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 섬으로 향하는 나들목은 옹골지고 번잡하다. 말레이시아 최남단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와의 국경도시다.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경제대국 싱가포르다. 물밀듯 밀려드는 말레이시아의 변화상을 보고 싶다면 조호르바루로 가야 한다.


조호르바루는 조호르주의 주도다. 말라카 왕국이 포르투갈에 점령당하자 술탄(왕)의 아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왕국을 세운게 도시의 기원이다. 어떻게 보면 뼛속 깊숙이 옛 말라카 왕국과 이슬람의 문화가 깃든 땅이다.


하지만 현실의 접경도시에서 과거의 역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조호르바루에서의 호흡은 한국의 부산 같고 일본의 요코하마 같다. 말레이문화와 외래문화가 빠르고 조화롭게 뒤섞여있다. 조호르바루는 패션으로 치면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뒤지지 않고 쇼핑과 나이트라이프로도 흥청거리는 곳이다.

옛 말라카 왕국의 흔적이 남은 요새 너머로는 바다 건너 싱가포르가 가깝게 다가서 있다.



싱가포르와 맞닿은 별천지

해협을 가로지르는 1,050m 코즈웨이는 양국의 경계와 소통의 의미를 지닌다. 1km 남짓의 둑길을 두고 숱한 사람과 물자가 매일 파도처럼 양국을 들락거린다. 조호르바르에 거주하는 많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낮이면 임금이 높은 싱가포르로 일하러 간다. 또 주말과 밤에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값싼 물건들을 쇼핑하기 위해 조호르바루로 건너오거나 거리의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여흥을 즐긴다. 규제가 심한 싱가포르에 비해 조호르바르는 값싸게 놀고 먹기에 좋다.


조호르바루를 배회하려면 싱가포르와 이어지는 둑길 코즈웨이를 눈과 귀에 달고 다녀야 한다. 코즈웨이에서 남서쪽으로 연결되는 이스마일 거리는 산책로와 데이트코스가 이어진다. 바다건너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아담한 고기잡이배들은 이국적이면서도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한다.


야시장이 서는 이스마일 거리에는 이슬람의 문화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2차대전 때 요새로 사용됐던 술탄 이브라힘이나 황금색으로 치장한 술탄왕궁은 걸어서 닿는 거리다. 빅토리아풍의 술탄 왕궁에는 정원, 박물관 등이 소담스럽게 담겨 있다. 왕궁 옆, 1892년에 완공된 아부 바카르 모스크는 2000명의 신자가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곳으로 코즈웨이 앞바다의 일몰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조호르바루에서는 과거와 현재, 다양한 문화가 깃든 도시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코즈웨이를 오가며 싱가포르와 조호르바루를 잇는 버스.



다양한 문화와 삶이 뒤엉키다

조호르바루는 외지인들에게 ‘JB'라는 별칭으로 더 익숙하다. 국경 도시의 단상은 다양한 민족이 토해내는 삶들이 현란하게 뒤엉킨다. 이곳에서는 싱가포르에서 건너온 중국인, 고무 농장 작업을 위해 이주한 인도인과 값싸게 여행을 즐기려는 유럽 관광객들이 공존한다. 거리의 간판도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가 나란히 적혀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불교 사원이나 힌두교 사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방인들이 집결하는 최대 번화가는 툰 압둘라자크 거리와 웡 아푸크 거리로 포장마차, 환전소, 시장, 바들이 끊임없이 늘어서 있다. 허리띠를 풀고 포장마차 순회를 해도 좋은 정도로 말레이음식, 중국음식 등 군침 나올 메뉴가 가득하다.


국경지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모습은 이 도시의 독특한 볼거리이기도 하다. 여권을 걷어 서류를 작성하는 택시기사, 입국심사를 위해 버스를 탔다 내렸다 반복하는 시민과도 평범하게 조우하게 된다.


여러 문화가 혼재돼 있지만 속을 한 꺼풀 들춰보면 이곳은 이슬람을 종교로 하는 말레이시아의 주요도시임이 맞다.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청춘들이 밤늦게 서너 시간 잡담을 나누며 마시는 것은 술이 아니라 무알콜 음료수다. 노천 음식점이 즐비해도 술 먹고 비틀거리거나 고성 방가하는 말레이인들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반면 이슬람의 공식휴일인 금요일 대신 싱가포르의 휴일인 일요일에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는 것은 조호르바루의 변화상의 한 단면이다.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모습을 엿보는 것도 조호르바루 여행의 쏠쏠한 재밋거리다.



가는길=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하거나 싱가포르에서 이동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열차로 30분 소요된다. 여권만 있으면 버스나 택시를 타고 양국을 쉽게 오갈 수 있다. 물가가 저렴한 조호르바루에 머물며 싱가포르로 데이투어에 나서는 여행자들도 다수다. 조호르바루 인근 메르싱에서 티오만 등의 섬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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