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꼭 두번 이상 가볼 만한 나라이다. 어느 여행지나 다 그렇겠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첫 인상이 '로마 유적의 나라'라면 두 번째부터는 '시골 마을이 아름다운 나라'이다. 유럽 여행이야기 네번째는 이탈리아의 시골 오지 '치비타 디 반뇨레죠(Civita di Bagnotrgio)'이다.

현재도 풍화작용이 계속되어 죽어가는 도시로 불리는 치비타 디 반뇨레죠
이탈리아의 ‘치비타 디 반뇨레죠’에 다녀왔다. ‘슬로시티’로 유명한 로마근교 도시 오르비에토(Orvieto)에서 머문 3박 4일중 하루를 비워 다녀온 여정이었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지명도 이상하지만 ‘죽어가는 마을’, ‘육지의 섬’으로 알려진 별칭처럼 기묘한 시골 마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작, 2004 국내개봉)도 그런 이미지를 더한다.

하늘에 떠 있는 성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라퓨타’의 발상을 어느 곳을 보고 했는지에 대해선 말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필자에겐 이탈리아의 ‘치비타 디 반뇨레죠’가 정답이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애니메이션 <천공의 라퓨타>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무너져 가는 절벽 위 ‘천공의 성 라퓨타’의 마을

영화내용이야 이미 오래전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성의 이미지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2차 대전도 빗겨갈 정도로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오지였던 이곳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천공의 성 라퓨타’의 마을이라고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라퓨타는 치비타 디 반뇨레죠와 유사하긴 하다. 올 초 개봉됐던 할리우드의 빅히트작 ‘아바타’도  치비타 디 반뇨레죠를 떠오르게 한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 마을 성당, 기념품가게, 호텔까지 있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 가는 길은 여행자에겐 쉽지 않는 여정이다. 자동차로 간다면야 내비게이션으로 ‘찍으면’ 굽이굽이 길을 따라 달리기만 하면 되지만 차가 없는 여행자들에겐 시간 계획을 잘 짜야한다. 일단 로마에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달려 오르비에토 역에서 내린다.

오르비에토는 그 자체로 인기 관광지다. 로마와 피렌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철도변 평지에 우뚝 솟은 언덕위에 자리 잡은 오르비에토는 특별히 볼거리가 많다기보다 도시 전체가 편안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이다. ‘슬로시티’의 발상지답게 몸과 마음 모두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최근 들어 로마와 피렌체의 넘쳐나는 관광객과 요란함에 질린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 마을

포도밭과 올리브… 시골길 버스 여행의 목가적인 풍경은 덤

오르비에토 기차역에서 내려 푸니쿨라라는 간이열차를 타고 절벽 위를 올라가면 언덕 위 오르비에토 마을에 도착한다. 오래된 이탈리아의 마을들은 대개 넓은 평지보다는 언덕 위나 산꼭대기에 세워져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요새라는 이유 때문이겠지만 물 한방울 나오기 힘들 것 같은 꼭대기 언덕 도시에 우물을 파고 지하 저장창고를 만든 것을 보면, 인간의 적응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요즘도 더 높은 곳에 있을수록 부자 마을이다. 오르비에토 역시 로마시대 훨씬 이전인 에토리아 문명 유적이 남아있는 고대 번영 도시이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오르비에토의 축소판이다. 다만 오르비에토는 포도농장과 관광으로 부자 마을이 됐지만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갈수록 살고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사실 무너져 내리는 마을에 사람이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좌) 고대 에토리아 문명 시대에 만들어진 오르비에토의 우물. 꽤 오랫동안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한다. 현재도 물이 마르지않고 있다. (우) 길고 좁은 다리를 통해서만 죽어가는 도시 치비타 디 반뇨레죠로 갈수 있다. 현재는 1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를 가기위해서는 오르비에토 푸니쿨라 정거장인근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반뇨레죠(Bagnoregio)행 버스를 타야한다. 한두 시간에 한 대 정도 다니는 이 버스는 우리의 시골 완행버스와 비슷하다. 버스는 산등선 시골 길을 따라 이마을 저마을을 거쳐 40여분 정도를 달린다. 시골길 버스 여행은 여행자에게 그 자체로 목가적인 풍경을 덤으로 준다.

가는 길 양 옆에는 올리브 나무와 포도 농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남부 이탈리아의 시골길과는 다른 북부 이탈리아 전원 마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반뇨레죠에서 내려 다시 소형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해야한다. 평범한 시골마을 반뇨레죠를 관통하는 길을 20여분 걷다 막다른 곳까지 다다르면 어느 순간 눈앞에 치비타 디 반뇨레죠가 나타난다.
이탈리아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자연의 성벽을 이용하여 언덕 위에 세워진 마을이 많다. 대표적인 도시가 오르비에토. '슬로시티'의 발상지로 유명한 이곳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여행지이다.
중세로의 시간여행, 신비로운 자연여행

언덕 저 멀리 산등성이 곳곳이 무너져 내려 하얀색 속살을 그대로 드러난 산악지대는 마치 지옥 입구 같은 황량함과 기묘한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치비타 디 반뇨레죠가 아슬아슬 위태롭게 우뚝 솟아 있다. 육지위의 섬, 천공의 성이 따로 없다.

이곳은 화산재가 만든 응회암 지대로 바람이나 물에 의한 풍화 작용의 영향을 잘 받아 이런 기묘한 모양을 만든다고 한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한때 죽음의 도시로 불렸다. 절벽위의 마을이 조금씩 무너져 내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떠나 아무도 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보면 실제로 절벽위의 집들이 곧 무너져 내릴듯하다. 외부세계와의 연결통로도 길이 300m에 다라는 외길 다리가 유일하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다 본 '오르비에토'. 로마시대 이전인 약 2500년 전, 고대 에트투리아인들이 언덕 암석 위에 건설한 도시이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 역시 '에트투리아인'들이 건설한 마을이라고 한다.

관광지가 된 지금은 이탈리아 정부에서 매년 유지 보수를 하고 있어 1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에 들어서면 외부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꽤 넓다. 거주민들의 집이 외에 상점과 미니 박물관, 호텔, 광장과 성당도 있어 이탈이아의 마을로서 갖출 건 다 갖췄다. 물론 그래도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죽어가는 도시라는 별칭과는 달리 구석구석 마을길은 꽃들로 장식되어 있어 예쁘다. 마을 뒤쪽 절벽 길을 따라 내려와 올려다보면 절벽 곳곳에 동굴을 판 흔적이 보인다. 마치 동굴 속에서 회색 망토를 뒤집어쓴 중세 수도사가 튀어나올 것처럼 신비롭고 기묘하다.

오래된 유적과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이탈리아의 대도시의 복잡함을 넘어 한가로이 여유를 만끽하는 중세로의 시간여행, 신비로운 자연으로의 여행을 원하는 여행자에겐 치비타 디 반뇨레죠에서의 반나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길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지만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흐린 날, 특히 안개 낀 날은 여행이 더 어울린다. 낮게 깔린 안개가 온 대지를 덮으면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구름 위에 떠있는 ‘라퓨타 섬’으로 변한다.

(좌) 오르비에토 중심부의 두오모 (우) 이 지역은 이탈리아의 유명 와인 산지이기도 하다. 사진의 와인 가게의 와인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으면 일회용 커피 자판기처럼 한 잔 분량의 와인이 나온다.
Guide For Civita di Bagnoregio

로마나 피렌체에서 출발한다면 서둘러도 하루를 꼬박 잡아야한다. 아니면 오르비에토를 구경하고 그곳에서 숙소를 잡아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찾아야한다.

오르비에토 역에 정차하는 열차는 많다. 역에서 내려 등산전차 푸니쿨라(Funicula, 여름시즌에는 운행을 중단한다. 대신 버스를 타고 오르비에토 언덕으로 오른다)를 타고 오르비에토에 오르면 카엔 광장(Piazza Cahen)이다. 이곳은 두오모행 버스가 출발한다. 또한 이곳 주차장에서 파란색 바뇨레죠행 버스가 출발한다. 여행 안내소에서 왕복 시간표를 받는 걸 잊지 말자.

오후엔 오르비에토로 돌아오는 버스도 별로 없고 그나마 5시30분이 막차다. 여기저기 조그만 마을을 지나  40~50분정도 달리면 바뇨레죠에 도착해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마을 중심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를 따라 20분정도 걷다보면 막다른 길에 치비타 디 반뇨레죠 입구가 보인다, 이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또 10여 분은 걸어야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돌아오는 시간을 잘 계산해야한다. 버스를 놓치면 근처에서 숙소를 잡기가 힘들다.

반뇨레죠 막다른 길 끝에 치비타 디 반뇨레죠를 조망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지만 다리 입구에 더 근사한 조망의 레스토랑이 두 곳 있다. 마을 안에도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있다. 이 지역은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다. 친귀알레라고 부르는 야생 돼지 뒷다리를 절여 만든 프로슈토와 멜론을 곁들인 안주에 와인 한 잔도 여행객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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