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연안의 신비를 간직한 땅, 그루지야. 옛 소련 남부의 땅이었던 그루지야는 그동안 주변국과의 분쟁과 내전으로 여행자들의 방문이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자연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18일부터 21일까지 오후 8시50분에 방송되는 EBS '세계테마기행-카프카스의 영혼, 그루지야' 편은 터키와 러시아 사이 카프카스 산맥에 드리워진 그루지야의 매력 속으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이번 기행의 안내자는 영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그가 보여주는 그루지야의 첫 장면은 18일 방송되는 1부 '신들의 산, 카프카스를 가다'에 담긴 카프카스 산맥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번영을 누리던 지역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자주 등장하는 카프카스 산맥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여행지로 가득하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인 그루지야 군사도로를 만난다. 

만년설과 아찔한 절벽이 만들어내는 풍광을 거느린 이 도로를 따라 오르면 해발 2,200m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볼 수 있다. 그루지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로 그루지야인들은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 믿는다.

19일 '카프카스의 영혼, 그루지야' 에선 그루지야인들의 장수 비밀인 와인을 만난다. 와인은 기원전 약 8,000년 전 카프카스 지방에서 만들어져 전세계로 전파됐다.

그루지야 와인은 프랑스이탈리아 등의 와인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선 최고로 인정받는다. 건강한 땅에서 일궈낸 와인과 그루지야 전통방식의 빵, 그리고 그루지야인들의 친절함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식탁으로 차려진다.



터키 악다마르 성당·이탈리아 파르네시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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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동쪽 반 호수 안에 10세기에 지어진 악다마르 성당이 있다. 한 이슬람 여성이 벽에 남은 기독교 성화를 둘러보고 있다(왼쪽). 이탈리아 로마 시내의 파르네시나 저택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로 넘어가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벽화들은 모두 눈속임 그림들이다(오른쪽). / 채승우 사진가
※긴 여행 뒤 쌓인 사진들은 여행의 기억처럼 뒤죽박죽이다. 엉뚱한 사진들이 짝을 맺는다. 그 사이 나만의 여행 이야기가 놓인다.

터키의 오래된 성당 유적 안에 히잡을 쓴 여고생들이 몰려들어와 휙 둘러보고는 깔깔 거리며 몰려 나간다. 단체 여행을 온 학생들에게는 흔한 방문지중의 하나일 뿐이겠지만, 이방인인 내게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풍경이다. 기독교 유적지 안의 이슬람교도 학생들이라니.

이 유적은 10세기쯤 세워진 아르마니아 정교회의 '악다마르 성당'이다. 어디에 있는고 하니, 터키의 동쪽 끝에 '반'이라는 도시가 있고 그 옆에 같은 이름의 큰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섬 위에 있다. 상대적으로 외진 곳인 덕분에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성당을 둘러싼 외벽에는 성서의 이야기를 돋을새김 한 부조들이 화려하게 살아있다. 성당 안쪽에는 동방교회 특유의 성화들이 그려져 있다.

터키의 대부분 기독교 유적이 그렇듯이 벽화의 많은 부분은 파괴되었다. 16세기에 오스만투르크가 동로마제국 혹은 비잔틴제국을 점령한 후 이곳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살았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성당들이 이슬람 모스크로 바뀌었다. 벽화는 덧칠로 가려졌다. 지금 터키는 기독교 유적들을 복원하고 보호한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에서, 트라브존에서 살아남은 기독교 벽화들을 찾아다녔다. 무슨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관광객들은 방앗간의 참새처럼 오래된 것, 사라지는 것, 사라질 뻔 한 것들에 끌린다. 그 위에 이야기를 만들어 쌓는 건 관광객들의 권리이긴 하지만 엉터리도 등장한다. 카파도키아의 동굴성당이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만들어졌다던가 지하 도시가 유럽까지 뻗어있다던가 하는 '미스테리'는 관광객용 베스트셀러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벽화를 보는 재미에 빠졌던 곳이 하나 더 생각났다. 이탈리아 로마다. 그러고 보니 로마는 기독교가 떠나온 출발점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본 벽화 중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바티칸의 천지창조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꼽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파르시나 저택의 벽화들이 생각난다.

로마의 고전 미술을 보려면 도시 여기저기를 찾아 다녀야 한다. 건축물들이 미술품이기도 하고 건물 안의 벽화들이 아직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테베레강 서쪽 강변의 파르시나 저택은 16세기에 발다사레 페루치라는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다. 르네상스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문예부흥의 유행을 따라 집 안의 벽화는 로마 신화이거나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다. (알렉산더는 처음으로 서방과 동방을 연결한 왕이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집의 벽화들은 전부가 눈속임 그림이라는 점이다. 그 당시 발견한 원근법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재미있었나 보다. 벽 안쪽에 또 다른 공간이 있는 듯 환상의 공간을 그렸다. 어느 방은 사방이 바깥으로 열린 듯하고, 어떤 방은 커튼으로 둘러싸인 듯 보이지만 커튼 역시 그림이다. 페루치는 이런 그림의 선구자였다.

눈속임 그림의 기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종교를 위해 사용된다. 로마 시내 산티냐치오 성당의 천정화는 그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성당의 한 가운데서 천정을 올려보면 어디까지가 진짜 벽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림인지 혼돈될 정도다. 천사들이 천정에 걸린 구름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천정에서 아니 하늘에서 신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로마교회나 터키교회나, 그러니까 서방이나 동방이나 같은 마음이었던 듯하다. 터키에서 본 성당 유적의 둥근 천정에 새겨진 별과 신의 얼굴은 한참 어설프긴 하지만 로마의 것과 같은 장면이었구나 싶다.

한 마디 덧붙여, 터키 이스탄불을 가시는 분들에게는 카리예 박물관을 찾아가 보시길 권한다. 11세기의 성당으로 동방교회의 벽화와 천정화들이 화려하게 보존되어 있다.

[그래픽] 반·로마
터키의 도시 반은 우리가 터키에서 이란으로 넘어가기 위해 들른 곳이다. 옛 실크로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스탄불에서 반까지 비행기로 갈 수 있다. 고속버스로는 24시간 걸린다.

로마는 걸어서 돌아다니기 좋은 도시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뭔가 멋진 걸 볼 수 있으니 헤맬 만한 가치가 있다. 파르네시나 저택은 판테온에서부터 걸어서 2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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