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삼킨 고대 도시 요르단 '페트라' 이곳의 사진 한 장에 이끌려 4개월을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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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붉은 사암지대. 그곳엔 시간을 삼킨 듯한 고대 도시 페트라와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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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유적 일대에선 다양한 색의 천연 모래가 난다.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 무지개색 사암을 늘어놓고 파는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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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페트라의 은행 혹은 법원 역할을 했다는 광장.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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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풀을 뜯는 낙타. 황량한 사막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곳 원주민 베두인을 닮았다.


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2km에 이르는 협곡 사이를 통과한다

페트라, 사해, 아카바, 와디럼….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마다 벅찬 숨을 내쉬었다. 미끈대는 소금바다와 붉은 모래의 감촉, 잿빛 바람에 묻혀 오던 베두인의 체취, 때마다 울려 퍼지던 굴곡진 아잔*소리와 사멸한 도시의 거대한 침묵. 모세의 기적처럼 놀라운 희열이, 요르단 왕국이, 순간마다 스며들었다.

*아잔adhān | 이슬람교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육성

암만 다운타운에서 마주한 예쁜 계단 길, 알고 보니 어느 카페에서 꾸민 것이었다

●요르단을 만난다는 것은

“괜찮겠어?”요르단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한결같았다. 요르단과 페트라Petra를 동의어로 각인시키며 고조된 여행자가 그 염려의 이유를 알아채는 데는 몇 번의 눈 껌뻑일 시간이 필요했다.

중동,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자리한 한반도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땅. 요르단은 왼쪽으로 이스라엘, 위쪽은 시리아, 오른쪽은 이라크, 아래로 사우디아라비아를 국경으로 접하고 있는, 지도만 보더라도 참 난해한 나라다. 페트라를 잠시 제쳐두고, 지난해 IS에 대한 보복으로 군복을 입고서 직접 공습을 진두지휘했던 압둘라2세 요르단 국왕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터키 제국이 몰락한 후 트랜스요르단으로 출발,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입헌군주국이 된 게 1946년. 아무리 아랍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중동지역이라 해도 알다시피 경계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 상황은 복잡하다. 

중동 평화협상과 친親서방 아랍 국가들간 탁월한 중재자 역할을 해 온 요르단 또한 인접국으로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피할 길이 없다. 게다가 세 차례의 중동-이스라엘 전쟁 때 요르단으로 이주한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걸프전 때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 이주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최근 시리아 난민들까지 합하면 난민의 규모는 엄청나다. 1948년 45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지금은 약 680만명이다. 그들이 일으키는 변화는 분명 불안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요르단 정부의 포용력으로 양질의 국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은 이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새로 추가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였다는 것 외, 심지어 구약과 신약 시대의 무대라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왕조들과 십자군 시대의 유적들은 차치하고라도 성서에 등장하는 지명 가운데 96곳이 요르단에 있는 데도 말이다. 상상과 실재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여정, 요르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아찔한 현기증마저 일었다. 

뫼벤픽 리조트에서 바라본 사해. 건너편은 이스라엘 땅이다

사해 주변 바위는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Dead Sea 사해
죽은 바다의 힘

 차는 사해死海를 향해 달렸다. 좌로도 우로도 삭막한 광야다. 광야. 요르단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텅 비고 아득한 들에는 이따금 양떼가 지나가고 유목민의 허름한 텐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고 있다.

특급 호텔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사해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해수면 아래 400m에 자리한다. 길이 75km, 폭 6~16km. 북부지역은 깊이가 400m에 달하고 남부지역은 5m 정도다. 물이 흘러들기만 하고 빠져나갈 곳 없이 증발되다 보니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 수 없다. 염도가 약 5%인 보통 바다와 달리 사해의 염도는 33%가 넘는다. 대신 많은 유기물이 피부와 신경통에 좋다고 해서 물과 진흙으로 만든 미용 제품은 기념품 일 순위다.

사해는 또한 천연자원의 보고다. 마그네슘과 칼슘염 등 화공 약품과 의약품의 원료로 쓰이는 화학물질이 수억 톤씩 매장돼 있다. 그런 사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는 그저 소금밭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댐을 건설하고 사해로 유입되는 요단강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라 가이드 압둘라는 말했지만, 어찌 그뿐일까. 온난화로 지표면은 건조해지고 물줄기는 말라 가는 것을.

호텔에 짐을 풀고 해변으로 나갔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 사해는 더할 나위 없다. 부력이 높아 저절로 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뛰어들면 곤란하다. 해변 앞 경고문에는 입수 전 주의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얼굴은 담그지 말고, 배영자세로 수영하고, 다이빙 하지 말고, 멀리 나가지 말고…’, 결국 ‘상처가 있으면 들어가지 마라’는 항목에 다다라 입수는 포기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뒤집은 채 사해를 둥둥 떠다녔다. 손으로 움켜쥔 바닷물은 기름처럼 미끈대고 심하게 끈적인다. 괜한 아쉬움에 돌에 붙은 소금 한 덩이를 떼어내 혀에 대보고는 컥컥대며 내뱉는데, 누군가 입을 헹구라고 민물을 건네준다.

“왜 수영 안하죠? 걱정 말아요. 그냥 뜨는 걸요. 내가 당신을 치유해 줄게요.” 빨간 모자를 쓴 안내요원은 진흙까지 건네며 예수의 기적이라도 행할 것처럼 ‘치유Healing’란 단어를 되풀이했다. 그런 그에게 사해를 보고 흥분해 뛰어오다 무릎이 까졌다는 말까지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요단강가의 세례요한교회. 강물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오지만 지금은 많이 말라 있다. 초기 기독교 당시 세례터로 사용된 곳으로 지금도 교회로부터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가 침례의식을 행한다

이스라엘 쪽 세례터에서 한 신자가 침례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다

맞은편 이스라엘에서 치러지는 세례의식을 요르단 세례터의 여행자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Baptism Site 예수 세례터
요단강 위를 흐르는 것들

요르단에는 성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곳곳에 있다. 중요한 곳 중 하나가 요단강이다. 특히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요단강에 들른다.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신약성서의 기록 때문이다. 4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적 생애를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 또 하나의 자연적인 국경을 이루는 요단강은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 사해로 흘러든다. 251km에 이르는 강의 서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동쪽이 골란고원과 요르단이다. 

요단강 폭은 불과 5m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 지점을 사이에 두고 요르단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각 세례터를 만들었다. 요르단 쪽 세례터는 ‘알마그타스’, 웨스트뱅크 즉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 세례터는 ‘까스르 엘 야후드’다.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협정 전까지 이 일대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요르단이 알마그타스를 개방한 것은 2002년, 이스라엘은 주변의 지뢰를 제거하고 2011년이 되어서야 세례터를 완전히 개방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장소라면 그 강이 다를 리 없을 텐데 유네스코는 지난해 요르단 세례터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부분은 기독교 내부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찌됐든 오늘날 성지순례 코스의 대부분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짜여지는 만큼 순례자 대부분은 이스라엘 세례터로 몰린다. 도착 때에도 건너편에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로 보이는 이들이 연신 강에 온몸을 담그며 세례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면 요르단 쪽에서는 여행자 몇몇이 제방에 앉아 그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기만 했다. 동쪽인지 서쪽인지 혹은 예수가 요르단의 알마그타스에서 세례를 받았는지, 그에 대한 정확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이천년 전 예수가 요단강에 왔었다는 사실이다.

흙이 씻겨 내려와 누렇게 변한 요단강을 뒤로하는데, 가이드 압둘라가 강물을 손에 적셔 머리에 뿌리며 알 수 없는 아랍어로 기도를 해준다. “나는 무슬림이에요. 하지만 요단강에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것을 보면 이 강물은 분명 성스러운 것이죠.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요단강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입니다. 당신과 당신 가정에 축복이 있기를!” 

뫼벤픽 리조트에서 바라본 사해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com, 요르단관광청 www.mota.gov.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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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연인이던 칼라 브루니와 주말 여행을 떠난 곳. 같은 해 10월, 성악가 파바로티의 추모 공연이 열린 곳.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에 16번째로 등재된 곳.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 그리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 3-최후의 성배>와 <트랜스포머>의 배경이 된 곳. 빙고! 요르단의 페트라.

사막에 꽃 피운 붉은 ‘바위 왕국’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 내륙 사막지대의 해발 950미터 고원 바위산에 남아 있는 도시유적이다. 향료무역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 도시다. 예로부터 이곳은 사막의 대상이 홍해와 지중해를 향해 갈 때 반드시 거치는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다.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들은 사막의 한가운데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 틈새에 도시를 건설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극장과 목욕탕, 완벽한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도시가 숨어 있다. 한동안 번성하던 나바테안 문명은 2세기께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흙으로 묻혀 있다가 19세기 초반에야 재발견된 곳이다.

페트라는 기원전 7세기부터 2세기까지 이 지역에 살던 나바테안들에 의해 해발 950m에 건축된 산악도시이다.

좁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 ‘시크’

지구에는 그런 곳들이 있다. 사진이나 TV를 통해 몇 번을 들여다본다 해도 직접 그 앞에 서기 전에는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없는 곳들. 페트라의 아름다움 역시 그렇게 간접적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사막으로 달려와 붉은 바위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에는, 그 뜨거운 바위를 두 손으로 어루만져보기 전에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페트라의 빼어남은 바위투성이 모래언덕과 가파른 협곡에 둘러싸인 그 지리적 조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 ‘시크(As-Siq)를 통과해야만 한다. 길이 1.2킬로미터의 시크는 지각변동에 의해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만들어진 길이다. 좁게는 2미터까지, 높게는 200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바위틈인 시크는 페트라의 미모에 걸맞은 신비로운 입구가 아닐 수 없다.

길은 시크에서 시작된다. 코끼리를 휘어감은 보아뱀처럼 강하게 굽이치는 시크에는 페트라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로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2000년을 건너온 테라코타 파이프도 눈에 띈다.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만든 고대 세계로 가는 통로를 걷는 일은 페트라 걷기의 하이라이트다. 이 길의 끝에서 마주치게 될 세계를 상상하며, 좁은 협곡 사이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수로에 걸터앉아 다리품을 팔기도 하며, 달팽이의 속도로 시크를 걷는다 해도, 좀 이르다 싶을 무렵, 알 카즈네가 바위틈 사이로 그 얼굴을 드러낸다.


좁은 협곡 사이에 길을 낸 것은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요르단의 문화 아이콘 ‘알 카즈네’

너비 30미터, 높이 43미터의 알 카즈네는 페트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건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기둥이나 벽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파내서 만든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상징이다. 6개의 원형 기둥이 받히는 2층 구조로 BC 1세기경, 헬레니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알 카즈네’는 보물창고란 뜻인데, 화려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텅 비어 있어 나바테아 왕 아테라스 3세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알 카즈네의 감동을 오롯이 담은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왕실의 무덤군이 나타난다. 바위를 뚫어 만든 거대한 무덤들을 둘러본 후에는 맞은 편의 알 마드바흐(Al-Madbah)로 건너가자. 40분 남짓 가파른 계단을 올라 언덕 꼭대기에 서면 페트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알 마드바흐에서 내려오면 원형극장을 거쳐 도시의 중심지를 향해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 열주대로를 따라 걸으며 목욕탕과 사원, 극장과 왕궁과 비잔틴 양식의 교회를 둘러보자.

기둥과 벽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파내서 만든 '알 카즈네'

1km 남짓한 시크 옆으로는 거대한 붉은 사암이 요새처럼 가로막는다.

페트라를 온전히 걷기 위해서는

사막의 열기에 슬슬 지쳐가지만 아직 가야 할 곳이 남아있다. 시가지 끝의 식당에서 목이라도 축이며 잠시 쉰 후 다시 신발끈을 고쳐 묶자. 800개의 계단을 올라 바위절벽길을 지나면 거대한 사원 알 데이르(Al-Deir). 알 카즈네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더 웅장한 규모의 사원이다. 늦은 오후, 사위는 햇살을 받아 점점 더 붉은 꽃으로 피어나는 사원을 지켜보며 사막에서 보낸 긴 하루를 마감하자. 페트라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가장 경이로운 세계다. 바위를 깎고 다듬어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 못지않은 이 세계의 또 다른 주인은 자연이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바위들의 붉은 소용돌이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마법적인 바위 색은 이 도시에 ‘장미의 도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페트라를 걷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고, 강해야만 한다. 페트라의 다양한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서 늦은 오후까지 사막의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 강한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페트라는 나바테안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 전체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페트라의 밤을 수놓는 촛불들

코스 소개
요르단의 보물로 불리는 페트라는 수도 암만에서 서남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황량한 사막에서 피어난 찬란한 문명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이며 전체 유적의 4분의 1만이 발굴된 정도라고 한다. 유적지 입구에서 서쪽 끝 알데이르까지의 거리는 5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페트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하루로는 짧다. 최소한 이틀 티켓을 구입해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를 권한다.

찾아가는 길
요르단까지는 직항편이 없으므로 카타르 도하나 두바이, 인도 델리를 경유해야 한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페트라 관문 도시 와디무사까지는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하기 좋은 때
가장 좋은 시기는 10월 중순에서 11월 말이다. 5월부터 9월까지는 가장 더운 시기이므로 피하자.

여행 TIP
걷기 편한 신발을 신고 물과 간식을 준비해 가자. 단체 관광 버스들은 보통 9시 전후로 나타나므로 페트라를 조용히 즐기고 싶다면 일찍 서두르자. 시크를 비롯한 페트라의 주요 관광지들은 침묵 속에서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알 카즈네는 이른 아침이 가장 예쁘고, 알 데이르는 늦은 오후가 가장 좋다.

 

 

미국 뉴스 전문채널 CNN이 홈페이지를 통해 전 세계 각지의 뛰어난 경치 31선을 선정해 소개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전했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전남 보성 녹차밭이 포함됐다. 


보성 녹차밭 korea

보성 녹차밭

CNN에서는 보성 녹차밭을 “한국 차의 약 40%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자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을 제공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녹차 아이스크림, 녹차 삼겹살 등 녹차 관련 아이템도 좋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차밭의 경치야말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이유다. 매년 5월에 펼쳐지는 녹차 축제나 작은 전구로 장식해서 멋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겨울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가는 방법 서울 센트럴시티 버스터미널에서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보성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요세미티 America

요세미티

세계적인 암벽 등반의 메카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계곡.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900m에 이르는 직립의 암벽이 산재해 있다. 한국의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간단한 별장 오두막이나 하프돔이 내려다보이는 웅장한 1920년대 아와니 호텔 등이 추천 관광지다.

가는 방법 샌프란시스코에서 머세드 공항까지 유나이티드 익스프레스가 운항한다. 소요 시간은 약 40분.


빅토리아 폭포 Zambia

빅토리아 폭포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경계를 흐르는 잠베지 강에 있는 대폭포다. 일층 폭포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폭이 넓은 빅토리아 폭포는 먼 곳에서도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얀 물보라가 500m까지 솟구치고, 분당 5천5백만 리터(나이아가라보다 두 배나 높은)가 108m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투명한 물빛을 자랑하는 상류의 석호는 하마와 악어의 천국이다. 울창한 숲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걷다보면 코끼리, 버팔로, 사자 등도 발견할 수 있다.

가는 방법 ‘인천공항-케냐 나이로비-잠비아 하라레-짐바브웨 국경’ 이동이 일반적인 코스다.


모뉴먼트 밸리 America

모뉴먼트 밸리

영화 <포레스트 검프>, <트랜스포머>, <인디아나 존스> 등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곳. 유타 주와 애리조나 주의 접경에 있는 나바호 국립인디언공원에 속한다. 약 5천만 년 전에는 단단한 사암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고원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바람과 물에 의한 침식 작용으로 표면이 날아간 상태다. 영화로 알려진 모습을 보려면 북쪽에서 봐야 한다. 하이라이트는 91m 높이에 폭은 겨우 2m밖에 되지 않는 바위 기둥인 토템 기둥이다.

가는 방법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모뉴먼트 밸리까지 자동차로 10시간 걸린다.


자바 보로부두르 Indonesia

자바 보로부두르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울창한 정글 속에 있는 세계 최대의 불교 유적. 지난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오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더불어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역사 유적이다. 유적은 824년 샤일렌드라 왕조가 건설한 것으로 각 층마다 테라스가 있는 10층 구조물이다. 불교사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장대하고 복잡한 건축물이다. 

가는 방법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를 경유해야 한다. 가루다항공, 대한항공이 매주 12편. 


카파도키아 Turkey

카파도키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시대 이래 종교 탄압을 피해 바위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신앙생활을 했던 곳. 수천 개의 기암에 굴을 뚫어 만든 카파도키아 동굴 수도원이 남아 있다. 약 3백만 년 전 화산 폭발과 대규모 지진 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뒤덮고 있으며,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특이한 암석군을 이루고 있다. 푸른색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황량한 땅이다.

가는 방법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까지 국내선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페트라 Jordan

페트라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곳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최근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졌다. 젊은 탐험가가 이곳에 엄청난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 1812년 잊힌 도시를 발견했다. 6세기께 발생한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는 방법 도하,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내린다.


CNN이 선정한 다른 장소는?

나미비아_ 소서스블레이 사구 붉은 사막, 오렌지 사막으로 유명한 곳. 대서양을 따라 남아공 국경에서부터 앙골라 남부까지 1600㎞에 이르는 긴 나미브 사막 중 하나다.

칠레_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인 곳. 여행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구의 마지막 비경이라고 불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3개의 설봉은 남미 최고의 풍광으로도 꼽힌다. 

아이슬란드_ 트리흐뉴카이우르 화산 약 4천 년 전 한 차례 분화한 이후 휴면 상태다. 언제 마그마가 분출할지 모르지만 지구에서 유일하게 화산 속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모로코_ 제마 엘 프나 광장 공개처형장으로 쓰였던 이곳은 하루 종일 많은 인파가 모이는 축제의 광장이다. 

이탈리아_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베네치아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흑사병이 사라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당.

미국_ 칼스배드 동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최대의 종유 동굴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한 발 한 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와디(사막의 계곡)무사의 밤하늘에 걸린 반달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 거기에 바닥의 촛불까지 더했건만. 이런 소심(小心)이 어둠 탓만은 아니다. ‘페트라’라는 가공할 인류유적 앞에서 갖는 경외감이 더 큰 이유다. 2800년 전. 여기 처음 당도한 나바테아인들도 그랬으리라. 도대체 폭이 3∼4m밖에 되지 않는 200m 높이의 좁은 바위 틈새는 얼마나 길지, 그걸 통과하면 과연 뭐가 나타날지. 두려움과 호기심이 그들 발걸음을 더디게 했을 터이니 오늘 밤 나의 이 더딘 걸음도 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바위 틈새로 들어서니 달빛 별빛은 언감생심이다. 오로지 의지하느니 2m 간격으로 놓아둔 바닥의 촛불뿐. 틈새 좁은 밤하늘로 별과 달이 신비롭다. 이렇게 걸은 게 1.2km. 갑자기 정면이 밝아온다. 협곡의 막장이자 페트라 고대도시의 초입인 ‘알카즈나’ 유적이다.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짧은 탄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1800개의 촛불로 밝혀진 알카즈나의 장대하고 고아한 모습 때문이다. 붉은 사암의 장밋빛깔 절벽에 새겨진 조각건축은 촛불에 반사돼 더더욱 고혹적으로 다가왔다. ‘파라오의 보물’이란 뜻으로 ‘트레저리(Treasury)’라고 불리는 이 유적. 기원전후 1세기경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초빙해온 조각가의 솜씨임에 틀림없다.

그 앞에 수백 명이 앉아 있었다. 어떤 소음도 없이 적막한 이 성스러운 공간에서 미동도 없이 앉은 이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 그 모습은 경건하기만 했다. 나바테아 사람들도 이랬을까. 그걸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전통악기 라바바(비올라와 바이올린의 원조로 추정되는 두 줄의 아랍 전통 현악기)연주가 시작됐다. 바위 협곡에 울려 퍼지던 그 신비로운 음색과 선율. 지금도 귀에 선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 거대한 절벽을 파내 바위 전체를 신전처럼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계획. 그걸 왕의 무덤으로 쓰겠다는 생각. 모두 나바테아인의 아이디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2000년도 전에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이런 상상 초월의 건축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시 이곳은 세계 무역로의 중심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뉴욕쯤 될까. 당시 무역은 낙타에 물건을 실어 장거리를 이동하는 대상의 전유물. 아라비아와 지중해를 잇고 훗날에는 실크로드로 이어졌다. 그들이 바로 이 대상민족이었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에서 북쪽으로 이동 중 기원전 6세기에 이곳에 당도했다. 그리고 여기에 도시를 건설했다. 그 도시가 ‘페트라’고 최전성기인 기원후 1세기엔 인구 3만5000명 규모였다. 페트라는 대상 이동로였고 그들은 이 도시에서 대상들로부터 통행세(세금)를 거뒀으며 또 스스로 대상무역에 종사했다. 훌륭한 건축물은 훌륭한 건축주가 있어야 나온다. 금융업은 모든 고급 건축물의 건축주다. 그때도 같다. 페트라의 시크(Siq)라고 불리는 이 바위 틈새 협곡은 이 도시로 들어오는 요새형 통로다. 대상은 이 협곡 밖으로 우회했다.

내년은 이 페트라가 한 스위스인에 의해 서방에 알려진 지 꼭 200년 되는 해. 이 기념비적인 해에 페트라 방문은 더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페트라 바이 나이트(Petra by Night)’에 참가한 뒤 이튿날 아침 되찾기를 권한다. 감동이 훨씬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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