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 갤러리의 여섯 천사들과 히피의 전야

"나는 광기에 의해 부서진 나의 세대 최고의 정신들을 보았다." 1955년 10월 샌프란시스코 유니언과 필모어 거리의 교차점에 있는 작은 전시장에 이름 없는 시인들과 길거리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훗날 여섯 천사라 불리는 젊은 시인들이 '식스 갤러리(The Six Gallery)'를 차례로 빛냈다. 그리고 29살의 신출내기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가 원고를 꺼냈다. 시인은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친구에게 바치는 시라며 [아우성, Howl]을 낭송... 아니 그야말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의 시는 매카시의 억압과 허울 좋은 아메리칸 드림 속에 신음하며, 납골당을 납골당인 줄도 모르고 걸어 다니고 있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이른바 '비트 세대'가 탄생하는 순간. 그리고 밥 딜런과 히피들과 모든 미국 산 반항아들의 지도자가 등장하는 위대한 장면이다.


헤이트 애시베리의 '사랑의 여름'

1950년대 중후반에 활동한 비트 세대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주류 문화에 대한 거부, 성의 개방, 영적인 체험을 탐구했다. 이 작은 파도는 1960년대에 '히피'라는 거대한 해일을 몰고 온다. 아름다운 광풍은 미대륙 곳곳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꽃들은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Haight)와 애시베리(Ashbury) 거리에 피었고, 또 몰려들었다.


십자형으로 걸쳐진 이들 거리에는 싸고 큼지막한 아파트들이 자리 잡고 있어, 대학생들과 록 밴드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1966년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 펼쳐졌다. 인디언 스타일의 치렁거리는 머리, 화려한 문양의 옷, 그리고 곳곳에 새겨놓은 꽃과 사랑의 장식... 미 대륙 곳곳에서 찾아온 15,000여 명의 남녀들이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자신들을 옥죄는 모든 억압에 대해 자유로운 퍼포먼스로 저항했다.


1967년 골든게이트 파크의 '휴먼 비-인(Human Be-In)'행사에는 2만 명
의 히피들이 꽃의 자동차를 타고 모여들었다.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의 밥 웨이어는 말한다. "헤이트, 애시베리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보헤미안들의 게토였다." 특히 사이키델릭 록 밴드와 함께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더 필모어(The Fillmore)'와 '아발론 볼룸(The Avalon Ballroom)'은 그레이트풀 데드, 재니스 조플린,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함께 뛰어놀던 전설의 공연장들이다.


히피의 엉덩이를 걷어찬 사이키델릭 만화가

로버트 크럼의 사이키델릭한 재능은 재니스 조플린 등의 음반 표지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68년 헤이트 애시베리 거리에 구부정한 허리에 도수 높은 안경을 낀 남자가 다리 튼실한 여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나타났다. 히피들은 반가워했다. 또 '사랑의 아이'가 태어났구나. 그러나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인간의 아이가 아니라, 전기 충격과도 같은 만화 잡지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 혁명의 도화선이 된 [잽, Zap Comix]이었다.

히피의 거리에는 온갖 장르의 미치광이 천재들이 모여들었다. 자신들의 작품을 'Comics'가 아닌 'Comix'라고 이름 붙인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도 그 행렬에 함께했다. 그 한가운데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이 있었다. 그는 히피들의 세계 속에서 살면서 또 그들의 생태를 격렬하게 풍자하고 비판했다. [미스터 내츄럴]을 통해 엉터리 구루를 비꼬고, [고양이 프리츠]로 자유분방하다 못해 멍청한 성생활을 놀려댔다. 크럼이 유모차에 싣고 다니며 팔던 만화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헤드 숍이라는 히피들의 반문화 공간에서 주로 팔렸다. 지금 이 도시에서 언더 만화의 실체를 확인하려면, '코믹스 익스피어리언스(comixexperience.com)'를 찾아가보라.


버클리 대학의 플라워 파워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을 향해 열려 있다. 그 너머에 일본과 베트남이 있다. 때문에 이 도시는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채 지옥으로 떠나야 하는 젊은이들의 집결지였다. 아메리카 대륙의 꽃들이 전쟁에 반대하며 이곳으로 모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동쪽 다리를 건너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풍을 지니고 있는 버클리 대학이 있다. 히피의 광란이 혁명으로 전화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1969년 봄, 버클리 대학은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대학 주변의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학생들과 시민들은 그 폐허 위에 나무와 꽃을 심고 대학 당국과 맞섰다. 로널드 레이건 주지사는 이 '민중의 공원(People's Park)'을 파괴하라고 명령했고 군대가 들어선다. 그들 앞에 맞선 히피들과 학생들은 총 대신 꽃을 들었다.


플라워 파워는 소리쳤다. "천 개의 공원이 꽃피게 하라
(Let A Thousand Parks Bloom)"

신경 쇠약 직후의 남자들

공포증에 시달리는 두 전직 형사의 뒤로는 언제나 금문교가 보인다.


캘리포니아의 또 다른 도시 로스앤젤레스가 태양을 지니고 있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안개를 지니고 있다. 때문인지 이 도시가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광기와 공포증에 시달리는 남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Vertigo]에서 전직 형사 제임스 스튜어트는 미지의 여인 킴 노박의 뒤를 쫓으며 고소공포증에 시달린다. 주인공이 미지의 여인을 구해내는 곳은 금문교의 입구인 포트 포인트(Fort Point)이고, 고소공포증에 맞선 피날레는 도시 남쪽의 산 후안 바티스타(Mission San Juan Bautista)의 종탑에서 벌어진다. 또한 이 도시는 강박증의 백화점인 드라마 [몽크, Monk]의 무대이기도 하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금문교를 비롯해, 에피소드 곳곳에서 도시의 명소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포인트는 차이나타운. 몽크의 아버지가 포춘 쿠키의 글귀를 읽고 사라져버린 등 그가 지닌 수많은 콤플렉스의 원점이기도 하다.



녹색 괴물의 괴성이 도시를 흔들다

히피의 꽃향기는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 영웅들까지 변모하게 만들었다. 1960년대의 만화 속에서 태어난 두 영웅 스파이더 맨헐크는 전 시대의 영웅들과는 사뭇 달랐다. 고리타분한 보이스카우트 소년인 슈퍼맨과 달리 이들은 자신들이 초능력을 지니게 된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스스로 슈퍼 영웅이 아니라 괴물이 되었다고 여긴다. 미국인이 얻게 된 절대적인 파워가 스스로를 옥죄게 된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이안 감독이 선보인 영화판 [헐크]는 자신의 정체성을 끝없이 회의하는 초능력 괴물이 샌프란시스코를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헐크는 버클리 대학에 자리 잡은 군수 연구소에서 돌연변이 괴물로 변신하게 되었고, 트레저 아일랜드(Treasure Island)의 옛 군사 기지를 비롯한 베이 에어리어에서 난동을 피운다.




헐크의 초록색 피에는 1960년대 반전운동의 기운이 스며 있다.

수녀들도 제법 돈다. 춤과 노래로

샌프란시스코는 수녀들조차 노래와 춤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이너리티의 도시다. 아시아 인종, 유대인, 게이, 예술가, 그리고 보헤미안들이 바글거리는 동네다. 그런 곳에서 날라리 수녀가 교회를 살리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대수로울까? 사실 [시스터 액트]가 굳이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해야 했을까는 의문스럽다. 그래도 우피 골드버그가 풍만한 몸매로 그루브 넘치게 춤추고 노래하며 불량 청소년들을 끌어모으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이 도시에서 '예쁘게 미친 것들 찾기'에 또 하나의 멋진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수녀들의 멋진 공연은 세인트 폴 카톨릭 교회(St. Paul's Catholic Church)에서 펼쳐진다. 영화 속 설정에는 빈민가의 교회로 나오지만, 노에 밸리(Noe Valley)의 중산층 주택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태평양 연안의 샌프란시스코는 대서양에 연해 있는 뉴욕의 대칭점으로, 또 그 바다 너머 파리의 대칭점으로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케이블카, 금문교, 차이나타운 등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그립엽서 속의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이 도시에서는 작은 책 하나를 들고 산보에 나서는 게 좋다. 책은 관광 가이드가 아닌 마크 트웨인, 잭 런던, 잭 케루악 등 이 도시에 살았던 보헤미안들의 것이면 더욱 좋다. 태양과 안개에 지치면 코를 킁킁거리며 커피 냄새를 따라가 보라. 프로그레시브 그라운즈, 아울 앤 더 몽키, 시티라이프 서점(외설죄로 기소당한 긴즈버그의 시집을 출판해 수백만의 독자를 만들었다) 옆의 베수비오 등 영감을 자극하는 문학 카페들이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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