 문을 열면 바로 방으로 이어질 것 같지만 베토벤 하우스는 건물 안으로 마당과 정원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건물 2채가 들어서 있는 구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헐릴 집이었지만 본 시민의 12명이 기금을 모아 생가를 구입해 베토벤 기념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생가 내부에는 작은 정원과 여러 개의 베토벤 흉상이 시선을 끈다. 흉상들을 얼핏 보면 베토벤의 모습이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흉상의 모델은 베토벤이 분명하지만 조각가가 다르기 때문인지 그의 흉상의 얼굴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바람결에 날린 듯한 물결 모양의 머리카락이 베토벤임을 알려준다.

마당에 세워진 흉상을 감상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그의 음악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내부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베토벤과 관련된 다양한 유품들이 여행자의 시선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3층 건물에 12개 방에는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품 15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베토벤의 초상화, 그가 쓰던 악기, 친필 악보 등 베토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베토벤 생가 이외에도 본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산재돼 있다. 시장광장을 굽어보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옛 시청사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본 여름 노천 문화축제'의 배경이 되어왔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본 교회는 쾰른대성당의 초석이 마련되기 시작할 즈음에 완공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다.

SS 카시우스와 플로렌티누스에게 바쳐진 유서 깊은 뮌스터교회는 라인 강변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는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본은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답게 곳곳에 눈여겨 볼 만한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 독일 본! 이것만은 알고 떠나세요△가는 길=우리나라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운항하고 있다. 서독의 옛 수도였던 본까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슈만 하우스=본은 베토벤의 고향이지만, 독일이 낳은 비운의 천재 슈만이 만년을 보낸 곳이다. 본의 구시가지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슈만이 자신의 아내이자 성악가인 클라라와 함께 살았던 '슈만하우스'가 있다.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겸 왈츠의 대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바로 이곳이다. 여름 도나우(다뉴브)강엔 뜨거운 날씨를 피해 수영을 하고 요트를 타는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여유롭다. 이게 자유다.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겸 왈츠의 대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바로 이곳이다. 여름 도나우(다뉴브)강엔 뜨거운 날씨를 피해 수영을 하고 요트를 타는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여유롭다. 이게 자유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뜨는'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코 독일 베를린이다. 싼 집값, 개방된 문화에 매료된 세계 각지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베를린은 곧 자유로운 영혼들의 아지트가 됐다. 1990년대 '힙스터(hipster·비주류 대안 문화를 일구는 개성 넘치는 젊은 층)' 문화를 이끌던, 여전히 가장 '힙'한 동네로 불리는 영국 런던 쇼디치(shoreditch)의 예술가 상당수가 최근 베를린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중심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넥스트 베를린'이 뜬다.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을 간직한 도시, 오스트리아 빈(Wien)이다. 베를린을 쥐락펴락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빈으로 주거지를 옮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예술에 '포화'란 단어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무리이겠으나 새로운 영감을 받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하기야 예술이란 단어를 도시로 바꿔 말한다면 빈 아닐까.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모차르트가 기거했던 방이고,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프로이트가 상담했던 공간이며, 또다시 몇 발짝 옮기면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세기말적 미학이 펼쳐졌던 이곳에서 예술을 떼어놓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왕조는 패망했지만 문화는 영원하다. 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고 불온한 열기가 도전적인 창조와 파괴, 도발적인 반항과 거역의 힘으로 만개했던 세기말 빈 예술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본능을 자극한다. 전통 화풍에 반기를 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실레의 정신은 영국 출신 설치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등에 영향을 주며 현대성을 강화하고 있다. 틀에 박힌 조성(調性)을 파괴한 혁명적 음악가 쇤베르크는 "평범한 사람이 언젠간 내 음악을 흥얼거릴 것"이라 했다. 구스타프 말러도 "나의 시대는 올 것"이라 했다. 그들은 예언대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심리학의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가 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하다. 너무나 찬란해서 애잔한, 그 빈을 걷고 있다.

빈의 카페 문화. 빈(비엔나)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우유가 들어간 멜랑쥐와 생크림이 들어간 아인슈페너가 있을 뿐.
빈의 카페 문화. 빈(비엔나)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우유가 들어간 멜랑쥐와 생크림이 들어간 아인슈페너가 있을 뿐.
모든 것은 카페에서 시작한다

빈에서 카페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다. 문화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빈 3대 카페'라 불리는 카페 첸트랄(café Central)로 향했다. 이렇게 '3대' '5대' 등으로 숫자를 매겨 무리짓고 서열을 세우는 건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카페 첸트랄은 1876년 문을 연 뒤 카페와 살롱 문화의 상징이 됐다. 빈을 대표하는 지식인 알텐부르크가 자주 찾았다고 해서 입구에 그가 앉아있는 동상이 있다. 클림트도 애인과 함께 자주 찾았다고 한다. 히틀러와 트로츠키도 단골이었다.

클래식한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낯선 풍경은 카페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였다. 슈트 차림에 어깨를 들썩이며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는 손님에게 눈을 찡긋해주는 매너도 잊지 않는다. 열정적인 연주에 박수로 화답한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검은 앞치마를 한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다. 입구 앞쪽에는 도서관에서 보던 나무 봉으로 된 신문철이 있다. 서걱서걱, 차르르 하며 신문 넘기는 소리가 반갑다. 피아노와 연주자, 신문, 앞치마에 제복을 차려입은 종업원은 첸트랄 같이 전통적인 카페의 구성 요소란다. 100년 전 이곳에선 정신의학자 겸 작가 슈니츨러, 과거 양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는 제체시온(Sezession·分離) 운동을 일으킨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젊은 빈'의 중심인물인 문예비평가 바르 등 많은 예술가가 모여 토론하고 신문을 보고 정치인의 연설을 들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들이 묶음 다발로 쏟아지기도 어려워 보인다. 절망적이고 암울했던 세기말에 영감과 상상력이 가득한 빛의 도시로 만든 바탕엔 카페 문화가 있었다. 창조와 지식은 유기적인 얽힘과 나눔에서 시작한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나가란 소리는 없다. 햇살을 등받이 삼아 책장을 넘긴다.

빈 관광청에서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카페 스펄(Sperl)도 찾았다. 1880년 문을 연 카페로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마음을 고백했던 그 장소다. 바로크풍의 실내장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말을 남긴 19세기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카페 무제움(Museum), 프로이트가 빈에 살 때 애용했던 카페 란트만(Landtmann)을 비롯해 빈엔 2000개가 넘는 카페가 있는데 지금도 이처럼 유서 깊은 카페가 150여곳에 달한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커피하우스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레오폴드 뮤지엄 등이 있는 미술관 밀집지역 MQ.
레오폴드 뮤지엄 등이 있는 미술관 밀집지역 MQ.
압도적인 황금빛, 욕망의 적극적 출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크지 않은 도시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였다. 볼 게 너무 많아 대체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동선 짜기가 어려울 지경. 그나마 다행인 건 600년 역사의 합스부르크 왕조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방어 성벽을 허물고 건설한 환상(環狀) 도로(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따라 대형 볼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빈은 2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링슈트라세로 둘러싸인 곳이 1구역으로 그 중심이다. 1865년 완공돼 올해로 150주년을 맞았다. 5㎞의 도로를 따라 90여개의 거리와 광장, 500여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빈 관광의 출발점이라 하는 케른트너 거리를 지나다 보면 13세기부터 300년간에 걸쳐 완공된 성 슈테판 성당을 비롯해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대칭으로 서서 위용을 뽐낸다. 시청과 빈 국립대학의 르네상스 풍 건물을 지나면 세계적인 수준의 오페라 극장에 도달한다. 시민의 숲이라는 정원을 비롯해 곳곳에 숨통을 틔우는 쉼터가 있다.

베토벤이 살았던 집과 레스토랑, 햇 와인인 호이리겐 등을 갖춘 레스토랑 호이리거(heuriger), '없는 게 없다'는 재래시장 나쉬마크트, 뉴욕 센트럴파크 두 배 크기의 놀이터 겸 숲인 프라터(prater) 등 발걸음을 재촉했는데도, 주어진 사흘이란 시간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보려면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72시간 동안 지하철·버스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빈 카드(21.9유로)를 구입했다. 미술관 등도 일부는 할인이 된다.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궁전과 최근엔 뮤지컬 '엘리자베스'로도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왕비(일명 시시·Sisi)의 여름 별궁이었던 쉔부른 궁전 등을 모두 지하철로 갈 수 있다. 쉔부른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1400여개 방 중 일반인에게 40개 방이 개방되는데 1시간 코스인 그랜드 투어(15.9유로)가 가장 인기다. 작은 베르사유궁전이라 불리듯 1.7㎞에 달하는 정원이 볼거리다.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가 있는 레스토랑.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가 있는 레스토랑.

클림트의 '키스'는, 단단히 싸맨 마음의 봇짐이 한 번에 팍 소리 내며 터지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온몸을 누가 붕대로 꽁꽁 두르는 듯했다. '그럴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감탄사는 온몸에서 튀어나오는데, 압도되는 기운에 발걸음을 떼기 힘든 느낌. 몰락과 쇠퇴의 순간을 황금빛으로 승화했던 그의 머릿속이 더 궁금해지던 시간이었다. 전날 뮤지엄 카르티에(Museum Quartier·MQ)로 불리는 박물관 밀집지역 내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마주한 에곤 실레 작품이 송곳처럼 마음 구석구석을 쪼았다면 벨베데레의 클림트 작품은 거대한 망치로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어느 것이 더 좋았냐고 묻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게 느껴질 만큼.

건축가이자 화가인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집합 주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창작 공간으로서 빈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곡선을 사랑하고 색채에 능했던 그의 손에서 탄생한 주택은 마치 고정된 시멘트가 아닌 꿀렁꿀렁한 유기체 같은 느낌을 준다. 52개 주택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전시관 겸 레스토랑인 쿤스트하우스는 스페인 가우디의 작품을 연상시키면서도 투명한 색채감이 한결 청량하다.

1 최근 바뀐 빈의 신호등. 남남 커플이 걷는 모습이다. 남녀·여여 커플도 있다. 개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2 성 슈테판 성당. 3 비엔나식 아이스커피.
1 최근 바뀐 빈의 신호등. 남남 커플이 걷는 모습이다. 남녀·여여 커플도 있다. 개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2 성 슈테판 성당. 3 비엔나식 아이스커피.
빈 관광청 추천 맛집·볼거리

쇼콜라트(Xocolat)
 400종이 넘는 다양한 초콜릿이 있는 곳. 프라이융(Freyung) 2, 1010 Wien, www.xocolat.at

랍스텔(Labstelle) 빈 음식 전문 식당. Lugeck 6, www.labstelle.at

팔멘하우스(Palmenhaus) 프랑스 식당. Burggarten 1, www.palmenhaus.at

카페 스펄 비포 선라이즈 촬영소. Gumpendorfer Str. 11, 1060 Wien, www.cafesperl.at

마이어(Mayer) 베토벤이 기거했던 곳. 현재 와인&레스토랑. Pfarrplatz 2, 1190 Wien, www.pfarrplatz.at

벨베데레궁전 Prinz-Eugen-Str. 27, 1030 Wien, www.belvedere.at

쉔부른 궁전 Schönbrunner Schloßstraße 47, 1130 Wien, www.schoenbrunn.at

빈 3대 카페

카페 자허
 초콜릿 케이크인 자허토르테(Sacher Torte)의 원조. 필하모니커르슈트라세(Philharmonikerstrasse) 4, 1010 Wien.

카페 데멜 왕실에 납품하던 베이커리. 콜마르크트(Kohlmarkt)거리 14, 1010 Wien.

카페 첸트랄 지식인들의 집합소. 헤렌가세(Herrengasse) 14, 1010 Wien.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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