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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고층 건물 사이 우뚝 선 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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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는 구(舊) 대법원과 시청 건물을 이어서 만들었다. 대법원 도서관의 돔(dome)형 천장을 그대로 보존해 갤러리의 미술 작품처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도서관의 책장에는 법전 대신 화집이 꽂혀 있었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는 구(舊) 대법원과 시청 건물을 이어서 만들었다. 대법원 도서관의 돔(dome)형 천장을 그대로 보존해 갤러리의 미술 작품처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도서관의 책장에는 법전 대신 화집이 꽂혀 있었다. /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제공
한 도시의 문화 수준은 관광객이 그곳을 머무르는 시간으로 가늠할 수 있다. 세 끼를 먹으면 더 이상 할 게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을 머물러도 시간이 모자란 데가 있다. 이제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는 예상 일정을 하루 늘려야 할 것이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이틀 정도 더 머물러야 한다. 지난달 24일 개관한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때문이다.

◇법원과 시청에 걸린 미술작품

한 평 남짓한 방의 출입구에는 쇠창살이 있었다. 방 안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방 밖으로 긴 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구멍은 수세식 변기이고, 줄은 물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수감자가 자살을 시도할까 봐 줄을 방 바깥에 설치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 살풍경한 방은 흡사 현대 미술을 하는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실제 구치소를 복원한 것이다.

이 미술관은 싱가포르 도심인 파당(Padang ·서울 광화문 광장에 해당)에 있는 구(舊) 대법원과 시청 건물을 이어서 만들었다. 각각 1939년과 1929년에 지어졌다.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이다. 2005년 국경일 집회 연설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두 건물을 국립미술관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판사석과 증인석, 피고인석이 그대로 있는 법정의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고, 법원 도서관 책장에는 법전 대신 화집이 꽂혀 있었다. 관람객들이 앉는 의자도 대법원과 시청에서 쓰던 것들을 그대로 본뜨거나 약간 변형해서 만들었다. 세계에서 동남아시아 현대 미술품(8000여 점)을 가장 많이 소장했다.

동남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번창한 싱가포르는 이제 지역의 문화계 맏형 노릇을 자처한다. 식민지 시절 영국군이 막사로 썼던 '길먼 배럭스'는 2012년 갤러리 15곳이 모인 현대미술단지로 탈바꿈했다. 지난 5월 말에는 영국군이 요새로 사용했던 포트 캐닝 공원에 미술관 '피나코테크 드 파리'를 개관했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아시아의 젊은 작가를 보고 싶다면 길먼 배럭스가, 큐레이터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모딜리아니 피카소의 작품을 짧은 시간에 관람하고 싶다면 피타코테크 드 파리가 제격이다.

우관중의 1997년작 ‘옥용송’.
우관중의 1997년작 ‘옥용송’. /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제공
◇미술관에서 보고, 먹고, 즐기고

만약 시간이 없어 단 한 곳만 들러야 한다면 단연 '우관중(吳冠中) 전시실'부터 가야 한다. 우관중은 중국 1세대 현대 화가로 중국 전통 화법에 서양 미술의 추상화 기법을 조합해 중국 현대 미술을 개척한 인물이다. 2010년 6월 세상을 떠난 그에 관한 글 대부분은 '최고가'란 수식어로 시작한다. 1987년 홍콩에서 열린 미술전에서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유적을 그린 작품 '교하고성(交河故城)'이 4070만위안(당시 약 73억원)에 팔려 중국 화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고, 2011년 유화 작품인 '장강만리도(長江萬里圖)'가 1억4950만위안(약 269억원)에 낙찰됐다. 미술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그는 자신의 수작들을 대중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공 미술관에 기증했다.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도 아들을 통해 홍콩예술관에 작품을 기증했을 정도다. 최고가란 수식어가 붙은 그의 작품들이 수십 점씩 이 미술관에 모여 있는 것도 다 기증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우관중은 문화대혁명 당시 순수 미술을 주창했다는 이유로 하방운동(문화대혁명 때 지식인·학생 등이 농촌이나 공장에서 노동하도록 하는 정책)의 대상이 됐다. 분뇨 지게를 이젤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문혁이 끝난 뒤, 환갑을 한 해 앞두고서야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수묵화의 기법으로 그린 유화는 서정적이고 색채가 도드라지는 수묵화는 역동적이다. 중국 장쑤성의 시골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한 그가 중국과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린 아기자기한 스케치들은 한 권의 그림책을 보는 것처럼 서사와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서울로 치면 시청이 있는 자리에 지어진 이 건물은 국립 현대 미술관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술관에 들어선 식당 중 싱가포르 스타 셰프 바이올렛 운이 운영하는 내셔널 키친은 페라나칸(중국계 말레이시안 문화)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무역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페라나칸들이 누린 호사를 경험할 수 있다. '스모크 앤 미러스'라는 카페 겸 바가 있는 옥상은 싱가포르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과 그 주변의 고층 건물들이 파노라마로 눈앞에 펼쳐진다. 만약 우관중이 지금의 싱가포르를 여행했다면, 아마 내셔널 갤러리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을 그렸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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