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왕국 요르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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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바의 사해 근처 해발-265m의 깊은 계곡에서 솟구쳐 떨어지는 마인의 온천폭포(왼쪽 사진). 사진은 이곳의 유일한 에바손리조트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식스센스 스파도 함께 있다. 예수가 세례자요한으로부터 강물로 세례를 받은 곳으로 확인된 웅덩이 터(오른쪽 사진). 요르단강에서 50여 m 떨어진 곳으로 지붕을 씌운 곳은 비잔틴시대까지 이곳에 세워진 기념교회 유적이다.

중동 국가 중 유일한 입헌군주국 요르단. 정확히는 ‘요르단 하심왕국’으로 현재는 1999년 타계한 후세인 1세 왕의 뒤를 이어 아들 압둘라 2세가 통치한다. 현재와 같은 중동의 국가 판도가 형성된 건 제1차 세계대전 때다. 당시 아랍민족은 오토만제국(터키) 치하에 있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랍 대봉기(Great Arab Revolt)가 성공한 1920년. 그때까지 이들은 터키 지배 아래 제각각 부족으로 흩어져 살았다. 그런 와중에 가장 먼저 국가체제를 갖춘 곳이 요르단이다. 당시는 토후국 수준이었지만 아랍 대봉기 직후 영국으로부터 가장 먼저 독립을 인정(1920년)받았다. 아라비아반도의 첫 독립국이 된 데엔 배경이 있다. 터키를 축출하는 아랍무장봉기가 하심왕국의 국조(國祖)인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1854∼1931)의 주도로 이뤄져서다. 이 역사는 1962년 개봉된 명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감독 데이비드 린)에 생생이 그려졌다.

우리가 요르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적다. 그런 만큼 여행지로서 매력에도 무지하다. 그간 다녀간 여행자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스라엘을 목적지로 한 성지순례 중에 잠깐 들르는 수준이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공유한 사해도 비슷하다. 절반(동쪽 연안)이 요르단 것임에도 관광은 주로 이스라엘 쪽에서만 이뤄졌다. 그나마 최근엔 사막의 고대도시 페트라(세계유산) 덕분에 요르단을 기억하는 이가 늘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여행 마니아층에 국한되다 보니 우리에게 요르단은 아직도 미지의 여행지다.

그 요르단을 여행전문기자인 나도 지난달 처음 찾았다. 결론은 긍정적이다. 요르단은 비록 사막의 황무지지만 나라 전체가 관광자원이었다. 여행 테마도 다양했다. 사막투어부터 의료와 건강(사해), 유적답사(성지와 고대 로마 도시)까지. 요르단은 살아 숨쉬는 황무지다. 사막을 적시는 요르단 강과 강이 형성한 거대한 계곡 덕분이다. 해수면(해발 0m)보다 100∼200m 낮은 이 저지대는 기온이 높아 바나나 등 열대과일 플랜테이션의 적지다.

게다가 나라 전체의 토질이 비옥한 테라로사다. 그래서 올리브를 비롯해 과일과 밀 등이 풍성하게 난다. 이런 농경지와 거주지는 대부분 해발 1000m 내외의 산등성에 자리 잡았다. 거기엔 용수와 식수가 넉넉히 공급된다. 기후도 사계절이 분명하고 사람 살기에 적당해 여행하기에도 쾌적하다.

요르단은 사막 땅이지만 바다도 2개나 있다. 사해와 홍해인데 모두 국가 주도 관광개발사업으로 유럽 휴양객이 주로 찾는 럭셔리 휴양지로 변모 중이다. 이곳을 찾는다면 사막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요르단엔 유적도 많다. 이곳은 지구 마지막 빙하기(1만 년 전) 이후 인류의 발전 역사가 고스란히 발견되는, 보기 드문 곳이다. 8000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도시인 예리코(이스라엘)가 요르단 강 건너편인 것을 안다면 요르단에서 무엇을 만날 수 있을지 가늠될 것이다. 페트라만 해도 그렇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에 흥성했던 고대도시다. 수도 암만에서 50km 북쪽의 야라슈는 로마 바깥에서 가장 로마를 빼닮은 고대도시다. ‘요르단의 폼페이’라고 불릴 만큼 보존 상태도 완벽해 요르단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성지순례여행 코스로도 요르단은 적지다. 성지순례는 이미 2000년이나 지속된 올드테마 여행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요르단에서는 다르다. 회개를 통해 곧 우리 앞에 나타날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고 외치던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가 세례를 받은 현장이 요르단 강안의 베타니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불과 12년 전으로 보통사람 예수가 그리스도(구원자)로 처음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이벤트이자 예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의 현장이다. 그런 만큼 순례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근방에는 세례자 요한이 실제 살았던 토굴과 예언자 이사야가 승천한 곳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은 물론이고 하나님에 의해 불로 벌을 받은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그때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으로 변한 것으로 기록된 롯의 아내 소금 상, 출애굽의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과 가나안 땅을 육안으로 처음 목도한 느보 산 역시 여기다. 더불어 2, 3세기의 초기 기독교 교회와 지구상에서 교회로 지어진 가장 오랜 건축물도 있다.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와디럼 등 사막에서는 캠핑을 하며 사륜구동차량이나 낙타 등에 올라 사구를 찾아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막사파리도 즐긴다. 홍해 연안은 최근 고급 리조트 타운이 들어서 쾌적한 휴식을 보장한다. 이곳의 맑고 투명한 바다에서 스노클링과 다이빙 중에 즐기는 산호더미의 수중 풍경은 아름답기로 세계 최고다. 사해도 ‘암만비치’ 개발을 통해 개념의 세계 최고급 휴양리조트 타운으로 변신했다. 여기에는 켐핀스키 뫼벤픽 등 고급 리조트 호텔이 들어서 수준 높은 휴양문화를 선사한다. 사해 부근 마다바에는 온천수가 폭포를 이뤄 쉼 없이 쏟아지는 거대한 온천계곡(마인)까지 있는데 역시 세계 최고의 식스센스 스파가 에바손리조트 호텔과 더불어 이곳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귀중한 요르단의 관광자원은 친절한 사람들과 깔끔한 건강개념 음식이다. 베두인족은 아랍의 사막 전역에 퍼져 사는 부족으로 요르단에도 많다. 이들의 환대문화는 아주 독특하다. 사막에 치고 사는 텐트를 찾는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재워준다. 요르단인의 친절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음식도 건강식이다. 수출할 만큼 풍부한 올리브유와 요구르트가 주요 양념이다. 주요 식재료인 야채와 과일도 테라로사 토질에서 사철 풍부하게 생산된다. 육류로는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를 주로 먹는데 역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특히 멘사프 사지야 같은 전통 양고기 요리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요르단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 폭동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나 이집트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여행하기에도 위험요소가 전혀 없다. 이런 안정은 압둘라 2세 국왕에 대한 국민의 깊은 충성심과 신뢰감에서 왔다. 덕분에 걸프 만 아랍 국가로부터 경제투자도 늘어 경제상황도 상승 무드다. 관광이 국가 주요 사업인 만큼 관광 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이다.



요르단 구약 기행

한 공간에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한다. 신화와 역사의 시간이다. 간혹 신화의 시간이 역사의 시간을 압도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몽환적이다. 해서 자꾸만 아랍 커피를 마셨다. 에스프레소만큼이나 독한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조금은 깨어나곤 했다.

중동땅 요르단 암만 공항에 내려 사막대로에 오르는 순간부터 시간의 공존은 확연했다. 먼 지평선은 모랫바람으로 흐릿했고 가까운 마을은 버려진 것처럼 황량했다. 유난히 추운 겨울, 유목민족 베두인이 머무는 마을이라 했다. 그 마을들의 풍경은 비슷하다. 기약 없는 미래를 향한 철골구조물이 1층 너머 수직으로 뻗었고, 본래 하얗던 벽은 모래먼지에 누렇게 물들었다.

간혹 땅에 솟은 나무는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찬란한 연두색 대신 먼지를 뒤집어썼다. 가이드 칼리드(Khalid)가 말했다. "요르단은 물이 부족하다. 홀로 크는 나무는 없다. 모두 사람이 가꾼다."

그 황량한 공간에 신화의 시간이 중첩된다. 구약성서의 시간이다. 기원전 13세기(추정) 유대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향했다.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 38년간 광야에서 헤맨 곳이 바로 요르단이다. 그가 지팡이로 때려 물을 솟게 한 바위도, 숨을 거둔 느보산도, 그의 형 아론의 무덤도 모두 여기 있다. 그 흔적을 따르는 길은 아카바에서 시작된다.

출애굽한 20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이 헤맨 광야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모세는 40년의 여정 끝에 가나안 땅을 목전에 뒀으나 결국 그 앞에서 숨을 거둬야 했다.

◆38년 고난의 시작, 아카바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국경을 맞댄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경계선 따라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곳이 세 군데다. 요르단 남쪽 도시 아카바는 그 중 하나이자 요르단 유일의 항구다. 대부분의 수출품과 수입품이 아카바를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유일한 항구 도시, 아카바는 휴양지다. 밤에 더욱 빛난다. 시장을 품은 거리는 호객꾼으로 시끄럽고 카페는 물담배와 커피를 즐기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해변은 빼곡하다. 만(灣) 너머 땅은 불빛으로 넓게 반짝인다. 이스라엘 에일랏이다.

아침 햇빛에 불려오는 에일랏은 훨씬 가깝다. 그 사이, 좁은 만이 홍해다. 애굽 군사에 쫓기던 모세 일행이 물을 가르는 기적으로 탈출한 바다다.

홍해로 땅끝을 마감하는 요르단에서, 아카바는 모든 길의 시작점이다. 여기서 왕의 대로와 사막대로가 시작해 요르단을 종단한 뒤 암만에서 다시 만난다. 오른쪽으로 넓게 도는 사막대로는 아라바 광야를 가로지른다.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38년간 헤맨 광야다. 40년에 이르는 방랑 끝에 200만명이 넘던 출애굽 유대민족 중 오직 2명만 남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 200만명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닿았다.

그 광야는 높다. 사막대로는 해발 0m에서 700~800m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 귀는 순식간에 먹먹해진다. 이스라엘 민족은 조금씩 힘겹게 오르며 고도차에 적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와디럼을 만났을 것이다.

◆풍요 대신 신성을 품은 와디럼

사막이나 광야라 해서 끝 모를 지평선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광야의 한복판, 와디럼에선 불끈불끈 솟은 사암 산맥이 지평선을 가린다. 그 풍경은 위압적이다. 대체로 돌산은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지나 어떤 돌산은 불현듯 솟아올라 길을 막는다. 가까운 산은 황토색이 뚜렷하되, 멀수록 자욱한 모래먼지에 색을 잃어 원근감이 과장된다.

와디럼에서 성서의 시간은 모호하다. 다만 왕의 대로를 걷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 근방을 헤맸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대신 또렷한 건 로렌스의 시간이다. 그는 사막에 매혹된 영국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에 맞서 아랍 독립 전쟁에 참여했다. 영국의 국익을 위해 그리했다는 말도 있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찍은 곳이 와디럼이다. 영화에서 한 영국인 장교가 말했다. "신과 베두인 족만이 사막에 흥미를 느낀다. 보통 사람에겐 불타는 용광로일 뿐이지."

불타는 용광로의 풍경은 해와 모래먼지, 그리고 메마른 관목이 완성한다. 베두인 족이 모는 트럭을 타고 와디럼 한복판에 들어서면 안다.

황토색 사암은 해의 방향 따라 빛을 얻거나 드러내면서 때로 붉고, 때로 하얗다. 모래먼지는 회색으로 먼 풍경을 거두고, 키 낮은 관목은 녹색으로 땅을 점점이 수놓는다. 문득 사람 키를 넘어서는 나무를 마주칠 때면 모든 이방인은 탄성을 내뱉는다. 그만큼 이 풍경은 풍요가 허락되지 않는 땅의 풍경이다. 사람의 정주(定住)를 거부하는 땅이다.

구약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불평을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수기 20장 4절)

이스라엘 민족이 '악한 곳'이라 말할 때, 그 악은 척박한 생존조건에서 온다. 대신 그곳에선 신의 목소리가 울린다. 풍요 대신 신성(神聖)을 품어 로렌스를 비롯, 수많은 몽상가를 매혹한다. 와디럼은 그 악한 곳을 닮았다.

◆모세의 샘이 있는 페트라

페트라는 와디럼에서 멀지 않다. 이쯤에서 왕의 대로로 길을 바꿔 탄다. 왕의 대로는 고대 무역로다. 이집트에서 시작해 아카바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페트라와 마다바, 암만 등을 거쳐 요르단을 종단하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닿는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걸으려 했던 길도 바로 왕의 대로였다. 그들은 이 길을 통해 가나안 땅에 가려 했으나 의도를 의심한 에돔 왕이 이를 거부해 광야로 내몰렸다.

마땅히, 페트라는 언제까지나 고대 아랍 민족 나바테안의 도시로 남을 것이다. 다만 페트라는 몇몇 지명으로 성서의 시간도 기록한다. 먼저 페트라를 지나는 계곡 이름은 와디 무사(Wadi Musa), '모세의 계곡'이다. 그 계곡 끝엔 아인 무사(Ain Musa), '모세의 샘'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갈증을 호소할 때 모세가 바위를 쳐 물을 솟게 한 곳이라 전한다. 지금도 그 샘은 마르지 않는다. 하나 바위를 지팡이로 내려치며 신의 영광 대신 스스로의 능력을 과시한 탓에 이 유대민족 영웅의 운명은 크게 엇나간다.

페트라의 나바테안 유적지에서도 성서의 시간은 하얀 점으로 또렷하다. 페트라에서 고개를 들면, 호르 산 정상에 아론의 무덤이 홀로 빛난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대제사장 아론은 여기서 숨을 거뒀다. 구약 민수기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 '므리바 물'이 바로 지금 페트라에 있는 아인 무사 샘물이다.

지금은 호르 산을 오를 수 없다. 관광객이 오를 수 없는 호르 산에서 아론의 무덤은 홀로 광야 너머 가나안 땅을 바라본다. 그 땅은 아론이 영원히 닿지 못할 땅이다. 영원히 닿지 못할 땅을 아론의 무덤은 영원히 조망한다. 멀리 하얗게 빛나는 아론의 무덤을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아련하다.

1 마다바 성 조지 교회. 2 예루살렘 및 인근을 묘사한 제일 오래된 지도,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 성 조지 교회 내에 있다. 3 지금도 마르지 않는 페트라 '모세의 샘'.
◆모세가 숨을 거둔 느보 산

사막에선 땅의 진화가 종점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사막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인다. 사막의 사계절은 풍광의 변화 없이 비슷하다. 늘 불어오고 불어가는 바람만이 침식을 재촉하나, 풍화는 아주 더뎌 변화를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다. 수천 년 전과 지금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으리란 짐작은 여기서 기인한다.

모세가 숨을 거뒀다는 느보 산에 올랐다. 모세와 느보 산의 관계는 아론과 호르 산의 관계와 같다. 신의 뜻을 거역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축복은 또렷한 전망이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신명기 34장 중)

실제 그 전망은 모랫바람으로 늘 흐릿하다. 느보 산 정상에서 왼편으로 사해가 눕고 정면으론 이스라엘 여리고가 어렴풋하다. 여기서 여리고까지 27㎞, 예루살렘은 46㎞ 거리다. 40년간 모세가 헤맨 거리에 비하면 코앞이다. 모세는 80세의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길을 터주고 이 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죽었다.

성서의 시간은 여기서 역사로 진입한다. 느보 산에선 4세기에 건축한 교회와 수도원이 발굴됐고 9㎞ 떨어진 인근엔 예루살렘 및 인근을 묘사한 제일 오래된 지도가 있다. 바로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다.

모자이크 지도는 마을 마다바의 성 조지 교회 바닥에 있다. 6세기쯤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에서 예루살렘과 사해, 베들레헴 등이 뚜렷하다. 본래 가로 6m, 세로 16m 크기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약 3분의 1쯤만 남아 많은 지역이 사라지고 없다.

마다바를 마지막으로 신화의 흔적은 잦아든다. 다시, 신화와 역사의 시간이 만난다. 암만에서 그 몽환의 시간을 마감한다.

여·행·수·첩

◆환율: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항공: 에미리트항공이 요르단 수도 암만까지 두바이 경유편 운행. 매일 오후 11시 55분 인천 출발. 왕복 180만~190만원 선(유류할증료 및 세금 불포함). www.emirates.com/kr, (02)2022-8400

◆입국비자: 입국 시 암만공항에서 10JOD를 내면 바로 발권해준다. 유효기간 1개월.

◆여행 경로

①아카바에서 시작, 와디럼·페트라·느보산·마다바·암만 순으로 북진하는 편이 좋다. 암만에서 아카바까지는 육로로 4시간 소요. 각 구간 버스노선이 취약하므로 차를 빌리는 편이 낫다. jordan.rentalgroup.com 등 렌터카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암만공항에서 차를 빌릴 수 있다.

②아카바(Aqaba)와 페트라(Petra), 암만(Amman)에서 묵을 만하다. 아카바에선 시내에 있는 '캡틴 호텔'이 깨끗하다. 75JOD부터. www.captains-jo.com

트라에선 5성급 호텔 뫼벤픽리조트(www.movenpick-hotels.com)가, 암만에선 역시 5성급 호텔 홀리데이 인(www.holidayinn.com)이 편하다. 이외에도 www.tripadvisor.com, www.activehotel.com 등 호텔예약 사이트에서 각 지역명으로 검색, 예약하는 것도 방법.

◆각 지역 정보

와디럼: 입장료 2JOD. 방문자 센터에서 사륜차투어·낙타 사파리 등을 운영한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2시간짜리 사륜차 투어는 35JOD. www.wadirum.jo

페트라: 유적지 입장료 하루용 50JOD, 이틀용 55JOD. 페트라 관광사무소에 신청하면 영어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동행가이드 50JOD부터. +962-3-2156044

③느보산·마다바: 느보산은 마다바에서 서쪽으로 약 5㎞쯤 떨어져 있다. 마다바 성조지 교회 입장료 1JOD. +962-5-3240723 느보산 입장료 1JOD.

◆여행상품: 롯데관광에서 암만·페트라·와디럼 등 요르단을 비롯해 두바이·시리아·레바논을 함께 도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02)2075-3006, www.lottetour.com


한 발 한 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와디(사막의 계곡)무사의 밤하늘에 걸린 반달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 거기에 바닥의 촛불까지 더했건만. 이런 소심(小心)이 어둠 탓만은 아니다. ‘페트라’라는 가공할 인류유적 앞에서 갖는 경외감이 더 큰 이유다. 2800년 전. 여기 처음 당도한 나바테아인들도 그랬으리라. 도대체 폭이 3∼4m밖에 되지 않는 200m 높이의 좁은 바위 틈새는 얼마나 길지, 그걸 통과하면 과연 뭐가 나타날지. 두려움과 호기심이 그들 발걸음을 더디게 했을 터이니 오늘 밤 나의 이 더딘 걸음도 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바위 틈새로 들어서니 달빛 별빛은 언감생심이다. 오로지 의지하느니 2m 간격으로 놓아둔 바닥의 촛불뿐. 틈새 좁은 밤하늘로 별과 달이 신비롭다. 이렇게 걸은 게 1.2km. 갑자기 정면이 밝아온다. 협곡의 막장이자 페트라 고대도시의 초입인 ‘알카즈나’ 유적이다.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짧은 탄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1800개의 촛불로 밝혀진 알카즈나의 장대하고 고아한 모습 때문이다. 붉은 사암의 장밋빛깔 절벽에 새겨진 조각건축은 촛불에 반사돼 더더욱 고혹적으로 다가왔다. ‘파라오의 보물’이란 뜻으로 ‘트레저리(Treasury)’라고 불리는 이 유적. 기원전후 1세기경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초빙해온 조각가의 솜씨임에 틀림없다.

그 앞에 수백 명이 앉아 있었다. 어떤 소음도 없이 적막한 이 성스러운 공간에서 미동도 없이 앉은 이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 그 모습은 경건하기만 했다. 나바테아 사람들도 이랬을까. 그걸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전통악기 라바바(비올라와 바이올린의 원조로 추정되는 두 줄의 아랍 전통 현악기)연주가 시작됐다. 바위 협곡에 울려 퍼지던 그 신비로운 음색과 선율. 지금도 귀에 선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 거대한 절벽을 파내 바위 전체를 신전처럼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계획. 그걸 왕의 무덤으로 쓰겠다는 생각. 모두 나바테아인의 아이디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2000년도 전에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이런 상상 초월의 건축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시 이곳은 세계 무역로의 중심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뉴욕쯤 될까. 당시 무역은 낙타에 물건을 실어 장거리를 이동하는 대상의 전유물. 아라비아와 지중해를 잇고 훗날에는 실크로드로 이어졌다. 그들이 바로 이 대상민족이었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에서 북쪽으로 이동 중 기원전 6세기에 이곳에 당도했다. 그리고 여기에 도시를 건설했다. 그 도시가 ‘페트라’고 최전성기인 기원후 1세기엔 인구 3만5000명 규모였다. 페트라는 대상 이동로였고 그들은 이 도시에서 대상들로부터 통행세(세금)를 거뒀으며 또 스스로 대상무역에 종사했다. 훌륭한 건축물은 훌륭한 건축주가 있어야 나온다. 금융업은 모든 고급 건축물의 건축주다. 그때도 같다. 페트라의 시크(Siq)라고 불리는 이 바위 틈새 협곡은 이 도시로 들어오는 요새형 통로다. 대상은 이 협곡 밖으로 우회했다.

내년은 이 페트라가 한 스위스인에 의해 서방에 알려진 지 꼭 200년 되는 해. 이 기념비적인 해에 페트라 방문은 더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페트라 바이 나이트(Petra by Night)’에 참가한 뒤 이튿날 아침 되찾기를 권한다. 감동이 훨씬 진하다.


'비밀의 성전' 요르단 페트라
기원전 2세기 번영의 땅… '인디아나 존스'도 밟았다

인간이 꿈을 꾼다. 꿈속에서 구상(具象)은 논리를 잃는다. 논리를 잃은 구상은 추상이나 상상으로 도약한다.

신이 꿈을 꾼다. 그 꿈은 반대로 도약한다. 신은 추상을 구상화한다. 질료는 흙과 물, 불과 바람, 그리고 시간이다.

중동국가 요르단의 남쪽 고도(古都) 페트라(Petra)에서, 신과 인간의 꿈은 뒤섞인다. 고대 아랍인 나바테안(Nabataean)족은 신의 형상을 원과 네모로 추상화했고 그들의 신 두샤라는 천혜의 지형을 선사했다. 뒤섞인 꿈은 지금도 남아 나바테안족의 후예, 베두인족의 거처로 현존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도, 빛과 어둠의 경계도 모호한 페트라를 찾았다. 며칠 동안 자꾸만 눈을 비볐다. 발 딛고 선 공간이 눈앞에서도 믿기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공터에 건물을 쌓을 때, 나바테안은 사암을 조각해내는 방식으로 제 도시를 가꿔냈다.
신의 꿈

먼저 페트라에서 신이 꾼 꿈. 페트라 들어서는 길은 협곡이다. 이 협곡은 좁고 깊다. 기껏해야 협곡의 폭은 3~10m인데 그 높이는 때로 100m를 넘어선다. 터무니없는 비례의 협곡은 바싹 길을 압박하며 소리를 가둔다. 베두인 젊은이가 말을 몰고 지날 때마다 말발굽 소리는 절벽과 절벽 사이에서 파동쳤다.

협곡은 그 소리의 파동을 닮았다. 협곡의 질료, 사암은 바람의 출렁이는 물결 모양으로 1.3㎞쯤 이어진다. 수평의 파도는 때로 용암이 흐른 자국 같은 수직의 무늬를 만난다.

소리와 물질이 서로 닮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풍경은 태양 각도를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가까운 협곡은 늘 어둑하나 먼 데서 굽이치는 협곡 정상은 빛을 받아낸다. 그 빛으로 먼데 절벽이 외려 가깝다. 페트라의 해는 원근감을 교란한다. 이 같은 길은 전례 없다. 해서 현실을 딛는 발걸음이 자꾸만 멈칫한다.

사방을 바위산이 감싼 천혜의 요새, 페트라.
◆인간의 꿈

협곡의 끝에 2000년 전 나바테안족이 그린 꿈이 있다. 신과 인간의 꿈이 서로 만나는 순간은 극적이다. 굽이치는 협곡의 끝에서 불현듯 매끈한 질감의 사암이 반짝인다. 이 질감은 인간의 흔적이다. 흔적은 처음엔 아슬하게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다 온전히 협곡을 빠져나올 때에야 전체를 보여준다. 그때,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탄성을 쏟아낸다.

비로소 시작되는 유적의 서곡, 알 카즈나(Al Khazna·보물창고). 신전이나 왕릉으로 추정되는 나바테안족의 건축물이다. 그들의 건축은 협곡과 완벽하게 조화한다. 다른 민족이 공터에 건물을 쌓아갈 때 나바테안족은 기존의 사암을 조각해내는 방식으로 건축의 뜻을 전복했다. 거대한 암벽을 깎아 기둥을 세웠고, 그 안을 파 공간을 만들었다.

나바테안족은 다른 민족의 꿈과 문화를 제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둥은 로마의 코린트 양식이되, 기둥이 떠받친 형상은 이집트 이시스 여신과 스핑크스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양식, 그리스·로마식 건축이 모두 페트라에 있다. 그 도시를 나바테안은 렉무(Rek Mu)라 불렀다.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진 뒤 그리스인들은 페트라(Petra)라 불렀다. '바위'라는 뜻이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어원이 바로 페트라다.

꿈의 흔적을 남긴 나바테안족의 기원은 모호하다. 중동 사막지대 유목민이라 추정할 뿐이다. 페트라는 당시 주요 동서 무역로 중 하나였던 '왕의 대로' 길목에 자리했고, 나바테안족은 이를 장악해 기원전 2세기부터 200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무역로가 향후 북쪽 다마스커스로 옮겨가며 페트라는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1000년 가까이 지난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버크하르트에게 발견되며 서방세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숱한 이를 매혹했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3'와 '트랜스포머2'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굽이치는 협곡의 끝에서 불현듯 반짝이는 알 카즈나. 그 앞에 선 모든 이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탄성을 쏟아냈다.

뒤섞인 꿈

나바테안족의 도시 설계는 색다르다. 알 카즈나를 필두로 드넓은 분지 지형에 닿기까지, 도시를 감싼 절벽은 사암을 파낸 무덤으로 빼곡하다. 그 안쪽으로 시장터와 교회, 원형극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공영역이 있다. 죽은 이가 산 자를 감싸는 형식이다. 이를 관통하는 길은 서쪽, 앗데이르(Ad-Dayr·수도원)에서 마감한다.

알 카즈나를 닮은 거대유적 수도원은 높다. 가파른 벼랑길을 40분 이상 올라야 마주칠 수 있는 그곳에선 경계 밖으로 아라바 광야가 내려다보인다. 오르는 길에 드문드문 선 이정표는 이렇게 기록했다.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전망대."

동쪽 협곡에서 서쪽 수도원에 이르는 길은 인간의 꿈이 쌓은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무덤은 나바테안족의 것이요, 원형극장은 로마 시대의 흔적, 극장 맞은편 교회는 비잔틴 형식이다. 이 풍경은 어렴풋하다. 신의 꿈이 인간이 쌓은 꿈의 흔적을 깎아낸 탓이다. 1000년 넘게 지속한 풍화와 간헐적인 지진은 인간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냈다. 교회는 터만 남았고 무덤에 새겨졌을 정교한 문양은 지워지고 없다.

신의 꿈이 인간의 꿈을 지워낼 때, 신화의 시간은 종말을 맞는다. 그러나 페트라에서 그 시간은 지금도 여전하다. 유적 사이사이를 말과 낙타로 누비는 민족, 양떼 몰며 뜻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는 민족, 정주 대신 이주를 고집하는 민족, 베두인족이 페트라의 풍경을 지키고 있어서다. 

◆여행수첩

환율: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가는 길
① 항공편: 에미레이트항공이 요르단 수도 암만까지 두바이 경유편 운행. 매일 오후 11시 55분 인천 출발. 왕복 180만~190만원 선(유류할증료 및 세금 불포함). 10만원 추가 시 두바이에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 www.emirates.com/kr, (02)2022-8400 ② 암만~페트라: 육로로 3시간 소요. 암만 공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암만 시내에 있는 압달리(Abdali) 버스 정류장으로 간 뒤 'JETT'라는 국영 관광버스를 탄다. 매일 오전 6시 30분 출발. 페트라에서는 오후 5시 출발. 편도 8JOD. www.jett.com.jo ③ 길이 쉬워 차를 빌리는 것도 방법. jordan.rentalgroup.com 등 렌터카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암만공항에서 차를 빌릴 수 있다. 공항에서 나와 '아카바(Aqaba)' 방향으로 사막대로를 타고 가다 '페트라(Petra)' 이정표가 보이면 그 방향을 따른다.

입국비자: 입국 시 암만공항에서 10JOD를 내면 바로 발권해준다. 유효기간 1개월.

페트라 정보

① 페트라 입장료: 10월까지 하루용 33JD, 이틀용 38JOD. 11월부터 각각 50JOD, 55JOD로 오른다.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 이틀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페트라 관광사무소에 신청하면 영어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동행가이드 50JOD부터. +962-3-2156044 ② 묵을 곳: 5성급 호텔 뫼벤픽리조트가 페트라 유적지와 가깝다. www.movenpick-hotels.com 유적지에서 15분쯤 걸으면 페트라 시내다. 여기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20JOD부터. www.tripadvisor.comwww.activehotels.com 등 호텔예약 사이트에서 '페트라(Petra)'로 검색, 예약하는 것도 방법. 여행사에서 '만실(滿室)'이라는 호텔도 인터넷을 통하면 방이 많다.

여행 상품: 롯데관광에서 페트라를 비롯해 두바이·시리아·레바논을 함께 도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02)2075-3006, www.lottetour.com

주요 연락처: 요르단 관광청 www.mota.gov.jo +962-6-4603360, 요르단 명예영사관 (02)3701-8474


국토의 80%가 사막으로 이뤄져 있는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그 속에 감춰진 오아시스는 더욱 시원할 수밖에 없다.
사막 곳곳에 감춰진 숨은 비경을 찾아 떠나는 요르단 탐험.

2003년부터 네 번 여행한 요르단은 나에게 있어 숨은 보석 같은 나라다. 누군가 ‘요르단의 무엇이 가장 좋냐?’ 라는 질문에 ‘열사의 땅이라 좋다’라고 대답한다. 전 국토의 80%가 사막인 뜨거운 나라,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할 것 같은 황량한 사막 곳곳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장소를 발굴하는 기분은 어떤 나라를 여행한다고 해도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다.

고대 로마부터 그리스도교 그리고 아랍의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를 거쳐 수많은 얼굴과 목소리를 간직한 나라, 요르단. 더불어 신이 조각하고 빚어놓은 것 같은 천혜의 장엄한 자연경관은 모험심 강한 여행자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붉은 사막의 나라 요르단은 때로는 고고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막의 유목민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매력 속에 빠져들기까진 인내가 필요하다. 요르단이라는 나라는 직접적인 거리는 가까울지 몰라도 막상 오고 가는 일은 멀고 먼 나라이기 때문이다. 직항기가 없어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로 가서 한번 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게다가 촬영 당시 故 김선일 살해사건과 관련된 알카에다 사촌이 요르단에 산다는 이유로 우리 촬영팀 몸값이 한 사람당 25만 달러라는 말을 해서 조금은 겁에 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도착 첫날부터 잊어버렸다. 요르단 사람들은 다른 아랍국들에 비해 유난히 개방적이고 정겹고 유쾌했다.


사막 속의 뜨거운 오아시스

2000년 전 왕의 대로를 따라간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은 전국토의 80%가 누런 사막과 석회암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으로 가다보면 누런 산밖에 없다. 어디를 가든 사방천지 바위와 흙투성이 사막길이 반복되어 혹시 내가 같은 장소를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꽃나무들이 화사한 별천지의 세상으로 들어서는데 바로 ‘마인(Ma'in)’이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이 사막 고원(East Bank Plateu)에 꽃나무가 피어있는 것도 신기한데 고원의 한가운데 50m가 넘는 폭포가 떨어지는 곳이 있다. 더구나 이 폭포에서는 불처럼 뜨거운 물이 떨어진다. 함마마트 마인 (Hamma Ma'in)이다. 온통 누런 사막 속에 있다가 이 폭포를 보게 된 순간은 정말 충격이였다. 이곳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헤롯왕 시절부터 비밀온천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지금은 부유층 요르단인들이 이용하는 숨은 리조트가 되었다. 일명 불폭포라 불리는 제 1폭포는 50m 아래에 천연온천을 만들고 다시 그 밑으로 뜨거운 물이 흐르는 오아시스를 만들어낸다. 사막에 흐르는 뜨거운 오아시스라…. 카메라에 김이 서리는 것을 보니 뜨겁긴 한 것 같은데 얼마나 뜨거울지 호기심이 또 발동한다. 살짝 손을 넣어보려고 하자 안내를 하던 온천 매니저가 나를 만류한다.

“80℃요?”

“네, 그 이상이에요.”

그래도 믿지 못한 나는 살짝 손가락만 물에 넣었다. 그리고 그 즉시 너무 놀라 바로 뺏다. 

“앗, 뜨거. 진짜 뜨겁다.”

“마치 뱀이 무는 것 같죠? 내가 뜨겁다고 했잖아요. 달걀을 삶을 수도 있고 양고기도 삶을 수 있어요.”

“물의 온도는 80℃가 넘어요.”

나의 이런 행동에 매니저는 정말 즐거워했다. 이곳은 당장 고기를 삶을 수 있을 정도로 팔팔 끓는 유황온천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풍부한 수량의 물은 사막 어디에서 온 것일까? 건너편 산에 올라가서 보니 희미하게 물 솟는 것이 보인다. 사막고원의 작은 구덩이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포와 맞닿는 바위들은 온통 초록색으로 변해 있다. 이 물이 화산작용의 결과이며 미네랄을 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화산활동의 결과로 생겼고, 3000년 이상 존재해온 곳이라고 한다.

여전히 감탄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수건 하나씩 두른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 뜨거운 곳으로 온천을 하러 가는 것이란다. 80℃가 넘는 온천물이 폭포로 흘러내리는 곳에 면벽수도하듯 모두 불폭포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무슨 종교의식을 보는 것 같다. 

내가 손을 델 뻔한 80℃가 넘는 온도는 물은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사람이 맞아도 될 만큼의 온도로 내려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뜨거운 사막에서 즐기는 온천 폭포라니…. 이것이 진정 이열치열인가 싶다.

문화가 다르다 보니 재미있는 풍경도 눈에 띄는데 이슬람 사회라서 그런가 여성들은 옷을 입고 히잡을 쓴 채 온천을 즐기고 있다. 또 아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는 여자랑 같이 폭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자들이 물을 다 맞고 나면 그 다음 남자들이 들어간다.

또한 이곳에 오는 요르단 사람들은 휴식과 함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폭포가 뼈에 관련된 질병에 좋은 각종 미네랄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 자체의 성분도 성분이지만 30m가 넘는 폭포에서(제2폭포: 뜨거운 물과 찬물이 섞여서 떨어지는 곳. 제1폭포보다는 낮음) 떨어지는 뜨거운 물을 그대로 맞으면 그 자체가 천연 열 마사지가 된다고 한다. 

“뜨거운 폭포에 맞으면 몸이 이완되서 너무 행복해요.”

“모든 요르단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장소죠. 천연 마사지이기 때문에 사람한테 마사지 받는 것에 비해 굉장히 쌉니다.”

나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데 앞서 들어간 남자들이 나올 생각을 안한다. 멀뚱멀뚱 한 사람만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 일행이 있었는지 우르르 몰려나온다. 이젠 내가 들어갈 차례. 하지만 옷을 벗을 수는 없고 나도 이슬람여자들처럼 옷을 입고 들어갔다. 머리엔 흰수건을 두른채. ‘으악!’ 뜨거운 소나기를 맞는 것 같다. 사우나에서 맞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폭포의 뒤에는 더욱 놀라운 시설이 있다. 사람들이 손짓을 해 따라 가보니 천연동굴에서는 폭포보다 훨씬 뜨거운 물이 떨어지고 있다. 다들 뜨거워 발을 돌 위에 얹고 앉아있다. 바닥에 흐르는 뜨거운 물 때문에 뜨거운 김이 동굴안에 가득하다. 그야말로 천연 사우나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우리나라처럼 때를 밀어주는 목욕관리사가 보였다. 때미는 솜씨도 프로급에 때수건도 따로 준비해 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시리아에서 온 여행자로 친구들을 밀어주고 있는 거란다. 때수건도 시리아에서 가져왔단다. 대단한 준비성이다

그 한켠에는 열심히 마사지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사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버지가 당뇨가 있으셔서 다리 마사지를 해드리고 있는 거예요.”

한때 헤롯왕도 피부병 치료차 들렀다는 이 곳,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행운은 길 위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 아닐까? 하늘의 뜨거운 선물 마인온천은 갈증을 식혀주는 뜨거운 오아시스였다.

온천을 하고 벌건 얼굴로 나오니 왠지 낯이 익은 청년이 웃으며 손짓을 한다. 아까 온천에서 나오라고 노려보았던 사람이다. 자신들이 커피를 준비했으니 한잔하고 가라는 것이다. 요르단 남자들은 처음 요르단에 오는 여자 여행객들이 착각 할 정도로 너무 친절하게 대해준다. 뭐 실제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호기심이 더 강하다. 나도 처음엔 ‘여기 사람들 너무 눈이 높은거 같아’ 하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진한 아랍 커피 한잔을 하며 마인 온천에서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한다. 그들의 친절이 어떤 이유였던가를 떠나 요르단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에 먼저 인사를 해온다. 누구나 환대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래서 난 요르단을 더 기억에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자연

마인을 지나 사막 계곡, 와디 무지브로 향한다. 요르단 국왕도 칭송했다는 최고의 자연이라 평하기에 더욱 기대가 크다. 와디 무지브로 향하는 길에는 곳곳에서 양을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 대다수가 목축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들도 사람들을 닮는지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이 요르단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와디 무지브로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조금씩 드러나는 계곡의 모습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와우, 정말 크다.”

요르단의 그랜드캐년이라는 와디 무지브를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와디(wadi)는 보통 계곡이나 사막의 마른 골짜기를 일컫는 말인데, 골짜기라 부르기엔 너무나 거대한 규모에 먼저 압도된다. 성서시대에는 고대 모압과 아모리왕국의 경계선이 되었던 아르논 계곡으로 불렸던 곳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하며 경유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곳에 서보니 왜 두 왕국의 경계선이었는지 실감이 난다. 정말 큰 협곡, 신이 만들어 준 국경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와디 무지브를 신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구불구불한 협곡의 도로를 따라 계곡 아래로 향한다. 그곳에서 와디 무지브의 숨은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브 자연 보호 구역(Mujib Nature Reserve)에 들어서자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준다. 


“요르단에는 여섯 개의 자연보호 지역이 있습니다. 무지브 자연보호 구역은 요르단에서 자연 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출발하면 왕복 5시간 정도 걸릴 것입니다.”

무지브 계곡 아래로 난 물길을 따라 5시간 탐험을 시작한다. 입구에서 이제 막 탐험을 끝내고 나온 여행자를 만났다. 젊은 어머니와 아들인데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한다. 

“일단 아름다워요. 매순간 즐거워요.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계곡이잖아요.”

그들은 무지브 계곡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한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계곡. 그것만으로도 기대와 환상을 품기에 충분하다는 말일 터. 이 속에 어떤 장관이 숨어 있을지 아직 맛보지 못했어도 시작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바위숲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장관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예상을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난관이다. 우리의 가이드 하미스가 빠른 물살이 치고 있는 바위위로 올라선다. 와디 무지브의 첫 번째 통과의례니 당연히 가야되겠지만 왜 이리 어려운 곳만 골라서 가는 느낌이 드는지… 다리 짧은 나에게는 유난히 힘이 드는 코스다. 좀전에 만난 여행자들에 왜그리 힘들어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위험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눈앞에 펼쳐진 거센 물살의 중심. 수직 절벽에는 사망 사고가 있었다는 경고까지 붙어있다. 아무리 베테랑 가이드가 있다지만 이 거센 물길을 거슬러 가야 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카메라감독은 카메라를 수중 장비로 뒤집어씌우고 모든 물에 젖는 장비들은 가이드가 들고 있는 수중 팩에 집어넣고 다들 합심해서 바위위에 올라선다. 긴바지를 입은 것을 후회하는 순간 남들은 다 허벅지인데 나는 가슴팍까지 홀딱 젖었다. 신의 뜻대로, 신의 가호로 무사히 건너는데 성공! 항상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불행이 있으면 행복이 있다. 

힘들게 어려운 곳을 지나자 신천지로 들어선다. 하늘에서 떡하니 돌이 떨어졌는데 신기하게도 절벽과 절벽사이에 껴 있다. 

“저 돌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거야?”

인간이 연출하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에 놀라움과 신기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카메라로 담지 못하는 순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와, 우와’ 감탄사는 계속 이어진다. 
사막 한가운데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쏟아지는 무차별 물폭탄 폭포, 요르단 국왕이 경호대를 이끌고 뛰어 내렸다는 폭포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온몸으로 폭포를 맞이한다. 폭포 안으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닥터 피쉬도 있고 가재도 있고 신기하다. 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 폭포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폭포를 맞으며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폭포를 내려오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물이 얼굴로 떨어지는데 놀라워요.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어요. 위에서는 자신 있었거든요. 근데 물이 얼굴로 쏟아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세상엔 용감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계곡 탐사의 교차점이다 보니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 중 민망한 수영복 차림으로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런 차림으로 험난한 계곡 탐사를 하고 있다니 다치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 됐지만,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점점 강해지는 물살에 깊이도 더 깊어졌다. 그 와중에 가이드는 뭔가를 꾸미고 있는 중이다.

밧줄을 타고 온 사람들과 나와 카메라 감독까지 바위에 올라오게 하더니 냅다 한사람씩 거친 물살로 던져 버린다. 말이 슬라이딩이지 그대로 물에 처박혀 물을 한바가지나 먹었다. 옷이 물에 젖어 무거워지고 다리는 풀려 천근만근이지만, 돌아나오는 길이 아쉬워 자꾸 와디 무지브의 계곡을 돌아보게 된다. 언제 다시 이 자연에 올수 있을까? 내가 만난 사막의 오아시스는 요르단 촬영의 잊지 못할 즐거움이었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1.07 11:06 신고

    요르단에 가봤죠 정말 좋죠

  2.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1.07 11:06 신고

    다들가보셨죠?

  3.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1.07 11:06 신고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자연을 감상할수 있는 요르단

요르단 와디 럼

요르단 남부 사막지대 ‘와디 럼(Wadi Rum)’의 모습.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션’은 사실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요르단 남부 사막지대 ‘와디 럼(Wadi Rum)’의 모습.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션’은 사실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 케이채 제공

누구나 한번 우주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구를 떠나 모든 것이 전혀 다른 미지의 행성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두렵지만, 상상만으로도 무척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의 꿈을 대리만족시켜 주기 위해 과거로부터 참 많은 영화들이 우주 여행을 주제로 만들어졌다. 최근 큰 히트를 기록한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마션(The Martian) 또한 그중 하나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의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그런데 이런 우주 행성을 다룬 영화들을 보다 보면 의문이 든다.

대체 어디서 촬영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달이나 화성 등 우주의 어딘가에 위치한 행성의 모습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실제 그 행성에서 촬영된 영화는 아직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지구스럽지 않은 행성의 모습들 대부분이 바로 지구에서 찾을 수 있는 풍경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마션에 등장한 화성의 모습은 어디에서 촬영된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화성이라고 확신하게 만들었던 그 거친 풍경의 주인공은 바로 요르단(Jordan)에 있었다. 요르단의 남쪽에 위치한 사막지대, 와디 럼(Wadi Rum)이 그 주인공이다.

와디 럼은 남쪽의 가장 큰 도시인 아카바(Aqaba)의 동쪽에 위치한 사막지대로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삶을 영위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바위에 새겨진 다양한 벽화들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장소가 서양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인 고고학자이자 군인이었던 로런스(T E Lawrence) 때문이다.

1917년에 벌어졌던 아랍 반란 시절 이 지역을 여러 번 방문한 그의 활약상이 신문과 훗날 자서전을 통해 세계에 전파되었다.현재까지도 이 지대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전통 부족인 잘라비아 베두인(Zalabia Bedouin) 사람들로, 이들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와디 럼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와디 럼은 현재 세계적인 친환경 관광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들이 와디 럼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만들어낸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상품은 암벽등반과 트레킹이지만, 사륜구동 차를 타고 즐기는 사막 사파리나 낙타를 타고 즐기는 낙타 사파리 등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와디 럼에 온다면 적어도 하룻밤 이상은 꼭 캠핑을 하는 것이 좋다. 베두인 사람들의 천막에서 잠을 잘 수 있을 뿐 아니라, 늦은 밤 와디 럼의 한복판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어디 우주 행성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에 젖게 하기 때문이다.

모래사막뿐 아니라 이곳저곳 울퉁불퉁하게 하늘 위로 솟아 있는 바위산들의 모습. 고요함보다 더 고요한 그 적막함은, 마치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남겨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늘 위로 보이는 별들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와디 럼의 다른 이름이 달의 계곡(The Valley Of The Moon)인 이유를 그곳에서의 밤에서 찾을 수 있다.

와디 럼의 모습을 보고 우주의 모습을 느낀 것은 비단 나 혼자가 아니었으리라. 최근 야후 무비와 가진 인터뷰에서 배우 맷 데이먼은 와디 럼이 그가 본 가장 대단하고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이며, 지구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뿐이랴. 마션뿐 아니라 여러 영화가 이미 화성이나 외계 행성의 모습을 위해 이곳을 촬영지로 활용했으니, 2000년작 레드 플래닛(Red Planet)이나 2012년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가 그 좋은 예다.

물론 와디 럼의 실제 모습은 화성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마치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은 그 우주적인 아름다움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와디 럼의 푹신한 모래 베개에 머리를 누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화성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멀고 돈도 꽤나 많이 들지만, 와디 럼으로 향하는 길은 그에 비하면 정말 가깝고 꽤나 저렴하니까 말이다.

와디럼

■ 여행정보

와디 럼으로 가는 길

한국에서 요르단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 카타르, 두바이, 혹은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수도인 암만(Amman)으로 갈 수 있다. 와디 럼으로 가는 버스는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남쪽 도시 아카바로 먼저 향해야 한다. 그곳에서 투어 등을 통해 와디 럼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암만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은 와디 럼에서 멀지 않은 페트라로 먼저 향한 뒤, 페트라에서 와디 럼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택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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