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골목
싱가포르만큼 지도하나 달랑 들고 골목들을 누비기에 적절하고도 재미있는 곳도 없지 싶다. 지역마다 규모도 작아서 지치지 않고 도보 여행하기에는 그만이고 거기엔 또 지역마다, 골목마다 그들만의 개성과 색깔이 있다. 19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도시를 유럽인, 중국인, 말레이시아인으로 나누고 그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지정해 두었던 적이 있다. 그 이후 싱가포르의 도시는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차이나 타운, 리틀 인디아, 아랍 스트리트 등의 이름을 가지고 거주자들의 특징에 맞게 발전하고 변신해 왔다. 가장 많은 수의 이주민은 당연 중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싱가포르 인구의 7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들이 차지한 노른자위 땅이 바로 지금의 차이나타운 부근이다. 하지만 최초의 이주민은 중국인이 아닌,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였는데 말레이시아인은 지금의 아랍스트리트 인근 지역에서 생활 터전을 잡았다. 이 두 나라의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싱가포르의 지역은 그들만의 색깔로 바뀌고 보존되어 왔다. 지금의 싱가포르의 골목골목이 옆 골목이 아닌, 마치 다른 나라로 건너 뛰어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골목 1: 차이나 타운 - 차이나 타운은 중국인들에게 배정이 되었던 지역의 이름이다. 어느 나라가 그렇듯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도 사람 냄새 나는 시장이 있고, 마작이나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기도 하고 긴 장대에 빼곡히 빨래를 끼워 이 집 저 집 널어 둔 아파트도 보인다. 하지만 싱가포르 차이나 타운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이 곳을 뒤로 하고 들어선 호젓한 뒷 길이다. 에스킨 로드를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클럽 스트리트와 엥 시앙 로드가 나온다. 오래된 싱가포르의 전통 가옥, 숍하우스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두고 작은 부티크 호텔도 만들고, 사무실로도 쓰고 예쁜 상점으로 변신시킨 이 골목에 들어서면 수십 년 전, 1층엔 장사를 하고 2, 3층은 집으로 쓰며 숍하우스에 살았던 오래전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숍하우스 건물들 사이로 골목골목 지도 펼쳐 들고 걷다 보면 싱가포르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묘한 희열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