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낡고 정돈되지 않은 미개발 지역일 것이다. 이런 아프리카에서 유럽을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으로 가면 평소 생각했던 아프리카의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아프리카 속 유럽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케이프타운은 19세기 유럽풍 건물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 멋 속에는 치열한 역사가 숨어 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케이프타운으로 떠나볼까.

◆ 미소를 머금은 아기자기 예쁜 마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 케이프주의 주도인 케이프타운은 주민의 35% 이상이 백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면서 백인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후에 영국의 식민지 지배 활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온 역사로 인해 케이프타운은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면 남아프리카의 문화와 유럽의 분위기를 모두 느낄 수 있다.

먼저 케이프타운을 찾는 관광객들은 워터프런트로 향한다. 이곳은 케이프타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수많은 레스토랑과 쇼핑센터는 물론 각종 관광시설이 밀집돼 있다.

유럽풍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보캅'도 케이프타운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알록달록한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다양한 색채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캅이 화려한 색채의 집으로 이뤄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유색인종 사람들이 인종차별 정책이 철회된 후 이 기쁨을 알록달록 색채로 표현했다는 설과 보캅마을에 번지수가 따로 표기되지 않아 헷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집을 각각의 색으로 표시했다는 설이다.

보캅마을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상상했던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다른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마을 풍광 때문이다. 빨강, 분홍, 노랑, 연두, 초록. 각각의 색을 입은 작은 집들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동화 속 마을을 연상케 한다. 집집마다 테라스와 집 앞에는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고 여유롭게 마을을 누비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서려 있다.

◆ 아프리카의 이색동물과 만나다 물개와 펭귄. 모두 아프리카와 어울리지 않는 동물이지만 케이프타운에 가면 이런 이색적인 풍광과 마주할 수 있다. 케이프타운에서 쾌속선을 타고 20분가량 달려가면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도이커 섬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섬이라기보다 커다란 바위처럼 느껴진다. 전설 속 거인이 바위를 들어올려 바다 한가운데 심어놓은 듯 예쁘게 떠 있다.

도이커 섬에는 수천 마리의 물개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 서식하는 물개만 해도 5000여 마리.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도이커 섬을 돌다보면 물개들과 반가운 조우를 하게 된다.

물개에 이어 펭귄이 서식하는 해변도 있다. 흔히 펭귄비치라 불리는 볼더스 비치는 아프리카의 유일한 펭귄 서식지다. 관광객들에 익숙해진 이곳 펭귄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낯설어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가까이서 펭귄을 마주할 수 있다.

◆ 숨 막히는 자연의 아름다움

케이프타운의 자연경관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런 모습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테이블 마운틴으로 가보자. 케이프타운에서 한눈에 보이는 테이블 마운틴은 산 정상이 식탁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갖게 됐다.

해발 1085m. 이곳을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천천히 자연을 만끽하며 하이킹 코스로 올라도 좋고, 아찔한 경관을 즐기는 케이블카로 이동해도 즐겁다. 특히 케이블카는 360도 회전하며 움직여 더욱 흥미진진하다. 정상에 오르면 약 3㎞의 평평한 지대가 형성돼 있다. 이곳에는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한다.

가슴이 탁 트이는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 서면 눈앞에 푸르른 대서양과 케이프타운 시내가 펼쳐진다. 여러 곳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어 케이프타운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차가운 물과 미친 달의 기차역

아프리카에 '도시'라니 그만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있을까? 나이로비는 원래 '차가운 물'이라는 뜻의 작은 수원지였다. 동쪽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인들은 항구 도시 몸바사에 첫 터전을 만든 뒤 풍성한 자원이 있는 빅토리아 호수와 우간다로 기찻길을 놓아갔다. 철도는 오랜 건조지역을 지나 숨 막히는 케냐 고원 앞에 다다랐다. 영국인들은 여기에 중간 기착지를 건설하기로 했고, 아시아의 상인들이 발 빠르게 옮겨왔다. 이로 인해 훗날 케냐의 수도가 될 나이로비가 태어난 것이다.


1896년에 처음 선로를 연 뒤 1930년대까지 건설된 이 철도의 별명은 루나틱 익스프레스(Lunatic Express). 달의 광기로 뒤덮인 기차는 서슴없이 덮쳐오는 정글, 들썩거리는 나무다리, 적대적인 원주민, 이름 모를 전염병 사이를 통과하며 금지된 물품, 미친 모험가, 불행한 노예들을 실어 날랐다. 어두운 전설의 두 정점은 '케동(Kedong)의 학살'과 '차보(Tsavo)의 식인 사자'. 마사이 족이 강간당한 소녀들에 대한 보복으로 열차 노동자를 급습해 500명을 살해한 사건과, 차보 강의 사자들이 인도계와 아프리카 노동자들 28명을 물어 죽인 뒤에 잡힌 사건이다. 나이로비 기차역 북서쪽에 있는 '철도 박물관(Nairobi Railway Museum)'에서는 그 시대 몸바사를 오고 가던 우아한 야간열차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와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파리 호텔

20세기 초반은 사파리 탐험의 시대. 쟁쟁한 유명인들이 나이로비를 거점으로 사자와 코끼리와 야생의 부족들을 찾아 떠났다. 그중 가장 떠들썩했던 인물은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 그는 두 번째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자마자 아들 커미트와 함께 나이로비로 왔다. 스미소니언 재단에 기증하기 위한 동물 사냥을 위해서였다.


인디아나 존스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면, 바로 이때의 루스벨트가 어린 인디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인디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주고, 이 사냥으로 얻을 동물들이 미국의 소년들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교육의 자료가 될 것인지 역설한다. 인디는 예민한 관찰력으로 오릭스가 있는 곳을 루스벨트에게 알려주지만, 곧 사냥을 멈추어달라고 간청한다. 그의 직감대로 그곳의 오릭스는 거의 멸종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픽션 속에서는 교훈적으로 마감되지만, 당시 루스벨트가 코끼리를 잡고 의기양양해 있는 사진은 동물 보호론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노포크(Norfolk) 호텔은 1904년에 문을 연 식민지 시대의 우아한 건물로 루스벨트, 헤밍웨이 등이 케냐 여행의 거점으로 삼았던 장소라고 하다.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그 시절 모험가들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다.


어린 인디아나 존스.케냐에서 루즈벨트를 만나다.

사라진 커피 농장의 꿈, 아웃 오브 아프리카

나이로비는 원주민의 언어로'차가운 물'이라는 뜻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유명한 샴푸 신.


"여기 마침내 누군가 편의시설일랑 하나 없는 땅에 들어섰다. 거기에 진정 새로운, 꿈에서나 찾을 수 있던 자유가 있었다."


아프리카를 동경하다 못해 그 속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를 일구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자전적인 주인공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덴마크 여성인 카렌은 1913년 블릭센 남작과 약혼한 뒤 케냐로 와 키쿠유 족의 땅에 커피 농장을 개척했다. 거친 땅에서 둘의 성격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고, 남편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머지않아 둘은 헤어졌다. 이후 카렌은 사냥꾼이자 사파리 안내자였던 데니스 핀치 해튼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연인은 비행기 사고로 죽고, 대공황으로 인한 커피 판매 부진과 농작의 실패가 이어졌다. 카렌은 결국 농장을 버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이름으로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 등의 소설을 발표해 명성을 얻은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인기로 인해 카렌의 옛 거주지 근처에 '카렌 블릭센 뮤지엄'이 문을 열게 되었다. 나이로비 상업 지구에서 떨어진 남서쪽, 그녀의 이름을 딴 카렌 로드에 자리잡고 있다.

공주로 올라가 여왕으로 내려오다, 나무 위의 집

누군가는 모든 것을 찾아 아프리카로 왔다 빈손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누군가는 왕이 되어 떠나기도 했다. 1952년 영국의 공주 엘리자베스는 남편 에딘버러 공작과 결혼한 뒤, 허니문의 장소로 케냐를 택한다. 나이로비에 잠시 머문 이 세기의 커플은 도시에서 북쪽으로 조금 간 니에리(Nyeri) 지역의 트리톱스 로지(Treetops Lodge)에서 신혼의 밤을 보낸다. 문자 그대로 나무 위에 놓인 이 숙소는 보이스카우트 운동의 개척자인 바덴-파웰(Baden-Powell)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달콤한 신혼의 밤이 지나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공주의 아버지였던 영국 왕 조지 6세가 서거했던 것이다. 당시 트리톱스에 머무르고 있던 전설적인 사냥꾼 짐 코벳은 당시의 상황을 방명록에 기록했다. "어느 날 소녀가 공주의 몸으로 나무를 올랐다. 그리고 다음날 여왕이 되어 내려왔다.


트리톱스는 현재 애버데어 국립공원(Aberdare National Park)안에 호텔로
자리 잡고 있다.

리키의 천사가 된 제인 구달, 케냐 자연사 박물관

루이스 리키의 집은 온갖 동물에 둘러싸여'서커스'라 불렸다.


영국의 소녀들이 동아프리카의 꿈을 꾸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꿈은 기린의 그림과 나이로비의 소인이 찍힌 편지로 현실이 된다. 어린 시절 [타잔]을 읽으며 아프리카를 동경하던 제인 구달은 케냐로 이민 간 친구의 편지를 받는다. "언제 놀러 오렴." 당연히 가야지. 그녀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배를 탔고, 몸바사를 거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그녀는 비서 일을 배워둔 덕분에 겨우 일자리를 구했지만, 그녀가 꿈꾸어온 아프리카의 생활과는 달랐다. 어떻게 하면 저 때묻지 않은 동물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때 누군가 말해주었다. "리키를 찾아가." 나이로비의 자연사 박물관장으로 있던 루이스 리키가 그 열쇠였다.


루이스 리키는 케냐에서 태어나 키큐유 족의 성인식을 거친, 진정한 의미로 아프리카를 아프리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고고학자였다. 나이로비에 있던 그의 거주지에는 시벳 캣, 원숭이, 앵무새, 열대 뱀, 그리고 여러 종족의 원주민들이 어울려 살아 '리키의 서커스'라 불릴 정도였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고인류의 화석을 발굴해 명성을 얻은 그는 비서로 일하게 된 구달에게 툭하면 침팬지 이야기를 꺼냈다. 참다못한 구달이 외쳤다. "제발 침팬지 이야기는 그만둬 주세요. 그게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요." 리키의 도움으로 그녀는 곰베 지역의 침팬지 세계 속으로 들어갔고, 아프리카와 유인원에 대한 세계인의 편견을 뒤집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희박한 공기 속을 달리는 마라토너

나이로비 시민들 중에는 이봉주를 아는 사람이 꽤 있다. 케냐의 마라토너들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보스턴 마라톤을 석권해왔는데, 2001년 한국의 이봉주가 그 연승 기록을 깼기 때문이다. 이후 2009년까지도 케냐는 이 대회에서 단 두 차례를 빼고는 모두 우승자를 배출했다. 마라톤을 비롯한 남자 육상 중장거리 부문에서 케냐 선수들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키에 긴 다리를 지닌 선천적 조건과 해발 2,000m의 고지대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강인한 심폐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맨발로 고지대를 뛰어다닌 생활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나이로비에서는 매년 '지상 최고의 레이스(The Greatest Race on Earth)'의 일환으로 마라톤이 펼쳐진다. 이 레이스는 영국계 은행 스탠다드차타드가 세계에서 가장 산소가 적은 도시, 가장 더운 도시, 가장 습도 높은 도시, 가장 복잡한 도시로 나이로비, 뭄바이, 싱가포르, 홍콩을 선정해서 벌이는 4인 1조의 국가 단위 경기다. 1,700m의 고지대, 극심한 공해, 울퉁불퉁한 도로 등의 조건 때문에 완주 자체가 영예라는 나이로비 마라톤은 응야요 스타디움(Nyayo Stadium)에서 출발한다.


보스턴 마ㅏ톤 대회의 우승은 케냐 선수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모두 네 차례
우승한 로버트 체루이요트.

지상 최악의 슬럼, 키베라

[콘스탄트 가드너]의 어두운 음모는 키베라 슬럼의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2007년 나이로비에서는 '슬럼 마라톤'이라는 특이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도시 인구 4백만 중에 250만이 시 면적의 5%에 불과한 슬럼에 모여 사는 것이 나이로비의 현실이다. 세계 각국의 시민들은 이 슬럼 지역을 달리며 그들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했고, 정부의 강제 철거에 항의했다. 150만 명이 살고 있는 키베라 슬럼(Kibera slum)은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슬럼 지역으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바로 그 참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온화한 외교관 랄프 파인즈는 케냐에서 살해당한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이 슬럼으로 들어선다. 거기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와 정부의 불법 실험이 자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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