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um 악숨
고대 왕국의 수수께끼


먼 옛날, 시바의 왕국에 한 여왕이 있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솔로몬왕의 명성을 전해 듣고 그를 시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상인들과 함께 향료와 금, 보석을 가득 싣고서. 여왕은 왕에게 자신이 궁금한 것을 질문했고 솔로몬왕은 지혜로운 답변을 주었다. 시바의 여왕은 왕의 지혜에 감탄해 가져간 보물을 선물하고 왕과의 하룻밤으로 아들 메넬리크를 낳아 에티오피아로 돌아왔다. 22세가 된 메넬리크는 예루살렘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의 환대를 받고 3년간 예루살렘에 머문 메넬리크에게 솔로몬은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지만 메넬리크는 고향으로 돌아와 악숨에 수도를 정하고 악숨 제국을 세웠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보관한 언약궤Ark of the Covenant와 함께였다.

에티오피아 건국의 역사적 토대가 된 이 전설은 구약성서로 알려진 히브리 경전의 열왕기 상上, 그리고 역대 하下에 나오는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이야기에서 나왔다. 물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성서에 없다. 삼국유사에 단군신화가 기록된 것처럼 13~14세기에 작성된 에티오피아의 대서사시 '케브라 네가스트Kebra Negast'에는 시바의 여왕이 마케다Makeda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솔로몬과 메넬리크로부터 비롯된 에티오피아 왕조의 내력이 담겨 있다. 종교의 역사에 기록된 사실과 이야기는 숨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이 솔로몬왕의 지혜와 시바 여왕의 미모를 물려받은 민족임을 의심치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악숨의 '시온 성 메리 교회St. Mary of Zion Church'의 지성소(하느님이 임재한다는 성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약궤가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성한 혈통을 이어받은 수도사 한 사람만이 관리하고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거기에 정말 언약궤가 있는지 누구도 확인할 길은 없다. 에티오피아 곳곳에서는 '타보트Tobot'라 불리는 언약궤의 모형을 만들어 각 교회마다 상징적으로 보관하고 주요한 종교적 행사 때만 일반에게 공개한다고.

4세기에서 6세기경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사이 종교적 갈등의 역사 속에 세워졌던 시온 성 메리 교회는 1965년 셀라시에 1세에 의해 옛 교회 근처에 새롭게 건축됐다.
악숨 제국은 한때 로마, 한나라, 페르시아와 함께 4대 제국으로 불릴 만큼 강대국이었다. 금과 상아, 철광석을 생산해 아프리카 전역과 로마, 터키와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4세기에는 기독교를 국교화 했고 5세기에는 수도원 제도를 마련했다. 10세기 이후 대가뭄으로 쇠망하기까지 화폐, 건축물, 문자 등 악숨 제국은 그들만의 위대하고 고유한 문화를 탄생시켰다.

기원전 1,000년부터 10세기까지 만들어진 악숨의 오벨리스크군은 악숨 제국의 대표적인 창조물이다. 오벨리스크는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기념비로, 그 크기로 왕의 힘을 나타낸다. 오벨리스크의 지하에는 왕의 무덤이 있다는데 무게 533톤, 높이 33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오벨리스크 중 하나는 안타깝게도 지진으로 무너진 상태다. 중간에 자리한 무게 180톤, 높이 27m의 오벨리스크는 1,7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37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 강탈돼 로마의 콜로세움 근처에 세워져 있다가, 2005년 4월19일 문화재 반환운동에 의해 67년 만에 에티오피아로 돌아왔다. 지지대를 받치고 있는 가장 오른쪽의 오벨리스크는 2,000년간 한자리를 지켜 왔다.

"오벨리스크가 다시 세워지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언젠가 복원될 거예요." 동행했던 가이드 시세이는 오벨리스크가 아프리카 자주성의 상징이라고 했다. 악숨이 시바 여왕의 영토였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발길을 옮긴 곳은 둔구르Dungur 유적이다.
여왕이 거했다는 왕궁터는 오랜 세월 보수를 거듭했다. 터만 남은 토대 위에 높이 2~3m의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형태를 복원시켜 놓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시바의 여왕이 목욕을 하고 아궁이에서 밥을 짓던 이곳을 신성하게 여긴다. 사실 고고학적으로 둔구르 유적은 8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바의 여왕 시기와는 1,700년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적인 신빙성이나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전설이 곧 진실이다. 그들의 믿음은 종교적 신앙이자 역사적 자긍심이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놓지 못할 희망이다. 전설은 힘이 세다.

악숨에서 만난 아이들. 거리낌없이 다가와 반가운 미소를 보내 주었다

이른 아침 악숨 거리는 고요하지만 활기차다

시온 성 메리교회에 있는 양피지로 된 16세기 성서. 고대 기즈어로 쓰여져 있다

이탈리아로부터 67년 만에 반환된 오벨리스크

지진으로 무너진 높이 33m의 오벨리스크를 여행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Lalibela 랄리벨라
아프리카의 예루살렘


7세기 악숨 제국과 함께 기독교가 쇠퇴의 길을 걷는 동안 이슬람은 아라비아반도를 시작으로 이집트와 수단 등으로 세력을 팽창시켜 나갔다. 악숨 제국이 붕괴되고 긴 암흑기가 이어졌던 에티오피아는 13세기에 이르러서야 기독교 왕조인 자그웨Zagwe 왕조로 다시 부활한다. 300년간 수도이기도 했던 랄리벨라의 전성기는 에티오피아 7대 국왕인 랄리벨라1181~1221년가 통치하던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다.

랄리벨라는 에티오피아인들이 가장 거룩한 장소로 여기는 곳이다. 이유는 에티오피아 기독교 유적의 걸작품인 암굴교회군群 때문이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이곳은 관광객은 물론 예복인 흰 셰마를 두른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암굴교회로 가기 위해 해발 3,000m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났다. 풍광에 눈을 뺏기고 정겨운 마을을 지나 정상의 뷰포인트에서 잠시 멈추면 랄리벨라의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랄리벨라의 원래 이름은 로하Roha였다. 정설에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예루살렘으로의 순례가 어려워지자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서 암굴로 이루어진 교회를 만들었다지만 전설은 랄리벨라왕이 꿈에서 로하에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만든 것이라 전한다. 신앙심이 깊었던 랄리벨라왕은 직접 교회 건설을 감독하며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의 기술자 등 4만명을 동원해 교회를 만들었다. 실제 교회는 120년에 걸쳐 완성된 것인데, 전설은 천사들이 밤낮으로 도와 23년 만에 완공됐다고 전한다.

암굴교회군은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거대한 암반을 통째로 위로부터 수직으로 깎아내 만들었다. 예루살렘을 본떠 요르다노스강요단강 Yordannos이라 이름 지은 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각 5개, 언덕에 1개가 세워졌다.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부드러운 적갈색의 응회암 암반을 깎아내 만든 11개의 교회는 모두 미로 같은 지하 통로로 연결된다.

가장 규모가 큰 교회는 '구세주의 집'이라는 뜻의 '메드하네 알렘 교회Bet Medhane Alem'다. 세로 33m, 가로 22m, 높이 11m로 암반을 통째로 깎아 72개의 4각 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데, 이곳을 포함한 모든 교회는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현재 철제 지붕과 보호 기둥을 세워 보수 중이다. 교회 옆 바위벽에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빈 무덤이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리암 교회Bet Maryam'는 랄리벨라왕이 가장 좋아했다고도 전해지는 곳인데, 벽에는 악숨 왕조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모든 교회를 둘러보는 입장료는 50달러, 제대로 보려면 1박2일은 걸린다니 선택은 '기오르기스 교회Bet Giyorgis'일 수밖에 없었다.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2m의 정 십자가 모양으로 암반을 파 내려가며 지었다는 이 교회는 그 우아한 건축미가 단연 최고라 인정받는다. 특히 땅 표면에서 보이는 세 겹의 십자가 모양이 압권이다. 조심스럽게 다다른 입구에는 죽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어느 사제의 유해가 암굴 속에 자연 상태 그대로 미이라가 된 채 안치되어 있었다. 순례객들로 들어찬 내부에는 백마를 탄 채 창을 들고 용을 무찌르는 기오르기스 성인이 성화 속에서 교회를 수호하고, 랄리벨라왕이 사용한 도구들이 들어 있다는 올리브나무 상자도 있다.

매년 에티오피아의 성탄절인 1월7일이 되면 전국에서 순례객들이 이곳 암굴교회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사제가 축복한 빵을 나눠 먹으며 기원후 33년부터 이어져 오는 축제를 즐긴다고.

1520년부터 6년간 에티오피아에 머물며 견문을 정리한 포르투갈의 수도사 프란시스코 알바레스Francisco Alvares는 <프레스터 존 왕국의 비밀A True Relation of the Lands of Prester John of the Indies>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이 불가사의한 암굴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교회들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나를 지치게 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니까." 랄리벨라는 지금도 그렇게 순례자들을 기다린다.

해발 약 3,000m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랄리벨라의 풍광

아담의 무덤이라는 이름의 상징적인 장소를 통과하는 순례객. 암굴교회 곳곳에 성서 속 인물의 이름을 붙인 상징적인 장소가 있다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좁은 통로

랄리벨라의 아름다운 풍광

정 십자가 모양이 신비로운 성 기오르기스 교회

메드하네 알렘교회 안에서 사제가 800년 전 십자가를 들어 보여 주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해발 2000미터 고원의 나라. 기기묘묘한 바위 봉우리들은 신들이 놀다 던져두고 간 체스 판의 말들일까.

아프리카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와 문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이며 솔로몬 왕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3천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초기 기독교 왕국이었다. 특히 에티오피아 북부지역은 거대한 바위를 쪼개 만든 중세의 교회로 유명한 티그레이와 랄리벨라, 16세기의 성 곤도르, 고대 석주들이 줄지어 선 악숨, 타나 호수와 거대한 블루 나일 폭포 등 풍부한 문화 유적과 빼어난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시미엔산의 봉우리들은 오랜 침식활동으로 인해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드라마틱한 경관과 희귀 동식물

그 중에서도 곤다르(Gondar) 지역 북부에 자리 잡은 시미엔(Simien)산 국립공원은 드라마틱한 경관과 희귀 동식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트레킹 지역이다. 시미엔산은 동쪽과 남쪽으로는 거대하고 완만한 평원을 이루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들쑥날쑥 솟은 가파른 산봉우리와 깊은 계곡을 형성한다. 사천만 년 전의 강력한 지진 활동으로 분출된 용암, 오랜 세월에 걸친 침식활동은 기묘한 형상으로 솟구친 바위봉우리, 가파른 절벽, 장대한 골짜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을 만들어냈다. 1925년에 이곳을 여행했던 영국인 여행가 로시타 포브스(Rosita Forbes)는 먼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이 거대한 바위탑들로 체스 놀이를 했을 거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최고봉인 4543미터의 라스 다쉔(Ras Dashen)은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이곳의 트레킹 코스는 대부분 완만하고 평이하다. 시미엔산은 자연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에만 서식하는 멸종 위기 야생 염소 왈라 아이벡스 수백 마리와 만 여 마리의 개코원숭이(겔라다 바분)가 서식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에티오피아 늑대, 시미엔 여우, 자칼 등을 비롯한 고유종의 포유류와 수염독수리, 수리부엉이 등 137종 이상의 조류, 자이언트 로벨리아 등의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개별 트레킹 시에는 야생동물 위험 탓에 총을 든 '스카우트'를 고용해야 한다.

길이 500미터로 시미엔산에서 제일 큰 폭포인 '진바 폭포'


가파른 오르막 거의 없는 완만한 트레킹

길의 시작점은 드바라크(Debark)라는 작은 마을이다. 걷기 시작한 후 처음 만나는 이들은 개코원숭이 무리다. 황갈색 정장에 붉은 넥타이를 맨 듯한 이 원숭이 무리가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하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일당을 받고 고용된 잔디 뽑기 노동자로 보일 정도다. 푸른 보리밭과 초가지붕의 붉은 흙집들이 나지막이 늘어선 마을을 지나 첫 야영지로 선택된 곳은 산카베르(Sankaber). 다음날은 노새와 노새 몰이꾼을 고용해 짐을 싣고 걷는다. 기치(Geech)로 향하는 길목에서 야생 노루와 개코원숭이 떼들과 다시 만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길이가 5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진바 폭포(Jinbar Waterfall). 화산의 융기로 생겨난 폭포는 웅장한 물줄기를 직류로 쏟아내고 있다. 안개가 몰려오는 산허리의 절벽길을 걷거나 맨발로 얼음처럼 찬 시냇물을 건너기도 한 끝에 오늘의 숙박지인 암하라 마을에 들어선다. 오후가 되면 동네 아이들이 무언가 푼돈이라도 마련하려고 퍼덕거리는 닭이며 채소 따위를 들고 텐트로 찾아온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밤이 내리면 텐트 촌에는 몇 마리 여우들이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시미엔산에 서식하는 희귀한 거인식물 '자이언트 로벨리아'.


야생 그대로의 자연을 즐길 수 있어

셋째날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자이언트 로빌리아가 듬성듬성 자라는 초지대를 걸어 이멧 고고(Imet Gogo)로 향한다. 시미엔산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3926미터의 봉우리다. 능선의 끝에 솟구친 이 봉우리는 삼면이 가파른 절벽이다. 마음 속 어딘가 답답한 응어리라도 남아있었다면 단번에 깨끗이 씻겨 나갈 것만 같은 전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절벽과 기괴한 형상으로 솟은 바위산들, 아찔한 경사의 절벽에서 풀을 뜯고 있는 그 드물다는 야생 산양들. 배낭을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아 그 모든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기분이 든다. 내려오는 길에는 근처의 사하 봉우리(Saha 3785미터)와 카다빗(Kadavit 3760미터)에도 들른다.

마지막 날에는 숲 사잇길을 걸어 시내로 내려가 시냇물을 건넌 후 계속 이어지는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이다. 도중에 양치는 아이들을 만나 피리연주 한 자락을 들으며 잠시 쉬기도 한다. 아이벡스나 수염수리 등의 야생동물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인 체넥(Chenek)을 거쳐 브와힛 봉우리(Bwahit 4430미터)까지 가면 3박 4일의 트레킹 코스를 다 돈 셈이 된다. 운이 좋다면 국립공원을 통틀어 42마리밖에 살지 않는다는 에티오피아 늑대와 마주칠 수도 있다.

시미엔산 트레킹 내내 만난 '양치기 소년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천진한 산골 아이들이다.

코스 소개
시미엔산 국립공원은 곤다르로부터 101㎞,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로부터는 850㎞ 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고도는 1,900m에서 4,543m 내외.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유산이자 희귀 야생동물 서식지다.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그렇기에 야생 그대로의 자연을 즐길 수 있어 더 매력적이다. 길은 저지대의 작은 마을과 보리밭을 지나 가파른 협곡과 경사지의 수직 절벽으로 이어진다. 산카베르에서 기치까지는 4-5시간, 기치 캠프에서 이멧 고고를 경유해 첸넥까지는 7-9시간 소요. 첸넥에서 브와힛 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는 6킬로미터로 2-3시간 소요. 시미엔산 국립공원은 드바라크부터 첸넥까지 도로가 깔려 있어 하루부터 열흘까지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비행기나 버스(이틀 소요)로 곤다르까지 이동한다. 곤다르의 여행사에서 장비나 차량을 빌리는 일부터 가이드와 쿡 섭외까지 전부 가능하다. 곤다르에서 드바라크까지는 4시간 소요.


여행하기 좋은 때
건기인 12월부터 3월까지가 가장 좋다. 10월은 우기가 끝난 직후여서 가장 푸르고, 야생화들이 피어나는 달이다. 우기인 6월부터 9월은 종종 비가 내리고 안개가 피어 풍경이 가려지고, 길이 진흙구덩이가 된다. 하지만 한두 차례 세차게 퍼붓는 비이기 때문에 트레킹은 가능하다.


여행 TIP
개별적인 트레킹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는 텐트 및 식량을 다 지고 가야 한다. 노새와 몰이꾼을 고용해 짐을 옮기는 방법도 있다. 산카베르를 제외하고는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가이드와 포터를 고용하는 편이 낫다.

ETHIOPIA

아프리카의 동쪽 끝, 검은 땅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기아와 분쟁으로 기억되는 그곳은 장엄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땅이었다. 낮은 자리에서도 강인한 걸음을 이어 온 그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졌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본산 트리니티 대성당

●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고원 위에 선 아프리카의 심장


해발 2,300m. 우기의 끝을 알리는 비가 간간이 적실 뿐 10월의 아디스 아바바는 쾌청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디스 아바바를 아디스라고 부른다. 아디스의 시내 중심가는 중국이 투자했다는 경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아프리카의 정치·외교 수도답게 시내 북쪽에는 세계 각국 대사관과 유엔 아프리카경제총회본부 그리고 호텔 등이 밀집해 있지만 주변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아디스 아바바대학을 스치듯 지나쳐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규모. 그러나 이곳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인류 시조의 화석 '루시Lucy' 때문이다. 3,000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자부심은 이 인류의 기원까지 닿아 있다. 학자들은 에티오피아가 속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부터 아시아와 유럽으로 인류가 퍼져 나갔다고 주장한다.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약 320만년 전의 것이다. 1m 정도의 키에 20세 전후의 여성으로 알려진 '루시'는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석이 발견될 당시 발굴단의 캠프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왔단다.

박물관 정원에는 메넬리크 2세MenelikⅡ, 1844~1913가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에 맞서 승리하는 데 사용했다는 대포도 전시되어 있다. 그는 에티오피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부족간의 대립으로 분열된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근대국가로서의 에티오피아의 기초를 다진 한편, 1887년에 수도를 엔토토로부터 아디스 아바바로 천도했다.

해발 3,000m의 엔토토산Mt. Entoto까지는 찻길이 잘 나 있어 어렵지 않게 올랐다. 길목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했다. 메넬리크 2세가 고산지대에 잘 적응하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호주로부터 가져와 심었다는데, 바람을 타고 그 향기가 무척이나 싱그러웠다. 자동차 매연으로 답답했던 시내 중심과는 사뭇 공기가 달랐다. 예라루산, 즈콸라산, 사파타산이 도시를 두르고 호위무사처럼 솟아있는 아디스 아바바. 높은 탁상지인 엔토토는 군사적인 요지로는 이상적이었지만 기온이 낮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해 수도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족들에게 엔토토산 기슭의 땅을 나눠 주고 그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꽃'이라는 뜻의 아디스 아바바가 새로운 수도로 탄생된 것이다.

메넬리크 2세의 개혁을 이어 간 것은 1930년부터 40여 년간 재위에 오른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Ⅰ, 1892~1975다. 쿠데타로 즉위한 그는 1974년, 또 다른 쿠데타로 실권하기까지 아프리카통일기구(AU)를 세우고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UN에 가입시키는 등 에티오피아의 근대화를 다졌다. 196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 올렸는데,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이다.

셀라시에 국왕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왕실 근위대였던 강뉴 부대Kangnew Battalions 6,037명을 우리나라에 파병한 장본인이다. 당시 철원, 춘천, 화천, 양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이 657명에 달한다. 셀라시에 국왕이 1931년에 세운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121명 용사들의 유해와 함께 그 자신도 묻혀 있다. 하일레 셀라이시에라는 이름은 암하라어로 '삼위일체의 힘'이라는 뜻이다. '성삼위일체 성당'으로도 불리는 트리니티 대성당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본산이다. 총대주교의 즉위식과 그가 집전하는 미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조각상이 배치된 유럽 스타일의 외관은 무척 아름답다. 내부에는 성서의 주인공들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고, 셀라시아 황제와 왕비가 미사를 드릴 때 앉았던 화려한 왕좌도 그대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의 기도시간에만 개방하지만 트리니티 대성당은 하루 종일 열려 있다.

트리니티 대성당
P.O.Box 3137, Addis Ababa
251-11-1233518

www.trinity.eotc.org.et
입장료 100비르

국립박물관 2층에 전시된 가로 6m, 세로 3m 성' 메르크리우스St. MERCURY'의 성화 중 일부. 17세기 작품으로 작자 미상이다

국립박물관은 총 3층으로 1층에는 고대유물, 2층은 회화, 3층은 전통민속품이 전시되어 있다

인류의 시조 화석인 루시

엔토토산에서 바라본 아디스 아바바 전경

에티오피아 정교회 의 사제

●Ethiopian Coffee커피

'우애, 평화, 축복' 에티오피아 커피

커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음식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다 커피를 마신다.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커피가 많이 나는 나라다.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는 850년 경 '칼디'라는 이름의 염소 목동이 커피열매를 처음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분나Bunna'라고 부른다.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 즉 '커피 세리모니Coffee Ceremony'라고 하는 전통 커피예법이 있는데, 에티오피아만의 특별한 문화다. 거리나 공항, 관광지나 호텔 주변, 레스토랑 등 어디를 가도 분나 세리모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노점에서 한잔에 10비르 내지 20비르, 우리 돈 500원, 1,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세레모니의 과정을 음미해야 한다. 노점에서도 최소 20분 이상은 기다려야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고 가정에서는 전통에 따라 손님을 대접할 경우 1시간 이상 소요된다.

분나 세리모니는 손님에 대한 예우이고 친목의 시간이다. 케트마Ketma라는 나뭇잎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행해지는 분나 세리모니는 먼저 손님 앞에 송진이나 유칼립투스를 태워 향을 피워 신성함을 표한다. 그리고 팬에 커피콩을 볶고 나무절구에 빻아 전통 주전자인 '제베나Jebena'에 넣은 다음 달아오른 숯 위에서 부채질하며 끓여낸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시니Cini'라는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에 커피를 따른다. 커피전문점에서 만들어내는 커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이 그 한잔에 담긴다.

에티오피아는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국내에서 소비한다. 커피 애호가들이 최고라고 말하는 예가체프, 히라르, 시다모 등 이름난 상품명들은 에티오피아 커피의 주요 생산 지역 이름이다. 그러나 한때 가장 돈이 되는 작물이라 검은 황금으로도 불리던 커피 생산은 주춤해진 실정이다. 커피는 심은 후 5년이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고 그것도 1년에 한 번밖에 수확할 수 없는데, 작황이 좋지 않아 먹고 살아야 하는 가난한 농가들은 재배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나마 1등급 원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세계적인 로스팅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규제 하에 일정 품질 이상의 커피는 전량 수출하고 정작 국민들은 질 좋은 커피를 먹지 못하는 것이 현실. 깊어 가는 가을만큼 진한 예가체프를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들이킬 수만은 없는 이유다.

손잡이가 없는 전통잔 '시니'에 커피를 따르기까지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악숨 공항에서 경험한 분나 세리모니는 커피를 끓이던 달구어진 숯 위에 송진 덩어리를 올려 향을 피우면서 시작됐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원두 250g 한봉지에 보통 3,000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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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line
에티오피아항공의 인천 취항은 한국과의 수교 50주년 기념일인 2013년 6월19일 이뤄졌다. 최신기종 드림라이너B787를 보유하고 현재 홍콩을 경유하는 인천-아디스 아바바 노선이 주 4회(월·수·금·일) 운항 중이다. 비행시간은 약 14시간. 오후 9시에 인천을 출발해 아디스 아바바에 다음날 오전 6시35분에 도착하며, 홍콩에서 1시간가량 대기한다.
02-733-0325 www.ethiopianairlines.co.kr

HOTEL
랄 호텔Lal Hotel & Spa
랄리벨라의 중심부에 자리한 랄 호텔은 105개의 객실 모두가 독립된 에티오피아 전통가옥 형태다. 수영장과 사우나실, 레스토랑과 바, 수영장을 갖추고 2층 객실의 테라스 뷰데크에서 거리를 바라볼 수 있어 한결 여유롭다. 랄리벨라에 있는 16개의 호텔 가운데 가장 많은 객실을 갖추고 있어서 특히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한다. 암굴교회는 물론 주변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와도 가까운 거리라 이동에 따른 피곤함이 없다. 태양열을 이용해 온수를 공급하며 마사지 서비스도 가능하다.
Amhara Region, North Wollo, Lalibela 251-11-5508870

RESTAURANT
탑뷰Top View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아디스 아바바에는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곳이 많다. 이스라엘대사관 근처의 탑뷰 레스토랑은 그 이름처럼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해 있다. 3대를 이어오는 아디스 아바바 최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중 하나로, 파스타 가격은 종류에 따라 다른데, 평균 5,000원 정도. 소스가 풍성하지 않기 때문에 토마토스파게티나 까르보나라보다는 마늘과 고추, 올리브오일로 맛을 낸 알리오 올리오가 입맛에 잘 맞는다. 알리오 올리오의 가격은 3,000원 정도.
251-11-6511573

2000 하베샤 레스토랑2000 Habesha Cultural Restaurant
에티오피아 전통식을 맛볼 수 있는 아디스 아바바 최고의 식당이다. 식당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모두 전통양식으로 디자인해 에티오피아의 느낌이 물씬 난다. 에티오피아항공과 파트너십을 맺은 곳이라 서비스 면에서도 신뢰가 가는데, 저녁 7시30부터 10시30분까지 전통 공연도 펼쳐진다. 30여 개의 각기 다른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데 공연의 수준이 매우 높다. 볶은 채소요리, 코티지 치즈, 쇠고기, 양고기, 채소 등 종류별 스튜와 *인제라가 마련된 뷔페식이 대표메뉴다. 입구에서 가벼운 검색을 거쳐서 입장한다.
Bole, K03/05, Addis Ababa 251-11-6182253

*인제라Injera | 에티오피아의 주식으로 에티오피아의 곡물인 테프Teff 가루에 물, 소금, 효모 등을 넣고 발효시켜 둥글넓적하게 부친다. 인제라는 접시 위에 펼쳐 고기나 채소를 넣은 매콤한 스튜인 와트wat를 얹은 다음, 다른 인제라를 손으로 뜯어 와트를 싸 먹는다. 스펀지처럼 가벼운데 맛은 발효시켜 약간 시큼하다. 매운 스튜와 잘 어울려 처음에는 어색해도 이내 그 맛에 끌린다.

TRAVEL & LIFE

기본정보
에티오피아의 날씨는 2,000m 이상의 고지대의 경우, 16~22℃로 연중 쾌적하다. 2~3월은 소우기, 4~5월은 온건기, 6~9월은 대우기, 10~1월은 냉건기다. 국민의 약 43%가 에티오피아 정교를 믿고, 무슬림이 34%다. 공용어는 암하릭어로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통용된다. 여행시 비자는 볼레국제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받으면 된다. 수수료는 USD20다. 화폐 단위는 비르birr로, 1달러가 약 20비르다. 대부분 220V를 사용하는데, 다른 경우도 있어 멀티어댑터를 꼭 챙겨 가는 게 좋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예방접종과 고산병
에티오피아는 입국 전 황열병 예방접종이 필수다. 노란색 접종 증명서를 입국 시 여권과 함께 지참해야 한다. 접종 후 근육통, 미열 등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늦어도 출국 10일 전에는 접종하는 게 좋다. 고지대에서는 필요 없지만 저지대를 여행할 경우에는 말라리아 예방약도 챙기도록 한다. 랄리벨라는 해발 약 2,600~2,800m로 개인차에 따라 숨이 차고 어지러운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선물을 준비하세요
유적지나 호텔 근처에는 아이들이 기념품을 팔거나 돈을 요구하며 다가온다. 사탕이나 초콜릿보다 볼펜을 건네면 특히 좋아한다. 현지인들의 사진을 찍을 때는 감사의 뜻으로 10비르 정도 건네는 것을 잊지 말자.

암굴교회 중 하나인 마리암 교회의 내부. 모든 교회 내 카메라 플래쉬는 금물이다

랄리벨라 암굴교회는 성지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트리니티 대성당에서 만난 정교회 신도. 교회의 관리를 맡고 있다고 했다

랄리벨라의 한 기념품가게에서 만난 모자. 생후 6개월된 아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정교회의 미사는 사제가 집전하는 기독교 양식이지만 양손을 위로 받드는 것은 이슬람식 기도다. 찬송을 할 때는 아프리카 토착 리듬의 영향으로 박수를 친다

오벨리스크 앞에 자리한 가옥 창가에서한 주민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작용하는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혹시 ‘에티오피아’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커피의 나라’로만 알려진 아프리카의 이 작은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면, 지금부터 떠나보도록 하자. 아프리카야말로 놀라운 감동이 숨겨져 있는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일 테니….

블루 나일 폭포-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수도를 떠나 나일강의 발원지로 향하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 도착하면, 청명한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먼저 반긴다. 에티오피아 말로 ‘새로운 꽃’을 뜻하는 것처럼, 현재 이 나라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로 분류되듯,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행색과 도시풍경은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오래되어 보이고, 낡은 자동차들이 내뿜는 검은 매연을 보며, 아프리카에 와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실내벽화로 유명한 트리니티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도를 드린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 중 하나이지만, 분명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이곳에 있으리라고. 옆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표정들을 보면, 분명히 그 기도가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지프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 17세기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수도원으로 유명한 바하르 다르(Bahar Dar)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아프리카에 두 번째로 큰 블루 나일 폭포의 웅장함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자연이 선사하는 거대한 위용 앞에서는 쉽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비옥한 땅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커피는 에티오피아를 그저 가난한 나라로만 보는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이곳이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곳의 타나 호수부터 시작하는 블루 나일과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는 화이트 나일이 합쳐져 나일강의 2대 발원지라는 사실이다. 보트를 타고 타나 호숫가를 따라 흐르면 이국적인 자유로움과 느긋함에 취해 절로 미소가 새어 나온다.

랄리벨라 교회-3,000m 높이에 120여 년 동안 지어진 암굴 교회.

곤다르 유적-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됐다.



에티오피아의 황금기, 과거로의 여행

타나 호수에서 보트 투어를 마친 후, 지프를 타고 좀 더 북쪽으로 오르면 곤다르(Gondar)에 닿는다. 이 도시는 파실리다스 황제(Fasil ide s)가 1636년에 왕국의 수도로 정한 이후로 200여 년간 에티오피아의 수도였다.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였던 만큼, 곤다르에는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들이 많다. 특히 파실리다스 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파실게비 유적(Fasil Ghebbi)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왕궁유적인 이곳은 파실리다스 황제의 궁전뿐 아니라 대형 탑 2개가 딸린 이야스 대제의 왕궁 등 화려했던 그 시기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거대한 유적지다.

곤다르에서 왕궁유적과 함께 꼭 들러야할 곳은 바로 데브레 베란 셀라시에 교회(Debre Bethan Selassi Church)이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교회는 에티오피아 교회의 중심지로서, 곤다르에 남아 있는 교회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천사의 얼굴이 그려진 유명한 천장화를 보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에티오피아 문명의 요람이자 성스러운 도시, 악숨(Axum)이다. 모세가 신에게 받은 십계명이 기록된 석판이 보관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는 이 도시에는 오벨리스크 유적지와 악숨 왕국의 성채를 비롯해 다양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곤다르의 파실게비 유적, 악숨의 고고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랄리벨라 암굴성당은 에티오피아의 화려했던 과거로의 여행을 가속화 시킨다. 해발고도 3,000m 높이의 산지에 굴을 파서 만든 11개의 성당은 무려 120여 년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수많은 순례자들의 경건한 얼굴에는 경이로움과 놀라움이 가득하다.

아디스아바바의 전경-오늘날 에티오피아의 중심지이다.

수도로 돌아와 커피를 홀짝이며

다시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왔다. 카페에 홀로 앉아 에티오피아가 자랑하는 커피를 홀짝이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분명히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낙후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 그렇지만 한국전쟁 당시 보병 1개 대대를 파병했다는 점이 새삼 떠오른다. 비록 지역 간 분쟁과 내란, 기근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영광의 과거와 어려움을 함께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어느 도시에선가 보았던 그들의 전통 춤이 기억난다. 흰 색 옷을 입고 밝게 웃으며 악기를 부는 활기찬 모습이 용맹스러운 사자의 상과 겹쳐 보인다. 어서 하루 빨리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되찾기를. 그리고 현재를 벗어나 새로운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기도한다. 트리니티 대성당에서 간절히 기도 드리던 아이들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여행 정보
정식 명칭은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으로,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다. 화폐 단위는 비르(Birr)로 1비르는 한화 약 80원 정도이다. 언어는 암하라어와 영어 공용, 종교는 에티오피아 정교와 이슬람교 토착종교 등을 믿는다.

주의할 점
야간에는 외출이나 이동을 삼가는 것이 좋으며, 특히 국경 북부지방 여행은 피해야 하다. 대부분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이므로, 말라리아약을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식수는 끓여 마시거나 포장된 미네랄워터를 구입해 마셔야 한다.

가는 길
현재 한국에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으로 직항하는 항공편은 없다. 보통 방콕이나 두바이를 경유해서 간다. 에티오피아 항공이 북경을 경유하는 인천-아디스아바바 노선을 12월 신규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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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 제국의 대표적 유산인 오벨리스크군. 세계에서 가장 큰 33m의 오벨리스크는 넘어져 있다 

●Axum 악숨 
에티오피아 문명의 요람

악숨은 오지다. 아디스아바바에서 960km 떨어진 에티오피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한 산악 도시다. 인구 2만명에 불과한 이곳은 그러나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로마와 중국 한나라, 페르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악숨 왕국의 수도였다. 

동쪽으로는 홍해, 북쪽으로는 수단과 이집트, 서쪽과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본토와 이어졌던 악숨은 금과 유향, 몰약과 홍해의 소금 등을 팔아 부를 쌓았다. 4세기에는 기독교를 국교화했고, 화폐와 문자, 건축물 등 고도의 문명까지 탄생시켰다. 하지만 10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으로 해상무역이 막히고 대가뭄이 겹치면서 쇠망했다. 

악숨 왕국의 대표적인 창조물은 오벨리스크(Obelisk)다. 오벨리스크는 왕의 무덤 위에 세우는 석주로 그 크기로 왕의 권력을 나타낸다. 북쪽에 자리한 오벨리스크 공원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천년에 걸쳐 세워진 오벨리스크 수십 개가 있다. 

서 있는 것들 중에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33m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넘어져 깨진 상태고, 24m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1937년 무솔리니가 세 동강 내어 로마로 가져갔다가 2005년 국제적인 문화재 반환 운동으로 되돌려 받았다. 이 거대한 오벨리스크들은 모두 하나의 단일 암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지하에서는 왕의 무덤과 금속과 상아 등 부장품들이 발견됐다. 

악숨의 옛 이름은 시바Sheba라고 알려져 있다. 14세기에 쓰여진 에티오피아의 역사서 <케브라 나가스트(Kebra Nagast)>에 따르면 마케다(Makeda)공주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바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여왕은 지혜를 구하고자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을 찾아갔다. 왕과의 하룻밤 이후 아들 메넬리크를 낳았는데 메넬리크는 22살이 되어 어머니가 준 반지를 가지고 아버지 솔로몬을 만났다. 그는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던 솔로몬 왕의 뜻을 뒤로하고 악숨으로 돌아와 메넬리크 1세라는 왕호로 황제에 올라 솔로몬 왕국을 이어갔다. 성직자와 학자, 장인 등 1만2,000명의 유대인 그리고 십계명을 보관한 법궤(Art of the Covenant)와 함께였다. 

에티오피아의 기원은 이렇듯 솔로몬 왕의 아들 메넬리크 1세로부터 시작됐다. 악숨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왕복 8,000km로 당시 걸어서 1년이 걸렸을 시간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실 마케다 여왕의 원정은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싣고 간 유향과 몰약, 금과 오팔 그리고 소금 등은 모두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악숨의 최고 지배자가 중동 무역을 관장하던 솔로몬 왕과 만나는 최초의 경제 정상회담이었던 셈이다. 

‘성 마리아 시온교회(St. Mary of Zion Church)’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법궤, 메넬리크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는 바로 그 법궤가 모셔져 있다고 했다. 교회는 4~6세기 경 세워졌던 교회의 후신으로 1965년 하일레 셀라시에 1세에 의해 지어졌다. 

에티오피아정교회는 법궤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본 사람은 없다. 에티오피아 고대 기즈어로 이까베트‘보호자’라는 뜻라 부르는 수도사 한 명만이 성소(聖所)에 모셔진 법궤를 관리하는데 그는 성소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죽을 때까지 법궤를 지키며 산다. 75세에 임명됐다는 현 이까베트는 80세다. 법궤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사실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법궤는 열어 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법궤는 곧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법궤가 사라진 데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학자들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 제국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법궤도 함께 파괴됐든가 아니면 히브리인들이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왜 성서에나 외부 기록에조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땅이 시바의 여왕이 살던 터전임을 증명하듯 둔구르 유적에는 여왕의 왕궁 터가 남아 있다. 돌을 쌓아 올린 터 위에는 욕실, 아궁이, 배수시설, 재판장 등 몇몇 흔적들이 남아 있지만 시바의 여왕 때와는 사실 1,700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부풀려진 기원 속에서 역사적 진실을 가려내는 일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둘 수밖에. 평범한 여행자가 알고 있는 건 종교의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는 숨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뿐이다. 혹시 모른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기록된 트로이 전쟁이 신화가 아닌 실제라 밝혀졌던 것처럼, 언젠가 에티오피아의 일관된 전설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지도.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처럼 옛 사람들의 기록에는 반드시 진실이 담겨 있다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1937년 이탈리아에 빼앗긴 오벨리스크는 제자리를 찾았다

에티오피아정교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 마리아 시온교회. 교회 옆 성소에 모세의 법궤가 안치돼 있다고 전해진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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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대학 내 민속학박물관은 과거 셀라시에 황제가 거처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당시 황제의 침실과 거실 욕실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Addis Ababa 아디스아바바
아프리카의 정치 1번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이자 아프리카의 정치 1번지로 통하는 이곳에는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를 비롯해 각국 대사관들이 몰려 있다. 쉴 새 없이 올라가는 빌딩들과 매연 속 수많은 차량들이 아디스아바바의 변화하는 오늘을 말하는 가운데, 아라트 킬로(Arat Kilo) 광장에는 1941년 이탈리아와의 전투 승리를 기념한 승전기념비가 빠르게 스쳐갔다. 수많은 외침에도 아프리카의 53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식민지를 겪지 않은 에티오피아는 1936년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수도가 함락되고 황제가 해외로 망명하기도 했지만 5년 만에 이탈리아 군대를 물리치고 수도를 탈환했다. 

에티오피아의 자부심은 인류 기원에까지 닿아 있다. 국립박물관에는 1974년 북부 아파르 지역에서 발굴된 화석이 있는데 이름은 루시(Lucy),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루시라는 이름은 발굴 당시 비틀즈의 노래 ‘루시 인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들으며 연구원들이 축배를 들었다는 데서 유래됐다. 318만년 전에 살았던 1m 가량의 키에 20세 전후의 여성으로 알려진 루시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이자 직립보행을 한 최초의 화석이다.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이 진화됐다는 증거는 루시 이전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근대화는 메넬리크(Menelik) 2세에 의해 다져졌다. 그는 부족 간의 대립으로 분열된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쳤으며, 아디스아바바를 건설했다. 아디스아바바는 암하릭어로 ‘새로운 꽃’이라는 뜻으로 이전까지의 수도는 엔토토(Entoto)였다. 

해발 3,000m의 엔토토는 기온이 낮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해 수도로는 부족했다. 황후가 황제를 설득해 산기슭 온천 부근에 집을 짓고, 주변 땅을 귀족들에게 나눠준 것이 새로운 수도의 시작이었다. 엔토토산에는 메넬리크 2세의 궁전이 당시의 소박한 자태 그대로 남아 있고, 그보다 높은 곳에 엔토토 마리암 교회(Entoto Maryam Church)가 자리했다. 

20세기 에티오피아 역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는 메넬리크 2세의 개혁을 이어간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1세다. 그는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이후 황제에 올라 1930년부터 40여 년간 헌법을 제정하고 노예 제도를 철폐하는 한편 아프리카통일기구OAU를 세우고,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국제연합 회원국으로 가입시켰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1960년대에 에티오피아의 국민소득은 3,000달러였다. 

한국전쟁 때 황실 근위대였던 강뉴(Kangnew)부대 6,037명을 연합군으로 파병한 이도 셀라시에 황제였다. 당시 철원과 화천, 양구 등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은 657명으로 포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연연하다 결국 반대 세력에 의해 폐위당하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1942년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국내외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셀라시에 황제가 세운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121명의 유해, 그리고 황제 자신과 황후도 함께 묻혀 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총 대주교의 즉위식이 행해진다는 성당은 유럽 스타일의 외관과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무척 아름답다. 

셀라시에 황제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신봉하는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이 레게음악의 전설 ‘밥 말리’의 음악세계에 밑거름이 됐다는 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다. 

밥 말리는 자신의 곡 ‘War’에서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될 때까지 나는 전쟁에 대해 말할 것’이라 노래했는데, 그 곡은 셀라시에 황제가 유엔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아디스아바바 거리에서 밥 말리 사진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레게머리를 늘어뜨리고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레게음악에 몸을 맡기는 이들도 간혹 보인다.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이자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하일레 셀라시에1세에 대한 대 내외적 평가는 분분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세계의 문화로 자리한 레게의 중심에서 하일레 셀라시에라는 이름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싶다. 

엔토토산에서 바라본 아디스아바바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을 지키는 사제. 여행자들에게 무척 인자하다

트리니티 대성당 뒤쪽에 서 있는 성상. 아래 교회 지하에 용사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의 외관

아디스아바바대학 내 자리한 민속학박물관 내부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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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커피예식인 분나 마프라트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안 커피 Ethiopian Coffee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다. 850년경 칼디라는 이름의 목동이 커피 열매를 따 먹고 흥분하는 양을 본 것이 커피의 기원설이라 전해진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전부터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는 커피 원두 가루를 민간요법으로 처방해 왔다. 

이르가체페, 시다모, 짐마, 리무, 하라. 커피 애호가라면 선호하는 이 상품들은 에티오피아 커피의 주요 생산지 이름이다. 아프리카의 최대 커피 생산국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커피가 많이 나는 나라로, 커피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에티오피아 커피의 맛과 품질은 뛰어나다. 

커피를 이곳 사람들은 ‘분나(Bunna)’라고 부른다. 특히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 부르는 에티오피아의 특별한 전통 커피예식은 커피 한 잔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우는 마법 같은 의식이다. 정도는 달라도 호텔이나 레스토랑, 공항이나 거리에서 분나 마프라트를 경험할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서 전통에 따라 대접할 경우는 1시간 이상 소요된다. 

분나 마프라트는 가족과 이웃 간 친목의 시간이자 손님에 대한 예우다. 먼저 케트마(Ketma)라는 나뭇잎을 바닥에 깔고 숯불에 유향이나 유칼립투스 잎을 피워 신성함을 표한다. 그리고 생두를 팬에 볶아 그 향기를 맡게 한 다음, 절굿공이로 빻은 커피가루를 전통 주전자 제베나(Jebena)에 넣어 불 위에서 부채질하며 끓여낸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시니(Cini)라는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에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담아내는데, 거품이 많을수록 맛이 진해 높이서 따른다. 첫 잔은 우애, 둘째 잔은 평화, 셋째 잔은 축복의 의미를 담아 세 번을 마신다. 에티오피아 가정에서는 이 커피 의례로 아침을 열고 집에 온 손님에게도 커피를 대접한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 전통 예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숍 ‘토모카’와 체인점 ‘칼디스 커피’는 외국 커피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토모카는 짧았던 이탈리아 지배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식 커피전문점으로 명성을 높였다. 칼디스 커피는 언뜻 보면 그 로고가 스타벅스 커피와 비슷하다. 창립자는 항공기 조종사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다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외국계 커피전문점은 에티오피아에서 영업을 할 수 없지만 앞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에티오피아의 대표 수출작물인 커피는 농림부 산하 담당기관(The coffee and Tea Authority)의 규제 아래 일정 품질 이상이 유럽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로 전량 수출되고 생산량의 절반이 국내에서 소비된다. 커피 수출을 통해 에티오피아 정부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1년 수익의 10% 정도. 그러나 한때 검은 황금이라 불리며 외화벌이의 주요 수단이 됐던 커피의 작황이 좋지 않아 가난한 농가들은 재배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생산 농장은 대부분 소규모이고 재배방식은 10세기 이후 지금까지 수작업이다. 자료에 따르면 세계 커피 시장을 점령하는 기업들의 매출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지만 직접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가 커피 한 잔으로 손에 쥐는 돈은 가격의 0.5%에 불과하다. 

악숨 공항에서 커피 세리모니로 마셨던 시니를 30비르(1,800원)에 사 왔다. 에티오피아 국기가 찍힌 그 낡고 손잡이가 없는 잔에다 에티오피아에서 사 온 원두를 내려 마신다. 진한 커피 한 잔에 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녹아 목젖을 타고 내리는 요즘이다. 여행자의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었던 분나가, 우기가 지나 대지가 푸르게 물들 때쯤 그들에게도 뜨거운 축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두를 팬에 볶으면 커피향이 가득하다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다

▶travel info

Airline
에티오피아항공 Ethiopian Airlines에티오피아항공의 인천 취항은 양국 외교 수립 50주년 기념일인 2013년 6월19일 시작됐다. 현재 홍콩을 경유하는 인천-아디스아바바 노선이 주 4회(월, 화, 목, 토요일) 운항되며 소요시간은 15시간 45분이다. 인천에서 오후 9시에 출발해 홍콩에서 한 시간 대기한 후 아디스아바바에 다음날 오전 6시45분에 도착하고, 아디스아바바-인천 노선은 주 4회(월, 수, 금, 일요일), 아디스아바바에서 오후 10시5분에 출발, 홍콩에서 한 시간 대기한 후 다음날 오후 7시55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에티오피아 국내를 여행할 경우 에티오피아항공의 국내선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바하르다르, 곤다르, 랄리벨라, 악숨까지 운항한다.  

Language
공용어인 암하릭어 외 영어와 부족어가 사용되고 자음 33자, 모음 7자로 된 고유문자가 있다. 에티오피아정교 50%, 회교 40%, 기타 토착종교 등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다. 

Weather & Time 
2~3월은 소우기, 4~5월은 온건기, 6~9월은 대우기, 10~1월은 냉건기다. 고지대는 우기라 해도 한때 쏟아지고 쾌청하지만, 저지대는 비도 거의 오지 않고 덥다. 북부지방은 건기 때도 아침저녁이 쌀쌀하기 때문에 따뜻한 겉옷을 챙기도록 한다. 시간은 한국보다 6시간 늦다. 

Visa & Currency 
화폐단위는 비르Birr. 10비르는 약 600원이다. USD로 환전해 도착시 공항 환전소에서 비르로 환전하는 게 가장 편하다. 관광을 목적으로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대기시간이 길다. 수수료는 USD50이다. 

calendar
에티오피아는 지금 2009년이다. 에티오피아는 1년이 총 13달이다. 고대 이집트의 게즈력(Ge’ez calendar)에 바탕을 둔 에티오피아력은 1년 365일에 각 달이 30일씩이고, 마지막 13월은 5일(윤달은 6일)까지다. 세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보다 7년이 늦다. 에티오피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7일, 새해는 9월11일이다. 

Hotel
고하 호텔 Goha Hotel Gondar
곤다르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호텔로 시설도 서비스도 훌륭하다. 무료 인터넷 서비스와 시내로 이동하는 무료 셔틀이 운행되며 특히 모든 객실에 곤다르를 상징하는 문양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가죽을 입힌 의자, 자연스러운 나무질감이 기분 좋은 탁자 등 정성 가득한 소품들도 매력적이다. 
주소: 182 Gondar, Ethiopia  
전화: +251 581 110 634 
홈페이지:  www.gohahotel.com   

Food
인제라 Injera

테프(Teff)가루에 소금을 넣고 따뜻한 물로 반죽해 며칠 실온에서 발효한 뒤 팬에 얇게 부쳐 낸 에티오피아의 주식. 기포가 송송 뚫려 있고 스펀지처럼 가볍고 폭신하며 시큼한 맛이 다양한 와트(Wat). 소스와 반찬과 잘 어울린다. 칼슘과 비타민C,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혈당과 체중 조절에 좋은 글루텐 프리 음식으로 알려져 해외에도 수출한다. 

테쯔 Tej

꿀로 만든 전통 술. 에티오피아는 양봉산업이 발달해 질 좋은 꿀을 맛볼 수 있는데 테쯔는 과거 왕족과 귀족들이 향연에서 마시던 특별한 음료다. 작은 유리병 베레레(Berele)에 담아내는데 꿀 향이 좋다. 도수는 6~10% 정도. 

맥주와 와인 

에티오피아 맥주와 와인은 외국 유명 기업들의 진출로 인해 다양한 종류와 뛰어난 맛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의 카스텔이 대표적인데 1998년 국영 양조장인 생 조지를 인수하면서 진출했다. 여기서 생산한 생 조지(St. George)맥주는 현지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데 현지 보리와 자체 생산한 맥아를 사용한다. 카스텔은 아디스아바바 남쪽 땅을 제공받아 프랑스의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도 생산하는데 매년 250톤의 포도를 수확하고 부족한 제조량은 수입에 의존한다. 

Restaurant
네 자매 식당 Four Sisters Restaurant
곤다르에 있는 유명 식당. 2011년 7월에 문을 열었다. 큰언니 테나부터 헬렌, 세넷, 막내인 에덴까지 네 자매 각자의 재능을 살려 의기투합해 만든 레스토랑은 이제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에티오피아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인제라와 테쯔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전통식 뷔페는 172비르. 테쯔는 1리터 120비르, 0.5리터 70비르에 포장 가능하다.
위치: 파실게미 후문에서 약 200m 지점
전화: +251 581 122 031 
운영시간: 07:00~23:00  
홈페이지: www.thefoursistersrestaurant.com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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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주하기 전에, 그 땅의 신비로움에 빠져 들었다. 적갈색 옥토에 생명의 빗줄기 쏟아지고 있다. 운무에 휩싸인 예가체프와의 첫 만남이다. 작은 시골 마을은 차분하고 온화하다. 약속의 땅, 에티오피아에서 신의 기운을 강하게 느낀다. 황토 흙과 어우러진 커피나무의 기운이 깊은 향기로 전해온다. 커피란 대지가 탄생 시킨 하늘의 작품인 까닭이다.

높고 가파른 산속에 길은 아스라이 이어진다. 산중턱 도로는 예가체프 아이들의 터전이며 놀이터다.

순수의 결정체, 커피 예가체프의 숨결 속으로

수도 아디스아바바 Adis Ababa를 출발하여 중남부 고원도시, 예가체프까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하며 커피의 본고장이라는 예가체프 Yirga Chefe의 존재조차도 실감하지 못했다. 해발 고도 2,500m까지 끝없이 이어진 산길을 달렸다. 무언가 다른 기운이 감지되는 순간, 이곳이 커피의 본고장 이르가체페(현지인 발음)란다.

커피의 본고장 에티오피아는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이며, 야생 커피의 본산지로 에티오피아 전체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커피는 이 나라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다. 2만 여 개에 가까운 국영 농장과 30만개의 지역 소규모 농장이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 커피의 대국답게 깊은 자연의 품속엔 푸른 커피콩이 천지로 자라고 있으며, 커피나무는 다른 야생의 나무들과 함께 자연 속에 섞여서 자라나고 있다.


이름도 근사한 이르가 체페, 차분하고 신비로운 도시 분위기를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 들었다. 커피 농장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시도였다. 당연히 농장이 존재하리라 믿었던 터였다. 그러나 깊은 산속 원주민을 찾아 커피 농장의 존재를 물으니,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곳 예가체프 커피는 모두 야성의 커피로 생산되는 까닭이다.

깊은 산속을 뛰어 다니다가, 땀이 나면 아이는 옷을 홀랑 벗고 계곡 속에서 멱을 감는다.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황토라기 보다 오히려 적토에 가깝다. 옥토가 전해주는 풍성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진흙으로 신발은 엉망이 되고, 걷는 걸음도 쉽지 않다. 미끄러지고, 발길은 무겁다. 산길을 굽이돌아 계속 오르고 또 오른다. 계곡 속 작은 개울을 건넌다. 어린 아이들은 멱을 감는다. 그냥 홀랑 벗고 흐르는 물에 온몸을 맡긴다. 자연이 주는 축복이며, 숲 속에 사는 존재의 자연스러움이다. 그 자연스러움이 부러울 따름이다.

산길을 계속 오르니, 작은 오두막 하나 보인다.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그 깊은 곳에 있다. 촌로가 집 앞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다. 얼굴 안색이 좋지 않다. 아이들이 몰려와 내게 이야기를 전 한다,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듯 아프시다고. 흙 집 방안을 들어가 보니, 노파가 지친 기색으로 누워 신음한다. 가슴이 아프다. 어려운 사람들의 삶은 왜 이리, 더욱 더 깊은 고통의 연속인가? 예가체프 산골 마을의 흔한 풍경이란다.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젊은 아낙이 커피나무를 베어가지고 내려 온다. 땔감으로 쓰려고 베어 온 모양이다. 이곳에선 커피 나무도 그냥 땔감이다. 산속의 삶은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존재한다. 커피가 우리에겐 취향이지만, 그들에겐 삶을 이어가는 방편이다. 우리에겐 기호식품인 커피가 그들에겐 삶의 근간이며, 생을 지탱시켜 주는 생명 나무다.

커피 세리머니, 예가체프의 숨결을 느끼다

드디어, 산정상이다. 파노라마의 산하를 내려다 보는 정글 같은 수림, 촉촉하다. 황토 대지의 흙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 온다. 산 공기가 싱그럽다. 이곳이 커피의 본고향, 예가체프다. 인공의 손길도 없고, 경작을 위한 문명의 도구도 없다. 하늘이 허락한 자연 속에 대지의 지력으로 하늘의 충분한 습기로, 적당한 태양의 온기로 커피 예가체프는 탄생되고 있었다.

해발 고도 2,000m가 넘는 초록의 산들이 춤추듯 이어져 있는 예가체프, 아! 이곳이 천국 아닐까?

순박한 사람들, 옥토의 충만한 기운. 따사로운 태양 아래, 그렇게 숨쉬듯 존재하는 예가체프는 나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전해주었다. 유기농이라 표현하지만 가장 고급의 성스러운 식물은 대자연의 너그러운 생명력 속에서, 평화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자연의 순결한 힘, 오직 그 생명력으로 키워내고 있었다.

그린 원두의 신비, 예가체프 커피나무 생두를 직접 손으로 만져 본다. 그린의 설렘, 붉은 원두의 찬란한 빛깔, 예가체프 생두는 그렇게 태양의 신비를 머금고 고요히 숨죽여 탄생되고 있었다. 그 신비롭고 광대한 에티오피아 남부 깊고 깊은 산속에서 말이다.

산골 부부의 집을 찾았다. 커피를 유기농으로 생산하여, 뉴질랜드로 수출한다는 작은 집이다. 깊고 그윽한 눈매가 마치 커피향을 닮은 주인이다. 젊은 아내의 표정도 온화하다. 사심 없고 욕심 없는 삶의 진정한 평화를 보는 듯 하다. 동네 아이들도 모두 모여들었다. 산속을 찾아 든 최초의 외국인이라도 되는 양, 마냥 신기해 한다.


주민들과 함께 외국인을 위한 커피 세리머니를 준비한다. 이들에게 커피 한잔을 준비하는 일은 하나의 의식이다.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을 준비한다. 생두를 화덕에 로스팅하고 작은 절구에 한참을 빻는다. 뜨겁게 끓인 물에 커피를 내려, 소박한 탁자위로 예를 갖춘다. 깊은 산속에서 야생 예가체프를 마신다. 에티오피아의 숨결을 목구멍으로 느낀다.

야생 예가체프를 마시는 깊고 그윽한 순간, 커피 한잔을 준비하는 데는 30분 이상이 걸린다.

나는 커피를 잘 알지 못한다. 예가체프의 존재도 이곳 에티오피아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작은 시골마을 이르가체페의 느낌도 신비롭고, 커피 예가체프의 존재도 감동이다. 한국을 떠나 카타르를 거쳐 도착한 에티오피아. 다시 그곳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떠나 깊은 산 고개를 넘고 넘어 이틀 만에 당도한 커피의 제국, 예가체프.

커피 예가체프는 순수의 결정체, 커피 예가체프는 영롱한 이슬과 광대한 대지위로 스며드는 태양이 창조한 대지의 마술이다. 순박한 사람들의 눈망울에 감동하고, 거대한 자연의 품속에 있어 행복하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커피, 예가체프의 순수를 마시게 되어 더 감동한다. 커피 예가체프는 에티오피아 푸른 심장 속에서 잉태되고 있다. 예가체프는 순수다. 커피 예가체프는 향기마저 온전한 자연이다.

여행 TIP

에티오피아 입국정보

아프리카로 가는 항공 루트가 많아졌다. 우선 남아공을 경유해서 에티오피아로 들어오는 가정 일반적인 방법과 중동 항공사 카타르 항공을 이용해, 도하에서 에티오피아 항공을 갈아타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집트나 케냐를 들러, 그곳에서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비자는 항공 이용 시 공항에서 입국 비자가 20$ 이다. 케냐, 수단 등을 통한 육로입국 시 반드시 그 나라에서 비자를 취득하고 입국해야 한다.

예가체프의 깊은 산속 야생 카페, 산골 동네아이들이 모두 모여 외지인을 반겨주었다.

에티오피아 여행정보
수도 아디스아바바에는 여행자 숙소가 적절한 요금에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다. 각 도시로의 여행법은 아디스아바바 버스터미널에서 남쪽 각 도시로 연결한다. 예가체프도 이곳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이 풍족감을 전해주는 에티오피아 여행은 현지인을 고용한 렌터카 여행을 권하고 싶다. 커피 팜을 방문하거나 멋진 추억 여행을 위해서는 렌터카를 빌려, 현지인과 함께 남부 호수와 커피농장 방문, 사파리 체험 등 깊고 그윽한 에티오피아 대자연 깊숙이 들어가 보자.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업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기원지로 커피라는 이름은 본래 에티오피아의 도시 카파(Kaffa) 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커피 경작에 있어 전통을 중시하며, 일부 국영 농장 이외에는 커피나무들이 일반 다른 수종들과 함께 자연스러운 그늘에서 자연 생태로 자라나고 생산된다.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는 거대한 대지 곳곳에서 야생 커피를 흔히 만날 수 있는 커피의 나라이다. 커피는 곧, 에티오피아 인들의 생활이며, 나라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다.

 

  1. 한별 2017.08.02 17:30

    안녕하세요 ! 잘 읽었습니다! 혹시 예가체페 가는 법 구체적으로 알려주실수 있나요? 카피 너무 좋아해서 가보고 싶은데 정보가 많이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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