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표현으로 로마를 이탈리아의 심장이라 말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은 로마를 설명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문구 중 하나이다. 지금 나 역시 이 문구로 한 줄을 채우고 있으니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식상한 표현일지라도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로마(Rome)라는 도시다. 이런 로마에서 기차로 2시간 반. 덜컹거리는 레조날레(Regionale, 과거 우리나라 통일호, 비둘기호 정도 등급의 저가열차) 허름한 좌석 한 켠에 앉아 이탈리아 외곽을 달리다보면 로마와 전혀 다른 도시를 만나게 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가 성 프란체스코의 일생이 담긴 아씨시(Assisi)는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적이다. 하지만 이 정적함은 지루함과는 그 본질이 사뭇 다르다. 로마에서 맘껏 뛰놀던 심장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심장을 뛰게 하는 열정의 로마와 심장을 쉬게 하는 여유의 아씨시. 그 시간 사이사이 놓여있는 맛있는 식탁으로의 초대가 시작된다.

Intro. 흔히 일상에 지쳤을 때, 머릿속이 과부하가 걸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일 때,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라 느껴질 때,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도피처를 마련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낯선 곳에 나를 버려두고 훌훌 털어버리겠노라. 그러나 정작 여행을 떠나면 비우기보단 하나라도 더 머릿속, 마음속 그리고 사진기속에 담아오려 애를 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애석해하지 말지어다. 이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비우고자하는 여행이든 얻고자하는 여행이든 낯선 곳에서의 아름다운 식탁은 그 시간과 공간 사이사이에 항상 존재한다는 맛있는 사실.

모든 스타일의 총집합 로마
로마. 이탈리아의 수도, 콜로세오(Colosseo)의 위상이 숨 쉬는 곳,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로마의 휴일' 영화 촬영지. 이런 수식어들만으로 로마를 그려 본 나의 환상은 테르미니역(Stazione Termini) 밖으로 나선 직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나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울역이 노숙자의 천국이듯, 이곳 역시 집시와 불법노동자들의 집거지역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해가 빠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여행의 시작점이라 여겨지는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난 여행에 대한 전의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게 없어진 후였다. 이는 한국에서 너무 많은 기를 소진한 탓이었으리라.

자고로 여행이란 Data(정보)-Delete(삭제)-Reset(초기화)의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옳은 것 일진데 나는 어찌된 게 Data(정보)-Save(축적)-Overload(과부하)의 단계를 거쳤으니 말 다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런 나에게 테르미니 역의 노숙자와 흡연자들은 평생 동안 지켜왔던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을 약간, 아니 솔직히 그보다는 많이 사그라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곳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다. 패션, 음식, 예술의 모든 스타일이 총집합한다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건 짧은 시간 내 몸만 바지런하다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도시라는 말이다. 다행이도 첫날 내가 느낀 로마의 이미지는 흔히들 겪는 첫인상의 오류였을 뿐, 로마(roma)는 역시 아모르(amor: ‘사랑’의 이탈리아어)였다.

1. 아침 시간은 비교적 한산한 ‘에스퀼리노 재래시장’ 2. ‘스페인 광장’ 중앙 가라앉는 배 모양의 '바르카챠 분수‘ 3. 밤이 되면 ‘베네치아 광장’은 빛이 이탈리아 국기를 그린다. 4. 로마의 명물 ‘트레비 분수’
도시전체가 박물관? 도시전체가 미슐랭맛집!
우리나라 경주의 관광코스가 판에 박혀있듯, 로마 역시 정해진 관광지와 관광 순서가 있다. 콜로세오를 시작으로 포로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을 이은 후 사람들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명소탐방을 시작한다. 진실의 입-베네치아 광장-트레비 분수-스페인 광장. 물론 나 역시 정해진 코스, 방향으로 로마를 눈에 담은 건 다른 여행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누구보다 그 도시의 재래시장을 탐닉했으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마트 답사로 마무리했다. 테르미니 역에서 가까워 한인민박 사장들이 즐겨 찾는 에스퀼리노 재래시장은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인심 좋은 상설시장이다. 시장상인은 나와 같은 동양여자는 이제 너무 익숙하다는 듯, 거리낌 없이 인사를 하고 자잘한 과일들을 시식하길 권한다. ‘그라찌에(Grazie,‘고맙습니다’의 이탈리아어)' 나는 그들에게 미소와 함께 이 한마디를 건넨다.

사람들은 로마를 두고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과 같다고 말한다. 물론 넓은 땅에 달랑 두 세 개의 돌기둥이 세워 있는 곳을 두고 과거 무슨무슨 신전이 있었노라며 관광지로 지정한 모습은 조금의 억지스러움이 느껴져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로마의 모든 레스토랑이 미슐랭맛집 이라는 건 인정! 그만큼 어느 음식점을 들어가든지 맛이 기본은 한다. 엔쵸비(Anchovy:멸치과의 작은 물고기를 우리나라 젓갈처럼 염장해 발효시켜 사용한다.)가 들어간 음식만 아니라면 로마 레스토랑의 거의 모든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적당히 그러면서 상당히 잘 맞는다. 로마는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기 때문에 육지임에도 불구하고 해산물 요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로마는 모든 식재료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면서 모든 스타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참 합리적인 미식의 도시다.

1. 얇은 도우 위에 방울토마토와 생모짜렐라 치즈, 향긋한 바질의 하모니. 12유로 2. 뇨끼를 만드는 <일 끼안띠> 요리사의 미소는 그들이 입은 새하얀 조리복보다도 환하다. 3. <일 끼안띠>의 초록색 간판 위 검은 닭 모양, ‘끼안띠 와인’을 닮은 듯 고급스럽다. 4. <일 끼안띠>의 등심 스테이크. 정말 꾸밈없는 한 접시지만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인 사람들에게는 간혹 정성 없어 보이기도 한다. 18유로 5. 라구소스라고 빨간 미트소스를 생각한다면 우리와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 불러 온 전화위복. 돼지고기 그대로의 맛이 굉장히 고소했다. 9유로 6. 토마토 소스에 버무려진 감자로 만든 뇨끼 파스타는 조랭이 떡을 씹는 듯 재미롭다. 9유로
"미션! 아름다운 쌩얼을 찾아라"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이탈리아의 식문화의 특징을 비교하자면 도시별로 나누는 건 딱히 똑똑한 방법은 아니다. 기다란 장화모양의 이탈리아 반도를 세 토막으로 뚝.뚝.뚝 끊어내자면 밀라노와 베니스를 포함한 북부지역, 로마와 피렌체를 둔 중부지역, 나폴리와 시칠리아가 있는 남부지역 이렇게 세 지역 되시겠다. 물론 도시별로 대표적인 요리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지역별로 비슷한 색깔의 식문화 양상을 보인다. 로마와 아씨시는 이탈리아 중부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이탈리아 중부지역 요리는 맛이 진하고 강한 소스를 사용하는 요리가 대표적이다”라고 흔히 설명된다. 하지만 내가 겪은 로마의 레스토랑은 매장 인테리어부터 요리의 맛까지 참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이었다.

로마 트레비 분수 근처 <IL CHIANTI:일 끼안띠>라는 레스토랑은 마치 중세시대를 표현하듯 초록 넝쿨에 뒤덮여 있다.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에게 그 인지도가 꽤 높은 곳이라는 정보를 접수 후 방문한 곳이기에 맛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18유로 약 2만8000원 정도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Bistecca di manzo alla Buttera'는 쇠고기등심 스테이크다. 모양은 허술해보여도 그 맛은 좋다. 얇아 보이지만 적당한 식감이 느껴지는 스테이크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생파스타 요리를 흔히 볼 수 있다. 여러모로 편리성이 강조된 건조파스타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레스토랑마다 하나의 생파스타 요리는 반드시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맛 본 라구(Ragu)소스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뇨끼(Gnocchi)파스타는 내가 가진 생파스타에 관한 편견을 뒤집기 충분했다. 생파스타는 자칫 잘못 만들면, 밀가루 냄새와 달걀 비린내가 날 수 있지만 <일 끼안띠>를 비롯해 이탈리아에서 먹은 생파스타는 쫄깃한 식감이 두드러지며, 두꺼운 굵기에도 불구하고 소스와의 어우러짐이 뛰어나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이런 요리를 접하고 나면 항상 이 요리의 뒷모습이 궁금해진다. 있는 영어 없는 영어 다 동원해서 어렵사리 들어간(솔직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말에 그들은 흔쾌히 이방인인 내게 레스토랑의 가장 은밀한 장소를 활짝 열어주었다.) 주방은 한국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동선은 불을 사용하는 파스타 파트와 오븐을 사용하는 피자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고, 파스타 파트 한 쪽에서는 뇨끼를 만드는 요리사의 손길이 분주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고 말을 시키는 낯선 여행자이지만 그들은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반겼다. 몇 분전, 내가 먹은 맛있는 요리들, 그 요리들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그들의 미소에서 보았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 요리사에 그 요리구먼!!"

1. <올드브릿지>는 성수기가 되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믿지 못할 만큼의 길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젤라토 매니아들의 성지다. 2. 이탈리아에서는 매일 아침 모형이 아닌 진짜 음식을 진열해 고객을 유혹한다. 때문에 음식이 진열된 후 약 1~2시간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지켜내는 것이 아침 미션 중 하나라는 웃지못할 사실. 3. <올드브릿지>의 젤라토와 예쁜 여자에게만 올려준다는 부드러운 생크림. 하지만 역시 소문은 소문. 함께 간 모든 여자의 젤라토 위에 올려 진 저 하얀 물체는 무엇? 4. <타차도로>의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가족 사진 찰칵!
바쁜 걸음 속 달콤한 충전소 젤라테리아&카페
로마에는 3대 젤라테리아(Gelateria)가 있다. 바티칸시국에 있는 <올드브릿지(Old bridge)>, 판테온 주변 <지올리티(Giolitti)>, 가장 긴 역사를 지닌 <파씨(Fassi)>. 이 세 곳을 나름 비교하자면 <올드브릿지>는 서비스 맛집, <지올리티>는 퀄리티(질) 맛집, <파씨>는 역사가 깊은 노포의 느낌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올드브릿지>. 이곳은 마치 우리나라 '국대떡볶이'처럼 젊은 이탈리아 청년들만이 근무를 할 수 있다. 젤라토를 즐겨 먹는 고객층이 20~30대 젊은 여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 젊은 이탈리아 청년들이 말하는 한국어는(오랜 경험과 노력으로 터득한 서비스 노하우겠지만)한국인 관광객들을 모두 충성하게 만든다. 나 역시 그 충성자 중 한명. 젤라토 주문 후 작은 스푼을 원했던 내게 돌아온 듣고도 믿지 못할 말은 "(그들이 한 발음 그대로) 수꾸락 줘요? 수꾸락?"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로마에 머문 6일 동안 이 곳만 6번 방문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물론 젤라토 맛도 수준급이다. 특히 고소한 미숫가루 맛이 나던 피스타치오.

지금 내 방에는 갈지 않은 원두콩이 담긴 갈색봉투가 3개 있다. 그리고 밀봉된 그 봉투에는 ‘타차도로(Tazza d`Oro)'라 쓰여 있다. 깊이 있는 진한 맛과 부드러운 끝맛을 지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타차도로>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세 높은 카페다. 에스프레소를 잘 마시지 않는 나라해도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에 왔다면 적어도 한잔은 마셔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작은 커피 잔에 담겨 나온 검은 액체, 설탕 한 봉지를 거침없이 넣고 살살 저어준다. 이 30ml 커피 한 잔의 위력이 궁금하다면 이 설명 하나면 될 듯 하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시차는 7시간. 한창 관광지를 쑤시고 돌아다닐 시간은 오후 3시. 이탈리아 3시는 한국에서는 잠이 솔솔 쏟아질 밤 10시. 시차적응이 필요했던 나는 이 커피 한 잔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을 정복했다. 모든 여행자들도 나와 같다. 바쁜 시간 속 젤라토와 커피 한 잔으로 충전완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1. 아씨시의 야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아우라(Aura)가 있다. 2. 아씨시의 골목골목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저 골목을 지나면 하얀 타이즈를 신고 우스운 가발을 착용한 귀족 남자들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을 태운 마차가 지나다니고 있을 것만 같다. 3. 아씨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의 내부의 천장 벽화는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사진이라해서 그 감동이 반감되지 않는다. 그만큼의 美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아씨시 수녀원의 코스요리> 4. 오르조(Orzo 쌀모양의 작은 파스타)로 만든 전채요리 5. 발효시킨 빵에 오레가노, 로즈마리 등 허브를 넣어 만든 토마토 소스를 바른 후 피자 치즈로 마무리. 단순하지만 맛은 도우의 두께만큼 폭신하고 풍부하다. 6. 호박꽃과 줄기, 콜리플라워 튀김과 닭 가슴살 구이. 적은 양처럼 보이지만 코스로 즐기면 어느 순간 빵빵해진 배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녁 식사 후 아씨시 밤마실은 필수코스다. 7. <아씨시 수녀원의> 아침식사. 직접 구운 미니 바게트에 한약처럼 보이는 진한 커피. 떠나기 싫은 곳을 등 떠밀리듯 떠나야만 하는 여행자들의 아쉬운 마음이 있기에 이곳의 아침은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다.
아씨시 수녀원(Covento)의 천사들이 빚는 식탁
식지않는 로마에서의 열정을 가슴에 품고, 내가 아씨시를 방문했을 때는 이탈리아 150주년 기념일로 고요한 아씨시가 여러 행사와 여행객들로 붐비던 때였다.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에서 150주년 미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며, 곳곳에 방송국 차량과 촬영기구가 눈에 띄었다. 로마와 피렌체의 중간에 위치한 소도시. 너무 정적이어서 심지어 하루 이상을 머물면 곤란하다고까지 말해지는 아씨시를 방문한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바로 아씨시 수녀원의 저녁식사와 야경.
아씨시 수녀원의 저녁식사는 숙박비 외에 10유로를 추가하면 수녀님들이 직접 요리하는 제 1요리, 2요리, 샐러드와 와인까지 이탈리아 가정식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이 날 우리는 두툼한 도우의 피자와 담백하게 튀겨진 호박꽃, 콜리플라워 튀김, 싱싱한 샐러드와 부드럽게 구워 진 닭 가슴살 구이를 즐길 수 있었다. 소박함의 극치, 특별하지 않은 재료로 만들어 낸 최고의 밥상. 여행에 지친 여행자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피로회복제가 있을까? 이건 여담이지만, 이탈리아 150주년 기념일이었던 이날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모인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의 수련회가 있는 날이었다. 저녁 식사를 할 수 없는 여건이었음에도 우리는 맛있는 이탈리아 가정식을 먹었다. 이 수녀원에는 한국인 수녀님이 있다. 저녁 시간, 이 수녀님이 우리에게 전한 말은 놀라웠다.

국경일이기 때문에 수녀원 근처 레스토랑은 모두 문을 닫은 상황, 수녀원의 푸른 눈의 천사들은 말했다고 한다. 모든 레스토랑도 문을 닫았는데 우리가 저녁 식사를 주지 않으면 저 사람들은 어쩌냐고. 우리들이 먹는 식사라도 대접하자고. 그 날 우리가 먹은 음식은 아씨시 수녀원 천사들이 빚어낸 사랑의 식탁이었다. 저녁 식사 후 나선 아씨시의 밤거리는 촉촉하게 내린 비로 청량한 밤바람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의 야경은 마치 내가 동화 속 한 장면에 놓여 진 듯한 환상을 일으킨다. 사진으로 말하자면 채도가 빠진 느낌이라고 할까? 무채색에 가깝지만 무미건조한 잿빛은 아닌 아씨시의 야경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마법이 있다. 그리고 이런 아씨시는 지금 당장 내가 이탈리아로 다시 날아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이자 바람이기도 하다. 심장을 쉬게 하는 여유가 있는 그 곳 아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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