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바간

미얀마 바간의 쉐산도 파고다(불탑)에 오른 관광객들이 탑에 걸터앉아 일몰(日沒)을 바라보고 있다.
미얀마 바간의 쉐산도 파고다(불탑)에 오른 관광객들이 탑에 걸터앉아 일몰(日沒)을 바라보고 있다. 해 질 녘 평원에 펼쳐진 수천개의 파고다를 바라보는 것은 미얀마 여행의 백미다. / 이기문 기자
해 질 녘 까슬한 흙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5층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미얀마의 옛 도시 바간. 미얀마의 사원과 파고다(불탑을 이르는 말)에 들어설 때는 맨발이 필수. 인구의 85% 이상이 불교 신자인 미얀마인들이 신성한 자리를 세속과 구분하기 위해 지켜 온 전통이다.

바간의 42㎢ 평원에는 2300여개의 파고다가 솟아있다. 파고다군(群)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바간 왕조의 유산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3대 불교 유적으로 꼽힌다. 여행객들은 이곳 쉐산도 파고다에 올라 평원에 펼쳐진 수천개의 불탑(佛塔)을 15m 높이의 자리에서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탑에 오르자 황토와 녹음으로 물든 땅에 들어선 수천개의 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뉘엿뉘엿 떨어지는 해는 붉은 조명인 양 만물을 차별 없이 비추고, 탑들은 황금을 칠한 듯 빛난다. 파고다에 오른 이들의 얼굴 또한 노을빛을 반사해 노랗다가 붉게 변해갔다. 이윽고 소란했던 탑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바간의 일몰은 바라보는 이의 입을 기어이 다물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이 마력의 정체는 이곳 유적이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佛心)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미얀마인들은 수세기에 걸쳐 자발적으로 바간과 인접한 이라와디 강변의 흙을 퍼다 벽돌을 굽고 오롯이 탑을 쌓았다. 순정한 땀이 서린 이 땅에는 국가나 왕의 명령에 따른 강제 노역도, 착취로 인한 고통도 없다. 쉐산도 파고다에 몸을 누이고 바간의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불국정토(佛國淨土)를 염원하며 탑을 올린 미얀마인들의 곡진한 마음이 스미어 오는 듯하다. 마침내 해는 지평 너머로 자신을 숨겼고, 살갗에 슬며시 눌어붙은 아열대의 습기는 여행자의 노고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위무했다.

붉은 태양과 황금의 탑보다 더욱 빛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미소다. 미얀마 사람들은 하여간 눈만 마주쳤다 하면 그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는다. 미소에 굳었던 마음이 녹아 덩달아 웃게 될 때, 우리가 잃었다기보다는 잊고 있던 어떤 것을 떠올리게 된다. 같이 있던 일행들은 그것을 '선한 본성'이라고도, '순수'라고도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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