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높이 난다는 것은 끝없는 자유를 얻는 것과도 같다. 인간도 자동차도 신호등도 없는 무한 대지, 순수 자유지대 하늘. 무색, 무취, 무미의 공기를 마시며 허공을 가르는 행위야 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넓고 큰 자유가 아닐까 싶다.

대지를 박차고 오른 열기구들이, 알버커키의 파란 하늘위로 총천연색 하늘 수놓음이 시작된다.




비상과 변신을 위한 창공으로의 유영

"Dreaming Escape" 일상 탈출은 누구나 한번쯤 고민 하고 있던 가슴 저 바닥의 욕망이다. "비상과 변신"은 어쩌면 일상에 찌든 인간들이 꿈꾸는 가장 큰 탈출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흔히 신변의 새로운 변화와 탈출을 꿈꿀 때 우리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그 낯선 곳으로의 여행 위에 창공을 두둥실 날아오르는 비상(飛上)의 짜릿함을 더해본다.

알버커키 열기구대회는 800여 대에 이르는 그야말로 온 천지를 화려하게 수놓고도 남을 열기구 역사상 최대 이벤트이다. 열기구 마니아들의 꿈의 그라운드인 뉴멕시코로 달려간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미국 뉴멕시코의 알버커키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Balloon 파일럿들이 800여 대가 넘는 총천연색의 열기구 풍선들과 함께 창공을 향한 비상을 준비한다.


창공을 유영하는 꿈에 인생을 건 그들은 단지 우승만을 꿈꾸며 비상을 시도하지 않는다. 우승과 상금은 하늘의 몫이다. 다만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꿈이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것이었기에 오늘도 비상과 창공에서의 자유로운 유영을 꿈꾸며 열기구의 불꽃에 혼을 실어 그들의 꿈도 타오르게 한다.

세계 최대의 열기구 대회장을 향하는 마음은 긴장과 설렘의 연속이다. L.A를 출발 라스베이거스와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를 거쳐 덴버에서 남쪽으로 6시간을 더 가면 뉴멕시코의 주도 알버커키에 이른다. 그야말로 외지인들의 범접을 거부하는 꿈의 구장으로의 고단한 여정이다.

세계 최대 열기구 축제의 현장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 800여대의 대형 열기구들이 하늘을 향해 박차고 일어설 준비중인 대회장에 연일 수십만의 관중이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다.


광활한 대지 위에는 창공 유영에 몸살이 난 파일럿들과 80만에 이르는 구경꾼들의 애타는 기다림이 찬란한 새벽을 깨운다. 뉴멕시코의 하늘은 청량감으로 그득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적절한 바람의 이동은 최적의 열기구 대회를 예감하고 있었다. ‘The World's most photographed event’라는 표어대로 지구상에서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새처럼, 연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인간이 날기를 소망했고 그 소망을 이룬 것은 18세기에 들어와서였다.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최초로 난 게 아니라, 프랑스 몽골피에 형제가 1783년에 최초로 열기구를 만들었다. 그것을 피라드레 디로제가 종이로 만든 공기주머니에 밀짚과 나뭇가지를 태워 25분 동안 하늘을 비행했다. 이렇게 시작된 비상의 꿈은 이곳 알버커키에서 최대의 비행 축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세상에 수고로움이 따르지 않는 쾌락이 있을까? 아직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 5시면 파일럿과 대원들은 어김없이 경기장으로 나서야 한다.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뉴멕시코 Rio Grande 강변의 이른 아침 풍경은 열기구 전사들의 뜨거운 열기로 이미 새벽 공기를 데우고 있다.

어둠을 몰아내는 새벽은 언제고 설렌다. 붉은 태양이 동녘 하늘을 밀고 하늘로 차고 오른다. 회의장을 빠져 나온 파일럿과 대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풍향을 체크 하거나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의견들을 나눈다. 이렇게 하늘로 향하는 길을 여는 파일럿들의 기도하는 듯한 고요한 아침은 차분히 흘러간다. 경기차량을 타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대원들의 행렬에는 창공을 향한 설렘과 승리를 향한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다.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파일럿들은 구피 내부로 뜨거운 열기의 불꽃을 쏘아 올린다.



숨 쉬는 생명체, 걸리버가 되어 하늘을 수놓다

송풍기로 구피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크고 위험스러워 보이는 강력한 불꽃을 조작해 구피를 몇 배로 부풀려 '숨 쉬는 생명체'로 키우는 공기 주입의 쾌감은 수백 번을 반복해도 흥분되는 작업임엔 틀림없다. 드러누웠던 거대한 체구의 구피가 잠자던 걸리버처럼 스르르 일어선다. 긴장감이 감돈다. 대원들의 행동이 민첩해지고 구체는 유유히 하늘 유영을 위해 대지를 박차고 일어선다.


버너에 점화된 불꽃은 힘을 더하고 불꽃을 쏘아주던 손길이 바빠지면서 이내 불꽃을 조절해가면서 날아간다. 기구에 탑승한 파일럿과 무전으로 교신하며 차량의 추적이 시작되고 기구 탑승팀과 차량 추적팀으로 2분 되어 기구의 안전한 비행과 최적의 경기를 위한 레이스가 펼쳐진다. 파란 하늘을 가르며 두둥실 떠오르던 열기구들이 뉴멕시코 알버커키의 하늘을 온통 총천연색으로 수놓기 시작한다.

성조기를 매단 미국 파일럿들이, 이른 새벽 밝아오는 태양을 맞이하며 창공을 날고 있다.

뭉게구름과 어우러진 기구의 상하 수직 하강과 바람에 밀려 움직이는 자연스런 조화는 하늘을 가득 메운 꽃송이들 같다. 백여 대가 넘는 각양각색의 열기구들이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향한다. 아직은 숨 막히는 장관의 시작에 불과하다. 메인 행사장의 스탠드를 메우고 있는 수만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순간에 펼쳐내는 일대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각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들은 박진감 넘치는 장관을 영상에 담기 위해 긴장된 움직임과 상기된 표정으로 촬영에 여념이 없다. 취재 열기 또한 대단한 볼거리 중의 하나다. 거대한 기구의 몸체들이 하나 둘 땅을 박차고 오르면서 파란 하늘은 거대한 캔버스가 되고, 바람을 이용한 신(神)의 손길은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상의 꽃들을 하늘 위로 흩뿌려 놓는다. 두둥실 두둥실. 바람이 선사하는 꽃들의 군무(群舞), 무어라 형용할 수 있을까?

비상을 향한 인간의 꿈은 하늘을 날고, 바람은 하늘에 무지개 꽃 낭만과 희망의 속삭임을 전하고 있다. 어둠이 내리고 축제 현장의 열기는 스러져가지만 꿈을 실현한 파일럿들의 뜨거운 하늘 사랑과 창공을 수놓던 기구들의 화려한 유영이 뉴멕시코 알버커키 열기구 축제의 꿈과 희망이 되어 가을 하늘을 영원히 수놓을 것이다.



여행 정보

교통편, 비행기: 항공편은 서울에서 L.A.를 경유해 산타페 남쪽에 있는 알버커키의 공항을 이용한다. 국내 항공사보다 미국 국적기를 이용하면 가격이 저렴하다. 알버커키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10분 정도 소요되며, 행사장까지는 20여 분 걸린다. 산타페까지는 85㎞정도 떨어져 있으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끝없이 펼쳐진 뉴멕시코 알버커키의 평원위로, 전세계에서 모인 파일럿들의 비상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

알버커키에서 산타페로

경기가 없는 시간에 인근의 산타페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계획이 될 것이다. 유용한 교통편으로 셔틀잭(Suttlejack)은 알버커키 공항에서 1시간 3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렌터카 이용 시 공항이나 알버커키 시내에서 I-25번을 따라 북쪽으로 40~50분 정도 가면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기후 뉴멕시코의 알버커키와 산타페 등은 내륙 사막지대로 기온의 일교차와 연교차가 극심하다. 계절에 관계없이 20도 이상의 일교차가 나고, 열기구 대회가 한창인 10월 초순에는 영상 15도를 오르내리며 쾌적한 날씨를 선사한다. 알버커키는 산악지대와 평야가 공존하고 있어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볼 만하다. 행사가 한창인 10월의 초가을은 기온과 습도가 별로 높지는 않지만 이른 새벽과 늦은 밤에는 두꺼운 옷을 챙겨야 할 만큼 아주 추운 편이다.

 

누군가 추천해준 여행지에 대해 불평하던 K양, 멕시코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 오니 나온 입이 쑥 들어갔다. 산의 가슴골에 포박된 이곳은 전세계인의 까탈스런 기호와 목적을 충족시키는 테마 여행의 집결지다. 서정적이면서도 생경해 신비롭다.

멕시코의 꼬리뼈 같은 동쪽 내륙에 있는 치아파스 주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이하 산 크리스토발). 이곳은 유난히 다양한 국적과 나이의 여행자가 거리를 메운다. 멕시코에서도 꽤 오지에 속하는 이 치아파스 주까지 그들은 어인 일로 행차한 걸까. 사실 치아파스 주는 멕시코에서도 가장 찢어지게 가난한 주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곧 천혜의 산이 있고, 그 속에 여러 인디오가 생을 이어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 중 산 크리스토발은 해발 2200m 산 중턱에 터를 닦은, 치아파스 주의 문화적 주도다. 원주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데다가 지리적, 문화적 풍유를 만끽하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행자 도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교회가 수호신처럼 세워진 시내 산책을 비롯, 인근의 인디오 마을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몬테베요(Montebello) 호수 및 수미데로(Sumidero) 협곡 등 외곽 지역을 투어하는 옵션까지, 여행 동선은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다채롭고 아름답다.

덕분에 유난히 벽보엔 렌탈 하우스 광고가 눈에 띈다. 식도락, 힐링, 역사 등 각종 여행 테마를 핑계 삼은 장기 투숙자를 위한 배려다. 한 달에 약 1200 페소(=100 달러)로, 부엌도 있고 와이파이도 되고 더운 물도 콸콸 나오는 '집' 다운 집이다. 작년 네덜란드 아내를 맞이한 멕시코인 추이(Chuy)도 멀쩡한 집이 마자틀란에 있음에도 이곳에 세달 간 체류할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낙원이 이곳이라는 그는 딱 한가지 불평만을 했다.

"비가 많이 오는 것만 빼고요…."식도락 여행멕시코 vs 세계 음식, 기쁨 터지는 맛의 대결

산 크리스토발 여행은 보행자 도로인 레알 데 과달루페와 미구엘 이달고를 중심으로 잔가지를 친 골목을 누비면서 시작한다. 블록 당 때론 오십 보도 채 안되는 짧고 굵은 미로들로 탐험 느낌을 강하게 즐길 수 있다. 길을 잃었나 싶으면 아는 길이 등장하는 신기한 이곳은 일반 도로의 신호등 대신 'UNO'(스페인어로 '하나')란 표시로만 운영된다. 교차점에서 '한 대씩' 양보하는 이들만의 약속이다. 도로 바닥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 때 건설된 돌길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뾰족 구두는 고스란히 집에 모셔놔야 한다. 오르락내리락 산새에 따라 지어져 골목마다 경사도 남다르다.

이곳에는 여행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초강력 아이템이 다국적 맛집들이 즐비하다. 프랑스부터 아르헨티나, 태국, 레스토랑과 바가 저마다 출신과 개성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길 한 바퀴 돌고 나면 세계를 다 돈 기분이다. 이곳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서로 발견한 맛집 자랑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그 어떤 집을 막론하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 맛과 분위기가 제대로다.

어느 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거리로 스멀스멀 날아다니는 빵 냄새에 끌려간 적이 있다. 인디오가 빵을 굽는 프랑스 빵집, 엘 오르노 마지코(El Horno Magico)였다. 각종 갓 구운 크로와상과 바게트가 품절될 때까지 파는 이곳은 대부분 15~30 페소(=1,2~2.5 달러)로, 잔뜻 성질이 난 사람의 마음도 녹여내릴 만큼 맛이 좋다. 올랄라!(Oh la la!)는 케이크와 에스프레소로 사람을 홀리는 카페다. 피라미드 형 초콜릿 무스 케이크인 마야B(MayaB)부터 탱글탱글 씹히는 맛이 제대로인 과일 타르트까지,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하면 올랄라! 한라산보다 높은 이곳의 한기 따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가난하기로 소문난 지역에 국제적인 맛집 거리가 생긴 이유는 프렌치 레스토랑 엘 샬렛(El chalet)에서 알 수 있었다. 프랑스인 주인 말에 따르면 약 16만명이 사는 산 크리스토발의 중심가에 언제부턴가 400여명의 유럽인이 터를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 먹고 살기 좋기 때문. 특히 멕시코의 불명예 중 하나인 상인 갈취나 자식의 납치, 유괴 등의 비인도적 사고가 이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유럽에서 온 셰프의 요리 솜씨에 정직하고 저렴한 현지 식재의 결합은 높은 수준의 요리를 만들 기회를 주었고 그렇게 생기기 시작한 글로벌 식당들이 오늘날 이곳을 맛의 천국으로 이끌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멕시코 현지 음식이 기를 죽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보행자 도로에서 한두 블록 떨어진 곳에 이곳이 멕시코인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최상의 맛집이 포진되어 있다. 엘 칼데로(el caldero)는 타코나 또띠야만 아는 기존의 편견에 어퍼컷을 날리는 멕시코의 시원한 국물 음식, 칼도스(Caldos)를 선보인다. 큰 손의 어미가 아낌없이 자른 야채와 치킨이나 고기로 진국을 낸 큰 그릇에 각종 양념을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카멜리타(Carmelita)는 샌드위치나 타코 같은 여러 음식을 골라 먹는 식당이다. 1949년 이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는 이들의 만족감을 준 이곳은 둘이 무리하게 과식을 해도 100페소(8.3달러)를 넘기지 않는다. 특히 바삭한 타코 위에 다진 콩을 잼처럼 바르고 그 위에 단 맛의 야채를 얹은 후 치즈 가루를 송송 뿌린 차루파스(Chalupas)를 추천한다.

힐링 여행

발가벗겨진 몸과 마음, 라구나 데 몬테베요

"오전 6시 출발입니다." 살인적이다. 이곳의 여행은 게으를 겨를도 주지 않는 것일까. 라구나 데 몬테베요는 산 크리스토발 시내의 서쪽, 치아파스 주의 첫 국립공원 내에 있다. 1959년에 조성되어 늦은 2009년에서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이웃 나라 과테말라와 반반을 나눠먹는 땅에 있다. 대중 교통편이 만만하지 않아 대부분 에이전시에서 마련한 셔틀버스나 렌트카로 투어하는데, 대신 숙소 주인의 개인 차로 두 명의 호기 있는 호주 청년과 길을 나섰다. 운전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차에 오르자 마자 모두 실신 상태가 되었다.

2시간여 달렸나 보다. 좁게 열린 차문 사이로 새침한 바람이 잠을 깨웠다. 눈은 일시에 푸른 빛을 그린다. 아니 옥빛이다. 아니 청초록 빛이다. 잊었던 한글의 수많은 색깔 표현을 끄집어 내야 할 정도로, 호수는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다른 빛깔로 변한다. 호수 내 미네랄 성분이 하늘에 반사되어 빛을 발현하는 모습이 제각각이다. 산의 그림자를 그리는 곳은 더욱 짙은 에메랄드 빛을 냈다. 바다처럼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할 리 없는 그곳에서 왜 그리 이성을 잃은 채 셔터를 눌렀던가.

라구나 데 몬테베요는 사실상 호수 선물 세트다. 산이 구간을 지어 '호수'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곳이 59곳에 이른다. 수에 민감하지 않아도 호수를 포함한 국립공원은 6411헥타르, 즉 1만8150평이란 놀랄 입을 그릴 숫자다. 그 중 라고 치스카오(Lago Tziscao)와 씬코 라고(Cinco Lago)는 놓치지 말아야 할 뷰 포인트.

라고 치스카오는 과테말라의 서쪽 끝 국경 지역에 있는 국립공원의 대장 호수다. 산은 일시에 병풍처럼 세우고 호수는 자랑하듯 길고 넓은 용모를 드러낸다. 풀길을 지나 돌과 모래길, 이내 낮은 호숫물에서 길은 깊이를 알 길 없는 청초롱한 호수에서 사라진다. 눕거나 앉거나 서거나, 호수 앞 도시인은 누드가 된 심정으로 자연을 관조하게 된다. 호수 뒷동산에 오르니, 나무로 불을 지피는 원시적인 부엌의 아낙네가 발길을 잡는다. 기념품 숍 겸 식당이다. 이곳은 엄연한 멕시코 땅이지만 이 가게에서 파는 것들은 대부분 과테말라산들이다. 조금 더 걷자 국경을 표시하는 탑이 등장한다. 나는 여권 없이 국경을 넘고 말았다. 과테말라 쪽 역시 호수와 폭포가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시 멕시코 영토로 돌아온다.

씬코 라코는 5개의 호수 그룹을 이르는 곳으로, 여러 호수가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아름다운 굴곡과 리듬감을 준다. 이 호수에서는 수영은 물론 카누 처럼 생긴 뗏목 놀이도 가능하다. 생나무와 끈으로만 만들어진 뗏목을 나무 노로 저어 앞산에 가려진 호수를 향해 들어갈 수 있는데, 호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세상에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요함 때문에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 된다. 거기에 형용할 수 없는 색깔이 세상을 뒤덮고 있어서 머리가 하얘질 정도다. 호수의 깊이는 구역에 따라 30~100m 정도? 그 물이 너무 투명해 뗏목 위의 사람들마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두 호주 청년은 못 참겠다는 듯 호수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호수 중턱에서 초입까지 가히 500m 정도 되는 그 거리를 헤엄쳐가겠다는 의지였다. 10분 후 숨을 헐떡이던 한 사내가 뗏목을 죽기살기로 붙잡으면서도, 끝까지 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대 후반인 그는 어느새 코찔찔 소년이 되어 있었다.

역사 기행

마야'도 리콜되나요? 시나카탄과 차물라

산 크리스토발 시내에선 시간의 혼란을 겪기 일쑤였다. 21세기 보행자 도로의 또 다른 시간대, 인디오의 출현 때문이다. 때론 동네 주민이지만, 대부분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길거리 상인이다. 덕분에 한낮의 정서를 만끽하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그들의 완벽한 희생양(?)이 된다. 다섯살 배기 꼬마가 나무 미니어처를 테이블에 하나 둘 놓아 전시하기 시작하고, 좀 전에 거리에서 봤던 할머니가 또 한번 총천연색 패턴 블라우스를 사라고 권한다. 핸드메이드 상품을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고 끝없이 돌아다니는 움직이는 상점들. 그들이 점심은 제대로 챙겨먹었는지는 미지수다.

인디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산 크리스토발 외곽 마을인 산 로렌조 시나칸탄(San Lorenzo Zinacantan, 이하 시나칸탄)과 차물라(Chamula)를 찾아가야 한다. 둘 다 마야문명의 후손인 초칠(Tzotzil)이 기거하는 산악 마을이다. 마야 문명의 전통을 완고하게 지키며 사는 그들은 다운타운의 인디오와 달리 외부인 방문에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그들은 스페인어가 아닌 초칠어를 사용할 정도로 전통을 중시하며 살아간다.

첫 행선지는 산 크리스토발로부터 30여 분, 시나칸탄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시내에서 밟히듯 보이던 레스토랑은 그들의 주 수입원인 꽃밭으로 대체됐다. 마을 내 주민도 나이, 성별 구분 없이 꽃 잔치다. 그들의 전통 복장 덕에 다섯 명의 동행인은 어느 외로운 행성에 불시착한 꼴이었다.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오르겠다고 하자, 가이드로 동행한 알뚜로와 인디오 사이엔 어렵사리 대화가 오갔다. 마야인에게 신성시되는 산이기에, 외부인만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밀어였다. 그가 동행하는 조건으로 오르는 길엔 식구가 불었다. 두 어미는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얼싸 안고 어린 세 딸은 장정이나 들을 법한 칼과 보따리를 지고 함께 가는 길이다. 우리는 전망대에 올라 사진 찍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들의 등산은 뗄감을 구하기 위한 생존의 발길이었다. 그들의 신발은 당장 쓰레기통에 가도 문제 없을 법한 슬리퍼, 우리의 신발은 무적 트래킹 슈즈였다.

한 시간 가까이 등판길을 오르자 전망대가 등장했다. 산새에 폭 안긴 마을의 소박한 전망 뒤로는 마야 신앙에 의한 일종의 제단을 모시는 곳이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이들의 신앙도 카톨릭교와의 진통을 겪는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생화와 솔잎을 곱게 입은 세 개의 초록빛 십자가 앞은 그들의 신앙이 붙인 무수한 촛불의 잔재가 있었다.

하산하는 길, 마음의 짐이 무거웠다. 우리와 동행한 인디오 두 어미는 20kg은 족히 되는 땔감을 짊어진 채였다. 나무 베는 게 무섭다며 엉엉 울던 다섯 살 마리아는 5kg의 장작을 진 채 어른스런 걸음을 떼어갔다. 동행자 중 한 명이 슬그머니 세 살 배기 플로렌시아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저 등산이라 하기엔, 뜨거운 양감이 귀까지 아프게 했다.

생각보다 지체된 차는 차물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알뚜로가 홀로 진땀을 흘렸다. 차물라엔 오후 4시 이후에 외부인이 들어올 경우 목을 잘라 죽여버린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차물라의 첫인상은 차디 찼다. 카메라를 숨겨야 한다는 이름 모를 압박마저 들었다. 괜히 몰래 찍고 고개를 휘휘 저어 주변을 살폈다. 역설적이게도 관광객 대상의 기념품 상점은 문을 활짝 열고 이방인을 반겼다. 우리는 오후 세 시 반 달아나듯 차물라를 떠났다.

차물라는 독립된 나라인 양 지독히 강한 커뮤니티를 지닌 마을이다. 외부 군대도, 경찰마저 거부한다. 그들만의 법과 관습으로 세파에 크게 훼손되지 않고자 했다. '츅(Chuc)'이라 불리는 전통 복장은 시나칸탄의 꽃 패턴 대신 양모로 대표된다. 남자들은 계절이나 축제 여부에 따라 하얗거나 까만 튜닉을 뒤집어 쓰고, 여자들은 보통 까만 치마를 두른다.

볼거리라면 재래 시장 앞에 선 산 후안 교회. 의아하게 교회인데 입장료 20 페소(=1.7달러)를 요구했다. 입장권엔 무시무시한 경고도 적혀 있다. '실내 사진 촬영 금지', 마을 내 공식적인 의식 촬영 역시 금지란다. 이를 존중하지 않았을 시 벌을 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미 시나칸탄에서 만난 한 이탈리아 여행자가 몰래 촬영하다가 인디오의 습격(?)을 받았다는 거친 경험담을 들은 직후였다.

색깔이 예쁜 교회로 들어가니, 심장이 쾅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혼미해지는 다른 세상이다. 일시에 암흑이 된 내부는 인디오가 읊는 주문에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기존 교회에서 본 성인의 상은 빛깔 좋은 옷감으로 치장했으나 촛불에 그을려 있다. 벤치가 있을 법한 자리엔 그들의 무릎이 있다. 마른 솔잎으로 뒤덮인 바닥, 그들의 무릎 앞에 세워진 수십 여개의 촛불, 콜라와 주스 병, 그리고 포쉬(Posh)라는 38도의 독주, 신에게 목을 부러뜨려 바치기도 하는 생닭… 안녕을 기리는 이들의 기도는 너무 생경해 두려울 정도였다. 기록하고 싶은 맘에 수첩을 꺼내자 한 관리자는 팔로 완강한 X 표시를 했다.

오후 4시 20분 경, 차는 다시 산 크리스토발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세계 각지에서 여행자를 불러들이는 것은 이 마야 문명의 후예들 덕이건만, 정작 당사자는 먹고 배울 돈 없이 근근한 삶을 이루는 현실. 우리는 (목 잘리는 일 없이) 다행히 살았고, 그들과의 기억이 죽어도 지워지지 않을 문신일 것만 같았다.

How to GO

멕시코 시티로부터 버스를 타느냐 비행기를 택하느냐의 선택. 전자는 멕시코 시티의 타포(Tapo) 터미널에서 산 크리스토발까지 약 16시간, 시간대와 버스 회사에 따라 대략 760~840페소(=63~70달러)로 제각각이다. 후자인 항공편은 멕시코 시티에서 치아파스 주도인 툭스틀라 구트에레스(Tuxtla Gutierrez)까지 날아가 그곳에서 산 크리스토발까지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이동하는 수고가 있다. 항공은 볼라리스(Volaris)와 에어로멕시코(AeroMexico)가 약 15~20만원 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의

ADO 버스 www.ado.com.mx / 항공권 가격 비교 www.skyscanner.co.kr/flightsWhere to EAT

대부분 레스토랑과 바가 실패하기 어려운 맛과 저렴한 가격이 있다. 보행자 도로 레스토랑의 대부분은 10% 부가세가 있으니, 총 금액을 따지는 눈썰미가 필요할 것. 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의 해피 아워도 놓치지 않는다.

엘 오르노 마지코(El Horno Magico)

특히 초콜릿과 바나나가 섞인 크로와상이 사르르~ 환상적이다. 위치 Av. General Utrilla #7, Centro 문의 elhornomagico.com엘 칼도(el caldero)한국 음식의 향수병에 걸린 이들의 특효약이 많다. 위치 Insurgentes #5-A Centro Historico 문의 www.elcaldero.com.mx올랄라!(Oh la la!)어떤 케이크를 택해도 다른 만족감. 단골이 되기 쉽다. 위치 Cuauhtemoc 4, Col. Centro 문의 967-67-47-875안토히토스 카멜리타(Antojitos Carmelita)오픈 키친의 음식을 하나씩 확인해 정확히 손가락으로 주문하는 맛 위치 Av. Matamoros No.4 Frente Al Templo de La Merced엘 샬렛(El Chalet)오직 네 개 미니 테이블에 일품 프렌치 요리를 일품 서비스로 내놓는다. 위치 Diego Dugelay #5 문의 967-12-12-605Where to STAY 호스텔 에르니hostel Erni

풍채 만큼이나 맘씨 좋은 에리카와 알뚜로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모두 프라이빗 룸에 공용 욕실이다. 이곳에 머문 누구나 최고의 숙소라 아낌없이 추천하는 데엔 집보다 편하게 하는 그들의 배려 덕분. 주인과 손님이 서로 식사를 대접하고 수다 떠느라 한나절을 보내는 건 일상이다. 각종 외곽 투어도 같은 가격으로 알뚜로의 개인 차로 소풍간 기분. 매일 에리카가 랜덤으로 준비하는 아침식사는 단단히 기대해도 좋다. 혹 이곳에 손님이 가득 차면, 그들이 새로 지은 다크호스 호스텔 다코타(Dakota)로 방을 마련해준다. 1인 150 페소(=12.5 달러), 2인 170 페소(=14 달러)

  1. 재미있네요 정말 ㅋㅋㅋㅋ 2013.11.25 18:06

    멕시코 여행 꼭 가고 싶어요 산 크리스토발 정말 흥미롭네요

지나치게 번쩍이는, 코르테스와 천사의 황금

해발 2,240m의 고원에 자리잡은 멕시코시티는 황금으로 뒤덮여 있었고, 황금 때문에 멸망했고, 황금의 추억으로 살아가는 도시다. 14세기 초 톨텍 제국이 멸망한 뒤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들은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건설하고 대제국 아즈텍의 영광을 구가했다. 이 도시는 인구 20~30만 명을 수용한,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대도시였다.


1518년 베라크루스 해안에 도착한 정복자 코르테스는 5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내륙 정복에 나섰다. 황금으로 뒤덮여 있다는 즈아즈텍의 도시에 대한 소문이 그의 피를 끓게 했다. 그는 주변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병사와 말을 늘려가며 수도로 들어섰다. 황제 몬테주마 2세는 전통에 따라 그들을 환영했고 황금으로 된 갖가지 선물을 하사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코르테스의 병사들은 축제를 벌이기 위해 사원에 모여든 아즈텍의 지도층을 몰살시키고 황금을 노략질했다. 그 가치는 구대륙의 물가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분노한 시민들은 '슬픔의 밤(La Noche Triste)'에 스페인 병사들과 그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왕을 처단했는데, 이때 황금을 들고 달아나다 호수에 빠져 죽은 병사들은 저주받은 보물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코르테스의 황금 주화 역시 이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스페인 군대를 신의 사자로 착각했던 아즈텍 제국은 멸망했고, 테노치티틀란은 가톨릭교회를 믿는 멕시코시티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이 도시는 거대한 기둥 위에 있는 황금의 천사상이 내려다보고 있다. 멕시코 독립전쟁 개시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앙헬(El Ángel)은 이 도시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독립의 천사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지나치게 맛있는, 타코와 식도락의 전쟁터

아즈텍의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만든 토르티야를 애용해왔다.


아메리카 대륙의 한가운데서 유럽 각국의 방문을 허락한 멕시코는 식도락의 전쟁터가 되었다. 아보카도를 넣은 아즈테카 수프, 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돼지껍질 튀김, 테킬라, 메스칼, 코로나와 같은 갖가지 술들…. 그중에서도 타코(Taco)를 빠뜨리고서는 이 도시를 이야기할 수 없으리라.


아즈텍을 비롯한 중앙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만든 토르티야를 밥이나 빵과 같은 기본적인 식사로 애용해왔다. 농부의 아내들은 토르티야에 여러 재료들을 싸서 먹는 타코를 새참으로 만들곤 했는데, 각 지역 사람들이 멕시코시티로 몰려들어오면서 수백 가지 타코가 경연을 벌이게 되었다. 국립궁전 옆의 소칼로 광장(Plaza de la Constitución)은 주말마다 온갖 노점으로 뒤덮여, 화끈한 살사 소스를 끼얹은 타코를 베어먹기에 아주 좋은 장소가 된다.

여행객들은 뜨거운 오후에 가벼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 타코를 찾게 마련이지만 유념해둘 사실이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타코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이후의 식사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오후의 식사를 가장 거나하게 먹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제외한다면 곳곳의 타코 가게에서 갈아구운 고기, 석류 알맹이, 허브와 채소, 각종의 살사 소스가 뒤섞인 맛의 향연에 동참할 수 있다.


지나치게 흥겨운, 마리아치 밴드

"멕시코~, 멕시코~" 영화 [제8요일]을 보고난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자기도 모르게 부르게 된다. 왜 프랑스 영화를 보고 대서양 너머의 저 나라를 찾게 되는 걸까? 주인공의 환상 속에서 요란한 치장의 멕시코 가수가 난데없이 나타나 노래를 부르기 때문인데, 그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잊기가 어렵다.


커다란 모자에 쫙 달라붙은 옷과 부츠를 갖춰 입은 마리아치 밴드는 멕시코의 흥겨움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미국 남부를 비롯한 곳곳의 식당에서 돈을 받고 노래를 해주는 이 밴드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역시 본연의 마리아치를 만나려면 멕시코시티, 특히 가리발디 광장(Plaza Garibaldi)을 찾아가야 한다. 여러 길거리 밴드들이 마치 경연을 벌이듯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복장의 스타일이나 악기의 구성들이 조금씩 다르다. 여러 음역대의 크고 작은 기타와 바이올린은 집시 밴드의 구성과 비슷하지만, 때론 하프도 등장하고, 쿠바 음악에 영향을 받은 트럼펫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가리발디 광장에서는 마리아치 외에 야로초, 노르테뇨 등의 민속 음악 밴드들도 만날 수 있다.




마리아치 밴드의 음악은 스페인을 중심으로 중미와 아프리카의 민속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지나치게 열정적인,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코요아칸에 있는 프리다의 '푸른 집'. 다리를 자른 말년의 그녀는 이 집과 정원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못했다.


20세기 초반 황금의 천사는 영광스럽게 기둥 위로 올라갔지만, 독립국가 멕시코는 여전히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의 절대 권력 아래 무릎 꿇려 있었다. 스페인 지배자들로부터 유형과 무형의 유산을 물려받은 대지주들은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있었고, 독립 100주년 기념행사는 지배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러시아 혁명의 전초가 되는 멕시코 혁명의 봉화가 타오른다. 멕시코시티는 아메리카의 등불이 되었고, 도시는 혁명이 가져다준 창조적 열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 한가운데 있었던 남자가 디에고 리베라. 그 그늘 아래 더욱 독창적인 예술혼을 불태운 여자가 프리다 칼로였다.


시대를 불태운 뜨거운 연인이었지만 동시에 치정극의 맞상대였던 두 사람. 그들의 작품은 멕시코시티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대변하고 있다. 아즈텍 문명의 유산을 혁명적 스케일로 재현한 디에고의 벽화는 대통령궁에 있는 '멕시코 식민의 역사'를 비롯해 이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멕시코의 국민 예술가로 미국과 러시아에까지 그 명성을 떨친 디에고의 위용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반면 프리다는 오랫동안 '디에고의 부인'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죽은 뒤 수 십 년 뒤인 1980년대에 와서야 새로운 예술 운동을 통해 그녀 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알려지게 되었다. 소아마비로 고통받은 어린 시절, 여성으로서의 억압과 콤플렉스, 멕시코의 자연을 느끼게 하는 원시적 화풍…. 그녀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마이너리티의 대변자가 되었다. 현재 박물관이 된 프리다의 '푸른 집(La Casa Azul)'은 그녀의 예술과 더불어 남편 디에고와 혁명가 트로츠키에 얽힌 놀라운 삶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지나치게 현학적인,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21세기 들어 멕시코시티는 세계에서 가장 번잡하고 오염되고 위험한 도시라는 오명을 벗어나고자 여러 노력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 역시 이 도시의 놀라운 창의성과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멕시코의 국립 도서관장을 역임한 호세 바스콘셀로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도서관(José Vasconcelos Library)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구조의 도서관으로 보인다. 큐브 형의 구조물이 서로 얽혀 있는 사이로 거대한 공룡의 골격이 전시되어 있다.

빈센트 대통령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멕시코시티의 막대한 인구는 막대한 문학 인구'라는 아이디어를 반영하고 있다. 부에나비스타 기차역과 결합된 건물을 통해 하루 35만 명에 이르는 이곳의 지하철, 버스, 교외 기차 이용객을 독서 대중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도서관은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발레나'를 비롯한 여러 멕시코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나치게 모은 세계, 코로니아 로마

보자르 스타일의 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 코로니아 로마, 아트 갤러리.


분명 코로니아 로마(Colonia Roma)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의 수도가 아니라 이 지역의 옛 이름인 라 로미타(La Romita)로부터 왔다. 그러나 이 동네를 거니는 사람들이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왔다는 착각에 빠지기란 어렵지 않다. 루이 카브레라 공원의 아름다운 분수와 곳곳에 자리잡은 보자르(Beaux-Arts) 양식의 건물들은 '리오 데 자네이로' '마드리드' 등 먼 나라의 이름을 딴 지명들과 겹쳐지며 묘한 다국적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0세기 초반 중상류층이 모여 살면서 아름다운 건축과 조각으로 장식해갔던 이 지역은 1940년대에 이르러 부유층이 교외를 떠나며 조금씩 쇠퇴해갔다. 1985년의 대지진의 여파는 이 지역에도 커다란 타격을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무너진 대부분은 새로 지은 건물들이었다고. 그 덕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도 멕시코시티의 서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되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신들 - 국립 인류학 박물관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유일신을 내세우며 이 땅을 정복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온갖 신들이 뒤엉켜서 사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증거가 바로 여기, 기둥 하나로 받혀져 있는 84m의 캐노피 아래 있다. 멕시코 모든 박물관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 아즈텍인들이 테오티우아칸을 두고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라고 말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전시물은 멕시코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태양의 돌'. 25톤의 돌에 새겨진 거대한 신의 모습인데, 중앙에 있는 태양의 신 주위로 종교 의식에 사용되던 달력의 주기가 표시되어 있다. 기괴한 팔다리의 위치를 보여주는 땅의 여신, 노래와 춤을 담당했다는 거북이 모양의 신,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유명한 팔렌케 청년의 머리 등 예술혼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아텍의 '태양의 돌'은 소칼로 광장 아래에 있다가 1790년에 발굴되었다.

칸쿤(Cancún)은 카리브해의 욕망이다. 적어도 숱한 수식어 상으로는 그렇다.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 중남미 청춘들의 허니문 열망지로 늘 앞순위에 오른다. 한국에서는 낯선 카리브해의 해변이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중독성 강한 ‘꿈의 휴양지’다.

호텔들은 호화로운 시설과 서비스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칸쿤은 산호로 만들어진 ‘7’자 모양의 길쭉한 섬이었다. 고기잡이 배나 드나들던 한적한 어촌마을은 휴양도시로 개발되며 섬 양쪽 끝이 뭍과 연결됐고 초호화 시설을 갖춘 호텔들이 들어섰다. 이제는 전 세계 호텔 체인을 이곳 칸쿤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옛 정취는 사라졌다.

150여 개의 호텔과 리조트는 흡사 성벽처럼 해변을 둘러싸고 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쉽게도 바다보다는 호텔 외관과 각종 인테리어에 시선이 집중된다. 빼곡한 호텔지역은 칸쿤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매김했고 그 화려한 유명세에 힘입어 칸쿤은 휴양, 허니문, 부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칸쿤은 아메리카 대륙의 청춘에게는 욕망이 실현되는 카리브해의 파라다이스다.

리조트에서 미녀와 조우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방인이 흥청대는 카리브해의 낙원

칸쿤을 육로로 다가서는 일은 드물다. 미국은 물론이고 쿠바 아바나, 남미 일대에서 수시로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비행기 창 너머로 내려다보면 자욱하게 밀려드는 게 카리브해의 파도다. 몰디브의 바다처럼 연둣빛 라군(석호)으로 채색돼 있지는 않지만, 해변의 규모에 있어서는 압권이다.


바닷가에 긴 평행선을 그은 듯 흰 모래사장은 20여km 이어진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산호 산맥이 섬 일대를 지나고 있고 산호가 파도에 부서져 하얀 모래를 만들었다. 유카탄 반도와 이어지는 북쪽 해안은 상대적으로 호젓한 편이며 동쪽해안은 드넓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예전에 근해였던 지역은 다리가 놓인 뒤 호수가 됐는데 칸쿤에서 진행되는 각종 해상투어의 출발점도 이곳 잔잔한 니츄뻬(Nichupté) 호수다.

칸쿤의 북쪽 해변은 상대적으로 호젓한 분위기다.

할리우드풍의 나이트 클럽인 '코코봉고'.
영화 [마스크]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칸쿤에 들어서면 첫인상은 이곳이 멕시코 땅인가 싶다. 일단 멕시코 본토에서 잘 통용되지 않던 영어가 일상어처럼 쓰인다. 쿠클칸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미국인들이다. 태평양 하와이쯤 와 있다는 착각이 밀려든다. 이방인들은 낮에는 뜨거운 해변을, 해가 지면 쇼핑가와 나이트클럽을 배회한다. 영화 [마스크]에도 나왔던 할리우드 풍의 ‘코코 봉고’는 이곳 나이트클럽의 대명사가 됐다. 술에 만취한 미국 청춘들을 만나는 것도, 깜짝 놀랄 물가와 돈 많은 부호들의 호사스러움과의 조우도 이곳 칸쿤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칸쿤이 선택된 자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칸쿤의 도심인 센트로 지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숙소와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 라스 빨라빠스 광장은 돈 없는 여행자들에게는 마음 편한 놀이 공간이다. 단 바다까지 버스로 오가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멕시코풍의 호젓한 해변을 원하면 이슬라 무헤레스로 향한다. 칸쿤에서 북동쪽으로 11km 떨어진 섬인 이슬라 무헤레스에는 현지인과 배낭족이 어우러지는 소박한 해변이다. 칸쿤처럼 시멘트벽이 만들어내는 단절감 없이 카리브해를 마음에 담을 수 있다.

고대 마야유적의 정수 치첸이트사

칸쿤행 발길의 의미를 채우는 곳이 치첸이트사다. 칸쿤에서 200km, 마야유적에 로망을 느끼는 여행자들이 당일치기 투어로 꼭 들리는 명소다. 사실 칸쿤과 함께 치첸이트사를 언급하는 것은 다소 이질적이다. 칸쿤이 떠들썩한 휴양지라면 치첸이트사는 천년세월의 문명이 숨쉬는 숭고한 땅이다. 천문학과 건축기술이 한데 어우러진 마야유적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도 이름을 올렸고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칸쿤의 거대한 호텔과 바다에 들뜬 가슴은 이곳에 들어서면 숙연해진다.

쿠클칸의 피라미드는 천문학적인 건축미가 담겨 있다.

성기게 펼쳐진 돌덩이 사이에서 쿠클칸의 피라미드는 단연 돋보인다. 9세기 초 완성된 신전은 동서남북으로 늘어선 계단이 인상적이다. 피라미드는 마야인이 그들만의 달력을 사용한 지혜로운 부족임을 보여주는데 각각 91개로 된 4면의 계단에 정상 계단을 합하면 1년을 뜻하는 365일이 되는 천문학적인 구조를 지녔다. 신전 앞 정면에서 박수를 치면 뱀이 우는 소리를 내며 기이한 분위기마저 연출한다. 인신공양에 쓰인 자들의 해골을 쌓아올렸던 쏨판똘리나 우승자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던 경기장, 성스러운 샘 등은 나란히 정렬돼 있다. 규모는 웅대하지 않아도 조각, 벽화 하나에도 마야인의 총명함과 재주가 깃들어 있다.

다양한 기둥이 오밀조밀하게 세워진 전사의 신전.

칸쿤은 태양, 바다, 파티, 호텔로 치장된 땅이다. 파도의 설렘과 밤의 흥청거림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뭍 깊숙이 몸을 감춰버린 마야인처럼 ‘원초적 중미’의 모습은 해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카리브해가 만들어낸 휴양 특구의 세련된 향기만이 짙게 배어난다.

가는 길
미국 LA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멕시카나 항공 등이 칸쿤과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을 연결한다. 쿠바 아바나에서 입국하거나 미국으로 출국할 때는 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다. 칸쿤 호텔지역에서는 수시로 셔틀버스가 다녀 쇼핑 및 이동에 큰 불편은 없다. 칸쿤 버스터미널에서 치첸이트사로 향하는 버스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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