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다이어트의 여왕' 이후 4년만에 장편 소설을 펴낸 백영옥 소설가. 궁금했다. 신세대 여성들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그녀의 레이더망에 여행은 어떤 의미로 비칠지. 사실 그녀는 탱크다. 펜, 아니 발로, 글을 쓴다. 조선일보엔 여행기(더 넓은 세상을 위한 여행이야기), 경향신문엔 인터뷰(색다른 아저씨)를 통해 신문 지면에도 왕성한 글을 선보였던 백영옥이 '투어월드'에 합류했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 '패스포트'로 합의(여행수업을 원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를 봤다. 그녀의 패스포트, 다섯번째 장이다. 

이세돌이 인공지능인 '알파고'에 두 번 졌을 때, 그의 세 번째 패배를 예상한다는 발언을 중국 베이징 798의 어느 세미나 자리에서 말했다. 미술계 인사들이 가득한 자리였다. 정언적 인간, 인간의 통찰과 직관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던 그 자리에서 어쩐지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 것 같았다. 어느 자동차 회사의 베이징 공장투어를 한 직후였는데, 가슴이 막힌 듯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자동차는 길 위를 달린다. 하지만 머지않아 하늘 위로 날아오를 것이다. 자동차 안에는 핸들을 조작하는 인간이 타지만, 곧 무인 자동차 시대도 열릴 것이다. 이제 자동차를 만드는 건 전통적인 '지엠'이나 '현대' '폭스바겐'이 아니라, '구글'이다. 최근 나는 '휴먼 3.0'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컴퓨터공학자이며 미래학자인 한 남자의 드라이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기계와 도로와 하나가 되는 느낌, 정신이 확대되고 확장되는 느낌, 파워와 컨트롤의 완벽한 느낌, 현상학적으로 모든 접점들이 사라져버리는 느낌. 나는 세계와 하나가 된다. 매끈한 표면 뒤에 모든 프로세스가 숨겨진, 네 바퀴가 달린 컴퓨테이션 플랫폼, 말 그대로 이상적인 첨단 기술의 완성품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동안에는 심지어 선의 경지에 입문한 느낌마저 든다…그것은 인간이라는 공생자를 환경과 연결해주는 제2의 피부와도 같다." 

'자동차'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대표적인 사례다. 내가 견학한 자동차 공장은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공장 용지에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심겨 있었고, 공장 안에는 식물과 꽃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것이 내겐 기계가 가득한 공간 안에 인간이 있음을 알리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여러 섹션에서 일하는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이제 산업화 시대의 단순노동이 아닌 지적노동의 영역으로 들어온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수많은 직업과 일자리를 점점 빼앗아갈 것이다. 작가를 비롯해 기자 변호사 의사 회계사 번역가 주식중개인 등 우리가 전문직이라고 말하는 직종들까지 말이다. 미래학자들은 20년 안에 지금 직업의 48%가량이 사라질 것이라 예상한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바뀌어버린 삶의 조건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요즘, 뒤늦게 이세돌의 승리와 미소를 봤다. 혼자 맘이 뭉클해졌다. 내 무능과 한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즈음의 일이라 그럴까. 힘들지만 나 역시 패배를 인정하고 내 삶을 다시 한 번 복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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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798은 중국 아트신의 대표적 공간이었다. 하지만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미술계 사람들은 이곳이 빠르게 시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나는 798의 갤러리들을 하루 종일 걸었다. 문을 닫고 철수한 갤러리와 카페들이 컴퓨터의 '버그'처럼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곳이 폐허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니 애잔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인공지능 때문에 바뀌게 될 인간 세상의 변화가, 이 화려했던 공간의 쇄락과 맞물려, 내 마음을 더 흔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래를 쉽게 낙관하지 못하겠다. 편리함보다 인공지능의 '버그'가 우리에게 초래할 비극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이 우리에게 줄 재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알파고의 실수가 의료 로봇에 적용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늘을 날던 드론이 누군가의 머리에 떨어진다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변화가 예정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줄 희망과 절망, 이해와 오해, 그 모든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전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진 것이 아닙니다. 이세돌이 진 것입니다." 알파고에게 연달아 패한 후, 이세돌의 인터뷰를 읽다가 이 말이 뼈에 남았다. 이미 세 번 패했기 때문에 이세돌은 대국에서 이미 알파고에 졌다. 하지만 패배가 확정된 순간에도 그는 '복기'를 통해 자기 확장을 시도한다. 불안정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한 번 더 말할 수 있을 때일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인간이 인공지능과 바둑 대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겨도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단지 바둑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바둑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것은 아니니까요. 때문에 이번 게임은 인간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힘내란 말이 그렇게나 진저리 나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의 사투를 보며 다시 한 번 힘내고 싶어졌다. 이세돌처럼 이기는 것도 힘들지만, 이세돌처럼 지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4국을 보며 이세돌 9단의 말을 이렇게 되돌려주고 싶었다. "인간이 이긴 것이 아닙니다. 이세돌이 이긴 것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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