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분명히 그다음 날이면 줄을 서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물건인데도 며칠 동안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그리고 어느 식당을 가도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다. 나는 이런 일본을 좋아한다.

180cm 이하 남자들의 쇼핑 천국

얼마 전에 인터넷 배너 광고 중에 ‘키작남’이라는 남자 옷 인터넷 쇼핑몰 광고를 보고 한참 웃은 적이 있다. 하지만 클릭해서 들어가진 않았다. 나 스스로가 ‘키 작은 남자’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키가 작은 것이 아니다. 다만, 큰 키가 아닐 뿐. 아무튼 키가 180cm가 안 되는 나에게 일본 남성 패션은 정말 새로운 세상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남자들의 평균 키가 작은 일본에서는 길이가 어중간한 티셔츠도 없었고, 매번 밑단을 잘라 핏이 이상해지는 바지를 사 입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쿄에 촬영하러 갈 때는 쇼핑할 시간이 거의 없어 대부분 벼락치기 쇼핑을 하게 된다. 신기한 것은 그토록 짧은 시간에 하는 쇼핑인데도, 도쿄에만 가면 카드가 한도에 이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브랜드의 제품이라도 도쿄와 서울의 옷은 전혀 다르다. MD의 취향이 달라서일까. 이건 이름만 같은 브랜드이지 핏도, 디자인도 완전 다르다.

폴 스미스 같은 브랜드에서는 일본 디자이너에게 자체 디자인 권한을 준다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랜드라도 도쿄 에디션이 따로 있는 셈이다. 루이 비통이나 투미도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동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남성 지갑에 동전 주머니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명품 브랜드에 일본만의 스타일과 디자인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구매자의 요구가 강력하고, 파워풀하다는 게 아닐까.

일본의 남성복 디자인이 다양한 것을 보면 일본 남자들이 자신을 가꾸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에야 우리나라에도 메트로섹슈얼이니 그루밍족이니, 스스로 가꾸는 남자가 많아졌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남자가 비비 크림을 바르고 옷을 멋있게 입는다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편견과의 싸움이었다. 서울의 남자들에게 패션이란 여자들의 관심사, 혹은 기생 오라버니 같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으니까.

일본의 패션도 패션이지만, 서울 남자와 도쿄 남자의 가장 큰 차이는 헤어와 메이크업이다. 도쿄에서는 캐주얼 차림의 청년은 물론이고 정장 차림의 직장인 남성도 눈썹을 깔끔히 정리하고, 그리기까지 한다. 그 모습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지만, 한편으로 열이 오르기도 했다. 내 얼굴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눈썹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모두 눈썹을 정리하고 다니면 내 장점이 묻힐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선 것.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도쿄 쇼핑이 즐겁기만 하다. 내가 주로 찾는 쇼핑지는 하라주쿠에서 오모테산도, 캣스트리트와 시부야다. 이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이 거리에 밀집해 있어 도쿄에 가면 습관처럼 이 루트를 돌게 된다.



도쿄의 하이패션 1번지, 아오야마

도쿄에서 짧은 시간 안에 패션 쇼핑을 마쳐야 한다면 아오야마가 제격이다. 오모테산도를 시작으로 아오야마까지, 멀티숍에는 엄선된 패션 아이템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옷들이 나에게 “나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후회할걸!” 하고 말을 거는 것 같다. 게다가 아오야마는 시부야나 하라주쿠만큼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다이칸야마보다 쇼핑 동선도 짧은 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오야마를 좋아한다. 내 본격적인 패션 쇼핑이 시작되는 곳도 아오야마다.

아오야마에는 명품 매장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해 도쿄에서 가장 트렌디한 멀티숍으로 꼽히는 숍들이 즐비하다. 오모테산도에서 아오야마까지만 쇼핑해도 글로벌 패션 트렌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숍의 외관도 예술적인 명품 브랜드인 꼼데가르송, 프라다, 요지 야마모토, 10 꼬르소 꼬모를 비롯해, 에지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는 언더커버, 주카, 닐 바렛, 필립 림 등 하이패션 브랜드 숍도 있고, 남다른 스타일을 자랑하는 오너가 엄선한 패션 아이템이 가득한 셀렉트 숍 러브리스, 오리지널 페이크 등 감각적인 패션 숍 대부분이 이곳에 집중해 있다. 아오야마의 기다란 길을 슬렁슬렁 걷기만 해도 감각 충전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딱히 구매 욕구가 없는 날에도 아오야마 윈도쇼핑을 한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솟는다. 일본의 연예인이 가장 많이 찾는 쇼핑지도 아오야마다. 쇼핑 거리 중간 중간에 대형 헤어 숍을 볼 수 있는데, 이들 헤어 숍 중에서도 일본 연예인이 즐겨 찾는 단골집이 많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담동인 셈이다.

아오야마에는 패션 숍만 있는 게 아니다. 시보네, 아이디 숍 등 인테리어 숍도 골목골목에 숨어 있고, 감각적인 주방 용품과 식료품 상점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예쁜 꽃집도 종종 눈에 띈다. 쇼핑하다 지치면 나는 꽃집에 들러 탐스러운 수국을 한 송이 산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신기한 것은 꽃을 보는 순간 피로가 싹 씻긴다는 것. 패션과 문화, 그리고 아름다움이 함께하는 동네가 바로 아오야마다.

입을수록 빛나는 티셔츠
UNDERCOVER

가끔 ‘티셔츠’를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해 오는 패션 에디터들에게 나는 항상 똑같은 말을 한다. “티셔츠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처음 구입했을 때처럼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색깔이 바래고 티셔츠 형태도 조금씩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맞춘 옷처럼 자연스럽게 낡아서 ‘아, 더 낡아서 버려야 되는 날이 오면 어쩌지’ 하고 걱정되는 티셔츠가 있는 반면, ‘이제는 입기 싫다’고 버려지는 티셔츠가 있다. 내게 ‘흐트러짐’이란 뜻은 바로 ‘가치가 바래는’ 것과 동의어인 셈이다. 언더커버의 티셔츠는 내게서 버려지는 법이 없다. 언더커버 티셔츠의 심플한 프린트는 언제 봐도 멋스럽고, 소재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내추럴하다.

언더커버를 처음 보았을 때가 아직도 선명하다.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가 선보인 첫 번째 쇼였는데, 쌍둥이처럼 똑같이 분장한 2명의 모델이 함께 캣워크를 했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얇은 저지 소재 티셔츠에 헐렁한 팬츠를 입고, 컨버스를 신고 나오던 모델들의 시크한 모습에 나는 홀딱 반했다. 그 무렵, 피렌체로 화보 촬영을 갔을 때도 다시 한 번 언더커버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피렌체의 유명한 멀티숍에서 언더커버의 아방가르드한 트렌치코트, 희한한 디자인의 후드 티, 그리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저지 티셔츠를 보고는 다시 한 번 준 다카하시의 디자인 감각에 감동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저지 소재의 티셔츠는 흔치 않을뿐더러 길이가 긴 티셔츠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지금까지 죽 그의 티셔츠를 편애하고 있다.

준 다카하시가 매 시즌 선보이는 새로운 디자인은 초감각적이다. 이에 못지않게 미나미아오야마의 언더커버 매장도 매 시즌 색다른 인테리어를 보여주는데, 그곳 역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베이비 라인, 키즈 라인이 있는 것도 내겐 너무 고맙다. 딸 야니에게 입힐 핫한 베이비 라인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으니. 분명 언더커버가 저렴한 가격대의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쿄까지 왔으면 일본 디자이너들의 옷을 비교적 저렴하게 건지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행의 묘미는 그 나라 고유의 문화를 맛보는 데 있는 거니까. 게다가 언더커버 매장의 한구석에는 항상 세일 품목이 있으니, 다른 사람이 찾아내지 못한 보석 같은 아이템을 내가 뒤늦게 건질 때의 즐거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언더커버 UNDERCOVER
ADD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 5-3-18 
         港区 南青山 5-3-18
TEL 03-3407-1232
OPEN 11:00~20:00(부정기 휴무)
SITE [Hiroshima] www.ucce.jp
       [Toyohashi] www.pasdechat.co.jp/undercov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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